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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꿈꾸다
처음 복지관 바로 옆에 있던 작은 놀이터는
동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버려진 공간으로
동네 아이들이 담배피고 아저씨들이 술 마시는 공간으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네사람들은 더욱 이 곳을 찾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피해 다녔으며 점점 더 황폐해진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모든 사진 출처 : 서울동북여성환경연대 카페)
어느 날 이 공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김대심 선생님(후배 복지사)과 이야기 하던 중
그가 도시연대라는 단체를 소개했고
이후 도시연대와 연락하여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도시연대는 버려진 공간을 공원으로 바꾸는 ‘한 평 공원’ 운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 사업을 통해 버려진 이 놀이터를 바꿔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사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남을 계획한 것이지요.
도시연대의 담당자와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침 도시연대 담당자가 비슷한 나이의 동성이어서 쉽게 친해지게 되었고
생각도 비슷하여 이와 관련하여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오순희 선생님 어떻게 하면 보다 지역주민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할지 많이 고민하던 시기였기에
‘한 평 공원사업’을 통해 이런 고민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 도시연대와 함께 이 공간의 변화에 대해 고민했을 때에
정작 복지관에서는 그런 시도로 물리적 공간이 변화된다 하여도
여전히 청소년들의 비행공간으로 사용되지 않겠냐며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여러 의견으로 나뉘면서 복지관 내부에서의 갈등도 조금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복지관 부설 어린이집에는 매우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는데,
이 놀이터가 어린이집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만약 놀이터가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게 바뀐다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일단 어린이 집 직원부터 만나
평소 놀이터에 대한 생각과 어떻게 변화되면 좋을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이를 토대로 작업을 시작해 나갔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야외에서 노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놀이터 주변 이웃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하는 등
최대한 놀이터를 이용하게 될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놀이터가 바로 앞에 있던 어린이집 선생님들과는 모여 의논하고,
특히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어떤 놀이터가 만들어지면 좋을지
대부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림으로 그려보는 등의 활동을 우선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러한 지역조사 자료를 토대로
도시연대에 속한 전문디자이너와 함께 몇 차례의 회의를 진행했고
그 결과 ‘놀이기구가 없는 놀이터’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놀이기구가 없이 작은 언덕, 뒷산 등을 재연하는 공간을 만들어 놓으므로
비어진 공간을 아이들의 상상으로 채우는 놀이터를 설계하기로 했고
곧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도시연대’는
죽어가던 재래시장을 주민들과 협력하여 살려낸
그 유명한 ‘부평 문화의 거리 한 평 공원’사업을 진행한 곳이었습니다.
놀이터 새 단장, 목적이 아닐 지역주민을 만나는 구실
놀이터 공사가 막 시작되면서 진행과 관련된 일로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았는데
관리소장님께서 잠깐 앉아 이야기하자고 하시면서 꺼내시는 이야기가
놀이터를 새 단장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반기셨고
언제 찾아와서 상의할지 기다리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는 상의하지 않고 일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무척 서운하셨다며
당신에게도 부탁했다면 더 잘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무척 죄송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 얼마나 고맙던지 몰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역에 계신 분들이 좋은 뜻, 좋은 마음먹고 계신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합니다.
일을 진행할 때에 우선 한 동네 계신 분들께 여쭤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마치며 소장님께서는 당신이 재직하는 동안에는
얼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전적으로 지원하시겠다고 하셨답니다.
놀이터의 공사비용도 만만치 않아 복지관이 바자회를 통해 수익금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 또한 수익금 모금을 구실로 놀이터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레 지역주민들과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지역주민들이 놀이터 공사를 위해 바자회에 판매할 물품도 기증해 주시고
직접 바자회에도 참여해 주시면서
놀이터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커져갔고
많은 동네 분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놀이터의 이름도 이 바자회를 통해 공모했는데,
공모과정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아이들이 내 놓은 의견 중에
지역주민들에게 다수표를 얻어 확정된 이름이 ‘둥근 언덕 놀이터’였습니다.
