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모로 총리 사주이다.
인수가 길신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는 경우이다.
乾 알도 모로 양력 1916.9.23 08:00 戊戌년 103세
96 86 76 66 56 46 36 26 16 06 時 日 月 年
丁 丙 乙 甲 癸 壬 辛 庚 己 戊 丙 癸 丁 丙
未 午 巳 辰 卯 寅 丑 子 亥 戌 辰 亥 酉 辰
48세 癸卯년 癸亥월 (1963년 12월 04일) 내각 총리 선출
63세 戊午 丁巳월 피살.
----------
이 명조는 酉 인수가 월지에만 1개 투출해 있으므로 탁하지 않고 청한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 대해 심효첨은 印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인수는 길신이다.
천간에 丙丁 재성이 투출한 것은 흉한 징조이다.
청한 인수를 극하여 파괴하기 때문이다.
고로 壬癸 비겁은 흉신 재성을 제하는 길신이 된다.
金水吉, 火土 凶인 명조이다.
실제 '알도모로'는 북방 비겁 운 庚子 30대 초반부터 일찌기 길운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비겁 작용으로 인해 酉 인수가 살아나므로 정계에 투신했고
48세 癸卯년 癸亥월 癸 비겁이 길로 작동하여 내각 총리에 선출됐다.
문제는 癸卯 대운은 계수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卯 식상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흉의 징조이다. 이 사람은 길흉이 다 작동하는 운명을 간다는 것이
癸卯 대운에 정해져 있다.
卯 식상은 辰土 관성을 해하고 있는데 이것은 木克土를 암시한다.
이것은 卯운 내에 관성이 무너지는 흉이 작동한다는 징조를 가지고 있다.
또 명서에 보면, 식상이 있을 때 관성운을 보면 흉하다고 했다.
酉 인수는 卯를 충하지만 卯를 파괴하지는 못한다.
卯亥합이 되기 때문이다.
癸卯 대운
63세 戊午년 운명의 戊 정관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이 없어지는 운이다.
丁巳월, 재성 흉운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달에 사망했다.
火의 의미 중에 하나가 총탄의 의미가 있다.
알도모리 총리는 인수에 대한 명확한 간법을 마스터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사주이다.
그러나 자평진전을 한번 읽은 학자라면 즉시 火가 흉신인 이유를 알 것이다.
학자들이 기본적으로 명서에 기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수 흉신 ②
인수가 多하여 重할 때는 오히려 재성을 기뻐한다.
사례는 왕시랑 것이다.
乾 자평진전 왕시랑(汪侍郞)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辛 壬 丙 辛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亥 申 申 酉
인수가 많아서 (多) 財를 用하는 局이 있다.
인수가 重하고 身强하면 투출한 재성으로 태과를 억제하는 권력을 사용해야 된다.
다만 인수의 뿌리가 깊은 것을 要한다.
이렇게 되면 재성이 인수를 파하여도 무방하다.
왕시랑의 명조가 그러하다.
有印多而用財者 印重身强 透財以抑太過 權而用之 只要根深 無防財破
如辛酉 丙申 壬申 辛亥 汪侍郞命是也
-------------
왕시랑은 인수가 월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천간 지지에 중중하다.
이렇게 되면 인수를 제하는 것이 오히려 인수를 청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월지 丙 재성은 길신이다.
실제 왕시랑은 남동 운으로 가면서 丙 재성을 도우므로
시랑 벼슬까지 올라갔다. (시랑 : 부장, 차관, 장관 급의 고급 공무원)
이 명조를 신왕해서 재성을 용신으로 쓸 수 있다고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길흉신으로 정해진 것은 신왕신약보다
우선하는 것이 길신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나,
인수도 어느 육신이 천간에 있는 가에 따라 인수 이외의 길흉신이 달라진다.
명리를 간단하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각 육신마다 특징과 길흉신을 정확하게 뽑아내려면 고난의 세월이 흘러야 한다.
결과적으로 답은 명서에 다 들어있다.
옛 선배들이 홀로 가다가 명서로 되돌아오는 이유이다.
이론의 응용과 수정도 명서의 논리 속에서 해야 제대로 한다.
