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하느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제1독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1,2-11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4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5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6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7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8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9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10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11 아무도 옛날 일을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기도가 정말 기도인지 알아보는 확실한 방법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모든 소식을 전해 듣고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듣는다는 게 헤로데에게는 자신이 죽인 요한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기도하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입니다.
기도는 어둠에 있던 나를 점점 빛이신 주님께 들어 올리는 일입니다. 마치 어둡던 방 안에 햇빛이 들기 시작하면 떠다니는 먼지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처럼 주님께 다가갈수록 먼저 나의 죄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쩌면 진정한 기도가 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영화 ‘미션’The Mission(1986)에서 로드리고 멘도사라는 인물은 예수회 선교사인 가브리엘 신부를 만난 후 엄청난 변화를 겪습니다. 멘도사는 처음에 과라니 원주민을 붙잡아 노예로 파는 무자비하고 완고한 용병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폭력, 탐욕, 권력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멘도사의 도덕적 타락은 분노에 차서 두 사람이 사랑했던 여자를 두고 결투를 벌여 자신의 동생까지 죽입니다.
멘도사는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연민과 겸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구현하는 예수회 가브리엘 신부를 만나게 됩니다. 이전까지 동생과 애인을 증오하기만 했던 그가 사제를 만나니 지금까지의 자기 죄악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노예로 팔아먹는 사냥꾼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멘도사를 정죄하는 대신 가브리엘 신부는 그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는 멘도사를 초대하여 자신이 노예로 삼은 바로 그 사람들을 돕는 임무에 자신과 다른 예수회 회원들과 동행하도록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갑옷과 무기 등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넘어 과라니 종족이 사는 곳에 도달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자신이 끌고 오는 짐의 무게는 그를 더 짓누릅니다.
과라니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원주민들은 그를 예전의 납치범으로 인식하고 복수를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칼로 그의 짐을 끊어 떨어뜨려 버리고 그를 용서함으로써 그에게 자비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용서의 행위는 멘도사에게 해방을 안겨주고 그들을 위해 죽기까지 봉사할 결심을 하게 합니다. 그는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식민지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예수회와 함께 싸우면서 사명의 수호자가 됩니다.
햇빛 속의 먼지처럼 멘도사의 죄는 가브리엘 신부와 높은 곳에 사는 과라니 종족에 가까워질수록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처럼 기도의 과정에서 하느님 사랑의 빛 안에서의 진정한 자기 성찰은 필수적입니다. 내가 성찰한다기보다는 저절로 나의 죄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용서를 깨닫고 주님께 충실할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기도로 자신의 영혼을 하늘과 빛으로 들어 올리는 모든 이가 겪는 과정입니다.
하느님께 갈수록 나의 죄가 크게 보여서 “내 탓이오!”가 저절로 나오고 다른 사람들이 판단되지 않으며 그 큰 죄를 용서해 주신 분께 찬미와 영광이 나오고 그분의 뜻을 위해 목숨을 내어줄 마음이 생기면 기도한 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건 기도한 게 아닙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미국의 퓨 연구소(Pew Research Center)에서 과거보다 훨씬 오래 사는 데 대한 미국인의 태도를 조사했습니다. 응답자들은 암을 완치하고 인공 팔다리를 자유롭게 장치할 시대가 오리라는 데 대해 낙관했으며, 수명을 연장하는 의학의 발전들은 전체적으로 좋아지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노화 과정을 늦추는 것은 이 사회에 오히려 나쁘다고 답변했습니다. 고령화로 경제적 부담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고, 세대 간의 협력이 줄어들어 가족 구조의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 밖에도 많은 문제로 이 사회에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더 오래 살 수 있는 치료가 나온다면 받겠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답변했을까요?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대부분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응답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전체 인구의 3분의 2 정도의 사람들은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을 것이라 예상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그렇지 않지만, 남은 그럴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남과 다를까요?
아무튼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기대수명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일 것입니다. 남과 다른 나는 특별하니 더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죽음보다 먼저 어떻게 지금을 사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삶은 죽음을 뛰어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어떻게 지금을 사느냐라는 사실을 잊어 버립니다.
오늘 복음에는 헤로데 영주가 나옵니다. 헤로데 영주는 헤로디아의 간계로 귀찮은 방해꾼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도는 것입니다.
죽었던 요한이 부활하여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있다,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다,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등의 소문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예수님의 기적 활동을 보고 유다인들이 품었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헤로데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했던 일이 잘못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짜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과거의 자기 잘못으로 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곧바로 뉘우침의 행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자기가 받을 벌,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벌을 떠올리며 두려워할 뿐입니다.
우리 역시 죄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지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순히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갖는게 아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희망을 갖는다. 절망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절망하지 않는다. 누구도 희망을 뺏을 수 없다(김영민).
사진설명: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