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물빛이 맑고 고운 여수 돌산읍 봉황산, 금오산 산행이야기
o 산행일 : 2012. 2. 19. 일요일
o 가는 길 : 광주→여수→돌산(2시간 15분)
o 산행길 : 죽포마을 →봉황산→금오산→금오봉→향일암
o 산행시간 : 10시 45분~15시 40분(4시간 55분)
o 참석자(10명) : 경문, 금연, 기주, 동진 부자, 순태, 시영, 영란, 윤숙, 경문 친구(J)
o 운전 : 시영, 경문
겨울은 이래저래 추운 계절이다. 여수는 남쪽이다. 하여 산행도 따뜻한 남쪽을 향해 떠나는 것이다. 지난 달에 고흥 거금도를 찾았던 것도 남쪽에 있는 섬이기 때문. 추우면 따뜻함을 바라고, 더우면 시원한 것을 찾는 게 인지상정이리라.
여수 봉황산(460m), 금오산(323m)은 돌산 섬에 있는 얕으마한 산이다. 이름 그대로 여수는 '물빛이 맑은‘ 곳이다. 태양이 그 물빛을 더욱 맑게 해주고, 바다는 심오한 색깔을 드리우고 있다. 작은 절마저도 남쪽에서는 ’해를 향한다고 해서 향일암’이다. 죽포쪽에 있는 산이 봉황산이고, 금오산은 봉황산과 금오봉 사이에 있다. 향일암을 안고 있는 봉우리는 금오봉이다.
우리는 광주에서 8시 30분에 출발하여 10시 45분에 죽포마을에 도착하여 곧장 산행을 시작하였다. 마침 경문이 친구 J는 군대 시절 친구로 여수에 살고 있어 산행안내 겸 벗 삼아 함께 하였다.
죽포마을에 도착하자 등산객을 실은 대형버스가 동시에 도착했는 데 그들은 인생 연륜이 더 많았고, 이들이 앞서는 바람에 시간이 더디었다. 봉황산(460m) 정상까지 오르막 길인 데, 1시간 걸렸다. 정상에서 쉬면서 김밥, 콜라겐, 사과즙, 김밥, 적하수오술, 복분자술, 매취순, 소주 등을 마시며 즐거워 하였다.
죽포에서 봉황산, 금오산,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능선을 따라 남쪽을 향해 가면 된다. 봉황산까지 오르막이어 힘들 수도 있지만 정상부터 능선을 타고 가기 때문에 편안하고, 더구나 산행 길은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모두들 ‘좋다’고 연신 감탄을 하였다. 다만, 바닷가라서 바람은 드세다. 그래도 양지바른 쪽은 아주 따뜻하였다.
금오산(323m)에 오르기 전에 또 쉬어 가잔다. 하루 나들이를 나왔으므로 편안하게 쉬엄쉬엄 가자는 것. 금오산은 산에 나무가 울창하여 검게 보였기 때문에 거무산인 데 이를 한문으로 옮기면서 금오산(金鰲山)이 되었다.
두 번 째 쉬면서 광어회, 김밥, 찰밥, 콜라겐, 가래떡, 사과즙, 김밥, 적하수오술, 복분자술, 매취순, 소주 등을 즐겼다.
산행길은 부드럽고 완만하다. 무엇보다도 흙길이어서 편안해서 좋다. 길 옆엔 소사나무가 많았다. 소사나무로 분재를 만들면 귀한 분재가 된다는 데, 서어나무와 비슷한 데 같은 나무인지는 모르겠다. 휑한 산속에 상록나무가 있어 잎을 살펴보니 ‘보리수’ 잎처럼 생겼다. 시골의 보리수는 낙엽이 지는 데 이 곳의 나무는 상록인 것이다. 다만, 잎이 넓게 생겼다. 기주도 ‘이게 보리똥(보리수) 같기도 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런데, 나는 ‘오후 5시 한의원 진료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오후 3시에는 여수를 출발해야 하므로 ‘종주 산행’ 보다는 ‘짧은 산행’을 하자고 주장하였으나 다수가 ‘않된단다’.
2년 넘게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는 나는 개인 병원, 전남대 병원, 현대아산병원(서울), 삼성병원(서울) 등을 다니면서 치료를 해보았으나 차도는 없다. 의사들도 치료가 잘 않되는 거라고 했다. 최근에 광주 모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했는 데 침을 맞고, 부황을 뜨고, 발효한 한약을 환약과 함께 먹으며, 1주일에 한 번씩 한의원에 가 보아야 하는 것이다.
