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붓다 그리고 불타(佛陀)는 눈을 뜬 자, 깨달은 자로서 성인(聖人)을 뜻 합니다. 일반적으로 부처라 하면 불교 창시자 석가모니를 밝히는 말입니다. 부처는 신이 아니고 진리를 깨달은 성인으로서 누구든지 깨달은 자가 되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가르침 없이 깨달은 자가 있을 수 있다 하여 그러한 자는 독각(獨覺)이라 불렀으며 성인의 불법을 통해 깨우친 사람에게는 아라한이라 불렀습니다. 참으로 자비가 넘치는 논리입니다. 불가에서는 석가모니를 포함하여 일곱 명의 칠 불이 있다고 설명하는데 대승불가에서는 대우주 안에 수많은 부처가 있다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각각 천불이 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금강산이 휴전선에 의하여 막히자 금강산대신 보듬고 살아온 설악산의 외설악 지역인 설악동 정가평에 설치된 일주문 바로 안쪽에 가부좌하고 계신 청동으로 만들어진 부처입니다. 신흥사라는 큰절 집에서 만들어 모신 부처님이시지요. 저하고는 믿음의 길이 다르지만 나의 부모님이 귀하시고 존중한다면 이웃에 계신 부모님도 나의 부모님 못지않게 귀하시고 존중받으셔야 한다는 생각을 삶의 기본으로 여기고 있어 믿음의 생각이 아니라 본을 받는 마음으로 그냥 스치지 않고 목례를 한 후 잠시 인자한 안전을 보면 정념의 순간을 기억하곤 천불동 계곡 안부로 가기 위하여 비선대로 향하는 것이 저의 상례랍니다.
부처를 표현할 때 기본적인 형상은 삼십이상 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에 근거를 둔다고 합니다. 부처는 인간과 다른 모습을 지닌다합니다. 깨달은 자가 지니게 된다는 인간과 다른 32가지의 모습과 80가지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 바로 삼십이상 팔십종호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구도의 시간을 거쳐 깨닫지 않고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부처의 존엄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대지도론(大智度論), 중아함경(中阿含經),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상을 만들면서 존엄의 상징성처럼 표현하기 어랴운 점도 많아 적용할 수 없어 중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취합하여 표현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머리에 솟은 육계(肉髻)와 이마의 백호(白毫), 둥근 머리카락의 나발(螺髮)과 금색의 신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팔각 석등이 부처곁에 세워진 이유는 자비 광명을 뜻하는 것으로 연등과 일맥상통합니다.
4월 초팔일이 다가오면 개인적으로 아픔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잔인한 달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달이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어보니 삶의 맥락들이 충분하게 이해가 되고 그 아픔들도 성숙한 마음으로 서서히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순리에 입각해 나가는 방도가 자연스럽게 제 마음에 깃들게 된 것 같습니다. 어느 자식이든 부모님을 잃는 것처럼 큰 슬픔은 견디기 어려운 삶의 질곡입니다. 저 역시 아버님을 4월 초파일 다음날 9일 약 2개월 보름 자리를 보존하시다 황망하게 떠나시는 것을 가슴 아프게 경험하였습니다.그리고 몇 년 후 저에 결혼식을 보시고 손주를 품에 안고 키워 주신 어머님 마저 같은 달 10일에 아버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이러한 큰 슬픔이 겹져진 4월은 당연히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양친께서는 봉은사 대웅전 앞에서 면사포와 연미복을 입으시고 혼례를 치르신 후 기념촬영을 하신 사진이 전해 오고 있습니다. 성장하면서 어머님은 절기에 맞춰 절애 다니셨던 불자셨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사월 초팔일이 다가오면 부모님이 더욱더 그립다는 생각에 산사를 늦은 밤에 찾아 연등 달린 산사의 정경을 바라보며 부모님을 그리워하곤 하다 내려와 장형님 댁에서 모시는 제사에 참여하곤 했습니다. 신자로서 믿음이 아니라 그리움에 따른 행각이었던 것입니다.
산사가 자리 잡고 있는 지형은 아름다운 풍광이 뛰어난 명승지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절 아래 마을까지 각종 편익시설이 가득하지 못했던 시절, 절 아래 마을이라 사하촌이라 부르던 산마을에는 겨우 시주용품이나 팔던 잡화점 한 곳과 관광객의 주류를 이루던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을 위한 관광용품점만 있던 관계로 등산을 위해 찾던 등산객에게 산사는 등대같은 존재였습니다. 먹을 것을 내주고 처소까지 제공해 주어 외설악에서 내설악까지 넘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봉정암도 그랬지만 오세암과 영시암, 백담사도 많은 신세를 졌던 산사였습니다. 아무리 늦은 밤에 방문하여 인기척을 앞세우며 들어서면 반갑게 맞이해 주셨던 스님들의 얼굴이 지금도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하는 행위를 불가에서는 봉축(奉祝)이라 합니다. 사월 초팔일이 다가오는 시기를 빌려 석가탄신을 봉축해 드리며 학창 시절 산악대원들을 이끌고 또는 산을 사랑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설악을 종주하고 외, 내설악을 타고 넘으며 받은 자비심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그리고 봉축의 마음을 불가에 전해 올립니다.. 또한 참 나를 찾아 어리석움과 욕심을 비워 덧없고 허망하게 흐르는 삶을 종식시키는 기운을 잠시 빌려 마음의 양식으로 삼아 나가겠습니다. 모든 불자님들께서 성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꾸벅~~~
https://youtu.be/RtPwBk0pqKE?si=YdsKj1MjOMSf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