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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열전 7번째 타자 [쉐이프]
이번 연극열전 시리즈가 원래부터 철두철미한 기획 아래 올려지는 것이 아닌지라 [쉐이프]같은 경우도 뜬금 없이 예매오픈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가을,겨울 일정에 여주인공으로 장영남이 내정되어 있었고 연출자도 지금과 달랐죠. 인지도 높은 캐스팅과 연출,스텝진 일정에 따라 별 고민 안하고 유동하는 모양세가 빈번한 게 줏대는 없어 보여도 질질 끌지 않고 상황 봐 가면서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것은 본 받을 만한 전술이구나 싶어요. 마치 게릴라 전을 치루는 것 같죠.
연극열전2는 작년 12월 시작부터 두 편씩 예매오픈을 했고 올려지는 간격은 대충 일주일 시차를 두었습니다. [쉐이프]는 시리즈 8탄으로 기획된 [잘 자요 엄마]와 같이 오픈했는데, 1년 계획표 중에서 별 관심이 안 갔던 작품이었어요. 출연진도 갑자기 캐스팅 된 것 같고 작품도 급작스레 올려진 형국이라 닐 라뷰트의 이름 값과 별개로 국내 공연 소식은 작품에 대한 기대를 낮아지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좀 변변찮아 보였거든요. 완성된 작품도 깊은 사전 조사나 토론 없이 대충 시간에 쫒겨 흉내만 낸 흔적이 듬성듬성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건 상대적인 것이고 흥행성적은 아주 좋습니다.
이제 막 일주일간의 프리뷰를 끝내고 본 공연을 시작한 [쉐이프]는 입소문도 호의적인데다 초연이고 마침 대학로에 볼 만한 공연이 마뜩찮은 시점에 오픈한 덕도 크게 보고 있습니다. 한 동안 지지부진하던 예매율이 갑자기 뛰어 올라서 당일예매가 불가능해졌죠. 며칠 헛탕치다 프리뷰 마지막 날에 겨우 예매해서 볼 수 있었어요. 울림 상태 안 좋은 200석도 안 되는 소극장에서 대기번호 167번이었으니 이상한 자리 걸릴까봐 대기번호 1번 들어갈 때부터 제 차례 올 때까지 전전긍긍 했다니까요.
* 공연(스포일러 주의)
국내에선 [쉐이프]가 닐 라뷰트 작품으론 두 번째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닐 라뷰트 초연작인 [썸 걸즈]의 성공으로 [쉐이프] 라이센스가 수월했으리라 봅니다. 해외에서도 대중적인 감독은 아니었지만 매니아층이 탄탄한데 반해 국내에선 그저 [너스 베티]의 영화 감독으로 조금 알려진 정도였고 특히 공연 팬들에겐 인지도가 약한 작가였는데 지난 1년 동안 [썸 걸즈]가 거듭된 앵콜 공연을 하면서 인기 몰이를 했고 덕분에 대충 감은 잡히게 된 거죠. [쉐이프]는 [썸 걸즈]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쉐이프]가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니 [썸 걸즈]가 [쉐이프]의 연장선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요. 소제는 달라도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찌질한 남자 혹은 여자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사악함, 애초로울 정도의 심약함 같은 것을 파고드는 데 주력하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쉐이프]의 원제는 [The Shape Of Things]로 '사물의 형태'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로 들어오는 많은 외국 작품 제목이 대게 한 단어로 짤리는 편인데 [The Shape Of Things]역시 제목의 의미보단 한번에 기억할 수 있는 간단한 제목을 선호 한 것을 알 수 있죠. 어차피 영화가 정식으로 소개된 적도 없으니 그냥 '사물의 형태'라고 나왔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날 라뷰트의 연출,극본으로 2001년 영국에서 성공적인 초연 이후 곧바로 레이첼 와이즈, 폴 러드 주연의 저예산 영화로 2003년도에 개봉하여 호평 받았는데 닐 라뷰트 감독에 레이첼 와이즈 주연작임에도 국내 미개봉,미출시작이라는 게 조금 의외군요. 비교적 근작임에도 이번 연극을 통해 작품이 알려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시정할 게 하나 있는데 여기저기 소개글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The Shape Of Things]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탓다는 것입니다. [The Shape Of Things]는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긴 하지만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한 적도 없었죠. 아마 닐 라뷰트가 만든 저예산 영화들의 '선댄스 적인' 정서와 [남성전용주식회사]로 선댄스에서 상 받았던 전력을 보고 대충 그러려니 하고 대입시킨 것 같습니다. 상 받은 이력이 없는 영화인데 [쉐이프]만 치면 선댄스 작품상 받았다는 기사가 떠서 이상하다 했죠.
