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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여행(중국 청도, 동북지역)
박신배, 신웅식, 김재원, 손혜라, 박혜원
7/3-18, 7/18-8/3
청도 도착
7월 3일 월요일, 선교 첫날
한국과 중국 청도의 시차는 한 시간이다.
청도의 시계침은 오전 11시 20분을 가르치고 있었다. 오전 11시 10분에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한 시간을 날아 왔다. 시차로 인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니 10분 걸려 날아 온 결과가 되었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청도에 온 것이었다. 애당초 길림성에 있는 길림사범대학으로 어학연수 가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정이 바뀌어 이곳 동문 심, 최 선교사의 사역지로 오게 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가.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이 무엇 때문인가.
도착하니 바로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지만 일행들이 화장실에 갔다 오니 최 선교사가 후 중국 자매와 함께 우리를 맞이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대절한 택시를 타고 30분간 달려 청도 중심 지역의 시내, 산부 호텔 뒤에 아파트 민박집으로 인도하였다. 이곳은 최 형제가 사는 집과 가까운 민박이었다. 아파트 집, 민박집은 한국에서와 분위기가 다른 아주 정감 있는 숙박이었다. 이 집 주인은 아파트 3개 정도를 임대해 하숙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중국 돈 (인민비) 400원에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는 하숙집 운영이었다. 우리 학생들과 동갑네기인 신화 현자의 어머니가 주인이었다. 그녀는 장춘에서 청도에 옮겨와 20년간 청도에 살고 있는 분으로 한국의 고향은 울진이었다.
주인집 아줌마는 밝고 헌신적으로 섬기는 아줌마였다. 남편은 해군 통신 장교 소령으로 예편하여 중국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딸은 너무나 착하고 예쁘게 생겼다. 중국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때 그 중국말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집을 구원하시길 원하시며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신 것 같다. 앞으로 2 주간 이 곳에 거하며 청도에서 어학 연수 및 선교 훈련을 하게 하신 것이었다.
비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었다. 청도의 더러운 쓰레기를 모두 없애려 하는 기세이었다. 방에 들어가 조금 있으니 이곳에 투숙하고 있는 한 남자 분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더니 우리를 보고 무엇인가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천진에 살고 있으면서 미용 팩과 피부 칩을 파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건강에 대한 해박지식과 식물에 대한 지식, 성경에 대한 지식들이 대단하였다. 그는 일 년 간 중국에 살고 있었다. 나이는 47세였고 종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왜 이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지, 혹 이 분이 나의 중국 장춘 행을 인도하도록 부르심의 도구로 사용하는 표지(싸인)갈 될 분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나중에 홀로 여행하게 될 때 꼭 연락을 달라는 말을 귀에 담으며 저녁 9시 기차로 천진으로(열한시간 소요) 떠나야 했다. 저녁 식사를 같이하며 긴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음식과 건강, 성경에서 말하는 음식, 식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는 유기농 농사의 결과물, 농산물에서 그 추출물을 뽑아 만든 미용 팩을 팔아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잡으려 계획하고 있었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중국이 외환 보유고 세계 2위라 일본을 제쳤다고 한다. 빈부의 격차는 크고 부자들의 부의 규모가 크고, 인구 15억의 시장은 방대하지만 정확한 시장 조사가 되야 한다고 한다. 중국의 빠르게 변화하는 정책을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투자 성공률은 3%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30%가 한국 사람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 왜 하나님은 이런 경제 상태를 만들어 놓았는가. 중국 선교의 장을 만들려 하시는 것은 아닌가.
오후에는 비가 와서 우산을 사서 쓰고 서점에 들려 마트에 가게 되었다.
교보문고 보다 더 큰 책방인 서성(書城)에 가서 어학 교재를 선택하였다. 그곳에서 책을 보며 중국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허리가 많이 아파서 책방에 오래 서 있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김 씨가 발로 밟아주는 안마가 통증을 가라앉혔다. 혜은이의 안마도 효력이 컸다. 첫 날부터 허리가.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기대하며.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누다가 재원이가 저녁 예배를 드리자고 제의하여 흐뭇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나누고 내일의 일정을 소개하고 웃음 꽃을 피었다. 주인 집 딸 현자들 오라해서 중국 말을 배우게 하고 젊은 사람들의 대화가 무르익는 것을 보며 나는 자리를 피해 잠자리로 옮겼다. 하루 동안의 인도하심에 감격하며 내일은 주님이 어떤 일(깜짝 쇼)을 보여주실지. 공금 8000원의 우리 한계를 넘어 어떻게 인도하시질 기대가 되었다. 우리의 기적 고백을 어떻게 들으려 하실까.
7월 4일 화요일, 둘째 날.
노신 공원
일찍 잠에서 깨어 잠언 시편을 읽으며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
선교지에서 첫째 날을 맞이한다. 주님이 오늘 어떻게 인도하실지. 아침 식사를 하려니 중국에서 유학 생활 5년을 하고 있는 채희무 형제 와서 같이 식탁을 같이 했다.
북경에서 4년간, 대련과 청도에서 공부를 하다가 이곳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는 30세 청년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를 만난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를 찾으니 어머님의 기도가 있고 신앙의 길을 가라는 계속되는 권유가 있다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9시부터 중국어 공부를 한다. 최 선교사가 선생님을 모시고 오기를 기다렸다. 진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와 3시간가량 공부를 한다. 처음으로 중국 발음 사성을 배우는데 음악성이 요구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사성을 배우려고 신경 써서 공부하고 나니 허리가 아팠다. 김재원 형제가 다리를 주물러 주었지만 요통은 멈추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오후 중국어 공부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중국 선생님이 또 왔다. 사 선생님이 와서 재미있게 중국어를 가르쳤다. 한 사람씩 발음을 교정하며 가르치는 것이었다. 특이한 교수법에 다들 긴장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점심시간에 새로운 분을 만나게 되었다. 중국의 유학생을 모집하는 대구, 진주의 대학들이 학생 모집(리쿠리팅) 하는 분이었다.
한국 지방 대학의 현주소, 치열하게 학생 모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 교육 시장의 변화의 물결을 보았다. 우리 대학의 살 길도 보이는 듯하여 생각의 물꼬를 트는 계기라 생각하였다.
수업이 끝나자 비온 뒤의 중국 거리 모습을 보고자 하는 심리가 일어서 2층 버스를 타고 차를 타고 청도 시내를 구경하였다. 시내는 국제도시로서 면모를 갖춘 번화한 거리였고, 중국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같이 깨끗하였다. 안내하는 사람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릴까 탐색하다가 해수욕장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그랬더니 그곳이 유명한 노신(루신) 공원이 아닌가. 물가까지 나가서 사진을 찍고, 그 주위에 빨간 바위가 늘어져 있는 해변 공원을 산책하였다. 가장 멋있는 청도의 관광지답게 뛰어난 경관과 붉은 색의 바위가 조화를 이루었다. 청도 선교팀 다섯 명이 즐거운 시간을 가지었다. 노신 시랑에는 중국 인기 소설가의 시들이 돌에 새겨져 있었다. 문인 경배의 문화가 배어 있는 모습이었다. 해변에서 바닷물에 발을 대보기도 하였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차 정거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여학생들이 점심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해서 물만두를 사주었다. 거기서 한국말을 배운 중국 점원과 대화하며 한 바탕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허리가 또 아파서 저녁을 먹자마자 맹인 안마 집으로 갔다. 하나님이 맹인을 도우라는 표시로 요통이 온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치료비로 40원을 내고 돌아오니 몸이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일행들이 모인 민박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일기를 쓰고 잠을 청하려 한다.