아! 치료는 받아야 하겠고, 친구들은 하루 종일 산행을 즐기자고 하고. 결국 만인이 원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오늘 산행을 포기하고 한의원에 가야 맞는 데, 산행도 하고, 치료도 해야 하는 마음에 동참한 게 결국 치료를 늦출 수 밖에! 경문이 친구 J는 ‘위장에 예덕나무 껍질을 말려 삶아 물을 마시거나 가루로 내어 먹으면 좋다’며, 나에게 예덕나무 가지를 꺽어 주며 ‘이게 예덕나무다’고 알려 주었다.
자신도 한 때는 위장병을 앓았는 데, 예덕나무껍질, 두충나무, 오가피 나무 등등을 넣어 만든 수제약(手制藥)이 집에 있으니 ‘그걸 줄 테니 식후에 맥주잔으로 반잔씩 마시면 좋다’고 했다. 이래서 친구가 좋긴 좋다. 고맙다.
봉황산, 금오산, 금오봉으로 이어진 이 곳의 나무 식생은 봉황산, 금오산 쪽은 꾸지뽕나무, 갈참나무, 예덕나무, 너도밤나무, 당단풍, 소나무, 청미래나무, 때죽나무, 진달래, 삼나무, 편백나무, 은행나무, 보리수나무(상록)가 많고, 향일암이 있는 금오봉은 후박나무, 장딸기나무, 돈나무, 동백나무, 젖꼭지나무(천선관나무)가 많다.
금오산에서 바라보는 남해안은 크고 작은 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아름답다. 동쪽으로는 광양, 하동, 통영 바다이고, 서쪽으로는 고흥, 장흥 앞바다가 훤하다.
향일암이 있는 금오봉으로 가려면 금오산 정상에서 비탈 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바위 뒤쪽의 길은 아직도 얼어 붙어 있어 조심해야 한다. 금오봉에 이르자 누군가 바위 표면을 보더니 ‘마치 거북등처럼 표시되어 있다’고 해 바라 보았더니 영락없이 바위 표면은 ‘거북등’을 닮아 있다.
금오산이니, 금오봉이니 하는 것은 ‘금오(金鰲)’의 ‘오’가 자라이므로 바위 문양이 거북등을 닮아서 금오산이라고도 하는 것도 낭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무튼 희한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보았는 데 자라, 거북이의 문양과 비슷하였다. 향일암을 품에 안고 있는 금오봉 바위는 전체가 자라문양인 것이다.
금오봉 정상 바로 아래에 향일암이 있는 데 향일암에 3시 40분에 도착하였다. 거의 5시간이 걸렸다. 향일암은 여러 번 와 본 곳이다. 남쪽에 있대서, 바닷가에 있대서, 기도가 잘 듣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내가 2009년 5월경에 이 절에 와서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절집을 휘황찬란하게 금칠을 해놓은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단청이야 부식을 막고, 아름답게 보이려는 뜻이 있다지만 절집을 금색 칠로 범벅해 놓은 것은 ‘도’를 넘은 것이다. 대중들이 시주한 돈을 들여 화려하게 치장한 것은 분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치이고, 보시한 게 넘쳐나면 그것을 세상에 돌려주는 회향이 당연하거늘 어찌 건방지게 절집을 온통 금색으로 덧칠했냐 말이다.
금강경에 ‘무릇 모양있는 것은 허망한 것(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고 했는 데 덕지덕지 칠해 놓은 금색 칠은 허망한 것이 아니던가? 나는 단박에 ‘이 절은 망해가는 구나’ 라고 탄식하였다.
절집은 ‘탐진치(貪嗔癡)’를 경계하고 있다. 탐욕과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고, 또 버리라고. 도(道)를 닦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도(道)에 이르지 못하게 훼방하기 때문이다. 청정한 도량이 되어야 할 절집이 탐욕으로 덧칠해 있으니 망(亡)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뒤 향일암이 불에 타 남김없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과응보다. 과시욕에 눈 멀어, 물욕에 눈이 멀었으니 이를 ‘응징’한 셈이다.
