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치매환자가 좋아하는 노래 1위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65)아빠의 청춘(반야월 작사, 손목인 작곡, 오기택 노래, 1965년)
/ 김장실(前 국회의원)
매년 5월 8일 어버이날이 되면 자식을 낳고 기른 어버이의 은덕을 기리는 각종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다.
특히 이 날이 되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아이를 낳고 기른 어머님의 은혜를 기리는 분위기는 강하나,
아버지의 공덕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우리 대중가요에서 어머니와 관련된 노래는 제법 많으나 아버지 관련 노래는
매우 적다. 가수 오기택이 부른 <아빠의 청춘>은 바로 아버지를 주제로 삼은 노래의 선구자이다.
<아빠의 청춘>은 원래 중앙방송국(HLKA)의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되어 청취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정승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김승호, 태현실, 신성일 등 당대의 인기배우를 기용하여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부인이 죽은 뒤 재혼도 하지 않고 순두부집 평창옥을 운영하며,
오직 자식 잘 되기만 바라며 살아온 아빠(朴 영감)의 얘기이다.
그러나 버스도 타지 않고 걸어다니며 온통 자식들을 위해 산다는 확신에 찬 아버지와 세대 차이가
큰 자식들은 아버지를 지나치게 인색하다며 반발하는 등 오해의 골은 깊어진다.
그러나 말년에 자신의 재산을 분배하며 그의 진정을 얘기하자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풀어지고,
가족 간의 화목이 새롭게 생기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작사가 반야월은 이 영화 주제가의 작사를 의뢰받고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 세상 부모들의 따뜻한 마음을 그린 가사를 만들었다.
그는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의 아버지상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진부함을 잃지 않기 위해 부분적으로
가사를 유머스럽게 처리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가사를 작곡가 손목인은 스윙 리듬으로 작곡하여 오기택이 굵은 톤의
목소리로 취입하였다.
오기택이 부른 <아빠의 청춘>은 이 영화의 OST로 사용되었고,
그 뒤 신세기레코드사에서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이 영화는 아세아 극장에서 개봉되자 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들어 그 당시 기준으로 보아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주제가 <아빠의 청춘>에 대한 인기는 대단하였다.
하루에 팬레터가 60통 이상 오는 바람에 신세기레코드사는 답장을 쓰는 사람 2명을 별도로 고용하여
이 일을 대처하도록 하였다.
그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 부권(父權) 상실의 시대라는 사회적 현실과 맞물리면서 어깨가 축 처진
아빠들을 위로하는 노래로 다시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또한 이 노래는 치매환자가 좋아하는 노래 1위로 알려져 그런 분들의 재활치료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가수 오기택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1961년 KBS 주최 제1회 직장인 콩쿠르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62년 그는 데뷔곡인 <영등포의 밤>을 불러 인기를 얻었고,
곧 이어 <고향무정>을 불러 크게 히트하였다.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되자 그의 노래를 발매한 파산 직전의 레코드회사가 기사회생하게 되는 일이 생겨났다.
또한 지방공연을 가자며 여러 쇼단의 악단장들이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는 바람에 하루에 6~7 군데의
밤무대를 돌면서 공연을 하였다고 한다.
그가 한참 인기가 있을 때에는 오기택의 부모가 있는데도 열성 팬들은 그의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하고,
그를 그리다 상사병(相思病)이 걸린 여인도 있다는 풍설이 돌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까. 1960년대 중반 어떤 라디오 DJ가 볼링에 열중하는 그를
호텔 카지노에 다니며 노름에 빠졌다고 라디오 방송에서 얘기하였다.
그런 허위 사실을 방송한 것에 대해 항의를 하다 폭행으로 이어져 그는 불행하게도 방송활동을
중단하는 사태에 직면하였다.
국내에서 길이 막힌 그는 일본으로 가서 한동안 노래를 부르다 국내로 복귀하였다.
그는 <영등포의 밤>, <충청도 아줌마>, <우중의 여인>, <마도로스 박>, <고향무정> 등을
불러 인기를 얻었다. 그의 고향 해남에서는 매년 오기택 가요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작곡가 손목인은 1913년 경남 진주 출신으로 본명은 손득렬이다.
서울 중동중학을 졸업한 이후 일본 동경국제음악학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였다.
그는 신민요 <노들강변>을 작곡한 외사촌 형 문호월의 소개로 오케레코드 이철 사장을 만나 작곡을
시작하였다.
그는 생전에 <타향살이>, <목포의 눈물>, <사막의 한>, <해조곡>, <바다의 교향시>, <아내의 노래>,
<모녀기타>, <슈사인 보이>, <아빠의 청춘>과 같은 주옥같은 노래를 작곡하여 격동의 세월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마음을 많이 달래주었다.
<아빠의 청춘>
이 세상의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주는 박 영감인데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헤이)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
세상구경 서울구경 참 좋다마는
돈있어야 제일이지 없으면 산통
마음 착한 며느리를 내 몰라보고
황소고집 부리다가 큰코 다쳤네
나에게도 아직까지 꿈이야 있다(헤이)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
출처: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91281&C_CC=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