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정원 분을 갈아
구월 초순 목요일이다. 전날은 북면 신동리 텃밭을 둘러 가술로 나가 마을 해설사 수업을 받고 왔다. 잠 깬 새벽에 ‘가을무 싹’을 한 수 남겼다. “잡초가 수북하던 휴경지 묵혀둔 땅 / 기다린 비가 와줘 수월히 김을 매서 / 처서에 이랑을 지어 채소 씨앗 뿌렸네 // 부직포 걷어내니 발아는 순조로워 / 뾰족이 돋은 싹이 파릇한 떡잎 펼쳐 / 벌레가 꾀는지 살펴 호미 잡아 긁는다”
날이 밝아오는 여명에 자연학교로 나서 아파트단지 운동 기구에 매달려 몸을 단련했다. 한낮은 더워도 열대야를 면하는 밤이라 아침 공기가 서늘해짐을 느낀다. 안민동에서 첫차로 출발해 오는 102번 버스로 명곡 교차로로 나가니 근교로 나가 농사를 짓는 이들을 몇몇 만났다. 도심에 살면서 아침마다 북면이나 동읍 농장으로 가나는 분들인데 대산 강가까지 가는 이들도 있었다.
본포로 가는 31번 버스를 타고 도계동에서 만남의 광장을 거쳐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났다. 주남삼거리에서 가월을 거쳐 주남 들녘을 가로질러 대산 일반산업단지에서 다수 내려 남은 이 둘만으로 북모산까지 갔다. 내 말고 한 승객은 명서동에서 탄 중국 국적 부녀로 매일 모산리 비닐하우스 농장으로 일을 나가 얼굴이 익어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다. 서툴던 우리말은 많이 늘었다.
둘이 북모산에 내리자 트럭을 몰아와 기다리던 농장주는 부녀 일꾼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났다. 나는 동네 외딴진 골목에서 신설 60번 국도 굴다리를 벗어나 강둑으로 나갔다. 전방 시야는 대산 문화체육공원이 펼쳐진 둔치였다. 오른편으로는 대산 플라워랜드와 파크 골프장인데 강심으로 수산대교가 가로지른 왼편으로 걸었다. 반려동물과 산책을 나선 현지 주민 둘이 앞장섰다.
아침이 밝아와도 구름이 끼어 햇살을 가려 안개마저 끼어 먼 곳은 시야를 가렸다. 낙동강 중상류에는 넉넉한 비가 내렸는지 삼랑진으로 향하는 강물은 수위가 높아져 너울너울 흘렀다. 여름내 가뭄과 폭염에 강변 식생은 발갛게 타들다가 여름 막바지 내린 단비에 시들던 초목은 극적으로 회생했다. 자연의 복원력은 놀라워 비가 온 열흘 남짓 사이 물억새는 싱그러움을 되찾았다.
국도 25호가 밀양으로 건너는 수산대교 다리목에서 제1 수산교로 향해 가다가 신설 국도 횡단 보도에서 시내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아직은 낮에는 더위가 남은지라 아침 산책은 짧게 끝내고 가술로 가나 도서관에 머물 작정이다. 삼봉마을 정류소에 내려 어린이 공원에 잠시 머물다 동네 의원을 찾아 발가락 염증 부위를 진료받으니 이제 상처가 다 아물어 마음이 놓인다.
이어 대산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으로 올라 집에서 갖고 간 남효창의 ‘우리는 모두 씨앗이다’를 읽었다. 글쓴이는 산림학자로 숲의 인문학과 자연 해설가 양성 및 숲 치유를 주제로 다수의 강의와 현장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책의 구성이 독특했는데 상수리나무와 그 열매 도토리가 편지글을 주고받는 형식이었다. 상수리나무는 ‘산할아버지’로, 도토리는 손자 ‘상수’로 설정했다.
아침나절은 아무도 들리지 않은 열람실을 개인 서재처럼 머물다 때가 되어 밖으로 나와 점심을 요기했다. 식후는 장소를 대산 나눔문화센터로 옮겨 가드닝 강좌 수업에 참여했다. 엊그제 나눔센터 옥상에 가꾸던 시든 초본류를 뽑아내고 새로운 화초와 관목을 심는 일이 기다렸다. 강사는 수강생들과 같이 심을 화초를 구해 와 옥상에 운반해 놓고 강의실에서 잠시 대면 수업을 했다.
이어 옥상으로 올라가 수강생이 힘을 합치니 여러 개 화분은 새로운 화초로 채워져 싱그러웠다. 땀 흘린 노동에서 ‘옥상 정원 분갈이’를 남겼다. “가술에 나눔센터 공동체 휴식 공간 / 수년 전 옥상 정원 해 넘겨 묵혀두어 / 식집사 수강생들이 시든 그루 뽑았다 // 계절감 살리려고 새로운 초본 마련 / 배양토 다시 채워 손 모아 심었는데 / 국화는 서리 내려도 그윽한 향 번지리” 26.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