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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t_6UfH-OR18?si=Ye25NeOkMnm_zTux
지혜를 가르치는 아버지 4:1~3
1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2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3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사랑하는 여인처럼 대할 지혜 4:4~9
4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5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6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9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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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지혜를 버리지 말고 사랑하면 지혜가 우리를 보호하고 지킬 것입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어야 하고, 모든 것을 드려서라도 명철을 얻어야 합니다. 지혜를 높이면 지혜가 우리를 높이고, 지혜를 품으면 지혜가 우리를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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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가르치는 아버지 4:1~3
하나님의 지혜는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의 대표인 아버지가 아들(자녀)에게 전해야 합니다(1~2절). 자신이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배운 지혜를, 아버지가 된 후에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3절). 부모는 자신이 먼저 말씀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고, 그것을 자녀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 6:6~7). 부모는 세상 것을 강요하고 남과 비교함으로 자녀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교훈으로 교육해 자녀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도록 인도해야 합니다(엡 6:4). 부모가 자녀에게 남길 가장 소중한 유산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본문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과거의 자기 모습을 어떻게 소개했나요?
자녀(다음 세대)와 신앙에 대해 자유롭게 나누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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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처럼 대할 지혜 4:4~9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 아버지의 가르침을 전합니다(4절). 가르침의 핵심은 가장 중요한 지혜를 얻으면 그것이 삶을 지켜 주고 영화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이토록 소중하기에 그것을 사랑하는 여인으로 의인화해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지혜를 사랑하고 버리지 말아라. 지혜를 높이고 안으라. 그러면 지혜가 너를 보호하고 높이며,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주리라”(6, 8~9절 참조). 부모가 떠나도 부모가 가르친 하나님의 지혜는 자녀에게 남습니다. 그 지혜가 자녀를 신실하고 영광스러운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때가 되면 그들도 부모에게 배운 지혜를 자녀에게 가르칠 것입니다. 가정의 신앙 유산은 이렇듯 아름다운 지혜의 선순환을 이어 가게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지혜를 사랑하는 여인처럼 대할 때 어떤 유익을 얻게 되나요?
내가 지금 자녀(다음 세대)에게 가르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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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흘러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일꾼인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았습니다(딤후 3:15). 우리 자녀들도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면서 자라 가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술·도박·폭력 등을 가까이하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으면 방황하던 세상에서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어려서부터 믿음 안에서 자라 가야 합니다. 그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부모인 우리가 하나님 말씀과 교훈으로 훈계하며 사랑으로 키워야 합니다. 디모데에게는 믿음의 외조모인 로이스와 믿음의 어머니인 유니게가 있었습니다. 믿음은 흘러가야 합니다.
오늘날 다음 세대의 모습을 보면 위기를 느낍니다. 통계를 보면, 어린이와 청소년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행복 지수가 OECD 국가 중 하위권입니다. 가장 많은 갈등을 느끼는 곳이 가정이고, 가장 많은 갈등을 겪는 대상이 부모라고 합니다. 우리 자녀가 한국 교회의 미래고,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입니다. 자녀를 우리 뜻대로 키우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럴 때 자녀가 하나님 안에서 참복을 누리며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자 첫걸음 / 황덕영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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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잠언 4장 6절
지혜는 버리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혜는 '예수님', '예수님 말씀'등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물질이 자신을 지켜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것을 자기 삶에 채움으로 삶의 안정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성공과 물질은 인생을 사는 데 편리함은 줄지언정, 하나님 백성을 지켜 주지는 못합니다. 모든 죄와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고 지켜 주는 힘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진리로 다스리시는 건강한 가정에는 적절한 훈계와 사랑이 공존한다. - 이동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자녀에게 말씀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일이 너무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는 사명임을 고백합니다. 세상 가치를 종용하지 않고, 먼저 깨달은 하나님의 지혜를 삶으로 가르치게 하소서. 