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시장에서 점포 없이 차량으로 식료품을 판매하며 생계를 꾸려 갔습니다. 하루는 장사를 마치고 동료 상인들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술이 거하게 취한 A씨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리운전을 불렀는데요.
대리기사가 도착하길 기다리던 A씨는 잠시 차를 이동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A씨는 고민 끝에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싶어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차량을 몰아 20m 정도 이동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를 냈습니다.
A씨는 사고 후 경찰로부터 음주측정을 받았는데요. 혈중 알콜농도 0.13%로 운전면허 취소 처분이 떨어졌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생업마저 위협받게 된 A씨, 억울함을 호소하며 운전면허 취소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는데요.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이 식료품 소매업자 A씨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자동차 운전면허 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A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2018누51814)
이 사건에서는 음주측정을 실시한 시점이 쟁점이 됐는데요. 재판부는 이른바 혈중알콜농도 상승기에 실시한 음주측정 결과를 운전 당시 혈중알콜농도로 단정해 면허를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고 봤습니다.
A씨는 최초 음주시각인 22시로부터 70분 후, 그러니까 마지막 음주를 끝낸 22시30분부터 40분 후인 23시 10분에 운전을 했는데요. 음주측정은 이로부터 56분 뒤에 이뤄졌습니다.
일반적으로 혈중알콜농도는 음주 후 30분부터 90분 사이에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이후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재판부는 A씨의 혈중알콜농도 상승기가 22시 30분부터 밤 12시까지임을 고려해 운전할 당시의 혈중알콜농도는 측정 수치인 0.13%를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운전 이후 54분이 경과한 뒤 이뤄진 음주측정치를 A씨의 운전 당시 혈중알콜농도로 단정해 면허취소를 처분한 것은 사실을 오인한 위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운전이 생계수단인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운송업이 생계 수단인 A씨에게 감경사유를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면허취소 처분을 내린 것은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혈중알콜농도 0.05% 이상인 상태에서 운전하다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게 하거나 다치게 한때 △혈중알콜농도가 0.1% 이상인 상태에서 운전한 때 △2회 이상 혈중알콜농도 0.05% 이상인 상태에서 운전하거나 음주측정에 불응한 사람이 다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한 때에는 운전면허 취소처분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단, 운전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중요수단이고,당시 혈중알콜농도가 0.12%를 초과하지 않았다면 감경사유를 적용합니다.
A씨는 두 아이를 키우는 한 부모 가장이었는데요. 운송업은 이 가족의 생계에 필수 역할을 하므로 감경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혈중알콜농도 상승기, 무조건 인정되는 건 아냐
위 사례처럼 음주측정이 이뤄진 시간이 혈중알콜농도의 상승기였다고 하더라도 모두에게 A씨와 같은 선처가 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음주운전은 음주 시점과 운전 시점에 시간 차가 존재하기 마련인데요. 경찰의 음주측정 시점과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이에 따라 운전 당시 혈중알콜농도가 처벌기준치 이상이었는지를 따질 때는 △운전과 측정 사이의 시간 간격 △측정된 혈중알콜농도의 수치와 처벌기준치의 차이 △음주를 지속한 시간 및 음주량 △단속 및 측정 당시 운전자의 행동 양상 △사고 발생시 그 사고의 경위 및 정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합니다. (2013도6285)
그러나 대법원이 혈중알콜농도 상승기를 고려해 음주운전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하급심으로 돌려보낸 경우도 있습니다.
대법원은 혈중알콜농도 상승기에 음주측정이 실시됐다는 이유로 음주운전자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에 대해 혈중알콜농도 입증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음주와 음주측정 사이에 시간이 상당히 경과해 혈중알콜농도를 단정할 수 없더라도 이를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판시했습니다. (2014도3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