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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6년 3월 26일 토요정례법회
□ 원불교를 만나서 - 신도현 교우님 강연
<질문과 답변>
- 김성현 : 단장 활동, 어떻게 하면 좋은가?
- 신도현 : 단원 불공시 근기에 맞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박순명 : 꾸준히 할 줄 아는 것이 정말 부럽다.
- 신도현 : 처음에는 유념잡고, 나중에 좋은 줄 알면 스스로 하게 된다.
- 한경덕 : 치심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
- 신도현
치심이란, 아는 것 모르는 척 하지 않고, 모르는 것 아는 척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전에 교당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잇었다. 마음일기노트이다. 이것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에 뭐라는 말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용기를 내어서 나도 편집에 끼워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무 고맙다고 성현부장님이 말씀해 주셨다. - 치심을 버리면서 참견이 많아졌음.
앞으로도 내가 잘못하면, 그랬다고 누가 해주셨으면 좋겠다.
- 서도안
도현교우에게 앞으로 결혼, 이사 등 여러 상황에 맞닥뜨려서 교당에 못오게 되면 어떻게 하실 것인지?
- 신도현
그러지 않도록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대답밖에...
□ 김제원 교무님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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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너무 잘해 주셨다. 재미있는 가운데 까닭도 있었다.
대종사님이 서울에서 익산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신 적이 있었다. 박창기 선생은 불안했다고 했는데, 대종사는 처음에는 기도올리시더니 잘 주무셨다고 한다.
무엇을 잘하면, 잘하는 재미도 있지만 칭찬받는 재미도 있었다. 그 때 어떻게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때 교만한가? 내가 해야 할 것을 놓아버리는가. 1등한 사람은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 1등과 꼴등 공부내용이 다 달라진다. 내가 보니, 유학을 가는 사람이 진급하는 경우 별로 못보았다. 미국에 1년, 2년 있다가 오는 경우. 우리 청년들이나 아닌 사람들의 경우 다녀와서도 진급을 별로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러한가. 무엇을 잘하면 다른 재미가 붙기 때문이다. 머리가 커지고 모르는 견문을 하게 된다.
하다 못해 율곡의 자경문을 보고도 원불교와 별 차이 없구나, 하면서 원불교에 대한 가치를 희석하는 경우도 생긴다. 법문을 접하지 않고 할 일을 하다 보면 멀어진다.
교당에 나올 때는 좋은데 안 나오면 악순환의 고리에 가듯이, 법을 멀리하면 자꾸 냉정해지고 거칠어지고 정신기운을 쓰는 일에 시간을 쓰기 된다.
그러면서 가치관도 특신이 되지 아니하면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외국에 가는 사람들에게
“너 다녀와서 나 무시하겠다‘
‘다녀와서 신심나겠느냐’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외학을 하다가 너의 영생 길을 놓쳐버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을 가까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주 화요일, 토요일에 법을 접해도 잘 안되는 마당에, 만약 그것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러면 외국에 가지 말라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외국에 가서도 대종사님 말씀하신 정기와 상시, 하루 일과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목표에 대한 서원이 확실해야 한다.
목표는 대입, 고시 등. 서원은 목적이다.
서원은 자존심도 억울함도 없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 아닌가.
확고한 신심이 받쳐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 어떤 성자가 유무념에 대해 말씀해 주신 분이 없다.
유무념으로 우리는 감동해야 하는데, 우리는 진공자리, 반야심경을 보고 감동한다.
대종사님은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너의 가짜 마음을 믿지 말고 정법을 믿으라는 것이다.
‘너만 들어라’라는 말에 90% 이상이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원불교에 기고 나는 사람들이 왔지만 사라졌다. 결국 재주와 인물이 아니라 이 세상의 주인이 된 사람은 확실한 신과 원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결국 생을 마감할 때에는 미소지으면서 음덕도 쌓았다.
우리는 선후본말을 알아야 한다.
말과 마차.
마차를 때리면 마차가 안 움직인다. 말을 때려야 한다.
그런데 채찍으로 마차를 때리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정말 앞으로 나아가려면 말을 채찍질 해야 하는가, 수레를 채찍질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서원과 신심이 보이는가.
당장 상받고 박수받고 돈 받는 것만 보이지 않는가.
그 근원, 정신의 영과 기를 단련하여 사람이 든든하고 믿음이 간다면?
정말 무엇인가를 맡겨도 되고, 나중에 찾아도 되는 사람이라면?
