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은이는 신발이 많다. 친구 재훈이가 한국으로 이사 가면서 몇 켤레 주고 갔기 때문이다.
이럭저럭 미루다 보니 발은 커 버리고 운동화는 작아(?)져서, 모두 챙겨서 재롬 목사님께 갖다 드렸다.
아무리 낡아도, 작아도, 커도 누구에게나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맨발로 다니는게 생활화 되어버린 아이들..
모스꿰라고 부르는 모슬렘 회당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다.
신발이 좀 크면 어떤가, 신발끈을 쪼이면 딱 맞는 것을..........
신발이 좀 작으면 어떤가, 앞 부리를 잘라내면 시원하기도하고 딱 맞는 것을....
우리 가족은 가끔 슬리퍼 신고도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간다.
어느 한 주일 예배 시간에 쉐리<불어로 남편>가 갑자기 간증을 한다며 앞으로 나가면서
승희에게 통역을 부탁했는데
오른쪽에 선 쉐리는 중국제 흰 슬리퍼,
왼쪽에 선 승희는 곤색 슬리퍼...
왜냐면, 우리는 뚜밥이지만 주님이 보시면 검으나 노랗거나 똑같이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그들과 다르게 할게 무어랴.
차고를 개조해서 쓰는 우리 교회, 생루이 감리교회.
우리 가족 빼면 헌금이 오백 프랑(약 천원)도 되지 않는 가난한 교회.
25프랑도 못내는 성도들....
우리 가족도 그들 처럼 헌금을 지폐가 아닌 동전으로 준비한다.
하지만, 슬리퍼 신어도 찬양은 뜨겁다.
땀땀(세네갈 악기 -드럼?)소리에 맞춰 제멋대로 춤도 추면서...
오늘은 화요일, 오후 6시에 기도회로 모이는 날이다.
이 셍루이를 우리에게 달라고, 세네갈에 부흥의 물결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쉐리와 까마귀 선배님
(쉐리의 선배님이신데 예전에 가끔 한국 부식을 갖다 주셨음,엘야의 까마귀에서 딴 이름)
나 셋이서 꼬꼼바이에있는 무슈(어른 남자 존칭- 아저씨) 마마디네 집에 볼일이 있어 갔다.
마마디는 50이 훨씬 넘은 까마귀 선배님의 배에서 일 하는 사람인데, 부인이 둘 있다.
그의 형인 무슈 볼리도 와 있었는데, 마마디가 세번째 부인을 얻었다고 자랑했다.
나이는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19살이란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두 남자(쉐리와 까마귀 선배님)들의 표정이란~~
내가 본 느낌을 써 본다면: 입이 약간 벌어지면서, 눈동자의 촛점이 흐려지면서 존경(?)스러운 눈초리.
그 자체였다고나 할까나?
이곳 무슬망(현지식 발음)들은 부인을 넷 까지 얻을 수 있다.
그의 부모가 한입 줄이기 위해 나이완 상관 없이 시집을 보내는 것이다.
마마디는 자식도 많지만, 직업이 있어서 돈을 좀 벌기 때문에 사돈의 팔촌까지 다 붙는 바람에,
점심 시간이면 가나의 혼인집 같다고나 할까..
40명 정도가 식사를 하는데, 쟁반 다섯개 정도면 끝난다.
부엌엔 가스통 하나, 큰 솥 하나, 국자 비슷한 것 몇개.
쟁반 하나에 8~9명씩 쭈~욱 둘러앉아 한손만 있으면 된다.
쟁반 안엔 음식과 소스가 한꺼번에 담겨 있는데, 혹 사람이 열명이 넘는다해도 양은 똑같다.
다 떨어지면 그만인데 좀 작게 먹었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에겐 찬장에 고이 간직해 둔 포크와 숟가락을 내온다.
우리는 뚜밥이니까.
잠깐동안 이 식구 다 우리교회로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봤다.
과연 무슈 마마디는 부인 셋 중 누구 옆에 앉아서 예베를 드릴까?
대선배님이신 라헬이 생각나는 날이다.
괜한 걱정을 한다. 그건 나온 다음의 문제지.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러 부엌에 들어갔다.
부엌은 무슈 마마디 집꺼보다 작은데,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국그릇, 반찬 놓는 접시,
밥하는 솥, 국끓이는 냄비, 물끓이는 통........
