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도 감탄한 북한의 박정희 전문배우, 얼마나 닮았길래
by 주성하기자 2013-08-08 8:00 am
며칠 전 전두환 전문배역를 했던 한 탤런트가 동남아에 촬영을 갖다가 감염된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 신문에 실렸다.
그의 사진을 보니 정말 전두환과 매우 흡사했다.
한국에는 김정일 닮았다면서 자주 방송에 소개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유명인을 닮으면 닮은 대상이 설사 악인이라고 해도 삶에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김일성 닮았다고 뽑힌 배우는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연기자로 살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꼭 김일성 일가를 닮아야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역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김윤홍이란 배우가 바로 그런 사례다.
지난달 북한 여배우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다가 한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 그가 바로 박정희 역의 김윤홍이었다.
그는 북한이 최대 걸작으로 자랑하는 다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 제1∼2부, 6∼10부(1992∼1993년)에서 북한 영화사상 처음으로 남쪽의 박정희 대통령 역을 맡아하면서 인기스타로 급부상했다.
그 이전까진 그는 20여년의 연기 생활을 했지만 그냥 묻히는 듯한 배우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외모가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그는 민족과 운명에서 배우로 선택돼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이 역을 위해 그는 이마가 나오도록 언저리(헤어라인)를 올리고 관자노리의 살을 잡아당겨 눈을 매섭게 만들었으며 입의 모양을 바꾸기 위해 주사까지 맞는 등 프로다운 면을 보여줬다.
5.16 쿠데타 직후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아래)과 김윤홍이 연기한 박 전 대통령의 역(위).
또 주사로 인한 신경마비 때문에 대사를 잘 할 수 없게 되자 입안에 틀을 끼어가며 연기하는 등 매 장면마다 배역의 성격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연구하고 연습을 반복하는 등 혼신을 다했다고 조선신보는 전했다.
이 연기로 그는 결국 20여년간의 영화배우 생활에서 별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연에서 일약 어린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 아는 유명배우로 이름을 날리게 됐으며 공훈배우에 이어 인민배우 칭호도 받았다. 북한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김정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김윤홍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1992년 12월 김정일이 자신을 만나자마자 “아이구, 대통령 각하 안녕하셨습니까”라며 유머를 써가면서 반갑게 맞아줬으며 부정인물의 역형상은 우리나라에서 김윤홍이 제일 잘한다고 치하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눈길을 끄는 점은 김 씨의 고향이 일본이라는 점. 1946년 일본 가나가와(神奈川)에서 태어난 김씨는 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4남매를 키우는 어머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고모집에서 살아야 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가 될 꿈을 키워왔던 그는 가나가와조선고급중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 초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들어간 뒤 철도부문 노동자로 일하면서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시험을 치렀다.
비록 이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화학공장에서 노동을 계속하면서 기회를 기다렸고 19세 때 비로소 현재의 촬영소소속 배우양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어 2년만에 첫 작품으로 항일빨치산 여대원을 형상한 극영화 ‘중대의 누나’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이때 연기를 잘못해 당시 촬영소를 현지 지도했던 김정일의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참, 북한이란 나라는 한 배우 조차 김정일의 비판을 받고, 칭찬을 받고 이래야 크는 나라니, 김정일이 이런데 신경 쓰느라 인민생활은 관심이나 두었나 싶다.
재일교포 출신인 김 씨가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발음과 억양다. 재일교포들의 부정확한 발음과 억양은 영화배우에게 치명적인 것이어서 대부분 북송교포들이 음악이나 미술부문 등에서는 크게 성공한데 반해 영화분야에서는 거의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발음을 교정했다고 한다. 그가 얼굴을 많이 알린 것은 1980년 북한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20부작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에서 일본기자 나카무라 역을 맡으면서다. 아마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에 그 역을 잘하지 않았나 싶다.
이때부터 북한에선 그의 이름은 몰라도 나카무라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이 됐다. 물론 지금도 그를 부르는 이름은 나카무라다.
민족과 운명에선 박정희 대통령이 외부에 나가선 막걸리를 마시고, 안에선 여자들과 시바스리갈을 먹고 춤을 추는 장면 등이 나온다.
김윤홍은 민족과 운명에서의 박정희 역을 할 때에는 생활체험이 없는데다가 자료 또한 너무 부족해 굉장히 어려웠다 말했다.
더욱이 북한에서는 오랫동안 만화화한 박정희가 알려졌기에 풍자극도 아니고 엄숙한 정극에서의 박정희의 무게와 카리스마를 살리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의 연기의 압권은 김형욱을 사살하며 김재규의 공포를 자아내는 장면. 박정희는 청와대 밀실에 납치해 데려온 김형욱을 보면서 “미국 국회 청문회에선 계집처럼 잘도 재잘거리더니 왜 말이 없느냐”고 말한다.
김형욱이 노려보며 닥쳐 하고 욕설을 퍼붓자 박정희는 언젠가 술상에서 김형욱이 자신을 향해 읊던 옛 시조를 읊는다.
“이 몸이 죽어죽어 열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북한에서 역사를 거의 가르쳐주지 않다보니 이 시가 정몽주의 시인줄 아는 사람은 북한에 거의 없었다. 영화에서 나간 뒤에야 사람들은 아, 이것이 고려 때 충신이 쓴 시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에선 이 시조를 마침과 동시에 박정희가 홱 돌아서서 권총을 뽑아들고 김형욱을 쏜다. 김형욱이 쓰러지자 바닥의 장치가 열리면서 주검이 어둠나락으로 떨어진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김재규와 북한이 만든 가상의 여주인공이자 박정희의 애첩인 홍영자(인민배우 오미란 역)는 공포에 질린다. 허나 박정희는 태연하다.
박정희 역으로 김정일에게서 ‘대통령 각하’라는 별칭까지 얻은 김윤홍은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되고, 인민배우를 거쳐 국회의원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오르기도 했다.
가족은 무용수 출신의 아내와 두 딸을 두고 있으며 현재는 배우에서 벗어나 연출가로 활동 영역을 넓힌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