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는 못 말려

짱구는 못 말려 ‘어! 저 아이 봐라. 어찌 저리도 깜장 콩 짱구를 닮았을까.’차가 ‘톤커이 콘티넨탈’ 호텔 옆 신호등에 멈추었을 때였다.하얀 아오자이 차림의 ‘공가이(처녀)’ 가 오토바이를 몰고 내가탄 차 옆으로 바투 다가왔다.차창 너머로 손을 내밀면 아오자이 특유의 옆으로 터진 살결에손이 닿을 거리였다. 긴 생머리가 짱구를 콕 찍었기로 창문을내려놓고 망연하게 쳐다보았다.‘짱구가 아이를 낳았다면 저만큼 컸을 텐데’순간 스콜이 쏟아 졌다.그녀의 등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물결처럼 둥글게 파문을 일으켰다.수무해 넘어 저편이 경이롭도록 재현되고 있었다. 그날처럼 신호등은파란 불로 바뀌었고 그녀는 긴 머리를 날리며 사이공 강변을 향해 달렸다. ‘설마 저 아이도 ’고히비도여 사요우나라‘를 부르며 빗속을 달리는 것은 아니겠지?’아리랑 노래가 콘티넨탈 호텔 레스토랑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나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영사관은 고사하고 대표부마저도 없는 사이공으로 출장 온 지난날들이파노라마처럼 스쳤다. 택시 한대도 없는 나라에서 한국어 통역을 구하는일은 홀스타인 젖소 중에서 한 가지 색상만 가진 소를 찾는 것만큼이나어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계절상품인 의류는 납기가 생명이다. 제날짜에 선적하려고 동서남북으로 뛰던 날들은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출고할 제품을 밤도와 검사 하는데 “곤니찌와”라는 일본어가 들려왔다.나를 일본 바이어로 본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당신은 어디서 일어를배웠느냐고 물었다. 베트남 직원이 학원에서 배웠다고 대답했다. “그래! 사이공에 일어 학원이 있다?” 반색하며 물었다.“그렇다.” 완성 반 직원이 부족한 일어를 대신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일 끝나고 나를 그곳에 안내해 줄래?”“가능 하다.” 일어 학원은 사이공시내 1군에 있었고 남녀학생들이 30명쯤 되어 보였다.선생은 일본 대학생이었는데 비행기 값, 기타 경비는 정부와 기업에서나온다고 했다. 통역이 없어 고생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부러웠다.대학생을 외국에 내보내 시야를 넓히고 경험이 쌓이면 국가의동량지재가 될 것이다. 눈을 반짝이며 “오하이오 고자이마스”를 연발하는 현지 젊은이들은 베트남에진출하는 일본회사에 취직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준비 한번 잘한다.참으로 현명하다. 맨날 싸움질하는 우리나라 의원나리들과 부를 대물림 하려고편법상속으로 검찰청을 들랑거리는 대기업 총수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호랑이 없는 곳엔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던가. 일본으로 출장 가려고 몇 달 배운일본어가 반딧불이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통역으로 쓸 아가씨를 물색하는작업은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찍는 대로 낚였다. 세 명의 공가이를 대동하고개선장군처럼 커피숍으로 향했다. 후보 셋 중에서 키 크고 얼굴이 갸름한 공가이에게 눈길이 자주 갔다.그런데 일어는 제일 작고 까만 짱구가 잘했다. 그럼 짱구를 통역으로채용해야 하는데 자꾸만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다. 일 트면 이런 식이었다. ‘키 큰 처자, 일어 션찮은 건 내가 가르쳐 쓰지 뭐’ 이성은 짱구를 고르라 하고감성은 키 큰 처자 곁을 배회했다. 새벽반 일어 학원에서 한 시간씩 두어 달 배운일어로 가르쳐서 쓰면 될 거라고, 그렇게 자기 합리화에 열을 올려 감성이 이성을지배하려는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짱구가 친구들에게 뭐라고 하니까 친구 둘이 일어서더니 바쁜 일이 있다면서“사요 나라”라는 인사를 남기고 가버렸다. 어떻게 된 것이 졸지에 선택을받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할 수 없지 뭐, 꿩 대신 닭이라고 그래도 셋 중에서 짱구가 제일 일어를잘하니 통역 일은 잘할 것 아닌감.’ 그날 밤 통역 고르기는 조신하게도회사 운영방침을 착실하게 따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굽은 나무 선산 지킨다’는 옛말이 떠오르도록 짱구는 통역도 잘하고, 혼자 쌀국수도시켜먹을 수 있도록 복잡한 여섯 성조 현지어도 가르쳐주었다. 또 공장 오가는 나의발 노릇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택시가 한 대도 없던 시절 짱구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려 사이공시내가 좁다고 돌아다녔는데. 내가 해준 것이라고는 일본 가서 얻어 들은본토 일본어 몇 마디 읊은 것이 고작이었다. 하루는 짱구가 맛있는 점심을 소개하겠다면서 깨끗한 식당에 오토바이를 댔다.친구네 식당이라고 소개하고 이것저것 주문하더니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금방 내 곁으로 돌아 온 짱구 손에는 앨범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앨범에는온통 자기 사진뿐이 아닌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친구네 식당이라면서? 어째 친구는 없는 거야? 그리고 왜 그대 앨범이 여기 있지?”