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영화나 한편볼려고 ... 뒤지던중..
콘크리트살인사건 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게되었어요..
뭐.. 그루지나 그런거처럼 좀무서운 영화겠구나.. 하고 클릭해봤죠..
그런데.. 이게 실화를바탕으로 했다는 글이있어서 -_-;;
호기심에 네x버 검색을 해보니... 이런엄청난 사건이.. -_-;;;
아셨던 분들은 뒷북이라고 모라하지 말아주세요 ..
평성원년(平成元年1989년) 3월 29일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元年 11월 8일에 강간,절도 등에 의해 소년감별소로 보내진 소년 A를 조사했을 때, 담당의 형사가 무심코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라고 한 말에 다른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
담당관은 당초의 목적인 여죄의 절도에 관한 조서를 받는 일 없이, 반신반의인 채, 자백내용에 의지하여 도쿄 코토구 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드럼통 한 개만 널려있었다.
드럼통에 채울 수 있었던 콘크리트의 틈새로부터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경찰은 305kg정도의 드럼통을 크레인으로 매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돌아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 백에 채워진 이불 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가 있었다. 사후 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하고 있어 상태가 나빴다.
피하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정도로 영양실조 상태. 전신에 구타에 의한 부종(림프액이 다량으로 모여 부어오른 상태)이 있어 사인은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여겨졌다.
안면이 함몰 및 변형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관으로부터의 확인은 곤란했지만, 지문이나 이빨 등의 조합으로부터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후 귀가 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현 미사토시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南고교 3학년의 소녀(17)인 것이 확인.
야시오 시내의 아르바이트에 먼저 간 채로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署에 수색원을 냈던 부모는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 행방을 찾고 있었다.
사건의 경과
11월 25일/20:00
자전거로 귀가 도중의 소녀를 찾아낸 A가 공범이었던 소년C에 소녀를 발로 차도록 지시, 소녀는 도로옆의 도랑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다. 공범C 도주후 주범A가 나타나 `위험하니 데려다준다`며 말을 걸어 납치
공범C 소년의 방에 피해자를 데려가 몇사람이 폭행·강간한다. C의 부친은 이때 소녀가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들어 주의를 줬지만 아들이 고함쳤으므로 그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희생자에게는 도망쳐 경찰에 신고해도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로 한다고 위협, 도망을 저지하려 했다.
11월 30일
A의 제안으로 피해자의 모친과 친구에게 `친구의 집에 있으니까 수색원은 내지 마라`고 공중전화로 전화시킨다.
이때, C의 모친은 피해자를 목격하고 있다. C의 모친이 부엌에 있었을 때 현관으로부터 `오늘 밤은`이라며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세요`라고 말했지만 대답을 하지 않고 2층에 올라갔다. C의 부친도 C가 내려왔을 때 `빨리 돌려보내`라고 말했다.
다음날, 그 아이는 돌아갔다고 말해 C의 부모님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일주일 후, C의 모친이 화장실을 청소했을 때 생리용품이 있었기 때문에 2층에 올라갔다.
2층에는 공범소년 D과 피해자 소녀가 있었다. 이때 피해자와 말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주소는 사이타마, 고교 3학년, 취직은 정해져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소년C와 그 모친, 소년D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어 도중에 귀가한 C의 부친은 `걸프렌드인가. 나에게도 소개해다오`하고 C에게 얘기했지만 무시된다.
C의 모친에 의하면 식후 텔레비젼을 보거나 패미콤(게임)을 해 사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었고..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C의 모친의 설득에 의해 귀가하게 되지만 밖에는 C와 C의 형이 대기하고 있어 실패. 결국 부모님이 잠드는 것을 기다려 전봇대를 타고올라 2층의 C의 방으로 돌아온다. 귀가한 C는 관계없는 일을 하지 말라며 모친을 수시간에 걸쳐 때린다.
