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어린이재단 임신혁 본부장의 전화. 어린이재단 나눔대사로 세상에 굶주린 아이들의 실태를알 리고 도움의 손길을 이어달라는 요청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름뿐인 대사가 아이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계속되는 요청에도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후원자로 남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 같았다. 끈질긴 임신혁 본부장의 설득에 2006년 ‘내 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좋다’고 나눔대사로 활동할 뜻을 전했다. 그리고 작년 베트남 해외봉사 이후 두 번째 해외봉사 길에 올랐다.
하루 12시간 새를 쫓는 허수아비 소년, 아이반 “에휴.”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지 벌써 한달, 아직도 당시의 사진과 영상들을 보노라면 가슴이 아파 탄식이 절로 나온다. 2월 11일 오후 4시 40분, 16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아프리카 우간다에 도착했다. 허수아비 소년 아이반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동차로 4시간을 더 달려 우간다 동부에 있는 농촌 마을 부시아로 가야 한다. 허수아비 소년? 궁금증보다 긴 여정에 가물가물 잠이 쏟아졌다. 봉사단 차량이 마을에 들어서자 온 동네 아이들이 뛰쳐나와 반긴다. 아이들의 옷은 남루하다 못해 너덜너덜하다. 어느 집 걸레로도 쓸 수 없을 만큼 낡은 옷, 그 옷을 입고도 어찌나 해맑게 웃는지. 눈은 또 왜 그리 맑고 투명한지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우리가 찾는 아이반은 그 아이들 속에 없었다. 논보다는 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쩍쩍 갈라진 논에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가운데 우뚝 솟은 붉은 진흙더미, 그 위에 한 소년이 꼼짝 않고 서 있다. 땡볕에 소년을 바라보기도 힘들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씻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지르며 나뭇가지에 진흙을 뭉쳐 허공을 향해 휘두른다. 절반 이상 낡아서 형태도 없는 티셔츠를 입은 이 아이가 새를 쫓는 허수아비 소년 아이반이라고 했다. 무표정한 얼굴과 경계심 가득한 눈빛, 봉사단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나뭇가지에 진흙을 뭉쳐 허공을 향해 날린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아이반은 쏟아지는 햇볕을 받으며 새들과의 전쟁을 한다. 그렇게 받는 월급이 5달러(5천원). 몸이 아픈 할머니와 네 명의 동생, 소박맞은 고모와 조카까지 일곱 명의 입이 아이반만 바라보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열네 살 아이반의 어깨는 프로 투포환 선수처럼 근육이 자리잡고 있다. 우간다 사람들에게 최고의 재산은 입고 있는 옷 한 벌이란다. 낡은 옷 대신 새 옷을 입히고 보니 아이반의 얼굴이 훨씬 더 훤칠하다. 소원이 뭐냐고 묻자 처음으로 활짝 웃으며 “선생님”이라고 한다. 마을에는 선생님 말고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없다. 대부분 에이즈 같은 불치병에 걸렸거나 영양결핍으로 운신하기조차 힘들다. 아이반이 태어나서 본 직업이라곤 선생님밖에 없으니 아이반에게는 선생님이 최고의 직업인 것이다.
새 옷을 입고 다시 새를 쫓기 시작하는 아이반. 새는 야속하게도 아이반이 진흙뭉치를 던지면 잠시 도망치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다시 돌아왔다. 이 싸움의 끝은 없다. 언제쯤 아이반이 이런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열네 살 어린 소년 아이반은 일곱 명 가족의 생계인 단돈 5달러를 위해 오늘도 아침 7시부터 해가 지는 저녁 7시까지 쉼 없이 소리를 지르고 진흙뭉치를 던진다.
닭죽 한 그릇에 폭동이 이는 마을 에티오피아에서도 최대 빈민촌으로 꼽히는 마르카토. 마르카토는 빈민촌 외에 에이즈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쓰레기 악취로 아이들이 길을 가다가도 실신하는 마을, 엄마의 에이즈로 갓 태어난 아이가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야 하는 에이즈, 이름 모를 병에 시름시름 앓다 죽은 아버지. 마르카토 사람들의 일생이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새근새근 낮잠에 빠져들었다. 예쁘다고 안아주려 하자 아기 엄마는 아기가 에이즈에 걸렸다며 도와달라고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이 든 아기 얼굴 위로 세상에 대한 원망이 쏟아진다. 아기가 잠에서 깨 칭얼거리자 에이즈에 걸린 엄마는 아기에게 마른 젖을 물린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가슴이 아파 손을 꼭 쥐었다. 문득 마당 한쪽 긴 둔덕 끝에 허름한 옷가지가 걸쳐 있는 게 보였다. 몇 달 전 이름 모를 병으로 죽은 남편이라고 했다. 손으로 파도 잠깐이면 시체가 드러날 정도로 얕게 파인 무덤, 남편이 살뜰해서였으랴. 젖먹이 아기와 에이즈 걸린 아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급식 봉사를 위해 마르카토 광장에 간이 부엌을 만들었다. 조리도구들이 오가고 닭 익는 냄새가 나자 새까맣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굶은 마르카토 주민들이 너도나도 음식을 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일단 텐트를 치고 안전선을 만든 후 줄을 세웠다. 작은 아이들은 이미 덩치 큰 어른들에게 밀리기도 하고 아예 줄 밖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들을 먼저 안으로 들였다. 우리네 백숙처럼 닭과 쌀을 넣고 펄펄 끓여 접시에 양껏 담았다. 흰 요리는 먹어본 적 없다는 마르카토 사람들은 처음에는 음식을 꺼리는 듯하더니 한번 맛을 보고는 게눈 감추듯 그릇을 비워냈다. 한 아이가 흰죽이 꺼림칙한지 계속 먹지 못해 먼저 시범을 보이자 주변에서 걱정들을 한다. “물도 더럽고 에이즈에 걸린 아이일지도 모르는데 한 그릇에 나눠드시지 마세요.” 에이즈는 침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몰랐더라도 아이를 먹이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배는 고픈데 먹지 못하는 아이를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시범을 보이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한술 떠보던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그릇을 비워낸다. 