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선대사 입적시 읊은 해탈시.hwp
人生(인생)
서산대사(西山大師) 입적시 읊은 해탈시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 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요.
줄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겠소.
내 것도 아닌데...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오.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 일 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 피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 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하늘도 있지 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 게 있소.
살다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다만은,
잠시 대역 연기 하는 것일 뿐,
슬픈 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 게 있소.
기쁜 표정 짓는다 하여
모든 게 기쁜 것만은 아니요.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 겁니다.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인생이란 것은 말일세!
▣ 서산대사 : 휴정(休靜, 1520∼1604)
휴정은 1520년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서산이란 본래 묘향산의 별칭인데, 만년에 그가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법명은 휴정, 호를 서산. 청허라 했다. 9세에 부모를 잃고 훗날 임꺽정을 진압한 안주목사 이사증의 양자로 입적되어 서울에 올라온다. 15세에 진사시에 낙방하자 지리산에 들어가 영관을 은사로 승려가 되어 30세에 승과에 장원급제한다.
36세에 교종과 선종의 일을 총괄하는 양종판사(교종판사와 선종판사)가 되고 이어 보우대사의 후임으로 선.교 양종의 일을 총관리하던 봉은사의 주지가 되었다. 한편 이런 불교진흥이 이루어지자 유교의 벼슬아치와 선비들은 물끓듯이 일어나 승려들을 비난했고, 그 비난은 주로 보우에게 집중되었다.
휴정은 3년 동안 이 일을 본 후 일체의 승직을 사퇴하고, 역시 명예는 자기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이어 금강산.묘향산.지리산 등을 두루 여행하게 된다. 그는 금강산에 있으나 묘향산에 있으나 항상 1000여 명의 제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는 제자들에게 칼쓰기.활쏘기 등을 가르쳤다. 임진왜란 3년 전에 정여립 모반사건도 일어나는데, 여기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잠시 투옥된 적도 있었으나 곧 혐의가 풀려 석방되었다.
1592년 일본군은 동래를 함락시키고 신립 장군이 충주에서 패하자 선조의 어가는 마침내 의주에 도착하고 선조는 휴정을 찾았다. 선조를 만난 휴정은 신이 비록 늙고 병들었으나 나라의 위급함을 앉아서 볼 수는 없습니다. 늙은 스님은 절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하고 젊은 스님들은 나라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이미 그의 나이 73세였다. 이에 선조는 휴정을 8도 16종도총섭으로 삼았고 73세의 휴정은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려 1500명을 모으고 이들을 지휘하였는데 이때 그의 제자들 중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유정(사명대사). 영규. 처영이다.
그후 승병들은 한양탈환에 공을 세웠고 전국 각지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난이 잠잠해질 무렵 휴정은 승병의 지휘권을 유정과 처영에게 넘겨주고(영규는 금산싸움에서 조헌과 함께 전사) 1594년 다시 묘향산으로 들어가 원적암에서 조용히 여생을 마쳤다.
휴정의 생애는 무엇이 참된 승려의 길인가를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 여파는 마침내 전국의 승려들에게 감화를 주었고 그것이 결국 선불교 중흥의 새 장을 열기에 이르른 것이다. 실로 조선불교는 휴정이라는 거대한 봉우리의 출현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도 매우 잘 지어 불교의 깊고 신묘한 경지를 읊은 불교시와 애국시가 많이 남아있다. 저서에는 <청허당집><선가귀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