12월 초
소년A 등 4명이 낮잠 자고 있던 틈에 피해자는 1층에 내려와 110번에 신고한다. 곧 A에 눈치채여 전화가 끊어지고 구타. 경찰이 역탐지하여 다시 걸려온 전화는 A가 나와 속인다. 전원이 린치해 라이터 기름을 발목에 바르고 불붙인다.
12월 19일
C의 집에 A가 와 피해자에게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불붙인다. 재차에 걸치는 화상에 의해 상처가 곪는 이상한 냄새를 낸다. 악취로 C의 부모님이 눈치채는 것을 무서워 해 아래층의 화장실을 사용시키지 않고 종이팩에 일을 보게 했다. 이때 이미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게 되어 있었다.
12월 20일
소년 A등 3인외에 여자가 1명 와 `화장`이라며 피해자의 뺨에 매직으로 수염을 그린다.
요즘 소년C는 집에 `재밌는 것이 있다`고 아는 사람에게 공언해 100명정도는 감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보여지며, 재판기록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10명이 강간 등에 참가하고 있다.
거듭되는 폭행에 의해 뺨이 코높이를 넘을 만큼 부어올라 눈의 위치를 모를 만큼 되어 있었다.
감금 당초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3,000엔으로 요리배달을 시키거나 C가 칫솔 등을 사주거나 하고 있었지만 상처나 火傷이 심해지는 것에 따라 식사·,목욕에 대해 배려하지 않게 되었다. 12월 하순까지의 식사는 컵라면, 빵, 우유, 계란 등 집에 있던 것을 C의 형이 먹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쇠약한 탓도 있어 하루에 우유를 한컵 먹일 뿐이었다.
12월 21일
만약 풀려나면 경찰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줄 때까지 뭐든지 한다고 피해자가 말했기 때문에 `알몸으로 춤춰라` `미치광이 흉내를 내라` 등을 지시.
12월 28일
A와 C, B의 세명이 한밤중에 C의 방에 들어가자 피해자가 배를 누르고 넘어져 있었다. A의 얼굴을 보며 피해자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탁했다. A는 물, 콘스프, 포도빵을 건네주었다. 방에서 나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우유를 먹였지만 토해 버린다. 그 후, 피해자가 팩의 소변을 흘렸다고 A는 격노, 사과하는 피해자의 하복부를 수십회 구타, 상반신을 알몸으로 해 혹한(12월)의 베란다에 서게 해 담배 두가치를 동시에 피우게 하지만 구토. 양 대퇴부·무릎·정강이 등에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점화. 열이 이는 불을 끄려고 하자 손에도 점화, 불이 꺼지면 다시 점화했다.
1월 4일
JR아야세역 근처 마작소에서 내기 마작을 해 10만엔을 진 A는 초조해한다.
가수 코이즈미 교코의 테이프를 틀어 가사안의 `예-이!`에 맞추어 피해자의 옆구리에 마음껏 구타한다. 피해자는 소리를 내면 더 맞기 때문에 고통을 참아 얼굴을 비뚤어지게 했다. 그 표정을 보며 소년들은 재미있어 했다.
안면·복부를 구타해 넘어뜨리고 안면 등을 발로 차고, 넘어지면 일으켜 때린다. 코나 입으로부터 피를 흘리고 있는 얼굴에 양초를 늘어뜨려 두 눈위에 양초를 세우는 등의 폭행에 이르고, 또 팩의 용기에 누게 한 소변을 먹였다.
피해자가 카셋트에 부딪쳐 전신을 경련하며 넘어진 것을 보며 `꾀병이다`며 C가 격노, A는 6kg의 철아령을 피해자의 배에 떨어뜨리고 대퇴부, 안면을 한층 더 때린다.
구타가 끝난 후,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불붙였다. 처음은 움직였지만 마지막에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 마지막 폭행은 2시간 가까이에 이르렀다.
