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트럼프는 이미 패배했다… 흐트러진 ‘승리 선언’을 내놓은 미국이 이란 공격에서 저지른 ‘결정적인 실패’ / 4월 3일(금) / 프레지던트 온라인
미국의 이란 공격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방위대학 공동연구원 이토 류우타 씨는 “미국의 이란 공격의 큰 이유는 핵무기 문제다. 다만, 정치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핵무기를 다루기 위한 전쟁은 대부분 실패한다. 미국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큰 경제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 미국의 전쟁은 '승리하기 위해 계속 실패'
미군은 대개 전쟁 발발에 승리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 뒤에 발목이 잡힌다. 베트남, 레바논, 소말리아, 걸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그리고 이란까지—실패까지의 여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문제는 최초 공습이 성공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승패를 가르는 것은 그 뒤에 어떤 청구서가 도착하느냐이다.
본 기사 작성 시점(2026년 4월 2일)에도 이란에 대한 공격의 최종 목적지는 아직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 시간으로 같은 날 오전에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그 위험성을 오히려 드러냈다. 트럼프는 이번 작전을 ‘압도적인 승리’인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공격을 지속하겠다는 자세도 보이고 있다. 만약 정말 승리하고 있다면, 왜 아직도 전쟁의 지속을 말해야 하는가. 여기에 이 전쟁의 본질이 있다.
군사적으로 일시적인 우위를 얻더라도, 경제와 외교 비용이 늘어나고 전쟁을 어떻게 끝낼지에 대한 탈출 전략조차 그릴 수 없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실패다. 트럼프가 혼동하고 있는 것은 전장의 전과와 국가로서의 승리의 차이이다. 부술 수는 있어도, 정리할 수는 없다. 군사적 일격을 정치적 승리로 착각한 순간, 트럼프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일본에게 먼 중동 전쟁이 아니다. IEA에 따르면 2025년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일일 약 1,500만 배럴의 원유가 운송되며, 원유와 석유 제품을 합치면 약 2,000만 배럴에 달하고, 그 대부분은 아시아로 향했다. 일본과 한국의 의존도는 특히 높다. 즉 이번 전쟁은 미국의 중동 정책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연료비, 물류, 물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전쟁터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전쟁 직후에는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목적, 지역 질서, 장기적인 국익이라는 평가표로 보면 적점이 된다. 베트남도, 아프가니스탄도, 이라크도 마찬가지였다. 이란의 결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실패로 가는 길은 이미 보이고 있다.
■ '위험한 국가 = 공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 반복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유용한 것이 바로 이 관점이다. 전쟁을 ‘옳은가’보다 먼저 ‘수익이 나는가’로 평가한다. 이념이나 분노보다 핵심 이익, 억제, 동맹, 탈출구, 그리고 다른 전역에 대한 압박을 먼저 점검한다.
상대가 정말 나라를 부숴서까지 무너뜨릴 적인가. 폭격 뒤에 누가 통치할 것인가. 아군의 요구를 어디까지 대신해 줄 수 있을까. 대의가 출구 전략의 대용품이 될 수 있을까. 제한 공격이 정말 제한으로 끝나는 걸까. 다른 전역에서 무엇을 잃게 될까. 이 관점의 강점은 차가운 질문으로 전쟁의 열광을 식히는 데 있다.
미국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는 위험한 적과, 미국이 지역 질서를 깨뜨리더라도 대처해야 할 적을 혼동한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동남아시아의 복잡한 민족주의와 내전이 워싱턴의 눈에는 세계 규모의 억제 전쟁으로 보였다. 1983년 레바논에서는 치안 안정을 위해 입대한 해병대가 어느새 내전의 당사자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1992년 소말리아에서는 기아 구호가 국가 재건으로 이어졌다. 모두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번거롭다는 점과 전면 개입할 가치가 있다는 점은 동일하지 않다.
이란도 위험하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사실만으로는 정권 전환이나 지역 질서 재설계에 나설 근거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이란을 억제하던 지역 균형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중요한 것은 적의 악함보다 먼저, ‘그 한 방이 균형을 좋게 만들 것인가, 나쁘게 만들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그 점을 역산해 보면, 미국 전쟁은 종종 출발점에서 발목이 잡힌다.
■ 미사일 공격만으로는 국가를 무너뜨릴 수 없다
두 번째 실수는 군사적 성공과 정치적 성공을 혼동한 것이다.