모든 것이 사라져도 영원하신 하나님 말씀에 붙들린 인생으로 남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80 나의 생명 되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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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를 자녀들에게 바르게 가르치고, 그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소중히 여기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고, 부어 주실 은혜를 기대하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면서 풍성하고 윤택한 삶,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가 늘어가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실 것을 기대하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고, 명철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지혜가 넘치고, 명철이 풍성해 질 때 우리를 높여 주시고, 존귀하게 해 줄 것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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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로, 지혜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혜를 얻으면 살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므로, 지혜가 삶의 원리일뿐만 아니라 인생의 영화로음을 결정하는 요소임을 웅변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세대를 잇는 지혜교육, 가슴에 품어야 할 지혜, 으뜸되는 지혜, 구하고 사랑해야 할 지혜 등입니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 나도 한때는 외아들로서 부모의 사랑을 받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개인적인 고백으로, 아들과 같은 상황을 경험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청중의 공감을 일으키려는 의도로 사용된 회고적 메시지입니다. 특히 ‘유약한 외아들’이라는 묘사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깊은 애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다음에 제시되는 교훈이 자식을 뜨겁게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세대와 세대를 잇는 지혜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어필한 말입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 그때 나의 아버지는 이런 말씀으로 나를 교훈하셨는데, '내가 하는 말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라. 내 명령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이라는 표현은 이후에 가르침의 출처가 아들의 할아버지이며,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간다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두라’, ‘지키라’, 살리라‘라는 3개의 명령형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여기서 ’두라‘라는 말은 ’단단히 지키다‘, ’고수하다‘라는 동사의 미완료형으로, 그런 상태나 자세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일 회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평생에 행할 것으로, 이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간절한 바람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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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 ’지혜는 가장 소중한 것이니 지혜를 얻어라 그 어떤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명철을 얻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지혜와 명철은 같은 의미로 지혜를 강조하는바, 너의 모든 소유로 그것들을 얻으라는 촉구입니다. ’네가 얻은 것‘은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한 자금‘으로 평생 모은 재화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그것들을 몽땅 지급해서라도 지혜를 획득하라는 간절한 권고입니다. 왜냐하면, 지혜야말로 투자가치가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을 있게도 하고, 잃은 것을 얻을 뿐만 아니라, 위기 시에도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 힘과 정성을 다하여 지혜를 얻으라는 교훈입니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투자할 만한 귀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 물질입니다. 그러나 일단 얻어진 지혜는 그 사람이 죽지 않는 한, 어디서나 어떤 때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 곁을 떠나지 않으니, 내면에 인격화되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본문은 다음 말로 그것을 입증합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 지혜를 의인화하여, 그는 그의 가치를 알고 높이는자를 높이고, 그를 소중히 품는 자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입니다.
지혜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의인화된 자리에 하나님을 대입하면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합니다. ’하나님을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하나님을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믿는 자에게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관할이 아니라, 그분의 소관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찾으려는 그 상인의 심정으로 여호와를 찾고 찾으며, 사모하며 사모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그 답을 이미 주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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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전공선택의 90%가 부모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전공선택뿐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들의 세계관과 삶의 태도도 90%가 부모의 영향입니다
따라서 모든 자녀들의 문제는 사회나 학교 때문이 아니라 부모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잘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6:6~7)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4:9)
다윗은 그렇게 했고, 그래서 솔로몬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잠4:4)
그래서 솔로몬도 그렇게 했습니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잠4:1~3)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세상은 자녀들에게 돈이 제일이니 돈을 가지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일등하라, 경쟁해서 이기라, 이기기 위해서 아무도 믿지 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다윗은 가르쳤습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잠4:7)
그러므로 자녀들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잠4:5~6)
그러므로 또한 모세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그리하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영화로운 면류관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잠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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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하니’
우리는 삶 가운데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들을 분별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걸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순위에서 벗어난 것을 먼저 행하면 금방 질서가 무너지고 그 누르는 무게로 말미암아 더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말 꼭 만나야 하고 해야 하는 일을 놓치지 않는다면 삶 가운데 나머지 부분들은 결국 채워지고 해결될 것들 것들입니다.