1월 5일
피해자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
A는 이전에 근무하고 있던 타일 공장에 가 모르타르·드럼통 등을 조달. 사체를 가방에 넣어 A의 집 앞에서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흘려넣었다. 이 때, 공장의 전 상사는 사람을 죽였던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A가 빌려온 웨건을 운전해 도쿄灣의 매립지에 갔지만 적당한 장소가 없어 도로 틈의 풀숲에 버렸다.
- 주범은 20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당시 17세) 나머지 3명은 출소
- \'콘크리트\'라는 제목으로 영화제작
- 바퀴벌레와 다량의 정액, 소변 등을 먹였고, 시체발견 당시 손발이 묶인 채로
안면은 눈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성기는 안면보다 더한
상태. 온갖 이물질을 성기에 집어넣고 불을 붙혔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 빠짐.
- 감금 사실을 친구들에게 자랑해 대략 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10명이상이 강간, 폭행에 가담
- 감금 당한 장소는 2층 주택이었고 1층의 부모들도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 감금 중, 폭행되고 방심 상태가 된 피해자는 ,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언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일본 여고생 콘크리트 매장 살인사건
http://pine.zero.ad.jp/~zac81405/concrete.htm
영화의 공식 사이트
http://www.benten.org/concrete/
출처 : 한열사
<사건당시의 드럼통이 발견된 공터>
<가해자 소년들의 가족관계, 학력, 전과>
소년
범행시 연령
학력
비행력
가정
A
18
고교 중퇴
상해 =심판불 개시
모교의 중학교에 건축물 침입 =보호 관찰
맞벌이
B
17
고교 중퇴
방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다 =심판불 개시
부모님 별거
C
17
고교 중퇴
없음
맞벌이
D
16
고교 중퇴
가출 =보호 관찰 , 나이프 소지 , 폭력 행위·모교에 투석 =불 처분
이혼(부친 사망)
구형 1심 2심
A 무기 징역 징역17년 징역20년
B 징역13년 징역5-10년 1심 대로
C 징역5-10년 징역4-6년 징역5-9년
D 징역5-10년 징역3-4년 징역5-7년
검찰은 양형이 너무 가볍다고 하여 공소 , 공소심으로 양형이 무거워져 확정(91/7/12일 판결)
<15년후, 출소한 소년 B, C, D의 현재를 밝힌 신문기사>
( 사건의 주범이었던 A는 아직까지도 출소하지 못하고 있음. 08년도에 출소한다고함)
<사진 왼쪽부터 - 피해자 소녀, 그녀가 감금당해있던 주택, 소녀가 발견된 공터, 센터 건물이 들어선 현재>
기사내용>
그 ‘체포감금치상사건’이 발각되었던 것은, 얼굴에 큰 멍이 든 젊은 남자가, 5월 19일 낮, 아다치구(足立?)에 있는 타케노츠카(竹の塚) 경찰서에 뛰어들어 왔을 때 부터였다. 남자는 아다치구 내에 위치한 꽃집에서 일하고 있는 27세의 점원.
그의 공술에 따르면, 낯이 익은 남자에게 트집을 잡혀서,
오전 2시쯤부터 아침 7시쯤까지 5시간정도 감금당해, 계속해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경찰관계자가 말한다. “사건을 들어보니, 얼굴도 모르는 여성의 일로, 지인의 깡패로부터 시비가 걸렸다고 했습니다. 차 트렁크 안에 감금당해서 사이타마현(埼玉?) 미사토시(三?市)의 스낵바까지 이동하면서 맞았다는 겁니다. 상처의 상태는 전치 10일정도 였습니다. 놀랐던 것은, 피해자가 그 범인은 16년 전, 아다치구의 아야세에서 일어났던 여고생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사건(女子高生コンクリ?ト詰め殺人事件)의 범인 중 한사람이라고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이 꽃집 점원이 증언했던 대로, 사건의 범인, 카미사쿠 죠(神作?)라고 하는 33세의 남자를 조사하자, 그는 16년 전, 여고생을 감금하고 살해했던 4명의 범인들 중의 한사람이었다. 당시, 17세의 카미사쿠가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었는가를 보기 전에,
우선은, 이번에 일어났었던 체포감금치상사건의 전말을 소개하겠다.