명리 공부 10여년의 세월이 지난 학자들은
이제라도 명서를 차분히 읽기 시작하라는 것을 권하는 바이다.
1,2년이면 7대 명서를 마스터할 것이고 그후라면 연구시대로 바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주는 아주 잘 맞는 논리이다.
인비식재관, 어떤 육신을 쳐다보아도 명확한 길이 보이지 않으면
간명시 사주가 맞았다가 틀렸다 하게 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이런 것으로 필드에 나서려하면 죄를 짓는 줄 알아야 한다.
명리학자라면 이영돈 pd에서
명리 40년 경력자가 살인자 사주를 앞에 두고 단 절반만이라도 맞추지 못했던
한맺힌 수모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청운
====== 참고 =========
알도 모로 - 이태리총리 - 63세 戊午 피살
부친은 학교 감사원, 모친은 교사
30세 乙酉년 - 1945년 Eleonora Chiavarelli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잡지 Studium의 이사가 되고, Graduated Movement of the Catholic Action의 대표가 됐다.
31세 丙戌년 - 1946년 Christian Democracy의 부대표로 선출되고 Constitutional Assembly의 위원으로 선출됐다.
33세 戊子년 - 1948년 De Gasperi 내각에서 외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어 2년 근무.
38세 癸巳년 - 1953년 Chamber of Deputies (국회의원)에 다시 선출됐다.
40세 乙未년 - 1955년 Antonio Segni 내각에서 법무장관에 임명됐다.
42세 丁酉년 - 1957년 교육부 장관에 임명됐다.
48세 癸卯년 癸亥월 - 1963년 12월 04일 내각 총리에 선출됐다.
53세 戊申년 戊午월 - 1968년 06월 24일 총리에서 퇴임.
59세 甲寅년 乙亥월 - 1974년 11월 24일 2차로 총리에 선출됐다.
61세 丙辰년 乙未월 - 1976년 07월 29일 총리에서 퇴임.
63세 戊午년 乙卯월 丁丑일 -납치
1978년 03월 16일 붉은 여단 소속의 무장 테러리스트 4명이 로마에서 알도 모로가 탄 차를 공격했다. 자동 소총으로 모로를 경호하는 차를 향해 91발을 쐈다. 경호원과 경찰관이 총알 40여 발을 맞고 모두 사망했다. 테러리스트가 총구를 들이대고 모로를 산 채로 납치했다.
63세 癸卯대운 戊午년 丁巳월 辛未일 - 사망 발견
戊午년1978년 05월 09일 모로가 붉은 여단 지도자 마리오 모레티에게 살해됐다. 익명의 제보자 덕분에 경찰이 로마 역사지구 근처에 주차된 트럭 안에서 총에 맞아 벌집이 된 모로의 시신을 발견했다. 모로는 심장에 총알을 11발이나 맞았다.
첫댓글 하...점입가경이라더니,,,
왕시랑 명조에 대해서 <실제 왕시랑은 남동 운으로 가면서 丙 재성을 도우므로 시랑 벼슬까지 올라갔다. >고 실제라는 말을 넣으면서 기술을 했는데, 확인된 사실입니까?
자평진전 인수취운편에 저럴때 재운이 좋다는 말이 있기는 합니까?
왕시랑 명조가 어디서 갖고 온 명조인줄 아시기는 합니까? 연해자평 인수격에 나오는 시랑 명조라 보는 것이 전후로 보건데 맞습니다. 연해자평 명조가 맞다면, 일주가 임인입니다. 그러면 인해가 격을 공격할 채비를 마치고 있는 건데 과연 승승장구할 귀명으로 보입니까?
마지막으로 시랑이란 벼슬이, <부장, 차관, 장관 급의 고급 공무원>이라고 누가 그럽니까?
물론 명을 보는 방식이 다른 거야 관심도 없고 그럴 수도 있다 칩니다만,
이 정도 파격적인 주장을 하려면 만에 하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체크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수가 진짜 흉신입니까?
