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피는 계절에 / 리아
6월 한낮, 가로수의 푸르름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긴팔 소매 옷을 꺼내 입어도 겨울 추위 속에 선 듯 마냥 춥다. K 교수님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나서 부터이다. 지난 5월 교수님의 21회 개인전이 성황리에 종료되었기에 선뜻 믿어지지가 않았다.
K 교수님의 암투병 소식은 동호회 멤버인 지인이 몇 년 만에 대전에 들르게 되어 교수님과 점심 약속을 하려고 전화를 드렸다가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가슴이 먹먹하고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나 역시 아득한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으니까. 이튿날 지인이 대전에 도착하여 ‘유화 동호회’ 회원 몇 명과 함께 지량리 화실을 방문했다. 교수님은 여느 때처럼 현관에 나오셔서 빙긋이 웃으시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대뜸 골내듯 철부지처럼 퉁명스럽게 말했다.
"교수님, 금년 가을부터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참인데 교수님께서 편찮으시면 어떡해요"
내 말이 너무 뜻밖이었던지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몇 분이 지났을까. 옆에 서 계시던 사모님께서 침묵을 깨고 미소를 지으시며 다소 더듬대며 대답하셨다.
"네..이곳으로...와요. 이곳에 와서 그림 그려요."
지금 생각해도 그 상황에 내가 한 말은 참으로 적절치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로 위로의 눈빛을 보내주었다. 하기는 지인도 대전에 올 때면 자신의 서양화 캔버스를 들고 와서 교수님께 합평을 듣고 싶다고 했었다. 교수님께서 엉거주춤 서있는 우리들한테 안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하셨다. “자, 어서들 들어가지.”
지량리에 위치한 교수님의 화실은 아름답게 잘 꾸며진 전원주택 같다. 너른 들녘에 2층으로 건축된 하얀색 건물 앞으로 계곡 물이 흐르고 뒤편에는 울창한 숲이 우거진 야산이 둘러쳐져 있어서 더없이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었다.
우리 ‘유화 동호회’ 는 그곳을 아주 좋아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곳을 찾았다. 1층 화실에서 교수님의 작품들을 구경하며 교수님께서 손수 끓여주신 녹차를 마시곤 했었다. 녹차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아마 세계 곳곳의 차 종류는 거의 마셔보지 않았나 싶다. 창문 밖 경치에 시선을 두기도 하고 선반에 진열된 지구촌 여러 곳의 풍물을 구경하기도 하며 차를 마시는 즐거움 또한 그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그날도 1층 손님 접대용 화실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사모님께서 녹차를 내오셨다. 그러나 힘없이 앉아계신 교수님을 뵈니까 차를 따를 엄두가 나지 않아 머뭇거리자 교수님께서 팔을 내미셨다. “아, 교수님, 제가 따라 드릴께요” 라고 말하며 찻잔에 부었지만 일행 모두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녹차가 싫으면 커피로 할까?” “아, 아닙니다. 차는 식사 후에 마시는 것이 좋겠어요. 점심시간이니까 점심 먹으러 나가요.”
사모님께서 외출 준비를 하시는 동안 우리는 교수님 뒤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해마다 그때쯤엔 2층 테라스에 있는 원탁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준비해간 맛난 음식을 먹었던 곳이다. 특히 2층은 각 방마다 교수님의 유화작품이 걸려있어서 개인 전시장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그림도 관람하고, 챙이 넓은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 와인과 마시면서 인생에 대해 서도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다. 물론 우리들의 그림 합평도 빠지지 않았다. 각자 그린 그림을 가져가서 합평을 받았기에 더욱 값진 시간이었을 게다.
이제 그런 시간이 다시 올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젖었다. 오래 전 교수님을 처음 뵌 곳도 문화센터 유화 강습반에서였다. 그 당시 교수님의 특별한 가르침이 없었다면 나는 그림을 전혀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그림을 좋아할 뿐 습작은 완전 초보인 내게 교수님의 끝없는 칭찬이 희망을 줬고, 때로는 따끔한 비평이 채찍처럼 나를 나아가게 했다. 수강생 중에는 전업 작가가 된 사람도 있고 나처럼 그저 미술 애호가로 남기도 했지만 교수님을 존경하는 데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한결 같은 마음이다. K 교수님의 작품은 강렬하면서도 밝고 선명한 색상 때문인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즐겁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 같다고 할까, 꿈과 낭만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항상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생각만 하고 있던 터였다. 더욱 교수님과는 가끔이지만 대흥동 거리에서 우연하게 뵙게 되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필연 같았다. 마음 한 쪽에 늘 그림을 담고 있기에 유사한 파동에 의한 끌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해서다. 암튼 금년 가을부터 그림을 그리기로 다짐했는데 교수님께서 투병 중이시라니 안타깝기가 그지없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교수님은 전혀 발병 사실을 모르셨다고 한다. 암은 아무런 징후가 없다더니 정말 까맣게 모르셨던 것 같다. 나는 그날 화실에 갈 때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챙겨갔지만 차마 꺼내지도 못한 채 그냥 나와야 했다. 다만 컴퓨터 운영 프로그램에 명령어를 넣듯 혼잣말로 읊조렸다. “교수님 꼭 쾌유 되셔야 해요. 이번 가을부터 서양화를 배우려고 화실로 갈려던 참이었거든요.”
저녁나절 집에 돌아오자마자 교수님께서 건네주신 소책자를 꺼냈다. 책 표지에는 '새로운 출발'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41년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진정한 화업의 길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교수님의 21회 개인전 책자이다. 책 속에 ‘시골풍경’, ‘고향마을’, ‘고향’, ‘복사꽃 피는 계절’ 등...... 그림 밑에 붙어있는 제목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책자를 옆으로 밀어놓고 스마트 폰을 꺼내 교수님께 문자를 전송해드렸다. “교수님, 복사꽃 피는 계절에 만나고 싶어요. 어서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라고.
[참고] 그해 가을 고인이 되신 K 교수님을 추모하며 쓴 글입니다.
―『대전여성문학』23호 (2015년)
* 대전 출생. 2010 『시에』로 등단.
K 화백, 대전미술의 지평 2011
기 간 : 2011.02.11(금)~2011.03.20(일)
전시장소 : 대전시립미술관1,4 전시실
쇼팽, 녹턴 No.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