화려한 사람보다 낫다.
원불교는 본만 취하고 말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교당에 안 나오면 정신기운은 쇠해지고 나중에 허실이 드러난다.
내가 정말 인과와 영생을 인생의 급선무로 잡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것을 아는 사람은 든든할 것이다.
형상있는 명예와 부귀를 향해간다면 그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자.
여러분 죽을 때는 처자식도 놓고가는 것이다. 결국 내가 닦은 인연 수양력 지혜를 가지고 간다.
일생도 무척 짧다.
나는 짧은 일생에 이것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
죽어라고 해 보았는가. 그랬다면 성공할 것이다. 인생이 짧다고 생각하면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길다고 생각하면 여유있는 것이다.
진짜 여유는
- 할 일을 놓아두고 꾀부리는 것이 아니라
- 적적성성할 때 그 자리에 합일하는 것이 여유다.
내 계획대로 체계있게 살아가는 것이 여유다.
내 안에 마음은 텅 비어놓고 현실 속에서 여유 챙기는 것이 여유가 아니다.
내가 책을 하나 읽는 것이 있다.
정신과 의사.
한 사람이 ‘바람핀 남자’라는 소리를 계속 듣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다짜고짜 ‘진료카드 주시오’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 허벅지를 쥐어짜게 되었다.
그 해결책으로 걸음, 마라톤, 세계 곳곳에 다니게 되었다.
남들은 명의라고 하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에 허벅지를 꼬집고 걷는 방법으로 해결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이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사은의 은혜, 처처불상의 원리를 모르는 것이다. 인과의 이치를 짓고 받고.. 생사의 이치를 공부한다. 경계를 겪고 교당을 나갔던 사람들-타력을 통해서 온다고 했는데...
도현교우 “치심” 자기 혼자 나기도 하지만 탐진치가 동반된다.
탐심이 들어오고, 성내고(진심), 치심이 난다.
치심 날 때 보면 대개 성질나 있다. 그 이유는 탐심이다. 잘보이려고 했거나 이루려고 했는데 내 뜻대로 안된 것이다. 우리 교당에도 오고 싶으나 창피해서 못오는 사람이 몇 있다.
내가 신정아라고 생각해 보자.
나랑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비난했다고 하지 않는가.
주변 사람들이 신정아보고 자살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나라면 자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자존심 그같은 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경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경계를 어떻게 딛고 일어설 것인가.
서원과 신심이 있으면 된다.
금방 관 속에 들어간다. 그 자존심 관 속에 가지고 들어갈 것인가.
인간적 심정으로는 자존심 있다. 그러나 신앙적 심정으로는 어떤가 생각해 보자.
신앙의 힘으로 버틸 때 그 사람은 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파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안다.
마음의 세계는 좁으려면 좁쌀보다도 작지만
크려면 우주도 삼켜버릴 수 있는 것이다. 진공묘유의 세계란 그런 것이다.
눈앞의 욕심은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교무님 설교는 마음이 아파요”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내가 좀 달라지려고 했다. 루터와 칼뱅 공부를 하면서, 내가 그동안 칼뱅과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칼뱅은 인간이란 노예의식이 있구나, 원죄설이 맞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서로 감시하자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칼뱅은 많은 사람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설교할 때 사실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 자체도 칭찬받을 일 별로 없지 않는가, 그러면 칭찬 못해주겠다. 라고 했다.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목사가 말하기를 성경에 ‘네가 빛이다, 타력으로 구해라’ 했다고 한다.
잘못하면 너무 자학적인 부분을 강조할 수 있다.
부처님이 법등명 자등명 이야기를 하신 것.
공자님은 실수를 거듭 반복하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고 했다.
실수를 너무 안하는 사람은 오히려 공부의 기회가 없기도 하다.
사경.
인터넷 사경보다 우리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실경전, 내 마음경전을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무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도현 교우님 강연에서 보면, 내가 고시를 게을리 한 이유는,
‘판검사 되어도 별 것 있느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원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원력이 없으면서 나태가 동반되어, 결국은 공부 안하는 것으로 연동된다.
정말 원력이 있다면 나는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도현 교우가 깊이 있게 이야기해 줘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도 이번 강연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 수양의 재미를 가졌으면 좋겠다.
정신을 흩뜨려지는 재미가 아니라 정신을 모으는 재미를 알아야 한다.
첫댓글 교무님 설교는 마음이 안 아파요. ^^
4월초 단법회는 앗! 원리편이군요! &~
와~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