미사일은 사령부를 파괴할 수 있다. 활주로와 핵 시설도 날려버릴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의 경찰서, 세무서, 지방 행정, 치안의 정통성을 투하할 수는 없다. 2003년 이라크에서는 정권 전복까지는 빨랐지만, 그 이후에 찾아온 것은 안정이 아니라 점령과 내전이었다. 2011년 리비아도 정권은 무너뜨렸지만 국가를 재건하지는 못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뒤 ‘그럼 누가 통치하겠는가’에 답하지 못하고, 20년 후에는 원래 적이 다시 돌아왔다. 문제는 폭격 자체가 아니다. 폭격으로 질서까지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국가는 공습의 부산물로는 태어나지 않는다.
이란에서도 핵 시설이나 군사 거점을 파괴하는 것과 그 이후 지역 질서를 개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극단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미사일을 이용한 핵 공격을 한다고 해서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 "핵무기를 빼앗는 전쟁"은 오히려 역효과
세 번째 실수는 군사력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핵 개발을 중단시키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란에 대한 강경 논쟁의 가장 큰 이유는 핵무기 문제이다. 하지만 핵확산 연구와 억제론이 반복해서 제시해 온 것은, 예방 전쟁으로는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군사력으로 시설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축적된 지식과 연구자, 그리고 개발 동기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공격받은 입장은 “다음에 살아남으려면 더 확실한 억제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기 쉽다. 상대에 대한 혐오감만으로 무력을 사용해도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워진다.
역사적인 교훈도 있다. 2003년에 대량살상무기 계획 해체에 합의한 리비아는 이후 체제가 붕괴했지만, 반대로 북한은 핵을 체제 유지의 억제력으로 여겨 왔다. 권위주의 체제의 엘리트 입장에서는 “핵을 보유하지 않으면 외부 압력에 노출되고, 보유하면 최소한 대국에 대한 대우가 바뀐다”는 냉혹한 교훈이 쉽게 생겨난다.
2026년 2월에 시작된 이번 이란과의 전쟁도 바로 그 교재가 되고 있다. 테헤란의 의사결정자 입장에서는 ‘핵 보유 직전에서 멈춰 있는 상태’가 가장 위험해 보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여기서 우려해야 할 점은, ‘핵을 멈추기 위한 전쟁’이 몇 년 후에는 더 비밀주의적이고 지하 깊숙이 잠긴 핵 개발을 초래할 것이라는 역설이다. 예방 전쟁은 매우 위험한 내기이다.
■ '정치적 이상'이 전쟁을 진흙탕으로 만든다
네 번째 실패는 동료에게 끌려가는 것이다.
경계해야 할 대상은 적만이 아니다. 때로는 동료가 대국을 깊은 곳으로 이끈다. 남베트남 정권의 취약성을 미군 투입으로 메우던 중, 워싱턴은 사실상 사이공의 생존을 자국의 전쟁 목표로 바꾸어 버렸다.
중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의 최대 목표와 미국 자체의 핵심 이익은 원래 동일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이 백지 위임장으로 바뀌면, 제한 작전은 체제 전환으로, 체제 전환은 지역 질서 재설계로 확대되기 쉽다.
동맹은 필요하다. 하지만 동맹은 상대를 억제하는 보험이지, 아군의 최대 요구를 대신 부담하는 계약은 아니다.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게 만든 순간, 전쟁 목표가 증식하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실수는 대의에 취해 회계를 망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확산한다. 여성을 보호한다. 인권을 보호한다. 민간인을 보호한다. 어느 쪽도 반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반대하기 어려운 슬로건일수록 실수를 고치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라크 전쟁에서는 대량살상무기의 이야기가 결국 중동 민주화의 꿈으로 바뀌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대테러 처벌이 국가 건설과 여성 해방이라는 사명으로 확대되었다. 리비아에서는 ‘보호 책임’이 정권 타도의 실천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상 그 자체가 아니다. 이상이 회계를 무너뜨려 철수 결정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훌륭한 목적과 실행 가능한 전략은 별개이다. 정의의 깃발이 높이 게양될수록 ‘여기서 그만두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압력이 강해진다. 하지만 대의는 출구 전략의 대용품이 되지 않는다.
■ 전쟁 비용은 '전장 밖'에서야 확대된다
여섯 번째 실패는 전쟁이 언제나 작게 시작된다는 점이다.
