이란과의 평가전이 끝났다. K리그와 중동파들이 위주가 되었던 요르단과의 경기에 비해 훨씬 좋은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다. 골키퍼 차징인지 아닌지를 두고 말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경기에서 졌다는 사실이다. 골키퍼가 공을 잡는 상황이었지만 완전히 잡은 후에 충돌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웠기에 어떤 판정이 내려졌더라고 하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월드컵에서도 그보다 더 심한 오심이 나오는 마당에 심판 탓을 할 수도 없다. 다행인 점은 이번 경기가 아시안컵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 평가전을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경기력에 발전을 가져올 교훈들도 얻을 수 있었다. 덤으로 이란에 대한 투쟁심(어쩌면 적개심)을 기를 수 있었으니 다음에 아시안컵에서 만나면 단숨에 끝내버려야 한다. 물론, 이란 자체는 형편없는 경기 매너와 감독부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아시아를 대표할 자격이 없는 팀이다. 다시는 이란에 지지 말자.
겨우 이정도 매너를 보여주는 이란에게 아시아 최강자리를 넘겨줄 순 없다.
0. 감안해야 할 점
패배는 뼈아팠고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나 여전히 대표팀이 실험중이란 것은 감안해야 한다. 우선 기성용 파트너를 여전히 구하는 중이다. 장현수, 한국영 등이 이미 기용되었었고, 이번 경기에선 박주호가 중앙 미드필더로 나섰다. 둘째로 수비진도 실험 중이었다. 장현수가 센터백으로 기용되었고 김창수나 윤석영이 지난 경기에서 김영권-홍정호와 호흡을 맞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 상 처음으로 구성된 수비라인이었다. 셋째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선 구자철의 대표팀 첫 경기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공격진에서의 자유도가 높은 공격을 선호한다. 슈틸리케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중앙 공격수, 측면 공격수가 만드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또 수비에도 도움을 줘야하는 자리이다. 그리고 중앙 공격수 역시 스타일이 이전의 공격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근호가 기용되었다.
경기력을 직접 확인해야할 선수들을 투입하여 실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기 결과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 혹은 그렇지 못한 선수로 나뉠 수는 있지만, 슈틸리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제 부상 등으로 합류하지 못했던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유럽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수를 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조직력을 다져나간다면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 요르단 전 해설을 맡았던 모 해설자는 ‘4년을 보고 계약한 감독이므로 당장의 성과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크게 동감하는 바이다. 당장 조직력을 다질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1. 수비진 불안 – 리더가 필요하다.
실험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더라도 우리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선 가장 큰 문제점은 중앙 수비진의 불안함이다. 요르단전은 차치하더라도 이란 전에서 수비진에서 너무 많은 불안함을 보여주었다. 실점 장면은 상대에게 다소의 운이 따랐던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프리킥을 준 과정 자체가 좋지 못했다. 한 번의 위기 상황에서 공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연속된 위기 상황을 맞아야 했다. 이 과정에 반칙을 범했고 이것이 실점으로 연결된 것이다.
2선의 침투나 골문 앞에서의 경합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자리를 잘 지키는 수비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흘러나오는 공을 처리해 줄 2선의 미드필더들의 위치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른바 세컨드볼을 따내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낙하지점을 예측하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긴급 상황이 오자 선수들 사이의 적정 간격은 무너졌고 수비들은 위치가 겹치는 모습을 보였다. 수비진에서 침착하게 이런 간격을 조절해 줄 리더가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지난 경기들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을 노출했던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베스트11을 구성하여 점차 조직력을 높여가면서 수비진의 불안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점의 빌미가 된 프리킥을 내주기 전 상황. 4명의 수비수에 더해 미드필더들마저 급한 나머지 수비진과 함께 1선을 구축한 모습.
2선에 해당하는 표시된 넓은 지역을 비워두고 있다. 이후 장면 표시된 지역에서 파울을 범했다.
2. 수비의 개인 능력
두 번째 문제점은 수비진들 개개인의 문제이다. 축구란 스포츠에서는 11명이 모두 메시이거나 호날두일 필요는 없고 그런 팀이 구성된다고 해도 강할 리가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해내는 팀이 강한 팀이다. 이른바 ‘구멍’이 없어야 그 팀을 깨기 어렵다. ‘구멍’이 존재하면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팀 전체가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가 없없는데, 단순한 구멍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균열이 확대되어 팀 전체가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 경기에서 치명적인 구멍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1:1 장면에서 밀리거나 몸싸움에서 밀리면서 찬스를 내주는 장면이 많았다. 평소에 우리 선수들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등 해외 선수들과 부딪치는 모습을 보면 절대 개인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 컨디션이나 경기장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야 한다. 고지대인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원정’이라면 우리의 컨디션이 떨어질만도 하다. 게다가 이란 선수들은 우리보다 억세다. 몸으로 잘 제압되는 스타일이 아니고 우리에겐 더욱 터프하게 도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1:1 상황에서 몸으로 공을 완전하게 빼앗아내려다가 오히려 밀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평소처럼 수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정교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플레이를 보였어야 했다. 1:1에서 공을 빼앗아 내려다가 상대에게 돌파를 허용하는 모습보다는 스로인이나 코너킥을 내주더라도 상대가 정상적인 공격을 할 수 없게 방해하는 것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수비진의 불안은 동료들이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없게 만든다. 수비가 튼튼해야 더욱 화끈한 공격도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라고 한다면 단순히 구멍을 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정도의 수비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손흥민의 활약이 빛났기에 더욱 아쉬운 무득점.
