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순길. LG 트윈스 단장이다. 그는 한때 현실 속의 ‘라이언 빙햄’이었다. 라이언 빙햄은 영화 <인 디 에어(Up In The Air)>에서 배우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극중 주인공 이름. 빙햄의 직업은 구조조정 전문가로 쉽게 말하면 ‘해고 전문가’다. 기업을 대신해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일이 그의 업무다.
다른 해고 전문가와 다른 게 있다면 품위 있게 그리고 인간적으로 해고를 통보한다는 것 정도. 그렇다고 해고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 역시 누군가 자신의 등 뒤에서 삶의 스위치를 끈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긴 마찬가지다. 그럴 때마다 빙햄은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누구나 당신처럼 해고당한 경험이 있다. 새로운 기회를 향해 도약한다고 생각해보라”며 절망을 희망의 스타트로 포장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그들의 미래가 더 밝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IMF 광풍이 몰아치던 1998년. 백순길은 빙햄이 돼야만 했다. 자의는 아니었다. 회사가 그에게 업무를 맡긴 것뿐이었다. 당시 LG전자는 전국의 AS 서비스센터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시대의 요구였다. 시대는 ‘IMF 광풍을 이겨내려면 어떻게든 군살을 빼야 한다’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 ‘군살’로 회사를 위해 젊음을 바친 직원들을 지목했다.
애초 회사는 ‘평생 직장’을 꿈꿨을 직원들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시대의 요구와 맞서려 했다. 그러나 시대는 ‘구조조정을 거부하면 회사가 사라질 수 있다’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결국 회사는 백순길에게 ‘전국의 AS 서비스센터를 통·폐합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라’는 미션을 내렸다. 한마디로 현장에서 구조조정을 직접 진행하라는 지시였다.
백순길은 고민했다. 가족과 같은 현장 서비스센터 직원들을 제 손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업무를 맡아야만 했다. 그게 회사의 녹을 먹는 그의 숙명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업무를 회피한다고 구조조정이 중단될 리 없었다. 누군가는 그의 업무를 대신할 게 분명했다.
그때부터 백순길은 전국을 돌았다. IMF 이전 그는 LG 서비스센터 직원들 사이에서 경상도 출신의 사람 좋은 ‘백 부장’으로 통했다. 가는 곳마다 “백 부장님 오셨어요”하며 환영받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백순길이 떴다’는 소문이 돌면 해당 서비스센터는 순식간에 초상집이 됐다. 그가 서비스센터에 도착하면 직원들은 감염성이 높은 바이러스라도 나타난 듯 그를 피하기 일쑤였고, 암 선고를 내리려는 의사를 볼 때처럼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꺼렸다.
백순길도 그들이 자신을 피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의 생존이 그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백순길은 직원들과 면담할 때마다 입이 바싹 말랐다. 용기를 내 입을 열면 이번엔 목소리가 떨렸다. 어쩔 땐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연방 한숨만 내쉬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엔 자리로 돌아와 시대가 자신에게 요구한 업무를 처리했다.
그의 구조조정 통보를 듣는 직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더러의 직원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왜 정리해고 대상이 저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몇몇 직원은 분노에 가득한 눈빛으로 “회사의 결정에 따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일부 직원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그리고 대다수 직원은 “제가 회사를 떠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합니까”하며 회사의 결정이 번복되길 간청했다.
백순길이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청운의 꿈을 안고 회사에 입사한 어린 직원과 중·고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중년 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을 통보할 때였다.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어린 직원들을 사지로 모는 것 같아, 처·자식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들을 벼랑 끝으로 모는 것 같아 백순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이 편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과 부둥켜안고 울길 반복했다.
면담을 끝마치고 나올 때마다 퉁퉁 부은 눈 때문인지 백순길은 전후 사정 모르는 지인들로부터 “요즘 신장이 좋지 않으냐”는 말을 듣곤 했다.
백순길은 빙햄처럼 품위 있게 해고를 통보하고, 바로 자릴 뜨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찾아간 서비스센터에선 꼭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격정과 성토 그리고 아쉬움과 원망으로 시작한 회식은 후반부가 되면 눈물바다가 되게 마련이었다.
백순길은 수십 명이 따라주는 소주를 마시며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를 되풀이했고, 다시 한 번 그들과 함께 소주잔만큼의 눈물을 흘렸다.
백순길의 노력이 힘을 더했는지 LG전자 서비스센터 구조조정은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됐다. 다행히 회사는 살아났고, 외부에선 LG 서비스센터의 구조조정을 ‘성공한 구조조정’이라 평가했다. 당연히 회사에선 그의 노고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는 기쁘지 않았다.
백순길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위해, 동료를 위해 희생을 미덕으로 생각했던 수많은 직원이 있었기에 회사와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지금도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잠에 들 때면 눈물이 한가득 맺힌 눈으로 절 쳐다보던 직원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 직원들을 위해서도 전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일하고 싶어도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던 우리 직원들의 몫까지 말이죠.”
LG 백순길 단장이 신인 드래프트에서 LG에 지명된 신인 선수와 활짝 웃는 장면
# LG전자 서비스센터부문 부문장과 CS경영팀 팀장을 거친 백순길은 2010년 12월 LG 트윈스 단장에 선임됐다.
야구단 단장을 맡고서 그는 ‘더는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을 제 손으로 떠나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야구단 단장이 돼서도 그는 많은 이별을 겪어야 했다. 대표적인 이가 염경엽(현 넥센 감독)과 김기태(현 KIA 감독)였다.
