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9:23-27 상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상이란 하늘나라 그 자체이고 그 하늘나라는 십자가 안에 감추어져 있는 나라입니다. 2000년의 저 팔레스타인의 젊은 청년이 그 당시 유대교인들과 민중들과 로마군인들의 손에 의해서 처형을 당한 바로 그 십자가와 2008년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 그게 상, 하늘나라의 본질이고 핵심이고 전부입니다.
히브리서11장 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합니다.우리쪽에서 ‘행해야 할 지니라’ 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십자가와 무슨 상관입니까? 제가요 믿었습니다. 제가 교회 다닙니다. 제가 헌금도 감량껏 해왔고 교회에서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1등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절제하면서 자기부인하면서 최선을 다 했다는 자기행함과 경험과 자기반성과 점검과 자기실력을 주절주절 늘어놓기 바쁩니다. 그것은 곧 나라는 인간은 십자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광고해대는 꼴입니다. 아니 그런 것 말고 당신은 십자가와 무슨 상관이냐고요?
요한복음 4장에서 세례요한이 십자가를 증거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합니다. 예수님이 짊어진 십자가, 곧 하나님의 저주에 풍덩하고 빠지게 되면 예수님이 몽땅 짊어지고 간다는 이 현실만 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그 십자가와 내가 상관있도록 그 십자가안에 나를 집어넣어 주시는 그것까지 그 효과로 믿도록 한 그것까지 몽땅 다 세상죄를 짊어지신 그 안에 다 포함되어 있는 서비스입니다. 성도는 평생 서비스받을일만 남아 있습니다. 그 서비스란 한순간도 십자가와 무관한 인간되지 않도록 하는, 한순간조차 반드시 십자가와 상관있도록 계속해서 만드시는 일입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고 내가 너의 상급이다’ 합니다. 인간이란 자기 힘으로는 파악조차 못할 어떤 세력, 어떤 힘에 의해서 단단히 사로잡혀 있는 상태이고 하나님 쪽에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 영적인 상대를 향하여 전쟁을 벌이시는데 아브라함은 본인이 원치 않아도 그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 본인과 이 세상이 얼마나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오해하고 반발하는지에 대해서 속속들이 밝혀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앞장세워서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형편이 지금 이렇단다 라는 그런 매개물로서 작용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십자가란 하늘나라에서 오신 예수님이 이 지상의 인간들이 하늘나라를 오해했기에 발생한 사건이기에 하늘나라의 등장이란 반드시 우리 쪽에서 어떤 오해를 했기에 대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었는가(마 5장 10-12, 6:5) 라는 그 점에 대해서 밝히 들추면서 나타나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 갈 사람맞습니까? 그 말은 십자가와 당신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 말과 같은 말이고 십자가와 당신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 말은 나를 포함해서 이 지상을 대할 때 바로 예수님이 못 박힌 그 십자가에 함께 달린 것과 같은 상태에서 세상형편이 이렇구나, 내 형편이 이렇구나 하는 식으로 파악되며 바로 그런 순간을 맛보는 그것이 십자가와 상관있는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으로서 파악되는 순간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본 내 형편, 세상형편이 뭡니까? 내 힘으로는 하늘나라 갈 힘도 없고 자격도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뭔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라는 식으로 고백하게 만드는 거룩의 힘이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광선처럼 뼏쳐 나와서 이 지상에 나타낸 하늘나라의 아름다운 광경입니다(계 4장).
주님, 저의 달음박질로는 절대 갈 수 없는 나라인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제가 똑 착각 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 공로 없습니다. 제 실력으로 어림도 없는 나라입니다(24,25). 이 지상에서 이것처럼 아름다운 광경은 또 없고 이것은 십자가에서 쏟아져서 이 지상에 내려앉아 수놓아진 하늘나라의 정경들입니다.
사도가 구원 못받을까 봐서 겁나하고, 그 두려움을 자기 행함으로 메우려는 시도를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아니하면 구원에서 떨어질수도 있다고 겁주는게 아닙니다. 비록 그런 죄악된 본성에 온종일 쩔은 세상에서 살아갈지라도 밤새 내린 눈에 온 세상에 하얗게 덮여버린 것 같이 은혜의 폭설에 이렇게 당하는 삶이 이와 같이, ‘죄인에게 내 공로란 일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베푸시는 용서, 또 용서뿐입니다’ 라고 하늘나라가 이 지상에 수놓아지는 식으로 터져 나오더라는 하늘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또 십자가, 십자가에서 쏟아지는 은혜의 폭설만 믿고, 또 믿고 증거하는 쪽으로 일생을 달음박질 더 달음박질 하면서 살았는데 바로 그 말씀이 지금도 우리가운데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믿느냐, 곧 그 말씀의 성취인 십자가와 당신들은 지금도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http://blog.daum.net/yyyhp/오용익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