베트남은 자문 파견으로 시작해 폭격기 공습, 그리고 지상군으로 이어졌다. 레바논에서는 안정화 임무가 당사자화되고, 소말리아에서는 인도적 지원이 무장 세력 소탕으로 바뀌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9·11 테러에 대한 징벌 작전이 20년에 걸친 국가 건설로 변모했다. ISIS에 대한 작전도 ‘작게, 현명하게’ 시작됐어야 했지만, 중동에 대한 반영구적인 관여를 남겼다.
이란에서도 초기 설명은 ‘제한’, ‘단기’, ‘억제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보복의 연쇄, 동맹국의 요구, 국내 정치의 체면이 얽히기 시작한 순간, 그 말은 가장 믿을 수 없게 된다. 워싱턴에서 가장 위험한 형용사는 아마도 ‘제한적’일 것이다. 전쟁은 종종 시작할 때의 설명보다, 멈출 때의 조건으로 정체를 드러낸다.
일곱 번째 실패는 전쟁 비용을 좁게 추산하는 것이다.
시작 6일 만에 113억 달러라는 수치는 눈에 띄지만, 더 무거운 청구서는 별도로 존재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일본에게 연료비와 물류비 상승을 의미한다. 중동에서 탄약, 함정, 외교적 주의력을 소모하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억제 효과도 무너진다. 전쟁의 최대 비용은 종종 전장 밖에서 발생한다.
베트남은 국내 정치를 갈라놓았고, 이라크는 결과적으로 이란의 상대적 지위를 끌어올렸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오랜 중동 개입의 여파는 ‘중국에 대한 집중’을 여러 차례 늦추었다. 그 의미에서 1991년 걸프전과 같은 ‘성공 사례’조차도 완전한 안심 자료가 아니다.
군사적 성공이 ‘다음에도 짧게 끝난다’는 착각을 워싱턴에 주었다면, 그 부작용은 작지 않았을 것이다. 짧고 화려한 승리라도 그 이후 판단을 잘못했다면 장기적으로 부채를 남길 수 있다.
■ '국익이 늘었는가'로 승패를 판단해야 한다
결국 미국이 반복해 온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정치적 성공으로 착각한 실패이다. 전투에서 이겨도 정치에서는 지게 된다. 게다가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전쟁이 다음 착각을 키운다면, 그 성공조차도 총결산에서는 마이너스로 전환될 수 있다. 장기적인 국가 이익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물어야 할 것은 ‘시작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끝낼 수 있느냐’이다.
이는 감정적인 반전 논쟁이 아니다. 대국의 회계학이다. 이란에 관대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악한 적을 때리는 것과 더 나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성숙은 전쟁을 시작하는 힘이 아니라, 시작하지 않는 지성과 끝내는 조건을 미리 생각하는 냉정함에 드러난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평가 기준도 동일하다. 미국의 위신을 지켰는지가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에너지 가격, 물류, 그리고 중국에 대한 억제에 어떤 구멍을 뚫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아군의 전쟁을 그대로 자국의 이익으로 착각하지 말 것. 그것 또한 국가 이익과 억제에서 전쟁을 바라볼 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실용적인 교훈이다.
이번에도 물어야 할 것은 하나다. 이것이 시작할 수 있는 전쟁인가, 라는 것이 아니다. 끝낼 수 있는 전쟁인가, 라는 것이다.
----------
이토 류우타 / 방위대학 공동연구원·전략 컨설턴트
방위대학 공동연구원, NovaPillar Advisory LLC 전략 컨설턴트, 박사(법학). 게이오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졸업. 동 대학 대학원 법학연구과 후반 박사과정 수료. 게이오 대학·히로시마 대학 조교수, 일본 국제문제 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Co-Chairs of the IPSA Research Committees (RC12)、APSA Committee of Best International Security Article等を歴任. 단독 논문으로는 International Affairs지에 'Hybrid Balancing as Classical Realist Statecraft'(2022), 'Hubris Balancing'(2023)를 게재했으며, International Relations지에 'A Neoclassical Realist Model of Overconfidence and the Japan–Soviet Neutrality Pact in 1941'(2023), 'Outrage Balancing'(2026)를 발표했다. 단독 연구서로는 『진화정치학과 국제정치이론』(후요우서방출판, 2020), 『진화정치학과 전쟁』(후요우서방출판, 2021), 『진화정치학과 평화』(후요우서방출판, 2022)를 출간했다, 편찬·저술·연구서로는 『인도‑태평양을 둘러싼 국제관계』(후요우 서방 출판, 2024) 등이 있다.
