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yilbo.com/sub_read.html?uid=336950§ion=sc30§ion2=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유튜브를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그 유튜브는 짧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60년대에서 70년대에 국민 어머니로 활약했던 황정순 배우는 늘그막에 요양원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의붓아들은 어머니를 잘 돌보지도 않고 요양원에 방문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정순 배우님은 그런 아들에게 유산을 물려줄 수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 100억대나 되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니 아들은 얼마나 화가 나고 상처를 받았을지 이해는 갑니다만 그는 곧장 소송을 냈다고 합니다. 이 영상을 보고 나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양심이 있었다면 어찌 소송을 냈겠는가? 부끄러워서라도 그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 몇 명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들어보았는데 양심상 소송을 할 수는 없지만 요즘 세태로는 소송을 할 거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면 승소할까 안 할까를 물어봤더니 아마도 패소할 거 같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렇다, 법은 불효자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부모님께 효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등바등 번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해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민족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사고방식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지만 자식은 부모의 그런 마음을 반도 알아주지 않는다. 부모가 가진 것이 없으면 마치 스스로 자란 것처럼 부모를 무시하고 독립해 나가면 부모님께 전화도 하지 않고 소식을 끊는 자식들이 있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부모님께 살갑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부모가 한마디 하면 열 마디 백 마디 하며 부모를 구타하고 막말을 하는 자식들도 허다하다. 참, 이런 소식은 듣고 싶지 않은 소식 중 하나다. 그렇다고 모든 자식이 다 이런 것은 아니고 너무나 기특하고 효성스러운 자식들도 많이 있으니 이런 자식들을 본보기 삼아 자녀 교육에 더욱 힘을 써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하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효에 대한 한자 성어나 문헌들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목으로 선정한 반포보은도 반포지효와 함께 효의 대명사로 쓰인다. 먹이를 돌려드림으로써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새는 어릴 때는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고 자라는데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는 효심에 비유되는 새가 되었다. 우리는 이런 까마귀만도 못한 삶을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가객 歌客 박효관이 지은 시조 한 수를 적어 봅니다.
뉘라서 까마귀가 검고 흉 타 하 돋던고.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또 한 예로 풍수지탄 風樹之歎을 들어보기로 한다. 나무는 고요하여지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할 때는 이미 부모는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부모님은 떠나고 안 계시는데.
송나라의 유학자 주자 朱子가 쓴 주자십회 朱子十悔에도 불효부모사후회 不孝父母死後悔란 말이 첫 번째로 나온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는 뜻이다. 위의 풍수지탄과 상통하는 말이다.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잘 모시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전에 나는 중고등 학교에 인성교육 강의를 하러 다녔다. 그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가물치의 생에 관한 것이다. 가물치는 수천 개의 알을 낳고 바로 실명하게 되는데 실명한 어미 가물치는 먹이를 찾을 수 없어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데 그때쯤이면 알에서 부화 된 수 천마리의 새끼들이 어미가 굶어 죽지 않도록 한 마리씩 어미 입으로 들어가 굶주린 배를 채워주며 어미의 생명을 연장해 줍니다. 새끼들의 희생으로 어미가 다시 눈을 뜰 때쯤이면 새끼들은 10%로도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가물치를 효자 물고기라 부르기도 합니다.
요즘은 자녀를 교육하면서 회초리를 들지 못 하게 한다. 김혜자 배우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말로 해서 교육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옛날 서당에서도 회초리를 들었고 학교에서도 사랑의 매를 들었다. 그러나 사랑의 매를 빙자한 감정의 매를 들게 되다 보니 매를 들지 못 하게 한다. 매를 잘못 들었다가는 법정 싸움까지 가게 되니 교육은 점점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효는 매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고 배워서 익히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의 인성교육에 힘쓰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제멋대로 성장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게 되고 결국 교육은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만다.
아무리 혼자 사는 세상이 되어 간다고 하지만, 그리고 요즘 어른들이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해 가고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는 하고 살아가는 자녀를 기르는데 부모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