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정신과의사. 케스빌 출생. 바젤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895년 바젤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을 전공, 학위를 받았고, 1900년 졸업과 동시에 취리히대학의 부르크횔츨리요양소 조수가 되었으며, 소장 E. 블로일러로부터 인정을 받아 그 협력자가 되었다. 1902년 프랑스 파리의 P. 자네 밑에서 연구했으며, 1905년 취리히대학 강사가 되었다. 그때부터 S. 프로이트의 저작이 마음에 들어 프로이트와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하다가 1907년 프로이트와 빈에서 처음으로 만나 취리히에 프로이트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10년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창설되자 초대 회장이 되었다. 1913년 프로이트와 리비도이론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에 편지 왕래가 끊어졌다. 1914년 학회를 떠나, 홀로 <분석심리학>이라는 학파를 창설하고 대학도 사직한 뒤 정신병원을 개업했다. 1920년 이후는 북아프리카·애리조나·뉴멕시코·동아프리카 등으로 원시문화 연구여행을 계속하면서, 신화·종교·연금술·신비주의 등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1944년 바젤대학은 융을 위한 의학적 심리학 강좌를 설치하였다. 1948년 취리히에 융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1961년 퀴스나흐트에서 급사했다.
융심리학의 특징
프로이트와 융을 비교해 보면, 프로이트는 생물학적·과학적인 데 대하여 융은 종교적·철학적 색채가 짙다. 그의 심리학은 정신분석이라기보다는<구제법(救濟法)>에 가까웠고, 심적 결정론이라기보다 목적론을 강조했다. 리비도를 프로이트처럼 성적(性的)이 아니라 모든 지각·사고·감정·충동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로 간주하였고, 마음은 쾌감원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이 에너지에 의해 자율적으로 조절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음, 즉 인격은 의식(意識)과 무의식으로 나누어서, 무의식은 개인적 무의식, 집단적 무의식으로 나누어 생각했는데, 의식은 자아(自我)와 가면(假面)으로 성립되고, 자아는 의식의 핵심이 되며, 가면은 환경에 대처해가는 얼굴이다. 자아와 가면이 조화되지 못하면 심리적 부담을 일으킨다. 개인적 무의식은 경험에 바탕을 두는 것이지만 억압된 원망(願望)을 이르는 말이며 기본적으로는 의식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집단적 무의식은 전혀 의식되는 일이 없는 것이지만 인격 전체를 지배하고 종족적으로 유전된 것이며 개인적 경험을 초월한 것이다. 이 집단적 무의식은 애니마(anima), 즉 정신이 매우 깊고 오묘한 기저(基底)에 있는 여성상(女性像)과 애니무스(animus), 즉 남성상 등의 원형(原型)으로써 성립되어 있다. 이는 선사시대로부터 계승된 인간의 표상능력(表象能力)이며,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이 만나지 않으면 안될 곤란과 위험에 처하여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 원형이 발달되어 통일된 인격이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인격의 개개 양상을 기술하는 것으로서 인격의 유형론이 거론되어 내향(內向)·외향 유형으로 구별되고, 지각·사고·감정·충동의 심적 기능에 대응되어 8유형으로 구별된다. 융의 저작은 방대하나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융연구가인 J. 야코비·F. 포담이 융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노력하였다.
첫댓글 저도 융의 견해를 지지하는데 김재만 선생님께서 융에 대한 글을 올려주셨네요. 프로이트가 주장한 오디푸스 컴플렉스나 엘렉트라 컴플렉스는 사이코들이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프로이트를 혐오합니다
제국의 흥망에는 지식인들의 학문이 큰 기여를 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믿음과 정신세계를 좌우 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은 참 좋은 베이스가 되겠죠. 진짜 무엇이냐 보다 무엇인 것 처럼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즉, 정신세계를 다루는 기술이란, 주위의 모든 것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처럼 디자인 한 후, 보다 많은 사람의 행동패턴을 해당방향으로 set up을 시키면 기타의 상당수 인원들은 역시 해당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한 다는 것이죠. 거기에는 인간 내면에 기본적으로 잠재된 의식 무의식의 원초적 분석이 핵심적 요소로 작용될 수 있다고 보이며 그것에 대한 분석적 탐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50%이상 해당 내용이 비춰져 보이면 50%이상이 되는 데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죠.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그 확률이 더 커지면 해당방향으로 움직여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봅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90%이상으로 보이는 경우에는 해당방향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경우가 있죠. 상당히 소수의 경우에 해당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99.9%이상으로 보이게 디자인 하더라도 0.1%의 불확실성에 더 무게를 두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 경우의 사람들이 다수에 비해서 상당히 소수라면 .....그리고 그 소수에 의해서 디자인 된 방향으로 전체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없애 버리면 되죠...^^... 아무도 모르게... 역사는 그렇게 흘러 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0.1%의 불완벽함 지속적으로 쌓여오면 점점 틈이 커지는 것이죠... 떨어지는 빗물이 바위를 두동강 내버릴 만큼... 결국, 제국을 운영하는 기술이란 50% 또는 그 미만으로 경제적으로 디자인하더라도 해당방향으로 움직여줄 사람을 집단 양성하는 '경제적인' 체제의 개발과 그 사람들에게 focus를 맞추는 제도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발전이 되어 왔을 가능성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중심에 융(Jung)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으로 비롯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대륙을 삥 돌아서 나타난다는 것이죠. 대륙의 주위를 돌아서 바닷가를 중심으로... 그리고, 사서를 검토하면서 사람들의 대규모 움직임에 따라서 자연재해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정방향으로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려 할 때 말입니다.
하나의 가설은 중앙아시아의 제국이 사라질 때도 역시 유사한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지도를 보면 100년사이 바다가 갈라져버린 현상이 목격됩니다. 그러면, 해당지역에서는 통치가 안되죠... 왕권이 힘을 잃게 됩니다. 그 현상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지구 반대의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와 역사의 이동 또 그것의 근원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움직임과 그것을 이용하려 했던 세력의 존재는 과거의 역사를 감추려는 시도에서 그들의 세력이 가지고 있었던 원초적 정체성의 문제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죠... 인간들의 대규모 움직임과 자연재해가 동시적인 패턴으로 관찰된다면...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근세보다는 현대의 역사에 가까운 역사를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숨기려는 이유의 근원에는 본인들의 정체성의 진실이 탄로날 수 있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에서 기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과거에 그런 현상이 일어 났다면 현재에도 그런 현상이 지속될 수 있고, 미래에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통치와 지배권에 대한 근원적 base가 성립이 안된다는 것이죠.... => "정당성"을 잃게 된다.... 해석을 해 보면, 과거역사는 그 어떤 분야보다도 먼저 현재의 인간행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호주인이 쓴 정복의 법칙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러시아가 없앴다고 합니다. 마을 이장을 비롯해서 그 마을의 역사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싸글리 죽이고 남아있는 애들에게는 니들은 원래 이러이러 했다고 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주입하고, 러시아는 세계에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면 연고권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하여 차지했다고 하더군요. 그걸 그대로 일본이 이용했고. 참으로 서양 제국주의는 무섭더군요.
책이름을 좀 상세히 적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아마 그렇지 않을가요?... 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러시아와 미국이 번갈아 감녀서 계속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그래도, 그 속에서는 숨길 수 없는 진실이 있나 보죠... 아무리 죽여도 계속 나오니까...^^... 죽이는 사람 힘빠지게...
그것이 역사이고 전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