피해자의 지인 중 한사람이 설명한다. “카미사쿠는, 피해자가 일하고 있던 플라워샵의 사장과 알고지내는 사람의 젊은 무리였다고 할까. 6~7개월 전에 그 사장의 지인이 가게에 왔을 때, 같이 따라왔었습니다. 신장은 딱 190정도였던 남자로, 한번 보니까, 그런 쪽의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죠. 우연히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피해자와 얼굴을 알게 되어버린 것뿐입니다.”
그 장소에서 의기투합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는, 길에서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하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인지 올해의 춘선에, 갑자기 카미사쿠가 피해자 남성에게 빠르게 접근해왔다. 여기서부터는, 피해자 자신에게 들어보도록 하자.
“때때로, 내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옵니다만, 올해 3월인가 4월 쯤에, 갑자기 새벽 2시에, 내 맨션을 찾아와 위로 올라와서 한참 세간의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30분정도 후에, 또 와서 ‘내 지갑이 없어졌다’라고 하면서, 멋대로 서랍이나 옷장을 열고, 내 방을 뒤지는 겁니다. ‘지갑이 없잖아, 어디를 찾아도 없어’ 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수도 없어서......”
이런 방약무인한 태도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것은, 카미사쿠의 외견을 무서워했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한다. “사실은, 그와 같이 집으로 오게 되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 때는 갑자기, ‘나는 말이지-, 소년 시절에 10년도 넘게 형무소에 있었어.’ 라고, 가벼운 어조로 내뱉었습니다. 무서워서, ‘어떤 사건이었습니까?’라고 묻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아야세에서 일어난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이라고 알겠지. 그거야.’ 라고, 능글능글 웃으면서....... 여고생을 억류하면서 머리를 자른 일이라든지, 죽어버렸을 때의 일 같은 것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연기를 그 애의 코 아래에 갖다 대도, 숨을 안 쉬는 거야.’ 라든가 ‘시체를 이런 느낌으로, 드럼통에 넣어서,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라고, 사건을 마치 웃는 이야기처럼 몸짓, 손짓으로 자만한 셈이죠.”
꽃집의 점원은, 분노해서, 이후, 전화가 걸려와도 받지 않게 되었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를 화나게 하고 말았다.
“5월 18일, 전화가 와서, ‘일이 끝나면 전화해라. 내 여자를 가로챘잖아. 야쿠자를 무시하지 마’ 라고 말했습니다. 그 날은 밤이 늦어서, 집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경이었습니다만, 맨션의 현관 앞에 흰색 셀시오(セルシオ)가 정차해 있었고, 카미사쿠가 내려왔습니다. 제가 먼저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자, 오른손 주먹으로 5, 6대. 안면을 맞고 쓰러지자 ‘죽여줄까, 무시하지 마’ 라고......”
피해자는 한층 더한 공포의 체험을 계속한다.
“그 안에 있던 금속 배트를 가지고 나와서는, ‘트렁크에 들어가’라고 명령해서, 휩쓸리는 것도 무서웠지만, 말을 듣는 수밖에 없어서....... 그리고 30~40분 달려서, 사이타마의 미사토의 스낵바 앞에서 차에서 끌려나왔습니다. 그가 스낵바의 문의 열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안쪽으로 열쇠를 잠가버렸습니다.”
살아있는 심정이 아닌 피해자에게 대고, 카미사쿠는,
“너, 가는 얼굴에 170정도 되는 여자 말이야. 알고 있겠지”라고, 계속 때렸다. 짐작도 가지 않고, 이유도 모른 채 피해자는, “죄송합니다”라고,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낵바에서 해방된 것은 날이 밝아오는 오전 7시. 그것도 혐의가 풀려서가 아니라, 카미사쿠가, 때리다 지쳤다는 게 그 이유였던 것이다.