----------
방위대학 공동연구원·전략 컨설턴트 이토 류우타
トランプはもう負けている…グダグダな「勝利宣言」を出したアメリカが、イラン攻撃で犯した”決定的な失敗”
トランプはもう負けている…グダグダな「勝利宣言」を出したアメリカが、イラン攻撃で犯した”決定的な失敗” / 4/3(金) / プレジデントオンライン
2026年3月31日、米ワシントンD.C.のホワイトハウス大統領執務室で行われた大統領令署名式典でのドナルド・トランプ米大統領 - 写真=EPA/AARON SCHWARTZ/POOL/時事通信フォト
アメリカによるイラン攻撃は、どのような結末を迎えるのか。防衛大学校共同研究員の伊藤隆太さんは「アメリカのイラン攻撃の大きな理由は核兵器の問題だ。ただ、政治学者の研究によると、核兵器を取り上げるための戦争は失敗するケースがほとんどだ。アメリカは目的を果たせず、大きな経済的ダメージを受ける可能性が高い」という――。
【写真をみる】イラン攻撃で1.6兆円以上を失ったアメリカの“最大の失敗”
■ アメリカの戦争は「勝つのに失敗続き」
米軍は、たいてい開戦には勝つ。だがアメリカは、その後でつまずく。ベトナム、レバノン、ソマリア、湾岸、アフガニスタン、イラク、リビア、そしてイランまで――失敗までの道のりは驚くほど似ている。
問題は、最初の空爆が成功したかどうかではない。勝敗を分けるのは、そのあとにどんな請求書が届くかだ。
本稿執筆時点(2026年4月2日)でも、対イラン攻撃の着地点はなお見えていない。むしろ、日本時間の同日午前に行われたトランプ大統領の演説は、その危うさをかえってあらわにした。トランプは今回の作戦を「圧倒的勝利」であるかのように語ったからだ。
だが同時に、なお攻撃を続ける構えも示している。もし本当に勝っているのなら、なぜまだ戦争の継続を語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ここに、この戦争の本質がある。
軍事的に一時の優勢を得ても、経済と外交のコストが膨らみ、戦争をどう終わらせるのかという出口戦略も描けないなら、それは政治的には失敗だ。トランプが取り違えているのは、戦場の戦果と国家としての勝利の違いである。壊すことはできても、収めることができない。軍事的な一撃を政治的勝利と取り違えた時点で、トランプはもう負けている。
しかもこれは、日本にとって遠い中東の戦争ではない。IEAによれば、2025年にはホルムズ海峡を通じて日量で原油約1500万バレル、原油と石油製品を合わせると約2000万バレル近くが運ばれ、その大半はアジア向けだった。日本と韓国の依存度は特に高い。つまり今回の戦争は、アメリカの中東政策の話であると同時に、日本の燃料費、物流、物価の話でもある。
もちろん、ここでいう「失敗」とは、戦場で一度も勝てなかったという意味ではない。むしろ逆だ。開戦直後には勝って見えるのに、政治目的、地域秩序、長期の国益という採点表で見ると赤点になる。ベトナムも、アフガニスタンも、イラクもそうだった。イランの結末はまだ定まっていない。
だが、失敗へ向かう道のりはすでに見えている。
■「危険な国=攻撃すべき的」ではない
その反復を理解する道具として役に立つのが、この見方である。戦争を「正しいか」より先に「割に合うか」で測る。理念や怒りより、核心利益、抑止、同盟、出口、そして他戦域へのしわ寄せを先に点検する。
相手は本当に国を壊してまで倒す敵なのか。爆撃の先に誰が統治するのか。味方の要求をどこまで肩代わりするのか。大義は出口戦略の代用品になるのか。限定攻撃は本当に限定で終わるのか。他の戦域で何を失うのか。この見方の強みは、その冷たい質問で戦争の熱狂を冷ますことにある。
アメリカが犯した第一の失敗は、危険な敵と、米国が地域秩序ごと壊してでも対処すべき敵を混同することだ。
ベトナムでは東南アジアの複雑な民族主義と内戦が、ワシントンの目には世界規模の封じ込め戦争に見えた。1983年のレバノンでは、治安安定化のために入った海兵隊が、いつの間にか内戦の当事者に見なされるようになった。1992年のソマリアでは、飢餓救援は国家再建へと滑っていった。どれも厄介な相手だった。だが、厄介であることと、全面介入に値することは同じではない。