내일은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고향 민박집에서 복음을 또 전하게 할지, 참 오늘은 최 선교사의 사모 박경순 님을 보았다. 공항 교회 주일학교 때 학생이 어엿한 선교사가 되어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백일 난 딸 은혜를 안고 선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이사할 집을 구하러 다니는 바쁜 일정 속에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힘든 모습을 보니 미안하고 안스러운 마음이었다. 주여,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 우리가 최선교사, 심선우 형제를 잘 도울 수 있도록 하소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연한 만남
7월 5일 수요일, 천주교당, 기독교당, 청도한인 교회
선교 셋째 날을 맞이한다. 비도 멈추고 날씨는 좋았다. 시편 잠언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 주님이 오늘은 또 어떻게 인도하실까. 아침 식사 때에 고향집에 기거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 선생은 지방 대학의 입학생 모집을 위해 청도에서 일하고 있고, 채희무는 상해에서 온 친구와 같이 식탁에 자리를 같이 했다. 그 친구는 북경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친구를 만나러 온 대구 사람이었다. 조금 있으니 최 선교사가 방문하여 진선생이 취업을 위해 인터뷰로 인한 오전에 수업이 없는 관계로 청도 관광을 하기로 했다. 천주교당과 기독교당 관광지를 안내하러 왔다. 먼저 아침 예배를 드리며 선교와 평화란 제목의 설교를 하며 하나님의 선교와 평화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어제 갔던 노신 공원 방향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중국 당국이 입장료를 받았다. 이 곳 오랜 예배당은 관광지를 만들기 위한 장소이었다. 오랜 건물이라 종교 유적지를 보여 줌으로 중국 공산당의 종교관용 정책을 보여주는 홍보용이었다.
지하로 숨은 중국 기독교인은 1억 명으로 엄청난 수이다. 그들은 수면 아래서 숨 쉬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종교에 대한 정책이 많이 완화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여 종교에서 수입을 얻고자 하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되었다. 외국 선교사가 선교를 하면 안 되는 나라. 선교하다가 걸리면 벌금을 먹여 외화 벌이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천주교 당에서 만난 성프란시스코 상, 십계명 중국어 벽화, 기독교당에서 본 오랜 시계 종, 거기서 만난 아가씨 세 명, 학생들이 예배당 밖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천주교 당에서는 네 다섯명이 유화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기독교당에서는 여러 학생들이 수업을 하러 와서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린 그림이 구도와 사실 표현 면에서 뛰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1원 짜리 요금을 내고 버스를 따고 왔다. 일이 있어서 최 목사가 먼저 내리고 우리는 내릴 곳을 찾다가 그만 지나치고 말아서 택시를 타고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하였다. 오후에는 중국어 공부를 하였다. 사성(四聲)을 발음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재미있게 공부하고, 학생들은 스메이화 선생과 약속하여 저녁에 바비큐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모양이다. 수업이 끝나자 안마 받으러 가자고 하여 죽 안마를 받으러 중의 안마 집에 가서 흥정하여 싸게 20원에 하기로 했다. 전신 안마(40원)를 받으니 아프던 허리의 통증이 가시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학생들은 나가고, 나는 수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한인 교회를 가고자 했다. 주인아줌마가 다니는 교회를 소개 받아 같이 교회에 갔다. 거기에 들어서니 많이 보았던 인물이 서있지 않은가. 홍영주 목사, 동문이자 제자이었다. 공부 잘하던 윤지영의 남편이 아닌가. 아주 반가운 만남이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놀라왔고, 그의 뜻은 신기해서 그 뜻을 헤아리기에 바빴다.
홍 목사는 담임 목사가 빈자리에 맡아 하던 설교이었다. 그는 사울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전하고 있었다. 예배를 끝마치고 사무실에서 안부를 묻는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가 묵고 있는 민박집으로 그가 함께 찾아왔다. 수박을 준비했다가 내놓아 함께 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훈춘에 선교 갔던 이야기를 하며 중국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 청도에서 선교사가 자녀 교육하기 힘들다는 이야기, 1년 월세를 내야 하는 어려움 등 이야기 한다. 나중에 한번 만나기로 하고 헤어 졌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헤아린다. 18일부터 8월 3일의 여정에 대한 인도에 대하여 물어본다.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주여 알려 주소서, 일행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목요일의 오전 일정이 예약되어 있는데, 최 목사의 사역지 방문과 고등학교 참관 일정이 잡혀 있었다. 주여 내일도 은혜 가운데 찬양하게 하소서.
우신노 교회
7월 6일 목요일, 우신노 교회
아침에 일어나 말씀 시편 잠언을 읽는다. 8시 아침 식사를 하기 전 학생 모두가 모이기까지 요한 계시록을 함께 읽는다. 이 민박집에서 새로 오는 손님을 보면서 같이 식사를 한다. 오늘은 8시 10분 까지 만나서 사역지를 가야 한다고 최 목사에게 전화가 왔다. 서둘러서 식사를 하고 나서려하는데 학생 한명이 안가겠다고 하여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네 명이 중국어 통역하는 자매와 함께 길을 나섰다. 중앙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역 우신노 지역에 있는 가정 교회였다. 할머니들이 15명 정도 모여 있었다.
최 목사가 재미있게 중국어를 한마디씩 던지며 말씀을 전하였다. 선교 사역지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며 현장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리스도인의 성도 교제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중국 전도자 형제와 만나게 되었다. 그는 순회 전도자로서 중국 교회의 저력이 이것이구나 참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황혼의 신학을 생각하고 있어서 중국 노년의 성도들을 만나게 되는 구나 생각하였다. 역사의 고난 현장을 밟아온 신앙의 증인들을 보면서 중국 교회의 산 역사를 만나고 있었다. 수박과 복숭아, 살구 과일을 대접하여 먹고 함께 사진을 찍고 아파트 교회를 나섰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늘 길에 한국인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며 청도에 있는 한국인 10만 명이 있는 듯하여 중국 안에 한국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중국어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통역하는 자매가 함께 공동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어학 공부를 하게 하는지. 다섯 명이 열심히 중국어 공부를 하였다.
길림대학 어학연수가 취소된 한을 푸는지, 계속 중국어 어학의 비전을 보여주시려는지. 스메이화 자매(오후 중국어 선생)와 신웅식 형제의 결혼 이야기가 수업 시간에 웃음거리를 제공하였다. 하루 일과에 오전 오후 각각 4시간씩 중국어 공부는 선교 팀에 유익하고 알찬 시간이 되었다. 일과 후 자유 시간에 외출은 많은 청도에 볼거리를 제공하였고 문화 체험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학생들은 조금 배운 중국어 실력으로 혼자서도 여행할 수 있는 것에 신기하며 즐거워하였다.
나는 성경을 읽다가 서성(書城)에 가서 책의 세계에 빠지기도 하였고, 중국인들의 관심과 의식 세계를 살필 수 있었다. 거기서 중국의 여러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택동, 주은래, 임어당, 노신, 여러 화가들과 중의(中醫)에 대한 책들을 볼 수 있었다. 돌아와 밥해주시는 훈춘 자매와 저녁 식사를 하고 8시 저녁 집회를 가졌다. 최목사와 그의 제자, 게애학 형제가 와서 말씀을 나누며 친교했다. 특히 나이 8살 최영광, 최 목사의 아들을 볼 수 있었다. 함께 하며 푸짐한 만찬 음식들이 베풀어졌고, 영적인 양식을 나눌 수 있어서 은혜로운 교제 시간이 되었다.