오늘 절은 또 다시 그 자리에 새로이 건물을 짓고 있다. 뼈에 사무치도록 새겨 두어야 할 ‘물욕에 대한 치욕’을 망각한 채 다시금 대웅전을 짓고 있는 것이다. 놀란 것은 아직 색칠하지 않은 문짝에 ‘금색 칠’을 하려는 듯 일부를 금색으로 초칠(初漆)해 놓은 것이다. 불난 집에 또다시 금칠을 하려는 수도자들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도(道)를 말할 것 같으면 큰 바다만큼이나 포용력이 크고 넓지만, 자신을 엄격히 하는 데는 바늘을 꽂아놓을 만한 빈틈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유가(儒家)에서도 몸 가짐, 마음 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성인의 자세를 몸소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절집이 탐욕을 추구한다면 더 이상 절집은 아니다. 청정 무구한 세계! 중생의 아픔을 보듬고, 공덕을 세속으로 회향해야 할 절집이 분수를 망각하고, 또 다시 저지르고 있는 업보를 생각하며 아들과 함께 삼성각으로 올라가 3배를 하며 참회하였다.
향일암(문화재자료 제40호)은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한 곳으로 644년(백제 의자왕 4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원통암을 창건하였고, 958년(고려 광종 9년)에 윤필거사가 금오암으로, 1715년(조선 숙종 41년)에 인묵대사가 향일암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이 곳은 대웅전, 삼성각, 관음전, 용왕전, 종각, 해수관음상이 있는 데 2009년 12월 20일 화재로 대웅전(원통보전), 종무소(영구암), 종각이 불타 버렸다.
향일암은 산행객과 절에 온 관람객이 뒤섞여 남대문 시장 통을 방불케 했다. 시내쪽에서 올라 오려면 몇 개의 좁고 긴 굴을 통과해야 하고, 절집 틈마다 돌로 만든 거북이(또는 자라)를 비치하고 있어 이 곳은 거북이(또는 자라)와 연관이 있을 성 싶다.
하여 향일암 관계자에게 ‘향일암은 거북이(자라)와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라고 여쭈었더니 ‘풍수지리적으로 경찰초소가 머리, 주차장은 목, 절은 거북이 등’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오봉 바위에 새겨진 자라 문양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증은 여전하다.
절에서 내려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온통 ‘돌산 갓김치 가게’다. 가게마다 들러 맛보기삼아 먹어 보았는 데, 생김치여서 맛은 별로 였다. 더구나 대중들의 입맛에 맞도록 싱겁게 담아 팔기 때문에 제대로 된 ‘돌산 갓김치’를 맛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제대로 된 ‘돌산 갓김치’는 숙성된 것이어야 한다.
내가 16년 전에 돌산대교 아래 횟집이 있을 당시 횟집에서 맛보았던 숙성된 ‘돌산 갓김치’를 먹고, 갓김치가 그토록 맛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후 어느 곳에서도 그처럼 맛있는 ‘돌산 갓김치’는 먹어보지 못했다.
죽포로 가기 위해 향일암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죽포에 내렸는 데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사진기가 없었다. 경문이 친구 J가 버스를 뒤쫒아 가는 데, 해안가의 구불구불한 길을 빨리 달리지도 못하였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돌산다리 경찰초소’에 애로사항을 이야기하자고 결론 짓고, 시영이 친구가 그리로 전화를 했고, 그쪽에서는 ‘협조해 주겠다’고 했다. 부지불식간에 검문을 당했을 111번 오동운수 버스기사와 승객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결국 경찰의 도움으로 사진기를 찾을 수 있었다.
늦은 점심 겸 저녁 밥 먹으러 여수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정식당’으로 갔다. 예전에 여수에서 직장생활한 경문이가 ‘대창은 우정식당’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한 곳이라 그리로 간 것. ‘대창’은 ‘아구의 위’라고 했다. 대창찜은 콩나물과 빨간 고춧가루에 버무려 익힌 것으로 맵지도 않고 쫄깃쫄깃한 게 맛이 있었다. 광주나 도시에서는 맛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식당을 나서서 헤어지려는 데 경문이 친구 J는 페트병(1.5리터)에 든 ‘위장에 좋다는 약’을 내게 건네 주었다. 고마웠다. 역시 ‘병은 알리고 볼 일’이다. 한의원에 다니면서 한약을 먹고 있는 데, 직원은 ‘프로 폴리스가 좋다’며 내게 주었고, J는 자신이 직접 만든 약을 주니 이제는 ‘낫기를 기대’해 보아도 괜찮을까? 여수에서 6시 45분에 출발하여 2시간만에 광주에 도착하였다. 12.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