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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동행한 재건 (스2-5)
2026년 7월 27일 (월요일)
찬양 : 말씀 앞에서
본문 : 에스라 5:1-17절
☞ https://youtu.be/SeEh4fyBJ-U?si=dl7bbjOw8_MOHzwL
이제 7월의 마지막 주간이 되었다. 한 달의 소중한 휴식이 끝나는 시간이다. 많은 계획이 있었지만, 대상 포진으로 모든 계획은 취소되고 그저 집에서 더위와 싸우고, 통증과 싸우는 시간이 되었다. 인간이 많은 것을 계획하지만, 그것은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계획이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짐을 분명히 알게 된 시간이다.
삼복더위로 잠을 자는 일도 힘든 정도의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 더위에도 주님의 은혜로 더욱 주님이 기억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오늘은 외부에서 진행되는 중보기도 세미나 강의 교재를 편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려는 뜻이 온전히 담기기를 소망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에스라 5장은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한 방해와 백성들의 두려움으로 인해 무려 16년 동안이나 멈춰 서 있던 성전 재건 공사가 어떻게 다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반전의 장이다. 1-2절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에스라서는 4장에서 5장으로 바로 이어서 기록하고 있지만, 이 기간 성전건축은 무려 16년 동안 멈추었다. 이 시간 처음의 뜨거웠던 열정은 식어버렸고 학개 선지자의 고백을 통해 보면 백성들은 "아직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학 1:2)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자신의 판벽한 집(호화로운 집)을 짓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외부의 방해가 내부의 영적 나태함으로 변질된 상황이었다.
이런 때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16년의 멈춤이 그치고 성전건축이 재개되었다. 환경이 좋아져서, 혹은 바사 제국의 왕이 허락해서 공사가 재개된 것이 아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다시 돌을 들어 올렸다. 거룩한 일의 회복은 언제나 '말씀의 선포와 그에 대한 순종'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공사가 재개되자마자, 이번에는 유프라테스강 서쪽을 다스리는 바사 제국의 막강한 총독 닷드내(Tattenai) 일행이 찾아와 방해한다.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이런 방해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말씀에 의한 확신을 가진 이들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고 한다. 5절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에스라는 여기에 분명한 해석을 달고 있다.
<하나님이 ... 돌보셨으므로>
환경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말씀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한 이들에게 더 이상 세상의 위협은 두려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의 위협은 더욱 공동체를 하나되게 하는 힘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닷드네에게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11-12절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이 성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믿음은 당당함을 회복하게 한다. 이들은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당당히 신앙을 고백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전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 바벨론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넘기셨기 때문>이라고 자신들의 뼈아픈 영적 실패와 심판의 역사를 가감 없이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 자신들을 보내주었던 고레스 왕의 칙령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두려움은 우리로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믿음은 누구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소상하게 말할 수 있다.
오늘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멈춰진 16년을 살린 것은 그 어떤 환경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저항의 힘도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영혼을 깨워 믿음으로 일어서게 할 때 그들은 16년의 멈춤을 뒤로 하고 새로운 재건의 삽을 들고 일어나 당당히 저항하며 회복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의 저항은 정치적 투쟁이 아니었다. 오직 말씀을 신뢰하며 그 진리위에 선 자의 당당함으로 반대하는 총독과 황제에게 그들이 해야 할 말을 전할 수 있었다. 그 믿음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돌보므로 모든 과정에 성전 재건은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
목사로서 말씀을 증거하는 삶은 소명의 자리다. 이 소명의 자리가 주는 분명한 이정표를 오늘 본문은 제시하고 있다. 바로 말씀으로 영혼을 깨우는 자리의 소중함을 오늘 본문은 분명히 보여준다.
스룹바벨과 예수아, 즉 정치 지도자와 종교지도자의 완전한 결합이었지만 하나님은 여기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영혼을 깨우는 새로운 전달자를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포로기 이후 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방식을 우리에게 전하신 것이다. 아마 이 순간이 종교개혁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의 말씀은 한 영혼과 한 사회를 개혁하는 살아있는 말씀임을 다시금 깊이 묵상한다. 종교개혁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이 살아날 때 일어나는 삶의 혁명이 아닐까? 나의 앞으로의 삶의 궤적이 말씀이 살아나 나를 개혁하며, 더 나아가 나를 만나는 사람이 개혁되고 내가 선 곳이 개혁되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자리가 되기를 간절함으로 사모하는 시간이다.
주님, 이 종에게 살았고 운동력있는 말씀으로 멈춰진 신앙의 시대를 다시 일으키는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오늘도 그 말씀을 사모하며 부르짖나이다.
한줄 묵상 :
<참된 영적 개혁과 회복은 환경의 변화나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멈춰진 내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비로소 시작된다.>
적용 질문 :
1. 지금 내 삶에서 "아직은 환경이 열리지 않았다"며 합리화하고 멈춰버린 영적 사명이나 순종의 자리는 없습니까?
2. 세상의 압박이나 두려움 앞에서 나는 타협하며 입을 다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다"라며 진리를 당당하게 증언하고 있습니까?
3. 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오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어떤 결단과 순종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