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일본 사회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연쇄 테러 사건에 충격에 휩싸입니다.
1974년 8월 30일 미쓰비시 중공업 빌딩폭파
=8명 사망, 385명 중경상.
1974년 10월 14일 : 미쓰이 물산 본사 사옥 폭파
=17명 중경상
1974년 11월 25일 테이진 중앙 연구소 폭파 사건
1974년 12월 10일 타이세이 건설 본사 폭파
=9명이 중경상.
1974년 12월 23일 가시마건설 폭파사건
1975년 2월 28일 하자마 본사건물과 오미야공장 폭파
= 5명 중상.
1975년 4월 19일 오리엔탈메탈 한국 산업 경제 연구소 폭파
1975년 4월 28일 하자마 에도가와 작업소 폭파사건
=1명 중상.
1975년 5월 4일 = 하자마 철교 공사장 폭파사건
이 일련의 연쇄 테러의 공통점은, 그 대상 기업이 일본의 제국주의 시절, 침략전쟁에 가담한 기업들 즉 "전범기업"들이었습니다.
이 "전범기업"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감행한 자들의 정체는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East Asia Anti-Japan Armed Front)" 이들은 일본을 테러하기 위해 모인, 일본인으로 이루어진 단체였습니다.
이들은 왜 스스로 자국을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했는가?
현재의 일본과 달리, 1960년대의 일본은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안보투쟁과 전공투를 거치며 일본 학생운동은 과격한 반정부시위의 열기 속에 있었고 그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성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시대상속에서, 훗날 이 단체의 리더격인 "다이도지 마사시"는 호세이대학 재학 중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에 영향을 미친 과오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회를 설립하였고 이들은 현재의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시절 범한 한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가한 악행을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건재한 것에 실망하여 일본인 스스로를 일본 제국주의자의 후손으로 규정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 경제 중심부를 부수기 위해 그 핵심인 전범기업에 대한 공격을 함으로써 "일제 타도 투쟁"을 해야 함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1974년,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를 공격하기로 마음먹고 미쓰비시 중공업빌딩을 폭파하여 3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약 1년 간 여러 번의 연달은 테러를 감행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천황을 테러 대상으로 했지만 미수로 끝낸 테러도 존재합니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던 미쓰비시 중공업 폭파 사건 이후에 나온 범행 성명에서 그들은 "폭사하거나 부상당한 자는 모두 일본 제국주의와 관련 없는 일반 시민이 아니다. 그들도 결국 모두 일제 식민지배의 가해자."라는 논리로 "폭파 작전" 을 정당화했습니다.
이들은 늑대부대, 대지의엄니부대, 전갈부대 세 가지 서로 다른 성향의 부대가 각기 테러를 감행하였는데 그들 사이에 엄격한 위계질서나 강령, 통솔력이 없었으며 개인적 이탈도 자유로웠다고 합니다. 또한 주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평소 운동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낮에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일하며 스스로 모은 급여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일련의 테러 행위가 자행되면서 그들은 결국 체포되었고 구성원들은 징역형을 받고 출소하거나 몇몇은 여전히 구금 중이며, 자살하거나, 여전히 지명수배 중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직의 리더격인 다이도지 마사시는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17년 지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옥중수기에서 그는 자신들의 당시 사상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국과 필리핀에서 일본의 원조를 받은 군사 독재정권이 국민을 탄압하고 있고 베트남 인민들이 미군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그것을 '알 바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일본 국민에 대해 절망했기에 우리를 포함해 일본 국민은 생명에 대해 경시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역시 일본 국민의 일원이며 일본인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그들과 함께 걸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기본적인 것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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