뚜밥이 세네갈레즈(세네갈여자)를 부러워 하는 날이기도, 아닌(라헬 선배님 땜에)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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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내 친구라는 뜻(불어),아미고 라고도 함) 아쓰 뚜레는 감비아(세네갈 옆나라) 사람이다.
하지만 세네갈 주민증도 있다. 결혼을 해서 작년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과 부인은
감비아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고 일년에 한번이나 두번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온다.
그의 직업은 사진사인데, 이곳에 사진사들은 카메라 한대 사서 가방에 담고 가까운 해수욕장이나,
길거리나, 아무집이라도 방문해 손님이 원하면 사진을 찍고 몇 시간 후나, 아니면 그다음 날
약속을 해서 사진을 돌려주고 사진 값을 받는것이다. 프랑스 말도 전혀 못하고 왈로프족어도
잘 안되지만 우리는 아미고이기 때문에 몇일만 못 보면 보고 싶고 궁금하고 그렇다.
어제 저녁 쉐리가 말하길 뚜레가 계속 나의 안부를 묻는다기에 안그래도 오늘은 만나봐야지
생각했는데, 집엘 들렸다.
다카(세네갈 수도)에 갔다고 들었고, 못보고 그런사이 이주일이 지난것이다.
인사를 하고 ( 세네갈 인사는 길다 )
아들 사진을 보고 ( 부인 사진은 없고, 아들사진은 사진가방에 항상 가지고 다님 )
오늘의 손님 사진은 몇장인지 확인해 주고, 돈은 얼마쯤 벌겠다 계산한 다음,
할리스 ( 돈이란 뜻에 왈로프종족어 )가 얼마나 모아졌는지 물어보는게, 만난후 순서다.
모나미는 20만 프랑(약 40만원)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스페인을 가서 할리스를 많이 모으는 것인데, 셍루이 바닷가에서 떠나는
밀항선의 뱃값이 20만 프랑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미고의 나라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은데, 그의 아미고의 말이 비행기표 구하는데만
120만 프랑 든다고 하니, 포기를 할수 밖에 없었다.
20만 프랑도 손가락으로 셀수도 없을만큼의 달수를 못먹고 못입어야 하는데.....
한번 배를 탈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스페인에 도착해서 잡혀 손이 묶여서 돌아 왔노라고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했다.
잠깐 묵상기도로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고, 일요일날 교회 같이 나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보자 예수님은 그러실수 있는분이야 우리 교회 알지? 10시 30분 까지 나오라고
말(몸 동작 + 불어 + 왈로프어..)했더니 눈을 반짝거린다.
모나미 찌끼또는 그림쟁이다. 제롬 목사님 부탁으로 교회 안 벽에다 기도손 그림과
성구 한절을 썼었는데, 본인이 그사람이라고 직접 나를 찾아와서 우린 아미고가 되었다.
가끔 마약을 하는지 비틀거릴때도 있지만 영어, 불어, 왈로프어를 다 할줄알아서 (이런사람
구하기 어려움!) 제롬 목사님 부탁으로 통역을 한다.
제롬 목사님은 불어, 찌끼또는 왈로프어
통역을 잘 하다가 설교가 본인 마음에 안들면 통역이고 뭐고 제롬 목사님께
항의를 하고 제롬 목사님은 "통역만 하세요"하고 그러면 또 통역하고....
설교가 끝나고 헌금 시간이면 아무리 찾아도 찌끼또는 없다..
그의 형의 이름은 빌 클린턴(페인트공)인데 진짜 이름은 물어보지 않았다
오늘부터 모나미 찌끼또 기도를 더 많이 해야 겠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와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통역을 잘하게, 그리하여 모나미 아스 뚜레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할 수 있게해달라고
갑자기 며칠전 묵상한 요한계시록 1장 7절 말씀 <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이 생각난다.
어떡하나 지금 주님이 오시면 안되는데.. 아미고 바느질집(?)
사장님 무슈 하싼,사진관 기사 우스만, 사진관에서 일하는 무슈 발데, 경리 마담 나피,
마드모아젤 살리, 마이무나, 무슈 꾼따는......
점심 시간이니 가야겠단다 (아스 뚜레가)
언제 한번 우리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얼마나 불편했던지, 다시는 안먹는단다.
왜나면, 우리는 뚜밥 이니까
돗자리 위에 두다리를 쭉 뻗고 손으로 먹으면 소화가 잘 되는데,
뚜밥인 아미고는 의자에 앉아 숟가락으로 먹어야 소화가 잘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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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박한 환경 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사랑과 인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