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4. 10. 21. 월요일.
날씨는 다소 흐렸고, 기온이 낮아서 섬뜩하게 추웠다.
올가을 들어와 처음으로 두툼한 겹옷 상의를 껴입고는 바깥으로 나가서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한 바퀴를 돌았다.
아내와 함께 2,565m의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호수 수변의 키 큰 나무들(느티나무, 왕벚나무, 프라타나스 등)의 가지 끝에 있는 잎사귀가 누렇게 물들어 가고 있었고, 산책로에 떨어진 낙엽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으깨어져 부서지고 있었다.
2.
밤중에 인터넷으로 '한글'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이틀 전 토요일(10. 19.)에는 둘째 사위가 안내하는 '과천추사박물관'을 방문했다.
*경기도 과천시추사로 78 (주암동)에 소재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붓으로 쓴 서예(사본 사진) 이미지 사진은 무척이나 많았으나 한자 투성이었고, 한글로 쓴 서예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껏 추사 김정희를 실학파(實學派)라고 학교에서 배웠기에 그의 서예 가운데 한글로 쓴 서예가 더러는 있을 것으로 짐작했으나 실상은 전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다시 방문해서 한글로 서예가 있는지를 더 검색해야겠다.
조선조 제4대 세종이 1443년에 창제하고, 1446년에 세상에 반포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조선조 사람들이 제대로 활용하여 발전시켰을까?
내 느낌은 사대부(士大夫) 양반계급은 훈민정음을 천대하여 무시했다는 느낌이다.
* 사대부 : 예전에 벼슬이나 문벌이 높은 집안의 사람을 이르던 말.
‘왕족, 양반층(兩班層)’을 일반 평민층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아래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일부를 올린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일반 백성이 쓰도록 하였으나 문화를 주도하는 조선의 사대부 계층이 오랜 한자, 한문 생활에 젖어 한글 쓰기를 거부했다. 특히나 연산군(燕山君) 때의 한글 탄압 이후로 한글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자로 전락하였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언문, 반절, 가갸글' 등으로 불러오던 훈민정음을 1910년대에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한국어 연구가들이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된 것이다.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곧 오늘의 한글학회가 음력 9월 29일(양력으로 11월 4일)을 가갸날이라 하고, 그날 서울 식도원(食道園)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 시초이다. 이 해는 한글이 반포된 지480년이 되던 해였다.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은 『세종실록(世宗實錄)』 28년(1446) 9월 초의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 (是月訓民正音成).”라고 한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며, 이름을 가갸날이라 한 것은 그때 아직 한글이라는 말이 보편화하지 않았고, 한글을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는 식으로 배울 때였기 때문이다.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것은 1926년 일제 강점기였다.
1926년에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이며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되었다.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되었으며 2006년 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나는 1949. 1월 말에 태어났다.
호적신고가 늦어져서 1년 뒤 늦게서야 시골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1956년 봄부터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또 중국 문자인 한글도 배우기 시작했다.
2024년인 지금껏 나는 한글로 쓴 책과 신문 등을 읽으며, 날마다 한글로 일기와 잡글을 쓴다. 우리말과 한글로 된 용어에는 어느 정도껏 알겠으나 중국 문자인 한문으로 쓴 글, 중국 문자인 한자를 한글로 음역했다고 해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 문자인 한자를 한글로 음역(音域])했기에 눈으로는 읽으나 그게 무슨 뜻인지를 때때로 모를 때가 있다.
내가 학교에서 한글을 배운 지가 69년째인데도 때로는 한자말로 음역한 문구는 문자해독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중국 한자말이 많이 들어있는 문장. 어려운 한자로 쓴 문장(글, 서예 등)가 문제이다.
추사 김정희 서예전에서도 온통 그랬다. 추사가 붓으로 괴이하게 쓴 한자 서예에 대해서 나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추사를 존경하고픈 생각이 싹 가셨다. 내가 읽지도 못하고, 해석도 안 되는 중국문자 한자 투성이, 붓으로 갈겨 쓴 서예가 무슨 가치가 있으랴. 나한테는 문자가 아닌 그냥 그림이었다.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
용서해 주실 게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
결언한다.
중국 한자말을 덜 썼으면 싶다. 그냥 우리말을 우리 한글로 술술 풀어 썼으면 싶다.
...... 나중에 보탠다.
* 훈민정음(訓民正音) :
조선 시대, 1446(세종 28)년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찍어 낸 목판본 해설서. 전권 33장 1책으로 되었음.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
2024. 10. 21. 월요일.
더 검색해야겠다.
잠깐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