광기조차 느껴지는 폭력을 휘두른 카미사쿠의 생활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근처의 주인에 따르면, “금발이라고 하기보다는 샛노랗게 머리를 물들이고 있었죠. 최근까지 어머니와 둘이서 단독주택 2층에 살고 있고, 1층에는 불고기집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또 하나 어머니가 하고 있던 스낵바가 바빠진 것 같아서, 불고기집 쪽을 폐점했었습니다.”
다른 지인은, “폭력단의 사무소에도 출입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정식 조원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천초의 삼사제에는 자주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근처에서는 카미사쿠의 꺼려지는 과거에 대해서는 모두 알지 못했다.
그럼, 세간를 진동시켰던 15년 전의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사건에서의 그는,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었던 걸까. “4인방 중에서, 카미사쿠는 서브 리더라고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선배가 있을 때는 명령을 듣는 입장이었지만, 없을 때는 그가 리더가 되어 지시를 하거나, 솔선해서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도 분명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1988년 11월 말-.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한 학년 연상의 선배와 카미사쿠는 두 명의 후배와 같이 4인 그룹을 결성하여, 후배의 집 2층 방을 집합소로 해서, 소매치기나 공갈, 강간 따위를 되풀이해왔다. 어느 날, 돌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던 17세의 여고생을 보고서 납치, “나는 너를 노리고 있는 야쿠자다. 내 말을 들으면 목숨은 살려주지.” 라고 구슬러 호텔에 데리고 들어가 강간했다. 그 후, 그녀를 후배의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연초에 그녀가 죽을 때까지 40일 이상 감금을 계속한 것이다. 게다가 당초, 성욕의 대상으로 보고 있던 그녀가 탈출을 하려고 110번에 전화를 한 것을 안 4명은 격노, 심한 린치를 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법정에서 밝혀진 린치의 실태는 필설로 다하기 어렵고, 귀를 막고 싶어질 정도의 증언에 방청석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하게 변했다. 4인은, 그녀가 도망갈 수 없게 하려고 라이터 오일을 여고생의 다리에 붓고, 몇 번이고 불을 붙였다. 뜨거워서, 필사적으로 불을 끄려고 하는 그녀를 보고, 크게 웃고, 결과적으로 중도의 화상을 입어, 설 수 없을 정도로 그 상처가 화농이 될 때까지 방치했던 것이다. 코이즈미 쿄코의 「뭐라고 해도 아이돌」의 테이프를 틀고, 노래가사 중의 「이예-」에 맞추어, 그녀의 옆구리에 펀치를 가하고, 얼굴이 뒤틀린 것을 보고, 카미사쿠는, 리더에게 “이 얼굴이 좋군요.”라며 웃었다고 한다. 그녀가 생환할 수 있는 찬스를 되돌린 것도 카미사쿠였다. 어느 날, 리더가 그녀를 집에 돌려보내자고 했을 때, “위험해요. 신고할지도 모르잖아요.”라고 반대하여, 후배에게도 여고생을 돌려보내는 것에 반대하라고 타일렀다. 식사도 주지 않고, 폭행을 계속 당해온 여고생은, 쇠약해져 있었다. 촛농을 얼굴에 떨어뜨리고, 소변을 마시게 했다. 타케다 테츠야의 「성원」이라는 노래에 있는 「간바레, 간바레」라는 가사를 부르면서 여고생을 계속 괴롭혔다. 여고생은, 때때로 작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들릴 정도로 “간바레, 간바레”하고 소리내고 있었지만, 마침내 “죽여, 죽이라고”라고 애원할 정도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행태였지만, 이 4사람은 체포된 후, 일전해서 기특한 태도를 보여, 법정에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심판결 직전, 피고인 질문 때, 카미사쿠는, 혼자서 죽어있던 피해자의 일을 물으며, 격렬하게 오열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의 무참함을 직견하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어땠을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악마,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변호사들은, “소년들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재생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가는 지금, 간신히 분명해진 셈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그의 이런 말을 듣고 있다.
