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10. 22. 화요일.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지난 주 금요일(10. 18.)에 나와 아내는 둘째사위가 안내하는 경기도 과천시 <추사박물관>을 방문 관람했다.
추사 김정희(1786 ~ 1856년)는 조선조 후기 실학파로 알려졌으며, 붓으로 한문서예 작품을 많이 남긴 분으로만 알았다.
추사 가문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굉장한 사대부 집안 출신이다.
옛 문화관광지는 대부분 왕족 사대부 양반 위주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어떤 반감이 일어난다.
민속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나한테는 글감 소재가 되기에.....
지금은 2024년이다.
* 이런 기록물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것은 사진이 지극히 최근이라는 뜻.
우리나라에 사진기가 등장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얼마 안 되는 시기일 터.
충남 예산군 신안면 추사 고택
유배지인 북청에서 돌아온 추사는 1852년 8월부터 4년간 이곳에 머물며 말년을 보냈다.
윤증 1629년 생(인조 7년) ~ 1714년 졸(숙종 40년)
양반 가옥
조선조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李乃蕃)이 1703년 집터를 잡은 후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1815)을 비롯하여 활래정, 동·서별당 등이 후손들에 의해 지어졌다.
안채·사랑채·동별당·서별당·가묘·행랑채를 비롯하여 정자까지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5호.
102칸 집이다. 하인들이 살던 집들까지 모두 합치면 300칸이다.
현존 살림집 한옥 중에서 가장 큰 집이며, 집이 하도 커서 집 안에 문만 12개가 있다.
선교장 손님용 밥상 소반만 300개가 넘었고, 머물다 떠나는 이들에겐 일일이 옷을 한 벌씩 만들어줬다고 한다. 그래서 옷 만드는 침모용 건물이 따로 있을 정도다.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있는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
99칸 저택 중 현재 남아 있는 사랑채, 안채, 문간채, 행랑채 등이 지난 84년 12월 24일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196호로 지정.
* 해평윤씨
주변에 일가 3가구의 사랑채, 아래채, 안채, 광채, 문간채 등도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12, 13, 15호로 함께 지정돼 보존.
윤보선 저택
해평윤씨 윤보선 대통령 가계도
윤보선 대통령의 당숙은 친일파의 거두 윤치호
윤치영 : 1960년대 공화당 의장, 대학교 정치학 교수
윤씨네는 덜덜덜 떨리는 만큼 엄청난 사대부 집안.
* 나는 오래 전 윤치영 교수로부터 정치학, 외교학 강의를 받았다. 그 당시에도 엄청난 가문이라는 인식이....
이에 비하여 아래는.....
초가집 :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화망마을의 내 작은 외삼촌네 집도 이랬다.
울타리 담장도 없는 흙벽 초가삼칸 .
초가지붕의 둥근 박(톱으로 반을 타서 바가지를 만든다)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 용서해 주실 게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
나는 1949년 1월 말에 태어난 산골 출신.
나는 1950년대 60년대의 생활상을 기억하며, 서울에서 2020년대를 살아간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와 2020년대인 지금을 서로 비교하면서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많이 변했고, 발전했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100년 뒤의 미래 세상은 어떠할까? 상상이 안 된다.
2024. 10. 22. 화요일.
위 자료를 검색하다가 윤치호 일가와 윤석열 대통령의 본관별 성씨를 비교한다.
- 윤치호, 윤보선 대통령 등 : 해평윤씨
- 윤석열 대통령 : 파평윤씨
나중에 보탠다. 잠깐이라도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