오늘 잠언 기자는 아버지의 심령으로 자녀에게 자신이 살아낸 삶을 걸고 지혜와 깨달음을 붙들고 얻을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담배를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중독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그 담배를 통해 고민하고 빡빡한 일상을 피하여 나름대로의 휴식을 얻게 하는 그 인격적 동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몸을 해롭게 할 것인 줄 알면서도 당장의 놓아줄 수 없을 만큼의 위로와 이득이 있다고 여기기 해주는 영적 결합이 있으므로 끊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얻어내로 지켜내야 지혜와 깨달음에 대하여 마치 그러한 인격적 존재와 같이 비유하며 오히려 지혜를 존귀히 여기고 놓치지 않는 이들이 삶의 참 평강과 영광을 맛보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를 붙듦으로 보이는 것들이 이루어 낼 수 없는 가치를 얻는 것처럼, 세상의 존귀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늘의 보화를 바라보며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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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얻으라(1-9)
아버지는 그의 아들들에게 아비의 훈계를 듣고 그것을 떠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그 또한 이 훈계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들었었습니다. 훈계의 핵심은 지혜를 사랑하고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마치 결혼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곧 아버지는 젊은 아들에게 지혜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얻어 평생 그녀를 사랑하며 높이고 품으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만일 젊은 아들이 지혜 여인을 얻어 그녀를 사랑하고 높인다면, 그녀는 그를 더욱 높이고 영화롭게 하며 나아가 그의 머리에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워줄 것입니다.
젊은 남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생을 함께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 결혼관계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져 갈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처럼 중요한 결혼 관계로 우리와 지혜와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지혜를 만나 그녀를 얻고, 평생토록 그녀만을 높이며 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으려는 노력에서 지혜는 시작됩니다.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이 지혜를 얻으려고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혜가 단연코 제일이요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이요, 그의 뜻과 목적이며 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 또한 지혜입니다. 나는 모든 삶과 일에서 이러한 지혜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 지혜를 얻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습니까?
10월6일 인천대공원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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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4장.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마음을 지키라.
1. 본문은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듯이 교훈하고 있습니다(1~9). 누구라도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맞으면 그녀가 남편을 영화롭게 하듯이, 아들이 지혜를 얻게 되면 그 지혜가 아들의 인생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31:10~31). 인생에서 어떤 배우자를 만나는가가 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면, 한 인생이 지혜를 얻는가 못 얻는가에 따라서, 그 인생의 영광과 멸망이 결정되는 것과 같습니다.
2. 문제는 인생의 어느 길로 행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정직한 길(삶의 방식)로 인도하지만(11) 악인의 길은 사악한 자의 길입니다(14). 지혜를 얻게 되면 지혜가 모든 삶의 자리에서 어느 길로 행해야 할지를 알려줄 것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자의 길로 다니는 자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는 자들입니다(16). 그들의 양식은 불의와 강포입니다(17). 하지만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처럼 점점 빛나서 한낮의 광명에 이르게 되는 길입니다(18).
3. 그러므로 지혜를 얻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혜로 마음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23). 23절에서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은, 생명을 결정하는 모든 판단과 결정이 다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귀는 지혜에 기울이고, 눈은 지혜를 주목하고, 입에서는 구부러진 말이나 비뚤어진 말(거짓)을 버리고, 발에서도 악이 떠나게 할 뿐 아니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른 길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24-27절). 지혜자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또한 그 마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 삶의 행동은 어떻습니까? 더욱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매순간 흔들리는 저희의 마음을 붙잡아 주옵소서. 세상의 것에 자꾸 흔들리는 저희의 마음을 지켜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지혜와 복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정직한 자의 길로 다니게 하옵소서. 오늘도 지혜로운 입과 눈과 귀와 발과 손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어떠한 삶을 추구하는 삶이어야 합니까?
➲ 말씀을 마음에 두고 지키는 삶이어야 합니다(1~4절).
오늘 본문의 저자 역시 부모로부터 받은 훈계와 명철을 반복하여 아들들을 향하여 삶의 원리인 지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를 주의하라...’ 그리고 ‘...선한 도리를...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1~2절)고 말합니다.
‘떠나다’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좇는 배교의 행위입니다. 정직한 길을 버리고 인자와 진리를 버리는 어리석은 자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의 길을 가지만, 훈계를 버리는 자는 사망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의 증거가 훈계였음을 말하고 있는(3절)
저자는 그 훈계를 이제는 아들들에게 전해 주고자 합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4절).. ‘마음에 두다’는 지혜의 훈계를 마음에 붙잡아 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훈계를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자나 깨나 그 의미를 새기고 묵상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하면... 살리라..’ 지혜의 훈계를 마음에 두고, 지킴으로 생명을 유지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지혜의 훈계는 내 자신을 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여러 번의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못한 채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과 지혜가 다음 세대에까지 전달되도록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각각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여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지혜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을 지켜 하나님의 지혜를 떠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된 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지키는 삶이 영원한 가치를 붙잡는 것임을 깨닫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지혜의 가치를 알고 붙잡는 삶이어야 합니다(5~6절).
