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독일 해군은 유럽 최대의 거함 비스마르크를 출정시키기로 결정을 내린다. 라인연습(Rheinubung)이라는 작전명 아래, 독일 전함을 있는대로 긁어모아, 대서양을 종횡하며, 영국
수송선단을 때려 잡고, 이 빈틈을 이용해 유보트들이 나머지 수송선단을 아작낸다. 정말 그 구상은 멋졌다. 물론 세부적인 여러가지 계획이 있었으나, 당시 출항에 임박해서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오직 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만이 비스마르크의 뒤를 따르게 된다. 두대의 독일 군함은 드디어 운명적인 마지막
항해를 시작한것이다. 물론 비스마르크의 출항은 극비였다. 하지만, 유럽 최대의 괴물
비스마르크의 일거수 일투족은 영국의 정보망하에 있었으니, 영국 해군에 총비상령이
내려진 것은 자명했다. 그럼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항해일지를 살펴보자.....
1941년 5월 19일 새벽... 드디어 비스마르크와 그의 오른팔 프린스 오이겐호는 닻을
올리고 코텐하펜 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코텐하펜 항을 막 나서며, 비스마르크의 함장 린데만은 선내 방송을 통해 "제군들 우리는 이제 대서양으로 나간다. 그리고 영국놈들의 수송선단을 격침시켜 나갈 것이다. 이 항해는 앞으로 몇 개월이 소요될 것이다. 무운을 빈다"라는 사기를 앙양시키는 짧은 격려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항해는 채 10 여일이 못되어 종말을 보게될 운명이었으니, 인간만사를 그 누가 속속들이
예견한단 말인가?
[사진] 스칸디나비아 복잡한
만 사이로 항진중에 영국
정찰기 스핏화이어에 발각된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호... 아래 작게 보이는
선이 비스마르크....
당초 계획은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이의 해협을 그대로
통과하려 했지만, 날씨가 너무도
청명해, 발각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되었고, 노르웨이의 베르겐(Bergen)에 정박키로 했다. 어두워지면, 야음을 틈타, 대서양으로
진입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베르겐에 닻을 내린 두 괴물의 모습이 정찰 중이던 영국 스피트화이어에 포착되었다.
[사진] 비스마르크 사냥의 총진두지휘에 나섰던, 영국의
제독 존 토베이의 모습.... 거의 놓칠뻔한 비스마르크를
끝내 발견하고, 대서양 앞바다에 잠제운 장본인이다.
영국은 대서양 전 함대를 출동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지중해에서도 함대를 끌어오기로 하는 등,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국의 존 토베이(John Cronyn Tovey) 제독은 먼저 순양함 노포크(Norfolk)와 서포크(Suffolk)로 하여금 그린랜드와 아이슬랜드 사이
덴마크 해협의 좁은 통로를 정찰케했고, 어니스트 홀랜드(Ernest
Holland) 제독을 자신보다 한발 먼저 출항시켰다. 당시 홀랜드 제독은 전함 후드(Hood)호를 기함으로 또 다른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Prince of
Wales)와 6척의 구축함을 이끌고 결전의 첫 포문은 자신의 것이라는 기대와 최신형
적함 비스마르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아이슬랜드 근방으로 맹진했다.
[사진] 스핏화이어가 발견한 비스마르크의
정찰사진...
5월 22일... 비스마르크는 야음을 틈타 노르웨이를 빠져나와 항로를 북서로 잡고, 덴마크 해협을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때맞춰 대서양의 기상은 점점
악화되어, 짙은 구름이 낮게 깔렸고, 덴마크 해협에
접어들면서, 자욱한 안개로 시계 거리는 더욱 좁아졌고,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호는 쾌재를 불렀다. 서로 놓치지 않기 위해, 점멸등으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항진을 계속했다.
한편 비스마르크가 노르웨이를 벗어났다는 급보를
접한 영국의 토베이 제독은 전함 킹 조지 5세를
기함으로 삼고, 항모 빅토리어스(Victorious)를 대동하고, 순양함 리펄즈(Repulse)와
6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앞서 출발한 홀랜드 제독의 뒤를 따라 출진에 나섰다.
단 두대의 독일 전함을 잡기 위해, 대서양의 굵직한 두 함대가 총출동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비스마르크를 잡기 위해 총출동한 영국 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