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은 마음을 따르고, 환경은 마음에 따라 변해(善惡隨心, 境隨心轉)
2026년 10월 7일
신운(新雲)
송나라 이창령(李昌齡)이 주석한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릇 마음이 善에서 일어나면 비록 아직 善을 행하지 않았더라도 길신(吉神)이 그를 따른다.“
즉,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서 선념(善念)을 일으키면 비록 아직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았을지라도 길신(吉神)이 이미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반대로 마음속에서 악념을 일으킨다면 비록 나쁜 일을 아직 저지르지 않았을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나쁜 생명과 기운들을 불러들이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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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주 - 수련계에서는 고대로부터 물질과 정신, 즉 몸과 마음은 하나임을 주장했는데, 현대 의학계가 과학적 실험으로 밝힌 바에 의하면 몸과 마음은 하나로 늘 서로 영향을 미치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구체적인 물질로 변화되어 육체에 작용함을 발견했다. 예를들어 매실을 생각하면 침이 분비되고, 야한 생각을 하면 음기가 발동하여 애액이 분비되는 등이다.
우리의 뇌는 수십가지의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하는데, 사람이 긴장하고 분노하면 뇌에서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물질이 분비되고, 공포감을 느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고 한다. 두 물질 모두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으며, 혈관을 수축시키거나 막는 작용을 하여 기혈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게 한다. 기혈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면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가 다량으로 발생하여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관용, 감사 등)으로 받아들이면, 단백질이 부신피질 호르몬과 베타 엔돌핀으로 분해된다고 한다. 부신피질 호르몬은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베타 엔돌핀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작용을 한다고 밝혀졌다.
즉, 고요하고 평화롭고 감사한 마음을 지니거나 혹은 부정적인 생각과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에 따라서 심신에 긍정적인 물질이 형성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물질이 형성되기도 하는 것으로 마음의 선악에 따라 산생되는 물질의 성질도 변한다.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 즉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에 사람의 마음(생각과 감정)에 따라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과 뇌의 구조가 변하고, 뇌에서 분비된 물질과 뇌의 구조는 다시 사람의 마음과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德과 業은 정신이자 동시에 물질이며, 원망과 미움 등의 나쁜 감정을 가지면 나쁜 언행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해로운 물질의 분비로 자신을 스스로 해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생각만 해도 곧 業이라고 말한다.
업력도 물질이기에 사람에게 업력이 많으면 몸과 마음이 병들거나 천근만근 무겁고, 업이 적을수록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경쾌하다.
명나라의 감산(憨山)대사가 한 말이 있다.
“만약 惡念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자를 수 있다면 업력의 근본은 그 자리에서 제거된다. 망념(妄念)도 일어날 곳이 없다. 그래서 속세를 초탈하여 성인이 되는 관건은 다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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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나는 전통문화 이야기 한 편을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고 다른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 자라나 마음속에 깊은 원한을 쌓았다. 성장이 된 후, 그는 원수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칼을 품은 채 원수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이웃집 앞을 지나갈 때,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볼 수 있었던 한 이웃이 그의 뒤를 원한 맺힌 귀신들과 악귀들이 무리지어 따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올 때, 이웃은 그를 따르던 악귀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선하고 광명한 생명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웃은 이상하게 여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갈 때 저는 정말로 분노에 차 있었고 감옥에 가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원수의 집에 도착해 그의 아이들을 보자 제 마음이 문득 약해졌습니다. 만약 제가 그들의 아버지를 죽인다면 이 아이들은 예전의 저처럼 가족을 잃고 고통과 원한 속에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란 후에 또다시 저를 찾아와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원한이 원한을 낳으면 언제 끝이 나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는 칼을 내려놓고 돌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그 어떤 거창하고 대단한 선행을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을 죽이려던 악념을 버리고 아이들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선한 마음을 냈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 한 생각 사이에 그의 뒤에 있던 생명들과 주변의 장(場)은 이미 변해 있었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듯, 사람의 염두는 단순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아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선념을 품으면 선량한 생명과 요소들과 서로 통하게 되며, 사람이 원한과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사악한 생명들을 불러온다.
원한 맺힌 귀신과 악귀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이 처한 환경이 어찌 평안할 수 있겠는가? 반면에 늘 선념을 품고 길신(吉神)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그의 생명이 걸어가는 방향이 자연히 달라질 것이다.
물론 길신이 따른다고 해서 인생에 풍파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며, 더욱이 세상의 재물과 향락을 즉각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복보(福報)는 흉한 것을 만나도 길한 것으로 변화하는 것(逢凶化吉)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는 것이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미래를 다시 선택할 기회를 얻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李洪志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1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의 心性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신체에 곧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당신의 心性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신체상 물질에 필연코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어떤 변화인가? 당신이 추구하고 집착했던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을 당신은 버릴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병 하나에 더러운 것을 가득 채워 넣고 그것의 마개를 꽉 틀어막아 물에 던지면 그것은 역시 물밑까지 가라앉는다.”
병이 물속 바닥으로 가라앉는 까닭은 그 안에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들을 끊임없이 쏟아내야 비로소 병은 점차 가벼워져 마침내 물 위로 떠오르게 된다. 수련도 마찬가지이다. 질투, 원한, 투쟁, 과시, 두려움 및 온갖 욕심들은 겉보기에는 단순히 사람의 사상과 집착으로 보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물질과 생명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그러한 좋지 않은 물질들은 계속해서 존재하며 사람의 신체, 기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안으로 찾을 수 있고 이러한 집착들을 똑바로 인식하여 버릴 수 있다면 생명의 물질 구성은 그에 따라 변화할 것이며 신체와 환경 역시 상응하는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속인이라도 만약 원한과 악한 생각을 내려놓고 관용과 선함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복분을 쌓는 것이다. 수련인이 끊임없이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의 사상과 신체를 정화한다면 생명은 점차 더 높은 경지로 승화하여 마침내 원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선악은 마음을 따르고, 환경은 마음에 따라 변한다(善惡隨心, 境隨心轉)”는 것은 결코 단순한 표어가 아니다.
우리는 타인과 모순에 부딪힐 때 안으로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자극받은 그 마음을 찾아내어 그 이면에 숨겨진 집착을 똑바로 보고 진정으로 그것을 버리기 위한 것이다. 집착이 끊임없이 줄어듦에 따라 마음은 점점 더 청정해질 것이고, 신체 역시 수련 속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원래 긴장되고 대립적이었던 환경 역시 그에 따라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우리는 늘 외부 환경이 먼저 변한 후에 자신의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수련은 우리 자신을 먼저 바꾸라고 요구한다. 원한이 관용으로 변하고, 투쟁이 양보로 변하며, 불만이 감사함으로 변하며, 악념이 선념으로 변할 때 눈앞에 보이는 환경 역시 자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경지가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선악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진실인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