지혜에 대한 찬미가 소개됩니다.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5절).. 지혜에 대한 가치를 알고 깨달았다면 다른 소중한 것을 내어 주어서라도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다른 모든 것보다 훨씬 더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버리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너를 보호하시고, 그가 너를 지키시기 때문...’(6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고 다시 숨겨 놓았다가 보화를 얻고자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들입니다(마 13:44).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세상의 것들을 당당하게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치 없는 것 때문에 가장 가치 있는 지혜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지혜의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값으로 측량될 수도 없습니다.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존귀하고 귀하기에 돈으로 측량할 수 없고, 돈으로 매매될 수도 없습니다. 이 지혜를 하나님은 나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값지지 않아서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값비싸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가치 없는 내 자신에게 하나님은 지혜를 주심으로 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가치를 알고, 그 지혜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한 삶이 영원한 가치를 붙잡는 삶입니다.
➲ 지혜를 제일로 삼고 높이는 삶이어야 합니다(7~9절).
지혜가 제일 즉 으뜸이요, 최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지혜를 얻고, 명철을 얻어라(7절)고 명령합니다. 이는 지혜와 명철이 세상의 재물과 비교될 수 없으며 그 어떤 소유물보다도 더 귀한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재물은 육신의 안식을 가져다 주지만 지혜와 명철은 영적인 안식을 영원히 보장해 주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어서라도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여 줄 것이고,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8절)해 줄 것입니다. ‘품다’는 애정 표현으로 포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를 껴안는다는 것은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애정을 표현한다면 지혜는 그를 높여 영화롭게 함으로써 그 이상으로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9절)는 것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에 대한 보상이 ‘아름다운 관과 영화로운 면류관’입니다.
평상시에 내 자신이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말씀보다 우선순위에 자리하고 있다면, 자칫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무엇보다 내 인생에 최고로 삼고, 언제나 내 앞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나를 앞서 가시고,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에 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내 자신의 삶을 영화롭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길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생각만을 고집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아무쪼록 현재 내가 가는 길이 내가 계산한 것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제일로 삼고, 말씀이 보여주시는 길을 걸어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끝까지 놓치지 않을 때, 나중의 영광이 더욱 빛나게 될 것이고, 영광스러운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혜를 제일로 삼고, 높이는 삶이 영원한 가치를 붙잡는 삶입니다.
오늘도 내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지혜를 적극적으로 사모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크신 축복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진리의 말씀을 붙잡으므로 영원한 가치와 영광의 면류관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잠 4:1~9절)
아비의 훈계 1~2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아들들에게 부탁합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썼지만 꼭 자기의 아들들에게 국한시킨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아들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탁하는 말입니다.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고 합니다.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스승입니다.
사실 맨 처음 스승입니다.
아버지가 중요합니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합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그 아버지가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전달해야 합니다.
가정은 그래서 너무나도 중요한 장소입니다.
가정에서 바른 신앙을 교육해야 합니다.
생명을 얻는 교육입니다.
전수받은 교훈 3~4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솔로몬도 결국 가정에서 배웠습니다.
부모에게서 배웠습니다.
어머니의 보기에 유약한 자였다고 고백합니다.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가르치시기를 아버지의 말을 맘에 두고 그 명령을 지키라 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지혜의 말씀입니다.
그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 것이라는 겁니다.
자녀에게 어떤 길이 생명의 길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지혜를 사랑하라 5~7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또다시 강조합니다.
지혜와 명철을 얻으라고 합니다.
잠언에 들어와서 계속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절대 잊지도 말고 어기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버리지도 말고 사랑하라 합니다.
그것이 보호하고 지킬 것이라 합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합니다.
가진 것 모든 것을 가지고라도 명철을 얻으라 합니다.
지혜는 내가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분별하게 해 줍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과 바꿔서라도 얻어야 할 것이 지혜와 명철입니다.
지혜를 품으라 8~9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지혜를 높이면 나를 높이고 그를 품으면 영화롭게 한다 합니다.
