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철 민주당대표의 반발…공개소환장으로 압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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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혐의 보고 받자마자 수사 착수 지시
검사란, 굳이 비유하자면, 황야를 향해 울부짖는 외로운 늑대라 할 것이다.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고 먹잇감에 주저 없이 발톱을 들이댈 수 있는 용기와 강인한 정신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늑대가 남의 눈치나 살피며 먹잇감 주변을 맴돌기만 하면서 스스로 위축된다면 그것은 이미 늑대라고 할 수 없다.
늑대는 이빨과 발톱을 쓰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있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내려서 발톱을 휘두르고 물어뜯는 게 아니다. 검사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수사에 착수하면 최대한의 자율권과 재량권을 행사하며 마음껏 사건을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법적 절차를 따르고 법적 권한이 보장된 범위 안에서다. 윗선의 지시와 감독은 수사 과정에서 방향이 틀어지고 개인적인 판단이 어긋날 소지가 있을 때만 필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언론을 통해 바깥에 비쳐진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 맞닥뜨려서는 웬만하면, “일단 덮고 보자”는 지시가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담당 검사의 수사 의지는 무시될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없지 않았다. 검찰 내부에서도 윗선으로 보고가 올라갈수록 수사 범위가 좁혀지고 때로는 수사 계획서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서랍 속 깊이 처박히게 되는 경우를 적잖이 목격했다는 것이 검찰 선배들의 자탄어린 푸념이었다. ‘정치 검찰’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런 사례 때문이었다고 본다.
참여정부 당시 집권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의 정대철 대표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가 포착되었을 때 처음 부닥쳤던 문제도 바로 그것이다. 강금실 법무장관이나 송광수 검찰총장에게 먼저 보고를 하느냐, 아니면 먼저 수사에 착수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윗선에 먼저 보고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외압이 들어올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 2003년 7월 '굿모닝 게이트'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지검 특수2부 채동욱 부장검사가 정대철 민주당 대표 소환문제를 서영제 서울지검장에게 보고한 뒤 검사장실을 나서고 있다. /주완중 기자
이 사건은 서울지검장에 임명된 직후인 2003년 4월부터 굿모닝시티 쇼핑몰 분양사기 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문제의 분양 현장이 동대문운동장 근처에 있었는데, 그 부지에 포함된 파출소를 다른 장소로 옮기도록 로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정대철씨에게 거액이 전달된 혐의가 포착되었다고 수사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나는 정공법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채동욱 부장검사로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즉각 수사팀을 가동하도록 지시했다. 채 부장도 움칫 놀라는 기색 이었다. 그는 당시 내가 망설임 없이 수사지시를 내린 데 대해 너무 놀랐다고 한참 뒤에 털어놓았다. 수사팀 검사들은 내심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권력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수사를 한다는 것은 검찰로서는 영원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자랑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만큼 의지가 강한 별종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 스스로 검찰의 돈키호테를 자청했던 것이다. “사건을 수사한 것이지 사람을 수사한 것이 아니다” 서울지검장으로서 정대철씨 수사 내용을 보고 받고 할 수 있었던 일은 그 수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지원해 주는 것뿐이었다. 검찰 지휘자는 검사의 수사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지 그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수사에 대한 나의 확고한 소신이었다. 내 개인적으로 정대철 의원님이 우리나라 민주화투쟁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존경하고 있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지 ‘사람’을 수사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초임검사 시절부터의 소신이었다.