노자가 살았던 곳, 공자가 태워난 태산 곡부가 가까운 곳, 이곳 청도는 아름다운 해안 국제도시로서 안빈낙도의 여유로움이 있었다. 오늘 하루의 은혜가 충만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가운데 놀라운 말씀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주여, 내일은 금요일 저녁 8시 철야 기도회가 있는 날, 90학번의 최이규, 홍영주 동문의 평화 선교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리스도 대학교의 동문부부(캠퍼스 시시)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열리게 하소서. 심선우 김혜경 부부, 또 교회 형제들이 평안하게 하소서. 주여 장춘 행은 어떻게 인도하실 런지요 기대됩니다.
바베규 숯불
7월 7일 금요일, 해수욕장, 동네 해변
중국 청도에서 하루가 또 밝았다. 시편 7편부터, 17, 27, 147편, 잠언 7, 17, 27장을 읽으며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인다. 선교팀들과 함께 요한계시록 5, 6장을 같이 읽었다. 어제의 말씀 중에 에피소드 예화 거리를 생각하며 같이 은혜를 나누었다. 2+2=4, 5-3=2. 이해하고 또 이해하면 상대를 사랑할 수 있다. 오해를 세 번 참고 참으면 이해하게 된다. 공동체 생활에 아주 필요한 말이었다.
하나님께서 다섯 명을 인도하면서 서로 보여준 모습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하루하루의 새로운 만남에서 볼 수 있었다. 고향집 민박집에서 나그네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뜻을 발견된다. 채희무 라는 친구와 우리 학생들이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친해진 것 같다. 아침 식사 중에 상해에서 온 한 친구가 와서 합류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알 수가 없다. 오전 수업을 한다. 중국어 학습 7, 8과. 한국어를 잘하는 선생으로 바뀌어서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점심식사 할 때, 해수욕장에 가기로 약속했나보다. 오후 수업을 끝내고 수영하러 가자고 해서 길을 나섰다. 태풍이 온다고 하며 서둘러 일행들이 나선다. 택시를 타고 이미 가보았던 노신공원 앞 해수욕장으로 간다. 모처럼 만에 갖는 일행들의 휴식이 이었다. 같이 일체감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동네에 있는 해변가 공원으로 가서 바베규 파티 저녁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바비큐는 중국 사람들이 즐기는 쇠고창에 고기를 꽂아 숯불로 구워 먹는 음식 문화이다.
중국에서 생활하는 한국 청년들, 선교 일행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가 다른 사람들, 하나님의 문화와 세상 문화, 하나님의 사람들과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 두 접경 지역에서 긴장감이 있는 영적 예민함이 필요하였다. 하나님이시여, 더 많은 영적 은사와 리더쉽을 주소서, 이 땅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주여 보여 주소서. 중국인들이 우리 문화의 뿌리임을 알지만 문명의 공전이 한바퀴 돌아 한국 물질 문명이 역으로 수출되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선교 비전을 보고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분들을 잘 도울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동네 해변가에서 민박집까지 걸어서 가는 길은 모험의 저녁 길이었지만 집을 잘 찾았고, 저녁 산책 운동 갔다 돌아온 고향집 사람들(부녀들) 4명을 만나기도 하였다. 하루 만큼의 은혜를 다 받고, 저녁 예배를 드리며 하루를 마감하려 한다. 주여 내일은 토요일 청도의 여러 곳을 보려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청도를 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여.
연날리기
7월 8일 토요일 해양대학, 찬양(율동)
중국 청도에서 주말. 하나님께서 이곳에 왜 보내었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알 수가 없다. 오늘은 오전 9시부터 청도 대학, 쯔모루 시장, 해양 대학을 가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시장을 나선다. 어제 함께 했던 청년들이 따라 나서기를 바래서 같이 택시를 타고 유명한 시장에 도착한다. 중국인 시장을 구경한다. 나는 빠르게 지나가며 주변 동네의 모습을 보았다. 항구까지 내려가서 한국에 가는 배들이 정박한 것을 보았다. 인천, 평택, 군산항으로 가는 배들이 있었다. 조용한 아침 항구의 모습이었다. 주변 풍물을 보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조그마한 물건들을 파는 모습이 정감 있게 보였다.
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면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가게를 연 곳이 많아서 그것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시장에서도 한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제 청년들은 바삐 어디론가 사라지고, 시장을 구경한 일행은 태동 월 마트 앞으로 갔다. 거기서 최 목사가 인도한 식당으로 갔다. 거기서 미리 나온 스메이화, 후원용 선생님이 자리를 잡고 기다기고 있었다. 처음으로 푸짐한 중국 식탁을 보며 즐겁게 일행들이 식사를 하였다. 최 목사가 초대한 식사는 8명이 함께 하였다. 중국 선교를 자축하는 시간이었다. 중국의 음식 문화의 묘미를 즐기고 태동 학원으로 가서 교회, 학원을 돌아볼 수 있었다. 후 자매의 사무실과 최 목사의 사무실도 볼 수 있었다.
선교를 위한 학원, 심성우, 심선우 형제의 손길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한 목회자의 씨부림과 사역의 결실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생각되었다. 내일 주일 예배 처소를 미리 둘러보며, 이틀 전에 온 미국인 여호수아를 만나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나와 영안로에 있는 해양 대학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대학 캠퍼스가 컸고, 오래된 울창한 나무가 있고 형형색색의 수국 꽃이 교문 앞에 있었다. 6 ․ 4건물은 역사적인 기념비로서 일제시대에 세워져서 일본의 침략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진 중국을 보면서 역사적 교훈을 갖고자 애를 쓰는 모습을 보았다. 넓은 초록색 잔디 축구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 학생들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평화로운 해양 대학의 전경을 보며 걸어 나오다.
우리 일행들은 버스를 타고 5 ․ 4 광장으로 향했다. 도중에 스메이화 중국어 선생은 거금 50원을 주었다. 그녀는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어서 뙤약볕에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하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기도 하였다. 광장에서 많은 중국 사람들이 나와서 여가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특히 연을 날리며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재원이도 연을 사서 우리 모두 연을 날려 자유로운 바람의 향연에 눈길을 두기도 하였다.
두 분이 먼저 가고, 남은 한국 선교 팀은 걸어서 집까지 가려 했다. 가는 길에서 그만 나뉘어져 뿔뿔이 흩어져서 돌아가게 되었다. 뒤늦게 오는 학생을 인솔하여 같이 가려 했지만 기다려 주지 않고 간 일원들로 인해 속상했지만 내색하기 않고 침묵 교훈을 주려 했다. 저녁 8시 예배 시간에 애교 섞인 행동에 말문에 열려 대화가 이루어졌고 모두가 찬양하고 율동까지 하며 주일 예배 준비까지 하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다섯 명이 5일 만에 하나가 되어 찬양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격하게 되었다. 이 일원들이 이제 선교 팀이 되어 동아리 힘(팀웍)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일을 맞이하게 된다. 주여, 감사합니다. 오늘은 나의 장춘 행까지 팀원들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보내심의 뜻
7월 9일 주일, 태동 교회, 희란 가족
중국에서 첫 주일을 맞는 날. 바람이 세다. 곧 태풍이 불어 올 것 만 같다. 식사를 빨리하고 요한 계시록을 읽고 아침 예배를 드린다. 재원이가 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오전 8시 30분에 만나기로 한 장소, 최 목사 집으로 간다. 거기서 태동 교회 가는 택시 두 대를 타고 이동하였다. 학원에 우리가 먼저 도착하니 열쇠가 없어서 기다리다 강의실에서 예배 준비를 하였다. 10시가 되니 미국인과 중국인들이 모여서 함께 찬양을 하고 따로 예배를 드린다. 중국 찬양과 미국 영어 찬양을 하며 선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방언으로 오순절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것을 기억하게 한다. 성령이 임하는 느낌을 갖는다. 찬양 속에 은혜를 나누고 11시 예배 시간이 되어 한국인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의 만찬 예배를 드린다. 조은경 자매의 기도, 목사 예배 인도, 한 미국인 강사 여호수아의 참여, 엄숙하면서 은혜로운 예배였다.