아름다운 관을 머리에 씌우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준다 합니다.
지혜를 높인다는 것은 지혜를 추구하는 삶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높이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다시 나를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주시는 교훈과 다짐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의 행실은 따르지 못하면서 가르치려 한다면 누가 그 말을 듣고 따를까요.
세상의 헛된 것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겨우내 죽은 것 같은 언 땅에서 다시 새싹이 나고 꽃이 피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나의 삶에서도 이와 같이 꽃을 피우는 생명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지혜를 따르기 원합니다.
먼저 본을 보이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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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입니까, 자녀입니까?
본문: 잠 4:1-9
아비입니까? 아니면 자녀입니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나의 신앙은 어버이의 신앙생활입니까? 아니면 응석받이 자녀의 모습입니까? 이 질문에 주저없이 '자녀'라고 대답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말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자녀로 남아 있다면 이제 우리는 아비가 되어야 합니다.
여전히 아비가 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슬퍼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아비의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와 상관없이 사는 자녀입니까?
아비가 되어야 합니다
"지녀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1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금 신앙이 자녀들의 신앙인지 아비의 신앙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자녀의 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안 됩니다. 초신자들에게는 자녀인 것이 당연하고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신앙생활을 오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녀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픔입니다.
아비와 자녀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는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완전 봉입니다. 자기들은 하고 싶으대로 하면서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 다 희생하는 사람들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요구합니다. 자녀는 아무리 잘해도 부모의 마음을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자녀와 부모의 차이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바로 이런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는 부모와 같은 신앙인이 있고 자녀와 같은 신앙인이 있습니다.
부모와 같은 신앙인은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막에 갖다 놓아도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기쁨으로 알고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신앙만이 아니라 남의 신앙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섬기는 사람입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자녀적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홀로 서지 못합니다. 의존해야 합니다. 마음이 쉽게 변합니다. 기복이 심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너무 어립니다. 물가에 내 놓은 아이 같습니다. 섬김을 받아야 하고 책임감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앙인입니까?
문제는 자녀와 같은 신앙인이 그곳에 너무 머물러 있는 경우입니다. 항상 자녀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속 머물러 있으려 합니다. 그곳이 좋은지 압니다. 자녀적 신앙인은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니 편합니다. 부모적 신앙인은 섬겨야 합니다. 책임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섬기지 않고 책임이 없는 자녀적 신앙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신앙을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은 섬기는 것이 복되다는 것을 압니다. 책임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편하게 신앙생활하는 것 곧 책임없이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은 어리석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자녀적 신앙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이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입니다.
처음부터 지혜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음이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3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 어린아이었습니다. 장년인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린아이를 거쳐 장년이 된 것입니다. 장년이 된 사람은 진리에 마음을 쏟고 들으며 주의를 기울여 지혜를 배운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여전히 유아적 신앙인 자녀의 신앙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여전히 유약한 아들의 마음이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몇십년 교회를 다녔어도 유아적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몇 년을 다녔어도 성숙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신앙에 있어 유아적 모습을 과감히 벗어야 합니다. 유아적 모습은 어쩌면 편안함을 줄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 있을 때 얼마나 편안합니까? 그러나 그 속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합니다. 유아적 모습을 벗고 성인의 모습으로 나가야합니다.
아비와 같은 신앙인이 귀합니다. 우리는 지혜를 따라 살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8절)라는 말씀처럼 영화롭게 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기왕에 무엇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합니다. 그것처럼 신앙생활이야말로 하려면 제대로 해야합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사모하는사람으로 제대로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섬김을 받고 있습니까? 섬기고 있습니까? 책임감없이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책임감을 느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신앙생활이 아비의 모습인지 자녀의 모습인지를 분별하는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의 위치를 판단해보십시오. 그리고 빨리 이제 아비의 신앙인이 되십시오. 할 일 많은 이 땅에 살면서 여전히 소비적 유아적 자녀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 말고 가슴이 뜨거운 주님의 동역자가 되어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사십시오. 그것이 참으로 당신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복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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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눈에 가리는 세상의 지식과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을 따라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복된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믿음의 집을 짓고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않으시는
그 은혜와 사랑을 의지하여
넉넉히 이기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사
위로하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더 존귀히 여기고 지금까지 부어주신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 인생의 길과, 삶의 진리와 존재의 생명이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