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도, 홍매화에 매혹되다
박선우 시인
죄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순백의 눈보라는 꽃이 되어
수피(樹皮)의 온기들을 방전시키고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나무의 전생을 지우려 한다
온갖 잡다한 유언비어들이 꽃밭에 난무하고
화원은 아예 출입을 봉쇄하고 소리를 감금했다
노동이 빙하가 되고 달이 몰락하는 저녁
부음을 전해 들은 꽃가지에 슬픔들이 조등처럼 걸린다
우봉 조희룡은
달의 무덤 앞에서 제례를 올린다
나무들이 아가미를 열고 하늘을 품는다
별의 사리들이 지상으로 쏟아지고
허공의 음계를 밟고 꽃으로 건너온
슬픔의 밤이 꽃을 수습한다
몰락한 달이 차오르고 있다
달의 무덤 앞에 붓을 든 선비
화선지에 뼈만 남은 서사가 꽃으로 피어난다
그 홍매화를 화폭에 담은 우봉 조희룡
임자도, 홍매화에 매혹되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월호 발
박선우 시인
2008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임자도엔 꽃 같은 사람만 가라』, 『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스트인가』, 『하나님의 비애』 ,『섬의 오디세이』, 가 있음. 2010년 제주 기독문학상, 2017년 전북 해양문학상, 2017년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 2020년 계간 열린시학상, 2020년 시집 『섬의 오디세이』 아르코 우수도서로 선정. 2023년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