오물거리는 입을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아이는 금세 그릇을 비우고 다시 줄로 뛰어가 한번 더 배식을 기다린다. 닭이라 봤자 삐쩍 말라 먹을 것도 없고 질겼다. 그래도 닭고기 아닌가.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니 매끼 이렇게 배불리 먹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처음 아프리카로 떠날 때 ‘아이들을 후원해 교육을 시키면 살기 좋아지겠지’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배고픔부터 해결하고 나서 교육도 있고 뭐도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무더워 농사도 되지 않고 늘 질병에 노출돼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공부보다도 더 시급한 건 생명을 이을 수 있는 한끼 식사였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어도 생각이 나고, 돈을 쓰려다가도 이 돈이면 걔네들이 몇 끼를 먹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편해지려는 나를 자꾸 제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고두심 씨는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그녀에게 봉사란 어떤 의미일까? 고두심은 자신이 누군가를 도우면 얼마나 돕겠느냐고 반문한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람을 보고 다가서고 손을 내미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그녀는 그 본성에 충실할 뿐이지, 남을 위해서 좋은 세상을 위해서 그런 거창함을 위한 행동은 아니라고 한다. “사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죠.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못 본 척할 수 없으니까 달려가는 거죠. 그래서 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예요.” 후배 연예인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기부하는 모습들을 보면 고마운 마음부터 든다. 연예인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사랑을 나누는 봉사다.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사람은 없듯 사랑받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분명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할 수 있는 일들이에요. 하고 나면 보람도 있고 그 의미 자체로도 자신에게 큰 활력을 주죠. 아프리카 아이들의 경우, 일회성 도움이 아닌 아이들의 주거환경과 생활환경이 나아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도와주실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해요. 거창하게 시작하지 마세요. 작은 것부터, 약간의 시간 혹은 하루 담배 몇 개비, 커피 한잔만 줄이면 아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어요. 제2, 제3의 아이반을 여러분이 도와주세요.”
난생처음 맞이하는 휴식 전원일기 22년, 고두심에게 ‘전원일기’라는 드라마는 삶 그 자체였다. 전원일기 덕분에 쉼 없이 달려왔고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배우가 된 후 처음으로 드라마를 쉬고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첫 휴식을 이렇게 의미 있는 경험으로 시작해서 참 잘했다 싶어요.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도 됐으니까요. 5월부터 시작하는 드라마가 있어서 그때까지는 좀 쉬어보려고요.” 전원일기를 하는 22년 동안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켰다. 일주일에 하루, 전원일기를 위해 적어도 하루 이상은 국민과의 약속된 날이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흐뭇해하는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를 한다는 생각에 사명감마저 느꼈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도 그 흔한 해외여행 한번 못 갈 정도로 촬영 스케줄에 민감해했다. “장수드라마다 보니까 개인 사정으로 드라마의 흐름을 깨고 싶진 않았던 거죠. 방송생활에서 시간은 칼이잖아요. 그래서 모든 배우가 원칙처럼 그렇게 지켰던 것 같아요.” 쉬는 동안 ‘꽃반지 끼고’를 노래한 가수 은희와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단 열흘만이라도 마음 맞는 친구와 맛있는 것도 먹고 가고 싶은 곳도 다니며 온전히 내 시간을 갖고 싶다. 가수 은희는 아직도 기타를 멋들어지게 친다. 고두심이 좋아하는 곡을 즉석에서 연주하면 고두심은 그에 어울리는 노래로 화답한다. “사람들이 친구랑 제주도 여행 가듯 저도 그렇게 한번 놀러가 보려고요. 시집간 딸이 자기 보러 안 온다고 한마디 할까 봐 약간 걱정이긴 해도 이제는 저 대신 사랑해주시는 시부모님과 남편이 있으니 걱정 안해요. 전 그냥 친구와 제주도로 놀러 가렵니다.” 늘 타이트한 스케줄 속에서 살아서인지 미래를 위한 계획 같은 건 세워두지 않는다.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다. 그래서 활동도 언제까지 하자 정해놓지 않았다. 건강이 허락하고 시청자들이 원하는 한 고두심의 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유일한 계획이자 미래의 꿈이라면 은퇴 후 고향에 돌아가 조촐하게 사는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제주도에 내려와 ‘고두심이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누구라도 ‘옛날 배우 했던 그 여자 저 집에 산다더라’ 알려주고 툇마루에 앉아 옛날이야기 나누는 것, 그게 배우 고두심의 꿈이다. “‘옛날에는 참 그랬어’라며 내가 끓여준 찌개라도 내놓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그런 꿈은 늘 가지고 있어요. 그렇게 살아야지 꼭 그렇게 살아야지, 매일매일 다짐하고 있죠. 그게 꿈이에요. 제가 가진 제일 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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