“카미사쿠는, 아야세의 일을 가지고, ‘한 사람 죽이든, 두 사람 죽이든 똑같아. 나는 말야, 조사받은 경력이 있으니까, 경찰이나 검사에게 어떤 말을 해야 죄가 가벼워지는지 알고 있다고. 검사를 속이는 것 정도야 간단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정신감정이 되는지 알고있어.’ 라는 등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 죄의 형량은, 그의 경력을 참작하여 그에 상응하는 엄한 벌이 될 것인가.
테이쿄대학의 우에모토 타케시 교수(형법)은 이렇게 본다.
“복역을 끝내서, 본 사건은 이전 사건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판소가 개심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는 정도일 겁니다. 감금죄는 5년이 한정으로, 상해 쪽은 10년 이하로 결정되어 있고, 사회정의에 반하는 요소가 크다는 것을 고려해도, 5년 구형에, 3년이나 3년 6개월의 실형으로 마무리되지 않겠습니까.”
30대 후반에, 또 한 번 그는 형무소에서 돌아올 것이다.
http://2ch-library.com/news/concrete/text/flash.html
준 주범 격, 카미사쿠 죠(33) 등, “귀축” 가해소년들은 지금...
철저 추적 르포 -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15년째의 진실”
“카미사쿠 죠입니다” 이름을 묻는 재판관에게, 180센티 정도의 장신의 남자가 대답했다.
7월 28일에 열린 체포감금상치사건의 피고, 카미사쿠 죠(33)의 초공판.
피해자 남성에게 도쿄, 아다치 구에서 폭행을 가하고, 차에 태워 모친이 운영하는 사이타마 현 미사토 시내의 스낵바에 감금. 「내 여자를 채갔잖아」라는 이유로 때리고 차는 등의 폭행에 이르렀다고 하는 사건이다. 검찰 측은 카미사쿠 피고가, “나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다. 정말로 죽여 버릴 테다. 나는 10년 징역을 살다왔다고. 경찰이나 검사를 구워삶는 여유로움을 배웠단 말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올 수 있어.” 라는 등의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피고는 그것을 부인.
“이것만으로는 체포감금이라고는, 뭐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만.” 이라고 진술하는 등, 그 태도에 반성의 기색은 없었다. 카미사쿠 피고가 이전에 일으켰던 사건, 그것이 15년 전의 「여고생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사건」이다.
88년 11월 25일, 미사토 시의 고교 3년생이던 A양(당시 17세)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중 행방불명되었다. 소년 A(당시 18세), B(카미사쿠 피고, 당시 17), C(당시 16), D(당시 17)의 4인방은, A양을 외설목적으로 유괴하여 아다치구 아야세의 소년 C의 자택 2층에 감금하고, 41일간에 걸려 레이프나 폭행을 되풀이하여 살해한 것이었다. 사건으로는 이 4명이 기소, 그 외의 소년 3명이 소년원 송치 정도를 받았지만, 그 처참하게 행해진 폭력의 내용은 예를 들면 이렇다.
코이즈미 쿄코의 「뭐라고 해도 아이돌」의 곡에 맞추어 「예이-」라고 부를 때마다 폭행.
타케타 테츠야의 노래에서 「간바레」의 프레이즈에 맞추어 린치를 가하고 여고생은 소리를 내서 그 노래를 부른다. 50몇 킬로였던 체중은 30킬로대로...
또, 감금현장의 목격 증언에 따르면, “여자아이가 전라로 기둥에 묶여 있었고, 방 안에는 신나와 술이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더 지독했다.” 라고 말하는 상황. 귀축의 소행 그대로다.
91년 7월, 도쿄고재는 A에게 징역 20년, 카미사쿠 피고에게 징역 5년 이상 10년 이하, C에게 징역 5년 이상 9년 이하, D에게 징역 5년 이상 7년 이하를 선고했다. 주범격인 A 이외에는 전부 출소했다. 그들의 「현재」를 쫓았다.