2011년 LG 수비코치였던 염경엽은 당시 ‘팀을 망친 주범’으로 꼽혔다. 인터넷에선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갖가지 ‘카더라’는 어느덧 정설이 돼 비난의 강도는 더욱 커져만 갔다. 야구계 일부에서 염경엽을 ‘희생양’이라 칭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염경엽이 ‘LG를 망친 주범’에서 ‘희생양’으로 변신한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희생양은 죄가 있어 희생된 게 아니라 희생됐기 때문에 죄가 있는 것이니까.
결국 염경엽은 LG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LG를 떠나는 게 남는 것보다 LG에 더 좋은 일이라 판단한 까닭이었다. 이때 백순길은 염경엽을 말렸다. “더 생각해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알려질 것”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염경엽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제가 떠나는 게 단장님을 위해, 선수들을 위해, 팬들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 답하고, 미련없이 짐을 챙겼다.
백순길은 염경엽을 잡지 못했다. 떠나는 염경엽을 향해 “미안해, 염 코치”하며 고갤 떨구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표현의 전부였다. 염경엽을 떠나 보내고 백순길은 팀 재정비에 나섰다. 그리고 염경엽이 전임 단장과 함께 일본으로 찾아가 2군 감독으로 영입했던 김기태에게 1군 감독을 맡기며 11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도전했다.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2013년 LG는 정규 시즌을 3위로 마치며 11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성적뿐만 아니라 흥행에서도 대박에 성공해 이해 LG 홈경기 총관중은 1990년 창단 이래 가장 많은 128만9천297명을 기록했다.
야구계에선 “숨죽인 채 팀의 부활을 11년간 기다렸던 LG 팬들이 잠실구장으로 돌아온 결과”라고 분석했는데 실제로 많은 ‘올드 LG 팬들’은 잠실구장에서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현재의 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듬해인 2014년에도 LG의 기적은 계속됐다. 이해 LG는 시즌 초반 부진을 털고 일어나 정규 시즌 4위로 시즌을 끝마쳤다. 포스트 시즌 2년 연속 진출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 패하긴 했으나 이해 LG가 보여준 막판 뒷심은 우승팀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기쁨 속에서도 백순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2013년 팀을 11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끈 김기태가 지난해 시즌 중 전격 사퇴한 까닭이었다.
염경엽, 김기태를 떠나 보낸 백순길은 “재차 느끼지만,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며 “내가 LG 단장으로 있는 동안엔 더는 이런 이별이 재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그는 또다시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 했다. 이번엔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한 이별이었다. 대상은 정찬헌이었다.
6월 22일 LG 투수 정찬헌은 음주 운전을 하다 경찰 조사를 받았다. 정찬헌은 경찰서를 나온 뒤 이 사실을 구단에 알렸고, 구단은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서 여러 대책이 나왔다. 당시 팀 성적이 바닥이라, ‘KBO 징계 결정을 보고 추후 구단 자체 징계를 결정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어떻게든 정찬헌을 활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순길은 단호했다.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이란 일부 구단 직원의 우려에도 사건 당일 정찬헌에게 3개월 출전 정지와 벌금 1천만 원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 결정은 정찬헌의 실질적인 시즌 아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날 백순길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양(상문) 감독께 참 미안합니다. 한창 팀 성적이 좋지 않아 고민이 많으실 텐데 정찬헌 징계를 그렇게 내려서…. 다행이라면 양 감독께서도 구단과 뜻이 같으셨다는 겁니다.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은 징계를 내릴 때와 같습니다. 우리 팀의 현재와 미래를 고려할 때 솜방망이 처벌보단 중징계가 낫다는 겁니다. 때론 팀을 위해 선수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떠나보내야할 때도 필요한 거 같습니다. 그게 어렵더라도 말이지요.”
잠실구장에서 LG를 응원하는 트윈스팬들
# 2013, 2014년 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의 영광은 2015년엔 재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8월 29일 기준 LG는 51승 65패 승률 0.440으로 리그 9위로 처져있다. 5위와는 6경기 차. 승차만 본다면 지난 시즌처럼 대역전극을 펼칠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도 LG는 7월 28일까지 리그 7위였다.
야구계에선 LG의 부진을 보고 갖가지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 안엔 진실과 억측이 혼재한다. 중요한 건 3년 만에 찾아온 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누군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코칭스태프와 코칭스태프, 코칭스태프와 베테랑의 관계 등 여러 문제를 극복하려면 팀의 암흑과 영광을 동시에 경험했던 이가 나서야 한다. 많은 야구인은 그 역할을 단장 백순길이 맡아야 한다고 본다.
IMF 광풍에서 회사를 살렸던, ‘잃어버린 10년’에서 야구단을 구해냈던 백순길은 현재 3년 만에 찾아온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LG를 더 강팀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많은 이가 LG 야구를 보며 삶의 위안을 얻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1998년 LG를 떠나고도 여전히 LG를 그리워하고, 응원하는 이들을 위해 백순길이 맡아야할 마지막 미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