우리 한국 선교 팀의 찬양과 율동이 예배 분위기를 바꿔주고 성도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를 이곳에 보낸 이유인가 보다. 예배를 마치고 식사, 코이노니아 시간, 김밥과 떡, 김치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한다. 스메이화, 후선생, 심선우 형제 등과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심 집사는 10년 만에 타국에서 만난 것이다. 그에게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듣는다. 학원을 개척한 지 5년 만에 성공한 이야기를 듣는다. 조금 있다가 바쁜 듯 나중에 식사 대접하겠다고 하고 나간다. 중국인 자매 다섯 명과 우리 일행이 성경 공부 시간을 갖는다. 질문과 대답으로 성경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하나님은 욥을 시험하시는가? 중국인 회사에서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앙을 감추고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나 웃음꽃을 피며 대화할 수 있었다.
주여, 우리가 최 목사의 주일 하루 일정에 동참하며 갓난 아이 딸 은혜, 막 돌 갖 지난 아이를 키우는 사모를 보며 힘든 사역을 감당하는 모습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짐이 아닌 그들의 위로가되야 할 뗀데. 그는 우리가 족 안마를 받으러 갈 때 자신도 불러 달라가 요청하였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 목사와 심선우 형제가 잘 협력하며 선교 사역을 해야 할 뗀데. 그들의 목회 사역에 평화가 있기를 기원해 본다. 우리 모임이 영적으로 많이 성숙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고 있어서 마음 뿌듯하였다. 집에 돌아와 쉬면서 느헤미야 성시를 짓는다.
저녁 식사 시간에 밥해주시는 희란 엄마, 그 분의 딸과 중국인 약혼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의 만남, 식사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주인집 아줌마와 아저씨, 시동생이 자리를 비켜준다. 한국인 남자 조선족 남자가 싫어 중국인 착한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희란이. 가정의 상처, 마음의 상처를 가진 그녀를 보며 삼겹살 식탁에서 만감이 교차되었다. 웃음이 특이한 주인집 아줌마는 행복이란 중국어 단어를 외치며 건배(간베이)를 청한다. 동업을 정리하는 채희무씨도 식탁에서 그들의 행복을 빌어준다. 주일 저녁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모임 학생들은 길거리에서 만난 중국 여자들을 만나기로 하고 외출하고 없었다. 내일은 다시 중국어 학습하는 일과부터 청도에서 일정이 다시 시작된다.
주여, 중국에서 선교가 먼저 나의 치유 선교로 시작되게 하소서. 가정과 교회, 학교와 민족, 세계와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저녁 예배에 성경과 평화 메시자가 모두에게 은혜가 되게 하소서.
청도에 바람은 불고
7월 10일 월요일, 닥터 폴 학원, 희란 엄마 산책, 채희무
청도의 하루가 밝았다. 한국의 서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청도에도 거세게 다가오는 것 같다. 시편 잠언을 한번 다 읽는 날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 시편 탄원 기도를 드리니 아침은 더욱 밝아 왔다. 훈춘 출신의 희란 엄마가 지어주는 밥, 식사를 하고 공동체 예배를 드린다. 판단에 관한 메시지를 듣는다. 은혜를 받고 묵상하고 있으려니. 재원이가 좋으신 분이라고 어제 온 손님 한분을 소개해서 이국재 집사를 뵙게 되었다.
중국 남방 선교를 하시는 평신도 사역자이었다. 이 집에 자주 오는 것 같았다. 그는 주인 집 아저씨가 해군 사령부 예비역 통신 장교로서 영향력이 있는 분이라고 좋아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거하고 있는 곳이 좋은 곳이라는 사실. 중국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중국어 선생이 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조금 있으니 점심 대접을 하겠다고 심선우 형제가 초대하는 전화가 왔다. 최 목사 가정과 함께 명인동으로 나갔다.
가는 길에 왼쪽 발, 통풍 앓던 곳, 발바닥이 아퍼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연락이 없던 형제가 찾아주는 것에 반가와 그의 사업 터 학원으로 향했다. 큰 건물 30층 중 8층에 위치한 아파트형 건물 사무실에 있는 학원이었다. 5년 동안 고생한 결과 그 결실을 이룬 공간이었다. 상담하는 손님이 원장 옆에 있어서 그 바로 옆에 사택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있다가 서서히 만났다.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성공한 사업장, 태동의 학원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인 식당으로 이동하여 푸짐한 음식을 들며 한담을 나누었다. 두 동문이 한 교회에서 사역하지만 주님의 평안이 필요해 보였다. 평안한 식탁이기를 바라며. 식사가 끝난 후 오후 중국어 수업을 하러 일행들은 가고 나는 다시 학원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문 의사의 침을 맞으려 하지만 그 의사가 다른 곳에 출타하여 의료 도움을 받지 못하고 6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중국어 수업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선생님과 신웅식 형제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며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결혼 이야기가 수업 시간 마다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웃음꽃을 제공하였다. 수업 끝나고 바비큐 식사를 약속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숙박하고 있는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집에서 조용히 있다가 훈춘의 희란 엄마와 해변가 공원으로 산책 나갔다. 그곳에서 자갈 발 안마를 하며 아줌마가 늘어놓은 아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저씨가 일찍 돌아간 이야기, 예수 이야기를 하며 위로하고 돌아오니 희무 형제가 음식을 사와 대화하며 신앙 상담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혜라가 바비큐 파티 공납금을 준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마음이 풀어져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자리 같았다. 일상에서 조그만 평화라도 맛보는 자리는 행복한 순간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조금 있으니 우리 일행들이 들어와서 주인 집 딸 현자를 불러 같이 예배를 드리었다. 7명이 드리는 예배 자리는 천국 자리와 같았다. 오늘의 하나님의 역사는 저녁의 대단원을 멋있게 장식하며 시 23편의 말씀으로 마감되었다.
주여, 내일도 어떤 역사를 보여 주시려는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청첩장 국제 결혼
7월 11일 화요일, 윤지영 사모, 스메이화 혼인일정
어제 아픈 다리가 통풍 부위로 옮겨서 통증이 온다. 이 아픈 상태로는 선교 일정을 가질 수 없는데. 큰 무리가 된다. 걱정이 앞서지만 한편 또 주님이 감당할 만큼의 시험을 주실 테니까. 예수와 평화란 메시지를 준비하며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구절만 본다. 복음서에서 주님의 하신 말씀과 무언의 행동 장면을 찾아 새롭게 읽는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예배를 드린다. 주님의 평화를 전하니 무한 감동이 넘쳤다. 후 선생님이 어학을 가르치기 위해 문을 두드려서 경건의 시간을 마치고 어렵게 느껴지는 중국어 열심히 공부한다. 사성의 세계, 받아쓰기 시험을 보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공부 시간이 마치고 식사를 하려니 최 목사 전화가 왔다. 홍 목사 윤지영 제자 부부가 점심 대접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잘 했던 윤 사모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다리가 불편해서 움직일 수 없었지만 내가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고급 식당에 가서 처음으로 귀한 음식을 대접 받는 자리이었다. 학생들은 음식을 들지 않아도 즐겁기만 한 표정이었다.