수사가 확대되면서 당시 국무총리실의 비서실장과 대한주택공사 사장도 혐의가 드러나 곧바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 국무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첫 총리로 지명한 고건 씨였다. 고건 총리님에게는 정말로 미안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서울 서부지청장 시절 그 분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그 부하 직원을 구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서울지검 강력부장을 할 때 국무총리를 하면서 테니스 모임에 초청해 주신 분이어서 더욱 송구스러웠다. 그러나 엄격한 법집행을 위해선 나의 사적인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개인적으로는 용서를 빌고 싶다. 검찰 내부의 견제…“너희들이 검사장을 말려야지 그러면 되겠어” 이렇게 되자 검찰 내부에서도 은근히 견제 하는 듯한 분위기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지 서너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정치권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누구라도 서울지검장인 나에게 직접 불만을 털어놓을 입장은 아니었다. 내가 틀린 일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여러 경로를 통해 내 밑의 차장검사나 부장들에게 “너희들이 검사장을 말려야지 그러면 되겠느냐”며 질책을 늘어놓았던 모양이다. 그 때 정대철 씨에 대한 구속이 집행되고 나서 신상규 3차장이 “‘서울의 봄’이 아니라 ‘서초동의 봄’이 왔다”고 표현한 것도 지나친 과장은 아니었다. 그만큼 어려움을 무릅쓰고 진행된 수사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정대철 대표가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자신은 법적으로 허용된 정치자금을 받아 정당 운영비에 사용했을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강제 구인은 어림도 없었고, 적당한 구실을 붙여 자발적으로 출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 2003년 7월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로 출근해 고위당직자회의에서 보고를 듣고 있다. /전기병 기자
더욱이 사건이 정치적인 공방의 모습으로 변질된다면 수사 방향이 어긋날 우려도 적지 않았다. 내가 수사팀장인 채동욱 부장에게 “정치적 공격에 정치적으로 답변하지 말라”며 주의를 주었던 것은 그런 때문이었다.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요즘 검찰이 간덩이가 부었나 보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을 때 그가 “요즘 내 간은 건강하다”라고 답변한 것이 그런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사건에 대한 논쟁은 법률적인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최선이었다. 상대방의 대꾸가 어떻든 간에 적어도 검찰의 답변은 법률적이어야 했다. 시류에 민감한 정치적인 사건조차도 ‘비(非) 정치적’, 또는 ‘탈(脫) 정치적’으로 만드는 것이 수사팀의 실력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직접 구술한 공개소환장으로 압박하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공개 소환장이었다. 내용을 수사팀에게 받아쓰도록 하고는 내가 직접 구술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A4 용지로 다섯 장 분량에 이르는 그 내용을 언론에 뿌렸다. 작성자 이름이 여환섭 주임검사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절차상의 문제였다. 검찰청 출입기자들도 무릎을 칠 만큼 내용은 구구절절했다.
‘그동안 검찰은 민주당 대표라는 중책을 맡고 계신 의원님의 입장과 사안의 중대성을 충분히 감안하여 의원님과 관련한 혐의 내용은 물론 의원님에 대한 출석요구 사실에 대해서도 철저한 대내외 보안을 유지해 왔습니다. 언론 보도에 의원님께서 윤창열씨로 부터 순수한 경선-대선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하면서 마치 이 사건 수사가 정치자금에 대해 진행 중인 것처럼 비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수사는 굿모닝시티 상가분양과 관련하여 제기된 제반 비리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한 통상적인 형사사건 수사에 불과하며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와는 전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만약 의원님께서 약속하신 일시에 출석하지 않으신다면 부득이 일반적인 형사사건 처리절차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 대표가 출두를 거부함에 따라 수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3000여명에 이르는 분양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압박했던 것이다. 전 재산을 날려버리고 허탈해하는 피해자들의 하소연을 풀어주기 위해서도 검찰 출두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국민이 그를 소환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논리였다.
검찰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며 반발하던 그였지만 이러한 호소문에 가까운 소환장에 이르러서는 소환을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다른 문제로 기자회견을 하면서 “요즘 검찰은 언론 플레이도 잘 하더라”라고 지적했던 것도 이 공개 소환장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칭찬이었는지 비아냥거림 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눈길을 끌었다는 증거다.
여당 대표에 대한 소환 방침이 보도되자 대검찰청 홈페이지의 자유 게시판에는 국민들로부터 서울지검의 수사를 격려하는 성원의 글이 이어졌다. “앞으로도 검찰이 계속 파이팅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온 국민을 대표해 검찰청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검사들도 내부 통신망을 통해 “여당 일각에서 금번 수사를 두고 검찰이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는 것을 보니 오히려 기분이 좋다.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라며 고무된 분위기를 전했다.
정 대표가 소환에 응한 것은 공개 소환장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도 두어 달 정도가 지난 뒤였다. 이미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체포동의 요구서가 국회에 계류 중이었다. 상가 분양 피해자들은 한밤중에 그의 집 앞에까지 몰려가 촛불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의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소환에 응하지를 않던 그도 이제는 달리 피해나갈 방법이 없었다.
베베미뇽 벤_이은영 - 인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