3. 골 결정력
세 번째 지적 사항은 골 결정력이다. 사실 공격전개 과정은 너무나 좋았다. 결정적인 찬스를 ‘팀’이 만들어내기도 했고 손흥민이나 이청용 같은 선수들이 드리블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더도 점유율을 높였고 적절한 타이밍에 전방패스로 공격지원을 수행했다. 상대 골키퍼의 선방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터져야할 때 터지지 않은 골이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우리가 선제골을 넣었다면 이란을 상대로 여유 있게 공격을 할 수 있었을테고, 이란 역시 골을 넣기 위해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의 공격을 쉽게했을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골 결정력’이 패배로 이어졌다.
이번 경기에서 배울 수 있었던 점은 ‘넣어야 할 때’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축구를 지켜보면 90분 내내 흐름을 주도하는 경우는 없다. 중학생과 국가대표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면 어느 순간에는 주도권이 상대에게 넘어가 있다. 우리에게 흐름이 있을 때 골을 넣고 상대에게 흐름이 있을 때 잘 수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흐름이 우리에게 있고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을 때 득점에 실패했고 결국은 상대의 반격에는 골을 허용했다. 팀 전체가 흐름을 탔을 땐 골을 만들어내겠다는 더욱 강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조금 더 탐욕스러워도 좋다.
4. ‘정신력’ 싸움
축구는 정신력의 스포츠다. 기술과 신체를 가지고 다투는 것이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자세와 정신력이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우리 선수들도 이란을 이기고 싶었겠지만, 이번 평가전에서는 홈 경기를 치른 이란의 정신력이 앞섰던 것 같다. 거친 플레이도 마다하지 않았고 경기 내내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자신들의 축구를 믿고 침착하게 한순간을 잘 노리고 있었다. 이후에는 침대 축구까지 보여주었다. 이란 선수들도 침대 축구가 볼썽사나운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축구 선수로서의 자존심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겐 대한민국에 거두는 1승이 더욱 절실한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정신 무장이 해이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최근 경기에서 이란과 우리를 비교하자면 이란이 항상 더 절실해보였다. 기성용, 이청용, 손흥민 등 선수들은 특히나 강한 투쟁심을 갖췄기에 때로는 ‘성깔’로 비치는 행동들을 보이기도 했었다. 이란 전에서 그런 모습이 보고 싶었다.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일본팀을 상대로 하던 우리 올림픽 대표팀처럼 상대를 거칠게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공격이 과거에 비해 많이 예쁘고 빨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수비를 함에 있어서도 기술적이고 우아한 태클로 상대의 공만 걷어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란과 같은 라이벌 팀과의 경기엔 더욱 탁월한 마무리가 필요하다. 마무리 기술뿐 아니라 골을 항한 집념도 보여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이란에 당한 연속적인 패배가 걱정되는 것은 이란이 갖게 될 자신감과 우리도 모르게 생길 수 있는 이란에 대한 불안감이다. 축구에서 비슷한 수준의 두 팀이 싸우게 되면 승부는 정말 알 수 없다. 그 예측이 어렵기에 문어가 등장하여 승부를 예상하는 것이 이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축구계에서 신기한 것은 ‘천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잉글랜드가 스웨덴만 만나면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는 것도, 중국이 우리만 만나면 힘을 못 하기도 한다. 우연의 연속일 수도 있겠지만 그 기저엔 왠지 모를 자신감과 이유 없는 불안함이 섞여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승부에 임하는 자세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경기 역시 패배로 끝을 내렸다. 어떤 자세로 경기에 임했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상대를 죽일 기세로 뛰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이란과의 경기에 대해 어느 정도의 승부욕을 가지고 승리를 위해 어떤 자세로 경기에 임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앞으로 아시안컵 및 월드컵 예선에서 꾸준히 만나야 할 상대인 이란을 상대로 연패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 좋은 일이 아님에는 틀림없다.
점유율로 승리를 따낼 순 없다.
축구에서 좋은 과정이란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좋은 과정을 반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이란 전은 과정은 나쁘지 않았으나 결과는 끝내 좋지 못했다. 과정이 좋았다고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평가전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과정이 좋았기에 다소 간의 위안을 삼을 순 있겠으나 우리는 졌다. 월드컵 지역 예선부터 이어진 연패의 사슬을 끊지 못했다는 사실은 더욱 뼈아프다. 뼈아픈 경험을 그대로 둔다면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번 패배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는지, 또 보완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더욱 조직력을 갈고 닦아야 하고, 정신력도 새롭게 무장해야할 것이다. 아시안컵에 우승을 노리고 참가하게 될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 이번 평가전은 입에는 매우 쓴 약이었다. 그 약이 몸에 안 좋은 독약이 될지, 몸에 좋은 보약이 될지는 2달여도 남지 않은 아시안컵에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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