옛날이야기를 하며 동료 교수들의 안부를 묻는다. 세월은 흘러서 이곳 청도에서 제자를 만나리라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신기하고 놀랄 따름이었다. 절룩거리는 다리로 한국인 한의원에 갔다. 침을 맞고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오후 수업 기간에 맞추려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돌아오니 다들 드러누워 있었다. 한 시간 수업을 하고 아퍼서, 침대에 가 혼자 묵상하며 통풍의 고통을 생각하고 있으니 중국 진통제를 사온다. 한참 쉬고 나서 저녁 식사를 하려니 나갔던 인원들이 물건을 사갔고 들어오는데, 거기에 스메이화 선생이 같이 들어온다. 그래서 한국 음식을 같이 맛있게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주인집 아줌마와 희란 엄마와 더불어 국제 혼인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있게 성사할 것을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짠다.
가지고 온 청첩장으로 혼인 날짜를 정하게 되고, 국제 결혼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즐거워하게 되었다. 농담으로 시작한 일이 진담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본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놀라며 스메이화의 적극적인 반응에 반가워하였다. 8시가 되어 예배를 드리며 모두 중국 말고 공시, 공시 (축하 축하)라고 말하며 축하한다고 박수를 쳤다. 저녁 예배 시간에 신웅식 형제의 흥분된 목소리로 설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루의 기적은 또 이렇게 일어나고 있었다. 주여 내일은 발이 깨끗하게 낫게 하소서. 아침 일찍 선교 사역지에 갈 수 있도록 인도 하소서.
발해 제국의 터에서
7월 25일 화요일, 혜림-목단강-동성역 발해유적지-녹도
혜림 역을 빠져 나와 바로 시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송어와 메기를 선물로 산다. 또 과일, 복숭아 수박을 사들고 시장 건물 위층의 누님 댁으로 들어섰다. 노모가 반갑게 맞아 주시고, 매형은 아침 식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만에 보는 된장찌개 식탁이었다. 정성스레 준비한 아침 식사를 하며 10년 간 한국에서 살다온 매형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국의 빛과 어두움을 정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배운 느낌이다. 지전도사의 상황을 할 수 있는 자리였다. 결혼을 해야 하고, 어머님을 모셔야 하는 장남의 역할, 교회 개척의 사명 등, 매형은 계속 처남에게 반복하여 교훈과 덕담을 하고 있었다.
조선족 가족 상황을 알 수 있었고, 조선족의 한국에서 차별받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점심 식사는 메기 매운탕을 끓여서 맛있게 먹고 발해 유적지를 향하였다. 목단강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나와 동성역에 있는 발해 유적지로 빨리 빠져 나오듯 또 여행의 박차를 가했다. 차 안에서 19살 조선족 자매를 만나 발해 유적지가 있는 곳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삼륜차를 타고 쉽게 발해 제국의 유적지를 갈 수 있었다.
주후 200-600년 사이에 당나라 때 문화 유물과 유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고구려 발해의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은 자신들의 속국, 한 소수 민족의 왕궁터라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국 문화 유적지라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발해, 고구려 역사 유적지가 아닌가. 영토 문제로 자신들의 문화 유적지라 주장하고 있으니. 발해진, 발해라는 지명을 밝히고 있어 우리의 정통성을 밝힐 수 있는 좋은 장소이었다. 대조영으로부터 역대 왕들의 영정을 모신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발해 제국의 터가 동북 삼성의 평야 지역에 위치하여 쉽게 흥망성쇠의 궤도를 탄 것이었다. 성은 간 곳이 없고 유일한 건물 하나만 남아 그 당시의 위용의 한 자락을 보여 주고 있었다.
주위의 유적지 터를 살펴보았다. 그곳에 한국 역사 탐험 팀들이 버스를 대절하고 여럿이 와서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궁궐터가 5군데 흩어져 있어 돌아다니며 흔적을 찾아놓은 것을 밟아 보았다. 또 한 곳 다른 방향의 마을에 있는 청나라 시대 유적지에 가서 사당을 구경하였다. 우상이라고 빨리 빠져 나가는 지 형제를 보며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무언으로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그곳을 다음 기약을 하고 기차를 타고 연길에 가기 위해 녹도 역으로 향하였다.
계속되는 동북 지역 여행으로 몸이 몹시 피곤해 있었지만 우리 문화의 고향, 발해의 땅, 옛날 우리민족이 말달리던 곳 그 땅을 밟고 있다는 감격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 사실에 계속 유적지를 향해 발걸음은 옮기고 싶어 했다.
주여, 내일은 한 많은 두만강을 가려합니다. 내일 일정도 붙잡아 주소서.
선구자
7월 26일 수요일, 녹도(鹿道)-연길-용정-돈화
산악 지방 녹도(사슴이 사는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어느때와 같이 아침 경건회를 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연길로 향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마을 주위 풍광을 본다. 한가로운 시골 마을의 모습이었다. 먹을 것을 좇아 어스렁 어스렁 거리는 암캐, 옷짜기 위해 실을 푸는 아낙네, 일을 가기 위해 곡괭이를 메고 가는 노인, 연길행 버스는 만원이었다. 가는 길의 가로수와 풍경은 우리나라 농촌과 매 한가지였다. 산들과 마을 모습, 장백산(백두산)을 가기 위해 노년의 조선족 친구들이 함께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시간 가량 달려서 도착한 연길은 한국의 거리와 비슷했다. 간판이 한자 옆에 한글로 쓰여 있어 조선 자치구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조선족들이 많이 있었다.
먼저 서 시장으로 가서 요기를 한다. 팥죽 한 그릇을 맛있게 먹었다. 주인 아줌마가 좋아 보여 옆에 옥수수 죽도 청한다. 그 분은 시골 아줌마의 정감 있는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연길 기독교회당으로 갔다. 교인 2000명이 주일날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에 가서 구경한다. 기도실에 권사님들이 이어서 기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기도 수첩(장부)를 보며 교회 존재 이유의 뿌리를 보는듯 하였다.
연길 역전에서 용정(화룡)가는 버스를 타고 윤동주, 문익환의 용정 중학교(대성)를 생각하며 갔다. 지 전도사는 일송정으로 인도해서 그곳에 조선족 기업가들이 세워 놓은 탑과 소나무를 볼 수 있었다. 혜란 강이 그 옆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선구자들이 말달리던 모습이 보이는 듯, 조선족 사람들이 정자에 와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놀고 있었다. 빨리 움직이는 바람에 조선족 시인이 쓴 시를 스쳐봐야 했고 강경애의 시비도 그냥 지나쳐야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조선족 처녀 두 명이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한국에 나갈 꿈을 꾸고 있었다. 아리따운 조선족 처녀들, 한국 꿈에 젖어 있는 조선족 바람에 그들도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연길에 다시 도착하여 교회당에 들러 성경 시디를 사서 역전으로 갔다. 맡겨두었던 짐을 찾고 허기진 배를 달래려 함흥식 개장국 밥을 먹고 또 이동하였다. 길림가는 기차표가 떨어져서 돈화로 가기로 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조선족 지동선 전도사 덕분에 여행의 묘비를 느끼며 즐길 수 있었다. 편한 자리에 앉아 3시간 가량 가서 돈화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길림 가는 장춘행 침대 버스를 타려고 하니 한 사람 당 60원을 내야 해서 내일 떠나기로 하였다. 주위에 초대소(여관)에 가서 짐을 풀고 목욕탕에 간다. 목욕재계, 5일간 강행군에서 지친 몸의 온갖 찌끼를 깨끗이 씻으려 했다. 내일 길림에 입성하기 위해 세례를 받고 들어가라는 의미인지. 내일은 20일 금식 기도하고 보식하고 있는 안 전도사를 만난다고 한다.