“친구는 놀러 갔고 앨범은 잠시 친구에게 빌려 주었어요.”라며 눈을 내리깔았다. 좀 전에 2층으로 뛰어 오르던 날렵한 발놀림이 생각나서 행여나 하고 주위를 돌아보았다.어디를 보아도 웃는 얼굴과 마주쳤다. 식당에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앨범을 구경한지 일주쯤 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특별한 별식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짱구가 오토바이를 들이 댄 곳은 짙푸른 야자나무 두 그루가 건물 꼭대기와 맞닿은작은 호텔이었다. 호텔 뜰에 식당이 있었는데 이곳저곳에 동물들이 가득하다 얼룩덜룩 구렁이가 있었고 그 옆엔 똬리를 튼 킹 코프라가 있었으며 철제 우리에는‘꽁님’이라는 고슴도치 두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안면이라도 트려고 다가갔더니털을 곧추세우고 엉덩이를 나에게 조준했다. 여차하면 긴 가시를 발사할 자세였다. 꽁님이 이웃은 자연산 오리, 비둘기, 메추리, 큰 박쥐 등의 날짐승들이 있었고,작은 연못에는 자라, 거북이들이 한 군데에 뭉쳐있었다. 동물원이 무색한 완전히베트남 ‘몬도가네’ 식당이었다. 주방 입구에서 짱구 또래 공가이가 큰 박쥐를 집어 들더니 조금도 망설임 없이칼로 목을 내려쳤다. 그리고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인사로 웃어주었지만지금도 궁금하다. 왜 나를 보고 잇몸까지 내보이며 환하게 웃었는지. 사방을 돌아보아도 입맛 다실만한 것이 없는데 주인은 자꾸만털도 많이 뽑히고 나에게 똥꼬를 겨눈 고슴도치를 먹으라고 권했다.어찌되었건 골라야 하겠기에 메추리와 작은 야생 오리를 가리켰다. 특별 식 저녁을 먹고 음식 값을 계산하려고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그런데 자주색 아오자이가 아주 잘 어울리는 여사장님이 돈을 안받겠다고 손 사례를 쳤다. “어! 왜 음식 값을 안 받아요?” 놀라서 물었다.그런데 여사장 대꾸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동생 남자 친구에게 식대 받은 언니도 있나요. 호호”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짱구 언니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 그럼 짱구 언니 되셔요?” 그런데 언니는 짱구도 아니었고살결도 뽀얄뿐더러 짱구보다 머리 하나정도가 더 큰 팔등신이었다.깜장 콩 짱구가 노새라면 언니는 얼룩덜룩 예쁜 얼룩말 같았다.도저히 한밭에서 생산되었다고 볼 수 없는 둘을 보면서“어려서 짱구 것 다 뺏어 먹었지요?”라는 농담으로 얼버무렸다. 서비스가 좋던 마담이 식당 사장이려니 생각 했는데 짱구 언니라는 걸 알고나니 서먹서먹해서 그만 식당을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짱구에게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하면 뭐가 어째서, 일전에 점심 먹던 식당은 친구 집이라고 해서헷갈리게 하고. 오늘은 아무 말도 없이 언니네 식당으로 안내를 하는 거야?” “그게 뭐, 뭐가 어때서 그래요?” 짱구가 한마디 건네고 장난기가 동했는지오토바이를 지그재그로 몰았다. “응, 그려 맞네, 여긴 내 나라가 아니지.” 처음 출장 온 사이공에서 고달픈 이국생활을 짱구 덕분에 복잡한 현지어도배웠고 많던 일도 무난히 해결했다. 넉 달 뒤 회사에서 후임자가 왔다.귀국해야 할 날짜가 임박해서 짱구에게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초대 장소는 전시에 미군 사령부로도 사용했다는 ‘콘티넨탈’ 호텔레스토랑으로 정했다. 내가 가면 피아노 연주자가 아리랑을 쳐주는 곳이다. 긴 생머리를 날리며 아리랑 노래 소리에 맞추어 하늘하늘 다가오는 짱구에게사이공 시장에서 사온 붉은 장미 한 다발을 안겼다. 짱구가 첫눈을 맞은아이처럼 좋아하며 작은 체구를 깡충 키우더니 큰 내 키에 맞추었다. 환하게 웃으며 마냥 재잘거리는 짱구 때문에 다가 올 시간이 두렵기 시작했다.식사 중 흐르는 아리랑 선율은 나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후식으로 나온 커피 잔을 앞에 두고 “나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짱구에게 말했다. 짱구 얼굴이 메지구름이 흐르는 하늘처럼 금방 어두워졌다.젖은 눈으로 짱구가 이렇게 물었다. “이제가면 언제 다시 오시나요?”“글쎄, 회사에 매인 몸이라서….”노란 망고 쪽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망아지처럼 큰 눈으로 나를 뻔히 바라보던 짱구가 말없이 오토바이에 오르더니“고히비도여 사요우나라”라는 노래를 부르며 빗속으로 떠났다. 하얀 아오자이차림의 짱구 등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파문을 일으키며 둥글게 퍼져갔다. 짱구가 달려갔던 길을 따라 빗속을 걸었다. 머잖아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알면서도 시나브로 스며든 정의 깊이는 헤아리지 못한 둔한 머리를 타고방울방울 빗물이 흘렀다. 등 뒤에서 아리랑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나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뒤에서 들려오는 클락션 소리에 수무해 너머에서돌아온 나는 공가이를 쫒아 과거로 달리며 중얼거렸다. “천지 생겨 사람 생겨 글 만들 재, 뜻 정자 이별 별자를어이하여 내었는고, 뜻 정자를 내었거든 이별 별자를 없애거나”     호텔 식당 입구를 바라보며 옛날을 회상하는데한때는 즐겨 찾던 호텔 식당 입구가 보였다.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