공연을 보니 [썸 걸즈]와 마찬가지로 [쉐이프] 역시 국내 정서에 맞게 어느 정도는 보정 된 것 같군요. 일단 나오는 인물들이 외국 이름을 달고 나오지 않거든요. 닐 라뷰트의 장기는 미국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파헤치는 게 주특기인지라 그런 작품을 고스란히 재연하면 이질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어요. 이 점이 그의 영화들이 국내에서 큰 호응을 못 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서 [포제션]이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닐 라뷰트 작품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포제션]인데 몇 년 동안 원작을 읽어야지 하면서 시도를 못 하고 있네요.
전반적인 줄거리는 반전을 맞기 전까지 '피그말리온'식으로 진행됩니다. 극에서 직접적으로 '마이 페어 레이디'를 인용하기도 하고요. 마침 뮤지컬도 국내에서 올려지고 있어서 재미있는 비교가 되더군요. [쉐이프]가 다른 점이라면 여성상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인데 이런 역할 바꾸기가 별로 신선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의미를 전복시키는데 효과적인 설정이 될 수는 있습니다.
[쉐이프]는 반전을 맞기 전까지 로맨틱코미디의 표피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결말(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 정말 놀랐어요. '미운오리 백조되기'프로젝트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에 이르기까지 경우에 따라선 식상할 수도 있습니다. 대충 '온달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취할 수 있는 결말이라는 것이 뻔하기 마련이고 [쉐이프]의 진행방식이 중반 이후까지도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 아무리 야한 농담과 장면이 민망할 정도로 드러난다 해도 좀 튀어 보이려고 도발을 감행하나 싶은 정도죠.
작품의 진가는 세경의 졸업 논문 발표에서 발휘됩니다. 처음에 세경이 양우를 세련되게 개조시켜주는 역할을 할 때는 그저 잘난 여자가 자기보다 못난 남자를 만남으로써 만족할 만한 떠받듬과 적당한 나르시시즘에 빠지고 싶은 거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여자는 예쁘고 똑똑하고 세련돼서 남자들의 매력을 살 능력이 되지만 지나친 자의식을 감당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밥 맛 떨어지는 행동도 한 두번이죠. 그러니 자기보다 한참 못난 양우 같은 남자를 꼬셔서 자기 입맛에 맞추는 게 속 편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었죠. 세경은 그럴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거든요. 그녀는 사랑보다 일에 대한 야망, 고취를 인정 받는 게 생의 목적인 여자였죠. 양우는 그녀의 졸업 논문에서 발표될 설치미술의 대상으로 처음부터 18주 간의 기간을 정해놓고 계획된 인간 프로젝트 였습니다. 세경은 양우와 의도적으로 사귀면서 양우가 자발적으로 본인의 외모를 변화시킴으로써 겪게 되는 주변 상황과 심리적 변화를 통해 인간 본성의 이면을 파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그녀는 본인의 감정은 물론 주변인들 모두를 기만하면서도 끝까지 서슴없습니다.
이런 세경의 잔인하고도 뻔뻔하며 자기기만에 빠진 극악한 모습을 통해 관객은 인간에 대한 예의란 무엇인가? 혹은 인간 도덕성의 위태로운 경계를 되짚어 볼 수 있겠습니다.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가? 양우를 그저 피해자로만 볼 수 있을까? 세경의 행동이 무조건 비난받아 마땅한 것일까? 작품은 세경을 통해 맹목적인 예술의식의 허무맹랑함과 인간성을 조롱하며 극으로 밀어붙이다 끝납니다. [썸 걸즈]에서와 같이 이 작품에서도 중반까진 그럭저럭 평온하게 전개되다가 막판 뒤집기를 통해 작품이 끝나면 생각지도 못한 의문부호와 문제제기가 숙제로 남는 것이죠.