주여, 내일의 만남도 축복하셔서, 윤동주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게 하소서.
장도의 여행을 접으며
7월 27일 목요일, 돈화-길림, 안전도사, 광림교회, 차 목사, 영길교회
계속되는 여행으로 몸은 지쳐 있었다. 하루 밤 시간 휴식을 취하니 밝은 날을 맞이 할 수 있었다. 돈화에서 돈독한 평화를 찾으라고 주님이 이곳에 머물게 하였는가 보다. 오늘 지동선 씨와의 여행이 끝나게 될 것 같았다. 그는 아침 메시지 성경 말씀을 들려준다. 그리고 어제 알아 논 버스 터미널로 갔다. 마지막 여행 차비는 내가 낼 수 있어 기뻤다. 차표를 끊고 옷을 수선한다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가방을 지키고 있다가 동북 3성의 지도를 쳐다보다 지루해서 밖에 나가 있으니 한 차장이 다가오더니 표를 사달라는 것이었다. 암표 장사를 하려고 하는지, 그 부탁을 들어주니 나중에 길림 가는 차를 타고 갈 때 우리의 자리 편의를 봐주어 앞자리를 내주었다. 앞자리를 선호하는 지전도사의 요구가 있었고 표 관계가 있었던 차라 쉽게 자리를 앉을 수 있었다.
길림 사범대학교 어학연수를 가려고 했었는데, 인원이 부족하고 행정 지원등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아 이곳에 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길림시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곳에 안광훈 전도사가 있었기에 우리가 오게 되었다. 그의 금식 기도가 우리를 이끌어 오게 한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소화가 잘 안되어서 배가 거북해서 점심 식사하기가 불편했다. 그는 우리를 대접하려고 좋은 식당으로 인도하더니 음식을 주문하고 소화 될 수 있는 조선족 된장국과 다른 요리를 시켜 주는 것이었다. 보식 기간 이틀을 남기고 있어서 금식의 영성에 관심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그와 대화를 하고 있으니 속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교회 이전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가 시무하는 교회, 아파트에 위치한 예배당을 방문할 수 있었다. 기도하고 나와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파트 사택을 방문하였다. 사모님이 거기 계셔서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머리에 풍을 맞아 얼굴이 부어 있었다. 빨리 치유되기를 기원하며 딸 찬미와 놀기도 하고 컴퓨터 메일도 확인하였다. 여행 후원비는 소식이 없었고, 지 전도사는 곤명에서 사역하고 있던 선교사가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해서 그곳 장례식에 참여하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차비가 비싸서(2000원 정도) 살 수 없는 형편에 안타까워하는 눈치였다. 6일간 장도의 여행을 접고 이제는 길림에서 둥지를 틀며 그와 이별의 아쉬움을 나눠야 했다. 그동안 서로 좋은 반성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며 정든 시간을 뒤로 누고 헤어졌다.
새로 온 인도자 안전도사의 안내로 금식 보식하고 있는 기도원으로 가기로 했다. 이틀 남은 기도를 마져 끝내려 가는 길이었다. 그는 우리 때문에 세속의 장소로 잠깐 나왔다 들어가는 길이었다. 하나님 이제 이곳 길림에서 마지막 여정을 돌며, 5일간의 휴식을 주시는 것입니까. 금식하며 영혼의 쉼을 가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기도원, 영성 수련원에서 만난 차철 목사는 영성에 대하여 많은 고뇌를 하였다. 그의 삶은 공동체를 이끈 영적인 인생이었다. 구도자의 길에 좋은 동무가 될 수 있는 있는 분이었다. 영성의 지혜를 들을 수 있었고, 좋은 쉼터를 제공받고 이제는 선교 여행을 마지막으로 접을 수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내일 새벽 4시 기도회 영성 시간을 기대하며 만주 벌판에서 돌베게를 하고 자던 선조들의 뒤를 따라 잠을 청하는 밤이 되리라.
내면의 세계
7월 28일 금요일, 길림시 영길 교회 수도원에서
새벽 4시, 교회 종소리가 들린다.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영성 훈련과 수행을 가조하며 수도원적 영성을 주장하는 차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각가 자유롭게 기도하게 하였다. 손님 방(케스트 하우스)에서 편하게 잠을 자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미술 전공한 분답게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조경을 하고 예배당 기도실 내부도 꾸몄다. 산책을 하고 있으니 어디선가 나타나서 종치는 곳 벤취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성 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어제부터 이야기하는 연장선상에서 교회의 변화와 기독교 영성의 개혁이 필요함을 말하였다.
교회를 하며 수도원을 같이 병행함으로서 중국 공안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끼 식사를 목사관으로 갖다 주는 것이었다. 극진한 대접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편히 쉬면서 영성에 관한 책 두 권을 주어서 묵상하며 영적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몸을 움직여야 하면 산 위에 만들어 논 통나무집 명상의 집에 가서 오랜 대화를 나누며, 반복되는 영적 이야기 가운데, 영성의 본질과 은사의 추구에 대한 이야기, 구도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대화를 마치고 여독이 풀리지 않아 깊은 잠을 청하였다.
영혼의 안식을 누리리 자연 몸의 피로는 사라지는 듯하였다. 침묵 수련을 하며 성서를 읽고 주님과 대화하는 조용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관상 기도의 단계에 들어 마음으로 주님과 기도하기도 하였다. 저녁을 먹고 뒷산에 올라 잠자리가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을 보며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기울이기도 하였다.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고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며 중국 땅에서 영성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곳에서 훈련 받은 사람들이 나환자촌에 선교하러 가고 내 몽고에 선교하러 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엇보다도 영성의 열매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영성의 아름다운 결과가 사랑과 봉사의 실천으로 나타날 때 올바른 영성이 될 것이다.
저녁 시간에 차 목사와 독서한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 있으니 안 전도사가 다가와서 주일 8시에 그가 시무하는 광림 교회에 가기로 약속하였다. 이곳 변화산의 장막집에서 갈 때 까지 편하게 지내고 싶지만 산으로 내려가서 은혜 받은 영성으로 세파에 찌 들은 동료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사명이 있지 않은가. 주여, 오늘 하루 충만한 은혜와 안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하루 이 은혜의 동산에서 또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십자가 조형
7월 29일 토요일, 영길 교회, 수도원, 쌍화진 교회
종소리에 내 영혼의 깊은 잠에서 깬다. 마음으로 하는 관상 기도, 그 기도하러 교회 예배당으로 간다. 설교 없는 묵상 기도, 목회자 없는 성도와 하나님과 일대 일의 기도 시간. 한국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성도 10여 명이 모여 기도한다. 조용한 기도 시간. 주님이 이곳에 모인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리실 것이다. 새벽 시간,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 있는 기도실로 내려가 성경책을 읽기도 한다. 벌꿀이 있는 양봉하는 곳을 보기도 하다가 산으로 오른다. 혹시나 차 목사가 변화산 집에 있는 것은 아닌가 기웃거리며 보니 거기서 자고 있었다.