소년 B = 카미사쿠 피고의 출소 후
카미사쿠 피고는 99년 8월에 출소, 4년 전에 중국인 여성과 결혼, 작년에 이혼했다.
“카미사쿠는 일본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중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결혼한 것 같다. 하지만, 이혼으로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라는 어느 저널리스트의 말이다.
출소 후, 한 때 컴퓨터 관련 회사에 취직했지만, 02년 쯤 부터는 취업도 하지 않고, 폭력단에 출입하게 되었다. 동급생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의 사건보도를 보고, 친구와 연락을 했습니다. 모두 ‘역시 그 녀석은 안 된다니까-. 그 버릇 못 고치는 놈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모친과 살고 있던 곳은, 사이타마현 야시오시의 목조 2층 건물의 2층.
1층에 입주해있는 설비관련회사의 관계자가 말한다. “어머니쪽은 머리가 길고 좀 화려하죠. 싹싹하고 좋은 사람같이 않아요? 그 집 아들은 점심때부터 러프한 저지를 입고 있어서 방탕한 사람인가부다, 하고 생각했어요.”
건너편의 상점 주인은 이런 인상을 말한다. “그집 아들은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노랗게 되어버렸네’라고 말했더니 웃더군요. 길 저쪽을 걷고 있어도 인사를 하고, 저 사람이 옛날,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다고 하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모친의 스낵바에서 호스티스를 하고있는 여성은 이번 사건 후, 콘크리트 살인사건을 알았다고 한다.
“7월 5일에 TV를 봤더니, 「콘크리트 사건의 B」라고 나와서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마마(여기서는 호스티스가 가게 주인을 부르는 호칭인 듯.) 에게서 ‘들통나버렸네. 지금까지 계속 숨기려고, 그저 무리해서 밝게 행동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라는 메일이 왔습니다.”
카미사쿠 피고에게도 전의 사건의 ‘후유증’은 나타났던 것 같다. 호스티스가 말을 잇는다.
“점심 때에도 ‘으악-’이라든가 ‘으으-’라든가 소리지르는 게 있었고요. 분명히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된 거겠죠. 죠 군은 ‘엄마, 내 앞에서 사라져 줘, 안 그러면 엄마를 때려 버릴거야’라고 말했던 것 같고. 죠 군도 아마도 계속 사는게 지옥같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형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죠...”
현재 모친은 가게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자택에도 없다.
“아마 차 안에서 생활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마마와 만나면 항상 신발이 같았어요. 가게에 오기 전에 목욕하고, 가게가 끝난 뒤에 한번 더 목욕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신발이 같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죠.”(호스티스)
7월 29일에 모친과 만났던 마츠리에서, 모친은 카미사쿠 피고로부터 직접 건네받았던 편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경찰의 신세를 지는 일 같은 것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테니까, 엄마도 걱정하지 말아줘. 당분간만 참으면 되니까, 견뎌줘」라고 써 있었습니다. ‘그렇게 들어서 믿어버린거야’ 라고 마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호스티스)
한 편, 사건 이후 이혼하고, 다른 가정을 가진 부친은 본지의 직격에, ‘돌아가 주세요’ 라고 반복하며, 현관문을 닫았다.
주범 A와 감금현장 집의 C는...
A는 현재도 복역 중이지만, 08년 쯤 출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하는 법조관계자의 말.
“A는 관서지방의 보호사와 양자연조하고, 완전히 다른 호적에 들어가는 수속을 밟았습니다. 여동생도 있고, 가족을 귀감으로 하는 셈이죠.”
감금장소였던 C의 자택은 사건 이후 헐리고, 지금은 다른 주거가 세워져 있다.
