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 길을 걸으며
김선중
안 식구와 단둘이 야외에 나갔다. 아이들 기른 후 처음이다. 각기 다른 일로
일요일이면 회사에서 일하고 집안 일로 다니다 보니 같이 산책할 기회가 없었다.
십일월 초순이라 차가워진 날씨가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다. 만추의 낙엽이
다 지기 전에 가을을 보려고 서둘러 집을 나서 버스에 올라 화양동으로 향했다.
이제서야 갈색으로 변한 산은 짧은 가을이 아쉬운 듯 바람이 자면 낙엽도 지지
않는 고요의 산이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어오면 우수수 지는 낙엽이 파란 하늘에
날리고 있다.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스산함에 다가오는 겨
울을 실감한다. 아직 다 따지 않은 홍시는 낙엽진 앙상한 가지위에
스마스트리의 빨간 전등처럼 나무를 장식하고 있다. 시골집 지붕과 어울리는 늦
은 가을 풍경이다. 정겨운 시골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마음도 한결 느긋해 진다.
어느덧 버스는 우리를 자연 학습원 앞에 내려 놓는다.
매달려 크리
화양동은 여름의 행락객이 없어 정적이 감돌고 있다. 멀리서 보는 물은 깨끗하
다 못해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계곡의 반대편 입구를 향해서 천천히 발을 옮겼
다. 산 길은 물 따라서 굽이굽이 뻗어있고 사람이 없어서 호젓했다. 좀처럼 잡지
않던 손을 잡고 걸었다. 예전에 우리 아이들과 여기를 손잡고 같이 걸은 적이 있
었다. 그 때 아이들은 초등 학교에 다닐 때라 놀이 기구나 타는 걸 좋아했지.
자연을 감상하는 것은 지루해 하는 것 같아서 조금 가다가 돌아왔었다. 이제 조
금 자랐다고 두 녀석 다 부모와 같이 다니는 걸 그렇게 반기지 않는 눈치다. 둘
만이 걷다 보니 자연 데이트하는 분위기다. 재촉하는 사람 없는 산 길에서 자연
을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저 물 좀 봐. 참 깨끗하네”
“바위 색깔이 하얀데”
“물이 깨끗하니까 바위에 이끼가 없지"
“낙엽 떨어지는 것 좀 봐. 무슨 나무지? 물든 색깔이 단풍 같이 고운데”
“신갈 나무라 낙엽 색깔이 붉지”
우리의 대화는 흘러가는 물처럼 끝이 없었다. 계곡의 물은 경사진 곳에서는 여
울지거나 조그만 폭포를 만들어 좀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평편한 곳을 지날때는
물소리는 사라지고 낙엽지는 소리와 산새 소리만 간혹 들린다. 같이 걸으며 살아
온 길을 회상하였다. 하던 일이 안되어 피곤할때는 서로 탓할 때도 있었고 아이
들이 공부를 잘할 때나 아프던 부모님이 퇴원하시면 안정되곤 했었다. 결혼 생활
십 수년이 되니 자연히 성격을 속속들이 알아 신비로운 부분은 사라졌지만 부족
한 부분 노력하며 닦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어려운 때 아이들 기르며 지나온 세월
이 기억 속에서 물처럼 흐른다. 처음에는 내가 마음이 더 단단한 줄 알았는데 몇
년 지나다 보니 반대로 된 것 같았다. 오히려 논리적이고 사리 분별 하는 게 나
보다 정확하다. 감상적이고 마음이 약한 쪽은 항상 나였다. 어려울 때면 차분히
생각하여 주어서 큰 도움이 되곤 했다.
약간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낙엽을 흩날린다. 대개가 참나무 잎이고 간혹 단
풍나무, 노란색의 느티나무도 섞여있다. 나무 단풍의 각기 다른 색깔이 어울려
산의 아래쪽에는 갈색으로 되었고 위로 올라 갈수록 소나무 푸른 색깔로 변한다.
거기에 낙엽송 군락의 잎이 누런 색깔로 변한 것이 간간히 섞여 있다. 길 가의
나무는 참나무가 많지만 가끔은 높이 치솟은 적송도 보인다. 붉은 나무 줄기에
푸른 잎은 언제 보아도 기품이 수려하다. 절과 궁전을 짓던 단단한 재질의 키큰
소나무가 산이 깊으면 가끔 보인다. 물가 쪽으로는 식재 한 듯 사시나무가 나란
서있다. 돛대 같이 솟대 같이 우뚝 솟아 흰색의 줄기를 뽐내며 길가에 도열
있다. 둘이 손잡고 걸으니 마치 하객의 축하를 받는 신혼부부 같은 기분이다.
물소리도 소란스러워진다.
개울 옆의 도명산 줄기의 연봉이 우뚝 솟아 있고 조각 구름 높히 떠있다. 저
아래로는 파천 개울의 넓은 바위에 푸른 물이 흐르고 있다. 넓고 하얀 바위의 광
장 사이에 물이 바닥의 모양을 따라 계단져서 흐른다. 어느 예술가가 조각 한다
해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모든 종류의 예술가들을 다 동원 한들 자연만 하겠는
가. 길을 내려가 잠시 물가에 서서 쉬면서 물속을 바라보았다. 푸른 물에는 살찐
산천어가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고기들 입장에서는 인간들이 없으면 얼마나 좋
겠는가. 이렇게 노는 것을 보기만 해도 즐거우니, 자연은 놓아두면 정화되고 균
형을 이루는데 인간이 무엇을 한다고 버려 놓는 것은 아닌가. 선경이 어디 달리
있으랴. 아마도 우리 나라의 절경이려니와 세계에 놓아도 어디 못지 않은 풍경일
것이다. 오늘 참 잘 왔다는 생각을 되풀이 하면서 학소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의 애환을 담은 인생도 굽이 굽이 흘러 가리라. 우리가 가고 세월이
바뀌어도 저 높은 연봉은 변함없으리. 어제까지의 번잡한 일상은 저 멀리에 있는
구름처럼 아득하다.
1998. 11.10
첫댓글 앞으로 우리의 애환을 담은 인생도 굽이 굽이 흘러 가리라. 우리가 가고 세월이
바뀌어도 저 높은 연봉은 변함없으리. 어제까지의 번잡한 일상은 저 멀리에 있는
구름처럼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