아침 6시가 된 것 같아 그의 잠을 깬다. 내가 그곳에 방문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며 나를 맞는다. 함께 대화하며 앞으로 친구가 되자고 하니 아침 먹고 자신이 설계한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한다. 평화 식사, 야채와 밥을 먹고 그가 대기해 논 자가용 택시를 타고 40분가량 반석 방향으로 달려 쌍화진 마을에 도착하였다.
미술과 건축에 조예가 깊은 차 목사의 7번째 교회 건축 설계 작품이었다. 십자가 탑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벽돌과 돌을 사용하여 공간을 비워 십자가 조형을 만든 것이 특이했다. 그 교회 시무 전도사, 용비봉씨를 만났다. 30세 미혼인 청년이 큰 일을 해내고 있었다. 건축을 하면서 중국 사회 현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전한다. 주위 사람들이 방해한 일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건축을 돕는 이야기도 전해준다. 중국 돈 25만원(3000만원) 예산으로 건축을 하고 있는데 벌써 3 만원 가량 적자라고 한다.
착하게 생긴 전도사가 건축으로 인해 지쳐 링거를 맞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 설계와 시공에 대한 지시를 마친 차 목사는 돌아가자고 하여 빨리 차를 타고 영길 구전 수도원으로 향했다. 돌아가다가 참외를 사서 먹자고 하며 지갑을 찾으니 그만 교회 안에 그것을 나누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가서 돈을 찾았다. 가는 길에 참외를 사서 칼로 깍아 먹으며 하루 종일 그 장사를 하는 사람의 벌이도 알게 되고 그 한 가정 식구가 셋이서 그곳에서 일하는 것을 보며 옛날 우리 시대의 보릿고개를 생각했다. 중국 참외는 색깔이 우리와 달리 엷은 노란색이지만 맛이 있었다.
수도원에서 외출, 반석으로 가는 길이 인상 깊었다. 5년 전에 갔던 그곳을 생각나게 하였다. 반석 출신의 차 목사와 안 전도사를 만나게 된 것은 묘했다. 인연의 끈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선교는 한 치 오차도 없는 연결이 있음을 보게 된다. 과거에 만났던 김영국 교장은 중학교에서 그만두고 유태진씨가 새 교장이 되었는데 잘아는 분이라고 하며 인연이 신기하다고 생각하였다.
돌아와 다시 수도복을 입고 성경 보고, 글쓰고, 명상하고 내일이면 이곳을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동안 밥상을 차려준 순자 자매, 독신 서원하여 평생 주의 일을 하겠다는 숭고한 뜻에 경의를 보내며 테레사 수녀가 되라고 하니 그렇게 큰 분은 되지 못한다고 겸손하게 반응한다. 기도하며 가능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조금 있으니, 안전도사 조카와 어린 아이가 찾아와 내일 아침 7시 30분에 만나서 같이 갈 것을 약속한다. 주여 내일 주일은 당신을 만나는 알입니다. 그리고 4박 5일의 여정을 광림교회에서 보낼 예정입니다. 주여 예전처럼 잘 인도해주소서.
김창식
7월 30일 주일, 수도원, 광림교회, 홍기 교회
중국에서 맞는 네 번째 주일이다. 주의 만찬 예배를 드리기 위해, 주님이 인도하는 예배 처소로 가기 위해 20일 금식, 20일 보식을 마쳐 40일 동안 수도원에서 시간을 가진 안광웅 전도사, 그가 시무하는 교회로 길림 시내로 이동하려 했다. 안 전도사의 장녀와 어린 동생이 함께 나를 데리고 왔다.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교회로 셋이 움직이었다. 안전도사 친지 가족들이 처음으로 삼촌 교회에 가는 길이었다. 그리스도대 길림 미션, 길림 지역에 와서 4일을 지내면서 하나님의 선교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먼저 자기 내면의 세계, 자신이 지은 죄, 나의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자기 성찰의 시간, 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 수도원의 영성을 가지고 살면서, 이 세상에 빛을 발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금식 기도 후라 그런지, 안 전도사의 예배 인도가 은혜로 왔다. 묵사가 없어서 하지 못한 주의 만찬을 내가 있어서 할 수 있었다. 성도들이 에수님의 피와 살, 주님의 떡과 잔을 모시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감동적으로 주님의 몸과 피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예배 후에 오토바이를 타고 둘이서 30km 떨어진 곳, 홍기 교회로 이동하였다. 안전도사는 두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홍기 교회에서는 평화의 기도를 설교할 수 있었다. 성도 두 명이 예배에 참여해서 모두 네 명이 함께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주님의 분명한뜻이 있었다. 교회의 정화를 요구하시는 주님의 뜻이었다.
교회에 비가 새고 있고 김창식 성도가 불평을 하며 돈을 요구하였다. 수리비보다 더 많은 돈, 예배당에 나와서 기와 장을 보면서 낡은 것을 바꾸며 비오는 것을 바라보며 수리해야 할 상황임을 세 사람이 보면서 걱정하였다.
이곳에서 투숙하겠다고 하고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저녁 식사하러 김창식 씨와 동네 나가 같이 교제를 나누었다. 불행한 그의 가정사를 들으며 아내가 교통사고로 어럽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1살 된 아들은 놈 팽이 생활을 하고 있는 이야기도 한다. 내일 심방가자고 하고 과일과 고기를 사서 그의 집에 보내고 다시 기다렸다고 둘이 교회로 돌아왔다. 그에게 신앙의 문제가 많은 것을 보고 일대일 부흥회를 열었다. 성경을 가지고 간음하고 거짓말하는 대목을 들어 성경 사경회 시간을 가졌다. 회개해야 하며, 그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은혜로운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주여, 이곳 퇴락한 홍기 교회에서 복음의 터전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풍만수력 발전소
7월 31일 월요일, 새벽 기도회, 풍만 수력 발전소 댐, 홍기 교회
길림시내와 구전현 영길 교회 중간 지점에 있는 홍기 교회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예배당 안에서 김창식 형제와 함께 잤다. 새벽 기도회를 5시에 하기로 하여, 예루살렘, 평화 도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였다. 권남순 권사 79세 할머니가 참석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 나의 방문으로 새벽 예배를 오랜 만에 드리는 것 같았다. 교인들이 한국으로 나가서 70호 있던 가정들이 지금은 거의 교회에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퇴락한 교회에 하나님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찾고자 성령의 도우심을 바랬다.