イランも危険だ。だが、危険だという事実だけで、政権転換や地域秩序の再設計に乗り出す根拠にはならない。しかも2003年のイラク戦争で、米国はイランを抑える地域均衡を自ら崩した。大事なのは、敵の邪悪さより先に、「その一撃は均衡を良くするのか、悪くするのか」を問うことだ。そこから逆算してみると、アメリカの戦争はしばしば出発点でつまずいている。
■ ミサイル攻撃だけで国家は倒せない
第二の失敗は、軍事的成功と政治的成功の混同だ。
ミサイルは司令部を壊せる。滑走路も核施設も吹き飛ばせる。だが、翌朝の警察署、税務署、地方行政、治安の正統性は投下できない。2003年のイラクでは、政権打倒までは早かったのに、その後に来たのは安定ではなく占領と内戦だった。2011年のリビアも、政権は倒せたが国家は立て直せなかった。
2001年のアフガニスタンでも同じだった。タリバン政権を崩したあとに「では誰が統治するのか」に答えきれず、20年後には元の敵が戻ってきた。問題は爆撃そのものではない。爆撃で秩序まで作れると思い込むことだ。国家は、空爆の副産物としては生まれない。
イランでも、核施設や軍事拠点を壊すことと、その後の地域秩序を良くすることは別問題である。極論かもしれないが、ミサイルを使った核攻撃をしたとしても、政治的な成功をおさめられるとは限らないのだ。
■「核兵器を取り上げる戦争」はむしろ逆効果
第三の失敗は、軍事力を使って直接的に核開発を中止させようとしていることだ。
そもそも、対イラン強硬論の最大の理由は核兵器の問題である。だが、核拡散研究や抑止論が繰り返し示してきたのは、予防戦争では核問題を根本解決しにくいということだ。
軍事力で施設は壊せても、蓄積された知識や研究者、そして開発の動機までは消せない。むしろ攻撃された側は、「次に生き残るには、もっと確実な抑止力が必要だ」と学びやすい。相手への嫌悪感だけで武力を行使しても、根本的な解決にはなりにくい。
歴史的な教訓もある。2003年に大量破壊兵器計画の解体に合意したリビアはのちに体制が崩壊したが、逆に北朝鮮は核を体制維持の抑止力とみなしてきた。権威主義体制のエリートからすれば、「核を持たなければ外圧にさらされ、持てば少なくとも大国の扱いが変わる」という冷徹な教訓が生まれやすい。
2026年2月に始まった今回の対イラン戦争も、まさにその教材になりつつある。テヘランの意思決定者から見れば、「核保有の手前で止まっている状態」が最も危ないと映っても不思議ではない。ここで危惧すべきなのは、「核を止めるための戦争」が、数年後にはより秘密主義的で地下深く潜った核開発を呼び込むのではないかという逆説である。予防戦争は極めて危険な賭けなのである。
■「政治的な理想」が戦争を泥沼化させる
第四の失敗は、味方に引きずられることだ。
警戒すべきなのは敵だけではない。ときに味方のほうが、大国を深みに連れていく。南ベトナム政権の脆さを米軍投入で埋め続けたとき、ワシントンは事実上、サイゴンの生存を自国の戦争目標に変えてしまった。
中東でも同じである。イスラエルや湾岸諸国の最大目標と、アメリカ自身の核心利益は本来同じではない。にもかかわらず「見捨てない」という約束が白紙委任状に変わると、限定作戦は体制転換へ、体制転換は地域秩序の再設計へと膨らみやすい。
同盟は必要だ。だが、同盟は相手を抑える保険であって、味方の最大要求を肩代わりする契約ではない。誰のための戦争なのかを曖昧にした瞬間、戦争目標は増殖し始める。
第五の失敗は、大義に酔って会計を壊すことだ。
民主主義を広げる。女性を守る。人権を守る。民間人を保護する。どれも反対しにくい。だからこそ危うい。反対しにくい標語ほど、失敗の修正も難しくなる。イラク戦争では大量破壊兵器の話が、やがて中東民主化の夢へとすり替わった。アフガニスタンでは対テロ懲罰が国家建設と女性解放の使命へと伸びていった。リビアでは「保護する責任」が政権打倒の実践に変わった。
問題は、理想そのものではない。理想が会計を壊し、撤退判断を不可能にする瞬間である。立派な目的と、実行可能な戦略は別物だ。正義の旗が高く掲げられるほど、「ここでやめるのは無責任だ」という圧力は強くなる。だが、大義は出口戦略の代用品にはならない。
■ 戦争のコストは「戦場の外」でこそ拡大する
第六の失敗は、戦争がいつも小さく始まることだ。