숙제는 관객에게만 남겨진 것이 아닙니다. 질 적인 면에서 결코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여주진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호흡은 불안정하고 전개는 덜컹거립니다. 각본을 제대로 살린 것 같지가 않더군요. 대사도 좀 더 손을 보면 보다 발칙하고 맛깔스러울 것입니다. 노골적인 성적 농담이 많은데 작품과 어울리지 않게 투박하게 번안시킨 바람에 촌스러워졌습니다. 씬이 많은 작품인데 씬마다 연계되는 맛이 부족하고 툭툭 튀어요. 그 많은 씬을 암전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에 흐름도 자주 끊기고요. 조명이나 음향 효과를 통해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배역 비중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을 비롯해 누구 하나 깊이 있게 심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세경의 진심을 예시함으로써 양우가 겪는 복잡한 심리 변화를 보여주면서 끝나는 열린 결말은 세경에게도 인간성을 부여해주고자 한 것인데 그에 맞는 세경의 심리에 설득력이 따라오질 못해서 사족으로 보입니다. 또한 양우가 세경의 논문 발표에 참석해서 받게 되는 충격, 양우가 외양적으로 바뀌면서 겪게 되는 변화와 주변의 시선, 그가 세경을 사랑하면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모습, 지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발생되는 지은과 세경과 양우, 그리고 지은의 약혼자이자 양우의 친구인 태주까지 섞이면서 겪는 치정 관계를 좀 더 면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수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씬이 조금씩 부족해요. 가능성은 보여주는데 거기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죠. 음향이나 음악, 조명의 효과와 장면마다의 여백을 염두에 두었다면 풍부한 인물 묘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태주와 지은이 극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머무는 데에 그치고 마는 것이 이야기를 단선적으로 흐르게 합니다. 이들의 역할이 이 정도를 의도했다고 보진 않아요.
세경을 맡은 유선은 아주 좋습니다. 이 사람의 이지적이면서도 비인간적인 이미지가 세경에게 완벽히 맞아 떨어져서 세경의 교활하고 악질적인 계획에 타당성을 배가시켜 줍니다. 유선은 세경을 표현할 때 주어진 대사를 넘어 인물의 동선이나 행동에 온기를 불어넣어 줌으로써 비난받아 마땅한 세경의 프로젝트에 명목을 얹혀줬습니다. 덕분에 의도 이상으로 배역이 풍부해졌고 교묘해졌습니다. 유선의 연기를 보면서 에너지가 정반대인 전혜진이 이 배역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더군요.
반면 양우 역의 전병욱은 그리 만족스럽진 못합니다. 연기는 괜찮았지만 극 중 인물이 변화되는 미모를 통해 이야기가 탄력을 받는 작품인데 전병욱의 외양은 압도할 만한 매력이 부족해요. 외모를 통한 골빈 모습도 드러나길 바랐는데 전병욱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섬세해보입니다.
[쉐이프]는 분명 인상깊은 연극입니다. 통쾌하게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 법칙을 전복시키며 예술적 오만함을 보기 좋게 비웃을 수 있으며 다행이 센세이셔널리즘의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과는 원작의 힘이 큽니다. 라이센스를 올리면서 작품에 대한 숙지를 충분히 했다면 이 작품은 훨씬 좋은 공연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 정도의 배경막을 갖고 올려지는 공연이라면 막중해야겠죠.
- 스탠딩 석 콘서트 장도 아니고 등받이 있는 극장이라면 당연히 지정 예매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슨 공산당도 아니고 임의로 입장번호 정해주고 들여보내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 번호 순서라는 것도 예매순서에 맞게 정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먼저 예매하면 우선순위라곤 하지만 이게 어느 예매처를 통해 우선 예매해야지 우선순위가 되는지는 모릅니다. 실제로 소극장 기준으로 몇 백석 남은 상태에서 우선 예매했는데 티켓부스에 할당받은 입장번호는 100번대로 밀려나가는 경우도 많죠. 인기있는 공연일 수록 입장 번호에 불만 삼는 관객도 많고요.
최대한 좁은 공연장을 콩나물 시루 만들려고 비지정석으로 밀어 넣는 것과 공간 확대를 위해 객석 통로도 한 군데만 뚫어놓은 걸 관객이 이해해줘야 할까요? 동숭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 극장 좌석도 등받이만 있을 뿐 손잡이 없고 겨우 엉덩이 하나 지탱할 정도의 공간 밖에 없는 의자지만 여긴 지정 예매를 하죠. 그래도 [리타 길들이기]와 [늘근 도둑 이야기]는 잘만 찼습니다. 오히려 비지정석 예매가 일만 많아지고 관객 통제에 애만 먹을 텐데요. 이번 [쉐이프]공연도 결국 객석에 다 앉을 수 있는 것을 비지정석으로 하는 바람에 몇몇 관객은 제 돈 내고 시간 맞춰 가서 보조석에 앉아서 보더군요.

첫댓글 음, 연극 열전...좋은 얘기가 들려오는 공연이 별로 없네요. 보고 싶었던 공연인데, 고려 좀 해봐야겠네요.
전 전혜진씨 하는 공연도 보았는데....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조명이나 음향에선 나름대로 꽤 좋았구요. 양우의 미묘한 심리 묘사가 없는것은 저도 안타까웠습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 세경의 느낌은 전혜진씨와 더 잘 부합되는것 같았습니다. 좌석은 정말 비매너라고 생각해요. 연극열전 자쿠 돈 버는데 치중하는 느낌입니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