다시 이 교회에 새로운 성령의 바람이 불기를 기원하며, 김창식 사찰 성도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간다. 5원을 주고 만두와 조로 만든 죽을 먹고, 가로수가 울창하게 늘어선 곳으로 가서 산책을 하려 했다. 이 길로 죽 가면 어디냐 물으니 일제 시대에 만든 거대한 풍만 댐이 나온다고 하여 버스를 타고 40 분가량 갔다. 강변을 따라 올라 가는 길은 호젓한 길이였다. 도착하니 댐이 보였다. 이 댐을 건설하다가 만 명 이상이 죽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15만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많은 인명을 살상하면서 만든 댐을 보니, 일본인에 대한 잔인함과 문명 이익 지향적인 면모를 보게 되었다. 김씨는 또 이야기 한다. 일본 사람들이 그 전력을 가져가려 바다 밑으로 터널을 만들어 가져가려 했다는 말을 듣고 이상히 여기기도 하였다. 문명과 야만, 야욕 속에서 일본은 15년 통치하고 결국 히로시마 원폭으로 항복하게 되었다. 역사를 반추하며 결국 중국의 댐이 된 것이다. 한국 조선교회를 둘러보려 했지만 못보고 돌아오는 시골길 풍광은 정감이 가득하였다. 한 달 동안 다니며 보는 중국 땅이 이제 남의 나라 같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 안전도사가 오기만 기다렸다. 볕이 강력해 빨래를 하여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점심 식사 때가 다 되어서 와서 같이 만두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다가 차 목사와 통화를 해서 북화 대학 일을 듣게 되었다. 또 엄두섭 목사님의 영풍이라는 책을 가져와서 그 책을 보면서 수도원 영성에 대하여 생각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비가 올 듯 천둥소리가 다가오지만 서남풍 방향으로 바람은 비껴나가 바람은 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 안전도사와 함께 홍기 시내에 나가 한국에 갈 준비를 위해 이메일을 보내고 돌아와 중국에서의 여행을 뒤돌아보았다. 은혜의 시간들이었다. 주님이 인도하신 귀한 만남에 감사할 뿐이었다.
주여, 내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이 시대에 필요한 영성, 나에게 주시옵고, 깊은 영성의 세계, 깊은 곳으로 가서 주님과 만나게 하소서. 아멘.
밀린 큐티책
8월 1일 화요일, 홍기 교회
매일 매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놀랄 뿐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된다. 비가 많이 내려서 새벽 5시에 교인 두 분이 오지 않아 안 전도사와 함께 묵상 기도를 드렸다. 이제 이틀 밤만 지내면 한국에 돌아간다. 조선족 목회자. 안전도사, 그는 교회 둘을 맡아 사역을 하고 있었다. 이 홍기 교회는 오후 2시에 와서 설교하는 교회인데, 교인들 대부분이 한국에 나가 자리가 텅빈 상태가 되었다.
비가 많이 와서 움직일 수 없었다. 오전 오후 내내 엄두섭 목사님의 영풍이라는 책을 읽으며 영성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지난 시간들, 중국의 여행지에서 봤던 것을 생각하였다. 생명의 삶 밀린 큐티, 그 책을 읽으며 은혜를 받았다. 비가 그친 후 읍내에 나가 지 전도사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교인들을 위한 조그만 선물을 샀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내일은 길림에 오게 된 목적의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북화대(길림 사범대) 사람들을 만나기로 하였다. 일이 잘되어 내년 어학연수, 선교 여행이 주 안에서 잘 진행되기를 바랬다. 주여 오늘 하루도 주안에서 인도해주서 감사합니다. 치열한 영성으로 은열(隱悅)을 누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8월 2일 수요일, 북화 대학, 수요 예배
한 달간의 선교 여행을 마감하는 날이 다가왔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날이다. 그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움직인 나날들이 많았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예수님이 명한 여행(마태10:9-10; 누가 10:4)처럼 무전여행을 할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의 탁발 수도 여행이 가능함을 체험한 기회였다. 홍기 교회의 무너진 터 위에서 부흥의 소망을 기원하며 하룻밤을 안전도사와 함께 보냈다.
안광웅 전도사는 수요 제직 모임을 위해 길림시내로 들어갔고, 나는 성경을 보며 흑화 대학에 가기 위해 차철 목사가 보낸 사람을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사찰 집사 김창식 씨가 나타났다. 음란의 소굴로 만들어 났다고 한탄하는 전도사를 생각하며, 회개하고 예수 잘 믿으라고 하니 얼굴 표정이 안 좋았다. 그가 나가더니 다시 들어와 찬송가를 틀어 놓았다. 전화가 오니 다시 나갔다. 한참 있더니 차가 왔다고 빨리 나오라는 것이다. 짐을 챙겨 차도로 나가며 재차 신앙생활 잘 하라고 다짐케 하며 손을 흔들고 흑화 대학으로 향했다. 자가용 전용 택시, 우경향 한족 운전사와 엄집사가 함께 동행 하였다. 길림 강남 지역으로 갔다. 가는 길은 비가 와서 운무가 송화강 주위로 넓게 퍼져 있어 아름다움과 청도함을 보여 주었다.
건물들이 여러 동 있고 사범 대학 국제 교류과에는 한창 건물을 짓고 있었다. 중간에 마중 나온 차로 에스코트하여 우리를 대학까지 인도하였다. 전체 교직원 회의가 있어서 담당자 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림 사범 대학 관계자 하고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깨끗하게 씻긴 길림 거리를 구경하며 다시 구전진 영길 교회로 향했다.
엄 집사님은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하였다. 아들 장일봉 형제가 주께 헌신하여 귀주에 나환자촌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신앙으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 옥수수 구운 것을 사주시고 포도와 바나나를 사서 ‘드시라’고 건네 주는 손길에서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돌아오니 차 목사는 반갑게 맞이하며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오후 1시에 수요 예배를 드리니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받은 은혜가 커서 하겠다고 응하였다. 평화 인간, 평화 세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짧게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였다. 수덕의 길이라는 영성 책을 읽으며 다시 목사관 게스트 하우스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며 수도자, 구도자의 길을 가는 것이 참다운 성직자의 길을 깨달았다.
저녁 식사를 차목사와 함께 하고 사택에 가서 서탑 교회 오애은 목사의 신앙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목욕탕에 가서 재계를 하고 영적 친구가 되어 앞으로의 영적 여행을 같이 할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 선교 여행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 기뻤다.
주여,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반가운 가족들, 사랑하는 교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치열한 영성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안전도사 처제의 공항 마중
8월 3일 목요일, 마지막 날, 길림(구전-길림시내)-장춘 공항, 인천, 학교 집으로
새벽 4시에 수도원 종소리는 울리고, 중국에서 마지막 기도를 영길 교회당에서 한다. 오늘도 주님은 기적을 행하셔서 안광웅 전도사 처제가 한국에서 돌아오는 비행로 내가 돌아가게 하셨다. 차비가 따로 없어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 놓으시었다. 차목사님은 피나무에서 양봉한 꿀과 벽타는 범 나무, 우리나라의 등나무 종류의 뿌리를 선물로 주었다. 일주일간 길림 체류 동안 보여주는 사랑에 감사하며 주의 사역을 위해 헌신한 다섯 명의 배웅에 감격하였다.
주의 선교를 위한 동지애를 느끼었다. 바울의 이별을 생각나게 하였다. 오토바이로 안전도사가 장모님 댁으로 가서 거기서 준비한 작은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처제 환송 객 틈에 끼여 한 시간 반가량 걸리는 장춘 공항으로 향하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에서 온 초등학교 자전거 여행팀이 짐을 부치느라 분주하였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는 초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의 모임이었다. 또 한쪽에서는 아마 돈벌이를 위해, 한국 꿈을 꾸는 조선족 아줌마의 가족을 떠나는 길에서 흘리는 눈물을 보았다. 동북 삼성의 심장, 장춘의 공항에서 새로운 물결이 치는 것을 본다. 한국말을 하는 공항 직원에게서 이곳이 한국 영토인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하였다. 한 달의 대장정이 끝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이번 나의 선교는 이렇게 중국 땅에서 끝났지만 계속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애를 써야 할 것이다.
주여 기도로 이 사랑의 빚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날마다 깊은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