ベトナムは顧問派遣から始まり、爆撃機による空爆へ、そして地上軍へと滑った。レバノンでは安定化任務が当事者化し、ソマリアでは人道支援が武装勢力の掃討に変わった。アフガニスタンでは9.11のテロに対する懲罰作戦が、20年にわたる国家建設に化けた。対ISIS作戦も「小さく、賢く」始まったはずが、中東への半恒常的関与を残した。
イランでも、当初の説明は「限定」「短期」「抑制的」というものだった。だが、ホルムズ海峡、報復の連鎖、同盟国の要求、国内政治の面子が絡み始めた瞬間、その言葉はもっとも信用できなくなる。ワシントンで最も危険な形容詞は、おそらく「限定的」だ。戦争はしばしば、始めるときの説明より、やめるときの条件のほうで正体を現す。
第七の失敗は、戦争のコストを狭く見積もることだ。
開始6日で113億ドルという数字は派手だが、もっと重い請求書は別にある。ホルムズ海峡をめぐる緊張は、日本にとって燃料費と物流費の上昇を意味する。中東で弾薬、艦艇、外交注意力を消耗すれば、中国やロシアへの抑止の帳尻も崩れる。戦争の最大コストは、しばしば戦場の外で発生する。
ベトナムは国内政治を裂き、イラクは結果としてイランの相対的地位を押し上げ、アフガニスタンと長い中東介入の余熱は「中国への集中」を何度も遅らせた。その意味で、1991年の湾岸戦争のような「成功例」でさえ、完全な安心材料ではない。
軍事的な成功が「次も短く片づく」という錯覚をワシントンに与えたのだとすれば、その副作用は小さくなかった。短く鮮やかな勝利であっても、その後の判断を誤らせたなら、長い目では負債を残しうる。
■「国益が増えたか」で勝ち負けを判断すべき
結局、アメリカが繰り返してきたのは、戦場での勝利を政治の成功と取り違える失敗である。戦闘で勝っても、政治で負ける。しかも、成功したように見えた戦争が次の錯覚を育てるなら、その成功すら総決算ではマイナスに転じうる。長期の国益という物差しで見れば、問うべきは「始められるか」ではなく「終えられるか」だ。
これは感情的な反戦論ではない。大国の会計学である。イランに甘いから反対しているのではない。悪い敵を殴ることと、よりましな秩序を残すことは別だと知っているからだ。国家の成熟は、戦争を始める力ではなく、始めない知性と、終える条件を先に考える冷静さに表れる。
日本から見るなら、評価軸も同じである。アメリカの威信を守ったかではなく、ホルムズ海峡依存のエネルギー価格、物流、そして中国への抑止にどんな穴を開けたかで測るべきだ。味方の戦争をそのまま自国の利益と取り違えないこと。それもまた、国益と抑止から戦争を見るときの、地味だが実用的な教訓である。
今回も問うべきは一つだ。これは始められる戦争か、ではない。終えられる戦争か、である。
----------
伊藤 隆太(いとう・りゅうた)
防衛大学校 共同研究員/戦略コンサルタント
防衛大学校共同研究員、NovaPillar Advisory LLC戦略コンサルタント、博士(法学)。慶應義塾大学法学部政治学科卒業。同大学大学院法学研究科後期博士課程修了。慶應義塾大学・広島大学助教、日本国際問題研究所研究員等を経て今に至る。Co-Chairs of the IPSA Research Committees (RC12)、APSA Committee of Best International Security Article等を歴任。単著論文はInternational Affairs誌に‘Hybrid Balancing as Classical Realist Statecraft’ (2022)、‘Hubris Balancing’ (2023)、International Relations誌に‘A Neoclassical Realist Model of Overconfidence and the Japan–Soviet Neutrality Pact in 1941’ (2023)、‘Outrage Balancing’ (2026)、単著研究書は『進化政治学と国際政治理論』(芙蓉書房出版、2020)、『進化政治学と戦争』(芙蓉書房出版、2021)、『進化政治学と平和』(芙蓉書房出版、2022)、編著研究書に『インド太平洋をめぐる国際関係』(芙蓉書房出版、2024)等がある。
----------
防衛大学校 共同研究員/戦略コンサルタント 伊藤 隆太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