“벌써 15년도 더 지났네요. 회사에서 돌아왔더니 로프가 쳐져있어서, 사건을 들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죠. C군의 양친은 사건 후 당분간 머물러 있었는데, 그 후에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양친이 이사했던 곳은 사이타마 현 내에 있다. 부친이 4~5년 전까지 근무하고 있던 생화점 사장은 이런 말을 한다. “사생활은 일체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사건의 일은 몰랐죠. 술만 마시는 것 같은 인상이었고.”
현재 양친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자, 부친으로 생각되는 남자가 인터폰 너머에서 “이야기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돌아가 주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C는 출소 후, 한 때 양친의 곁에서 몸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 후 사이타마 현 내 1K의 목조 아파트에서 살았다. 하지만 거기서도 1년 정도 전에 퇴거했다.
“직업은 운송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신이었습니다. 4만 몇천엔의 집세를 매월 꼬박꼬박 가지고 왔었고, 보통이었습니다. 아파트를 나갈 때는, 일을 그만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아파트 주인)
이번 카미사쿠 피고의 사건을 C는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친구에게는 ‘아무것도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소년 D의 모친이 본지에 말했다.
D는 청소일을 하는 모친과 살고 있다. “그 사건은 어째서 막을 수 없었던 걸까,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출소하고 나서 일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병에 걸려있어, 곧 입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만, 돈이 없어서 집에서 계속 자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가까운 상점가에 늦은 식사를 사러가서, 자신의 방에 가지고 돌아와 먹고 있습니다.”
누나의 가족에게만은 마음을 열고 있는 것 같지만, 모친과 D가 얼굴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일요대공’을 하기도.
“에어컨을 설치해 준다거나, 100엔샵에서 카펫을 사가지고 와서 깔아준다거나 합니다.”(모친)
사건 후에는 (범인의) 부모들 사이에서 이런 걸 했었던 적이 있다.
“우란분(음력 7월 15일에 죽은 이의 혼을 제사지내는 불사) 때에 잠시 부모들이 모여서, 사건의 집에 꽃을 바치러 갔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연락하고 싶지 않겠죠.”
모친은, “뭘 사러나간 아들과 마주치면 안 되기 때문에”라며, 언제나와 다른 길을 숨듯이 걸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서는, 죽을 때까지 아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체념이 전해져 왔다.
A양이 유기되어 있던, 코토구 와카스의 현장에는 물류센터의 건물이 들어서 있어, 빈 땅이었던 당시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시에는 황량한 곳이었죠. 저런 곳에 버려졌다니, 불쌍하네요. 정말 비참한 사건이었어요.”(현장 근처 시멘트 회사의 운전수)
암튼..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 ..
첫댓글 일본에서 이사건을 만화와 영화로도 만들었다는데... 어이없습니다 어떻게 저런 흉학하고 엽기적인 범죄를 상업화 할려고 영화 만화책으로 만드는지.. 남아 있는 유가족들을 두번죽이는..... 쪽바리 원숭이넘들 당췌 이해가 안감 ㅡㅡ;;
그러면 화성 연쇄 살인은요? 남아있는 유가족수도 훨씬 많은데...
안그래도 화성연쇄살인사건 뿐만아니라 그놈목소리등.. 실제범죄 사건을 상업화 할려고 영화만든거 진짜 이해안갑니다... 영화제작사들중 그런 유가족이 있다면 영화를 만들었을까요? 두번다시도 떠올리기 싫은 일일텐데... 암튼 그런 영화들도 관련기관에서 심의를 받아야 개봉할수 있을건데.. 순전히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그런 부류의 영화들은 심의가 안나왔음 하는 바램입니다... 걍 순전히 제 생각이니 머라하시지 마세요 ㅎㅎ
이 사건.. 만화책으로도 만들여졌습니다.. 공유하는곳에서.. 검색해보세요. 정말 잔인합니다... ㅠ
영화는 실화로 바탕으로 이루어줘야지만 흥행이 되는모양입니다..실미도두 그렇고 기타등등...아흑~
아우 살벌 하네예.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