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36·전남 코치)과 차두리(24·프랑크푸르트)에게 갑신년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들은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 중에서 단 둘뿐인 원숭이띠다. 이들은 원숭이의 해인 새해에 각자의 꿈을 향해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다. 황선홍은 잉글랜드에서 체계적인 감독수업을 밟으면서 지도자의 꿈을 키울 계획이고,독일 진출 2년차인 차두리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차붐 신화’를 이루겠다는 포부다.
황선홍과 차두리는 지난 12월30일 서울 강남의 포스코 빌딩에서 단 둘이 만나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를 설계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80년 여름… 독일의 차두리,한국의 황선홍
24년 전,차두리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황선홍은 한국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80년 7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지역지들은 일제히 차두리의 출생을 대서특필했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오쿠데라(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독일에 진출한 차범근은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었고,이런 차범근이 독일에서 첫아들을 낳은 소식은 단연 화제의 뉴스였다. 당시 신문들은 ‘제2의 차붐이 태어났다’는 제목으로 차두리의 출생 소식을 전했고,후일 아버지에 버금가는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지금 출생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 뛰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독일 언론의 예측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해 황선홍은 축구계에 입문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황선홍은 경기도 구리 양정초 축구부에서 처음 공을 찼다. 또한 그해 여름 서울 숭곡초등학교의 이종수 코치에게 스카우트돼 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황선홍의 우상은 단연 차범근이었다. 황선홍은 새벽마다 TV를 통해 독일에서 활약 중인 차범근의 플레이를 눈에 익혔고,연습 때면 빠짐없이 차범근의 몸놀림을 따라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TV를 봤죠. 그때마다 나도 차범근 같은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곤 했어요.” 11년 후 황선홍은 자신의 다짐대로 독일에 진출했다.
▲92년 가을… 한국의 차두리,독일의 황선홍
12년 전,차두리는 한국에서 꿈을 키운 반면 황선홍은 독일에서 첫 시련을 경험했다.
차두리는 당시 울산 감독이었던 차범근씨와 함께 울산에서 살았다. 집이 선수단 숙소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방과 후엔 어김없이 축구장을 찾아 아버지와 선수들을 만났다. 차두리는 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없었던 탓에 축구를 하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당시 차두리는 어렴풋이 아버지가 황선홍 얘기를 건넨 것을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선홍이 형 얘기를 처음 하셨죠. 황선홍이라는 좋은 선수가 있는데 독일에 진출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차범근을 가장 존경했던 황선홍은 후일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가 가장 좋아하는 ‘우상’이 됐다.
하지만 정작 황선홍은 그해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겪었다. 91년 여름 레버쿠젠 아마추어 팀에 진출한 황선홍은 92년 여름 분데스리가 2부리그 부퍼탈로 적을 옮겨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황선홍은 부퍼탈 이적 후 5경기에서 3골3도움을 몰아쳤지만 8월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6개월의 재활 끝에 어렵게 복귀했지만 2경기 만에 부상이 재발해 결국 ‘저먼 드림’을 포기해야 했다. “독일에서 경험한 차범근 선배의 유명세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어디를 가나 비교가 됐죠. 한마디로 넘을 수 없는 큰 산이었어요.” 황선홍은 당시 매일 스테이크만 먹는 등 ‘차범근식 생활법’을 그대로 따라했단다.
▲2004년 벽두… 독일의 차두리,영국의 황선홍
2004년,차두리와 황선홍은 나란히 ‘제2의 출발선상’에 섰다. 차두리는 데뷔골을 터뜨리며 제2의 ‘차붐 신화’에 시동을 걸 참이고 현역을 떠난 황선홍은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에 들어간다.
차두리는 독일생활 2년차에 접어들면서 자신감이 한껏 붙었다. 프랑크푸르트로 옮긴 후 상반기에 2경기에 교체출전한 것을 제외하곤 모두 선발로 출전해 70분 이상을 소화했다. 이만 하면 주전 입지를 굳힌 격이다. 차두리의 새해 목표는 전 경기에 출전하는 것과 데뷔골을 터뜨리는 것이다. “선홍이형이 월드컵 때 조언해 준 게 있어요. 나는 발이 빠르니까 공을 세워 놓지 말라는 것이었죠. 독일에 와보니 선홍이형 말이 딱 맞더라고요. 이젠 골을 넣어야죠.” 빠른 발을 활용해 상대 문전을 휘젓는 플레이가 상당히 위력적이라는 게 차두리의 경기모습을 지켜본 황선홍의 평가다. 하지만 차두리는 황선홍의 타고난 골감각이 한없이 부럽단다.
황선홍은 잉글랜드 셰필드에서 지도자 수업 중이다. 전남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황선홍은 지난해 말 굳이 영국행을 택했다. 황선홍은 당장 국내에서 편하게 지도자로 전업할 수도 있었지만 결코 지름길로 향하지 않았다. 황선홍은 오전에 셰필드 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에서 훈련법을 공부하고 오후엔 인근학교에서 영어공부를 한다. 매일 영어 숙제를 하느라 밤잠을 설칠 정도. “늦깎이 공부라 어렵네요. 하지만 앞으로 1∼2년은 유럽의 선진축구를 익히는 데 전력할 겁니다. 철저히 준비해야죠.” 황선홍은 올가을까지 영국에서 수학한 후 이후에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으로 건너가 히딩크 감독의 지도법을 전수받을 예정이다.
▲그렇다면 2016년에는…
12년 후,차두리와 황선홍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분명한 것은 둘 모두 결코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차두리는 36세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갈 참이다. 공격수의 수명이 수비수에 비해 짧다는 게 단점이지만 그래도 자신있는 표정이다. 체력만큼은 타고났다고 자부하는 만큼 향후 몸관리를 잘 한다면 충분히 30대 중반까지 선수로 뛸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마음 같아선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요. 후일 지도자가 되지 않더라도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선 언어공부는 해둬야 하잖아요.”
황선홍은 국가대표팀 감독을 꿈꾸고 있다. 지난 23년간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뼈가 굵은 탓에 ‘현장’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공부와 경험을 반복하면서 감독 경력을 쌓아 12년 후에는 정상급 지도자로 우뚝 서고 싶단다. “때로는 패배가 죽음보다 무섭기도 했어요. 하지만 반대로 승리의 감동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죠. 여전히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걸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