쌈닭 당신은 학문을 하는 기본이 안되어있는 사람이라 내 분명 내 글에 글을 달지 말라고 진작 말했고
쌈닭도 그러하마고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을 어기니 인간성 자체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고,
적어도 글을 반박을 하려면 책을 단 한번이라도 읽고 문제 제기를 해야하는데
그런 기본도 안 되어있으니,,,,
거듭 말하건대 쌈닭 당신 그런 하찮은 명리 지식을 가지고 건방지고 쓸데 없이 남의 글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기를 바라오.
@淸雲 어지간해야 참을 것이 아니오?
그렇게 말하는 그대는 명서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으시었소?
옹정제 명조만 해도, 적자가 아닌데 동방 인수운을 거쳐서 그 끝자락에 황제에 오른 인물을 예로 들면서 인수가 기신이라 해도 그대 글에는 댓글을 안달았소만, 이런 사주학의 대전제를 뒤흔드는 발언이 제목으로 올라오는데 이걸 보고만 있어야 겠소?
누가 질문을 했건 그대글에 질문이 나왔는데 인간성운운 하면서 대답을 회피하고 싶소?
나 같으면 제대로 답변해서 이 기회에 상대방을 확 눌러줄 좋은 기회로 받아들일 것 같소만...ㅎㅎㅎ
@淸雲 그대가 쓴 책 말고,
나는 알고 니가 모른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말고,
제대로 그대가 좋아하는 7대 명서에서 근거를 대 보시기 바랄 뿐이오.
질문이 네가지요.
왕시랑 명조가 실제로 저렇게 살았다는 근거 문헌이 있소? 연해자평의 시랑이 맞다면 연해자평에는 그냥 시랑이고 인수격이라고만 나오지 전혀 생애가 어떤지 언급이 없는걸로 아오.
자평진전에서 왜 只要根深 無防財破 이 말을 넣은거 같소? 생각해 봤소? 두번째 질문에 대한 힌트요.
세번째, 연해자평의 시랑명조가 맞기는 한거 같소? 자평진전에 바로 뒤 명조도 연해자평 인수격 명조요. 자평진전은 연해자평의 명조들로 재 구성한 책이라 보는게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오.
@淸雲 그래 저 명조를 보시면서 저 명조 주인이 귀격으로 보이오? 보인다면 할 수 없소이다.
네번째, 연해자평에는 격을 제대로 이룬 귀격 명조들에 대해서는 그래도 생에 대한 평가들이 보통 있소, 누구 부인이라도 남편이 잘나갔어도 그거 기록은 하는 편이오만, 저 명조는 그냥 딸랑 시랑이라고 적혀 있소 .
찾아는 보시었소? 자평진전 보면서 연해자평 같이 보기는하시오? 보신 분이면 보통 이 일지의 신은 인의 오기인 거로 보인다는 말을 붙이시던데, 전혀 언급없는 걸 보면 생각도 못한 분이 맞을 거 같소.
조흔님이 어디서 잘 찾아 놓으셨던데, 진,명대에 시랑은 뭐라고 적혀 있던가요. 그게 아니고 고급 관리라고 확신하시오?ㅎㅎ
@淸雲 이렇게 논란이 될 수 있는 예시 명조 하나 올려 놓고 <인수 흉신>이런 거창한 제목을 다시는 것은 무모한 것이오 용맹스러운 것이오?
감정이 있더라도, 학술적으로 논점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을 질의를 한 것이니, 질의가 없었다면 모르되 나온 질의에 대해서는 역시 냉정하게 학술적으로 명쾌한 답변을 주기 바라오.
왠만하면 나도 그대하고는 말 섞고 싶지 않았는데, 그 점은 미안하게 됐소이다,ㅎ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명사사해, 니도 내 글에 쓸데 없이 글을 달지 말아라.
니하고는 적어도 7대 명서 중에 단 한 권이라도 마스터한 뒤에 대화를 할 수 있다.
글이 맞고 틀리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넌 학문을 하는사람의 기본이 안된사람이라
니 글에 한번도 답을 안달고 있는 것 모르고 있니?
왜 쓸데 없이 되도 않는 엽전같은 지식을 같고 토론하자하니?
더 토론하려면 날을 정해서 대면해서 하자구,
자신 있으면 나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