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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붓고 지나가면 내게도 수위가 생겨난다 젖은 풍경
이 먼 곳에서 다가와 한 뼘가량 높아진 생각을 보여준다 잊혀
간다는 건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다는 듯
예고도 없이 지인이 문병을 왔다 영향권에 든다는 예보처럼,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말끝이 가랑비로 흐려졌다 공원 벤
치에 나란히 앉아 캔 커피와 생수병을 쥔 채 나눈 말이 고르
지 못한 날씨 얘기가 고작이다 한 시간 남짓이다 몇 시간 걸
려 와서
스며드는 것들에는 설명이 있지 않다 태도가 본심의 얼룩이
라면 불쑥 나타나는 게 마음이다 비가 오는 날은 나이도 마찰
지수가 떨어져 시간도 느려진다
근접해 있어도 내게 없는 사람들이 있다 멀리 있어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선이 놓지 못하는 것, 일기불
순은 언제나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어느 날은 옷깃만 적시다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전신을 흠
뻑 적시고도 모자라 나를 흘러넘치기도 한다 비 다녀간 처마
끝, 마지막까지 맺혔다 떨어지는 빗방울 심정이 되어보기도 한
다
지하철 입구에서 손을 한번 흔든 지인은, 한 눈금씩 낮아지
다 보이지 않는다 비는 그쳤지만 절벅거리는 발소리가 내 안을
오래 거닐고 있다
<시작노트>
시공간을 달리해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세계 안엔 내가 존재할 것이다. 또한 내가 바라보는 범위 안에 나의 세계가 있고 그들이 존재한다. 영향권에 든다는 예보는 그렇게 찾아왔고, 그날의 날씨로 내게 머물렀다.
한영미
2019년 시산맥 등단, 2020년 <영주 신춘> 당선, 2023년 <영등포 문학상> 시부문 수상
한국 시인협회, 중대 문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