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스바얌부나트 사원과 골목 안의 스투파(塔)
스바얌부나트는 불교사원이란다. 두르바 광장에서 걸어가기로 했다. 골목길을 걸어 가면서 묻고 또 물었다. 쉽게 그 자태를 보이지 않다가, 저 멀리 산 위에 하얀 스투파가 보인다.
“설마, 저 탑 있는 곳은 아니겠지?”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멀게만 느껴진다. 할 수 없이, 가로 늦었지만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100루피에 흥정.
택시를 타니 이내 도착. 100루피 역시 외국인 관광객이니까 치르는 값이라는 느낌.
산 밑에서 올라가야 한다. 택시기사는 이 절을 “몽키 템플”이라 했는데, 과연 원숭이가 많다.
산문은 따로 없지만, 세 분의 주처님 좌상이 그 입구를 알려준다. 다 현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탑까지는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무릎이 좋지 않은 아내는 밑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혼자 오른다.
외국인에게는 입장료가 200루피(내국인 50루피). 멀리서 보였던, 네팔 양식의 흰 스투파(탑)가 중심에 서있다. 산치(Sanchi)대
탑에서 보는 듯한 복발형이다. 중심부는 전부 하얗다. 그리고 그 위에 좌불(坐佛)이 앉아 계신다. 사방으로 다 앉아있는 사방불(四方佛)인데, 하얀 복발 부분에도 산치의 네 문을 대신하려는 것인지, 그 아래부분에 작은 불상을 모셨다. 역시 사방불인데, 수인(手印)은 항마인(降魔印)과 선정인(禪定印)을 서로 교체하는 형식이다.
산정에 터가 좁아서, 사진으로 큰 탑을 한 컷에 다 담을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절에서 가람배치나 공간의 분할을 중시한다. 그래서 탑이라 해도 하나, 혹은 둘을 모신다. 그런 미학이 우리나라 사찰의 조형에서는 중요하고도, 장점이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네팔에서는 그렇지 않다. 수많은 불탑을 만든다. 큰 탑이 있어도, 그 주변에 작은 탑들을 만들어서 빈 공간이 없을 정도이다. 이런 모습은 간다라에서부터 보였으니, 그 뿌리가 깊다. 그만큼 신앙의 열기가 뜨거웠을까.
탑 뒤에 작은 불전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공양물을 바치려고 줄 지어 서 있다. 한 건물 안에는, 네팔이 순례객들이 부처님께 바치려는 공양물을 준비하고 있고 ---.
그 맞은편, 탑 입구쪽의 한 건물 안에서는 순례객들이 둘러 앉아서 밥을 먹는다. 신문지 위에, 밥이나 커리 등 네팔식 백반(달밧)을 먹는다.
그리고 여기도 티벳불교의 법당이 있다. 아마도 티벳 스님이 계신 것같다. 네팔에는 불교가 어느만큼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특히 테팔인에 의한 네팔인을 위한 네팔인의 불교 말이다. 티벳불교와는 다른 네팔불교, 그 존재가 궁금하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네팔의 불교라 할 수 있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지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점심 이후에는, 계획했던 파슈파티나트사원 방문은 취소. 그보다는 아침에 본 골목을 좀더 탐험해 보기로 한다. 역시 이 판단과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골목이라 해도, 수도 카트만두가 아닌가. 집들은 모두 4층 이상은 되는 듯 싶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아파트다. 아파트들 사이로 난, 그 골목길들을 걷다 보면 쪽문이 나있다. 키 작은 쪽문.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드렁가 본다. 그 안에는, 마치 동굴 저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 어느 순간 밝아지면서 눈 앞에 무릉도원이 펼쳐지는 것처럼, 광장이 나타난다. 사각형의 네 변은 모두 아파가 둘러있고, 그 사이 공간을 광장으로 쓴다. 아이들이 구슬치기를 하고, 아낙네들이 머리를 감거나 수다를 떨고 있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지금 아파트로 쓰는 듯한 그 건물이 옛날에는 절이었음을 알려주는 것들도 있다. 적지 않다. 아름다운 벽화나 문에 새겨진 부처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예의 네팔식 스투파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골목 안에 숨겨진, 혹은 남겨진(살아남은) 스투파라고 할까. 짐짓 모르는 채, 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힌두 신이에요?”
“아뇨, 부처님이에요.”
알고 있다. 그 중에 어떤 불탑에는 촛불이나 기름등잔을 피워둔 흔적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골목 안의 스투파(塔)」라는 제목이다.
그대, 보신 적 있으신가요?
네팔에서 카트만두 시장가는 골목길
나지막히 하얗게 열려있는
쪽문 안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빠와 어린 아들이
만국공통의 사랑의 언어, 배드민턴을
하는 곁
무릉도원처럼, 환하게 열린 광장
중앙에
하얀 스투파 하나
엎드려 있는 것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느 때는 많은 수도승들 모여서 경을 읽었을 그곳
이제 절도 없고
스님마저 다 떠난 뒤
숨어 있는 듯
골목 안에 버려진 듯
남아있는 스투파
그대,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래도 가끔 불법의 우파니샤드(奧義)
아는지 모르는지
부처인지 힌두의 신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등잔에 기름넣고 불 부치는
아낙들
전혀는 없지 않을
카트만두 시장의 골목길
그 안에
엎드려 잠든, 소처럼
엎드려 있는
하얀 스투파,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대
(2013. 12. 9 네팔 포카라의 페와마운트 호텔)
또 하나 특이한 것은, 힌두교의 링가-요니(남성성기와 여성성기, 모두 신의 상징으로서 숭배대상임)이다. 아래의 요니(맷돌처럼 생겼음)는 그대로 둔 채, 위에 있는 링가를 탑으로 교체한 것이다. 힌두교를 불교식으로 개변했다 해야 할지, 아니면 힌두교와 불교의 습합(習合)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두가지 가능성 모두 인정되는 것일까? 이러한 형식의 탑은 골목 안에서도 중심의 하얀 스투파를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탑들에서 많이 확인된다.
네팔 불교의 현실과 역사를 알기에는 너무 짧은 방문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숙제는 숙제로 남겨두고 떠날 수밖에. 그것이 나그네의 발걸음이다.
(2013. 12. 9. 네팔 포카라의 페어마운트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