놀이터 공사가 끝나가면서 출입문을 만드는 것과 관련해 공사 담당자들이 모여 논의했는데
관리가 용이하게 한 쪽에만 만들고 시건장치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놀이터가 동네 주민들이 함께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놀이터의 입지를 고려하여)문을 세 방향으로 뚫는 것으로 합의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놀이터가 완성되고 정기적으로 어린이 집 아이들이 청소를 맡았다고 합니다.
모래 속에 섞여 있던 쓰레기와 유리조각을 치우고
또 그 모습을 보시던 동네 어르신들이 칭찬하시는 풍경을 보면서
어울려 사는 것이 이런 모습이란 것을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어린이 집 아이들은 자기들이 이야기하고 그림으로 그렸던 모습으로 놀이터가 만들어지고
그 전 과정에 참여함으로 인해 매우 뿌듯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후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공사하는 중에도 어르신들이 오가시면 한 마디씩 거들어주셨고
일꾼들에게 음료수나 음식을 가져오는 분들이 종종 계셨다고 합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소음과 먼지로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응원해 주시고 기대해 주셨다고 합니다.
‘둥근 언덕 놀이터’ 개장식
드디어 개장식 날. 개장식은 동네 잔치였다고 합니다.
개장식 이 전에 이 일이 여기 저기 소문이 나면서
개장식 날에 해남에 계신 후원자 한 분께서 떡 만들라면서 쌀을 보내신 분도 계셨고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댄스 공연, 경로당 어르신들의 노래자랑 등
동네 주민들이 모두 나오셔서 일도 거들면서 놀이터를 구실로
많은 동네 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울리는 마당이 만들어졌다고
놀이터 설계를 담당하셨던 선생님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감동해 울기까지 하시는 등 개장식이 축제와 감동의 도가니였다고 합니다.
두 번째 한 평 공원
첫 번째 한 평 공원이 성공리에 만들어진 뒤 두 번째 한 평 공원도 추진되었다고 합니다.
아파트 단지 한 구석에 정자가 있었고 그 곳에
하루 종일 아저씨들이 모여 술 잡수시는 곳으로
처음 공원의 변화에 대한 지역 의견 조사 때에는 많은 분들이
그 곳을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술로 인한 피해가 컸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정자가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 주민들(특히 정자와 문을 마주하고 있던 1,2,3층에 계신 분들)은
새롭게 단장하면 더 많은 분들이 더 많은 시간을 술 마실 테니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파트 관리소장님과 우선 상의하면서
공간이 바뀌면 분위기가 변화된다는 것을 설명 드리면서 도움을 요청하였고
소장님은 당신이 통장님들을 만나 설득해 보겠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소장님, 통장님, 사회복지사 등이 협력하여 정자에서
술을 잡수시는 분들께 부탁드리고
각자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서 설명도 하면서 설득했다고 합니다.
이후 모두의 동의가 얻어졌고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변화될 공간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고,
그 그림을 현수막으로 만들어 붙여가기도 하면서
지역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얻어가며 진행했다고 합니다.
새롭게 정자가 탈바꿈 하면서 예상했던 대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놀러오고 어르신들이 쉬어가는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할머니께서는 멋진 그림을 가져와 달아 놓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정자 변신 공사를 구실로 지역주민들 많이 만났고 매우 가까워졌고,
지역사회 안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지나쳤고 느끼지 못하던 동네 주민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모두가 매우 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복지관 1층을 장애인분들이 점거하시다 시피 상주하시면서
술 잡수시고 담배를 피우셨다.
이에 복지관에 오시는 분도 불편해하시고 직원들의 업무에도 지장을 줬다.
이때 일일이 가정방문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설득했다.
결과가 좋게 풀렸지만 이러한 과정들 거치면서
지역사회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알았다.
주민들이 참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얼마 전 직원들과 동네 분들이 함께 체육대회를 해봤다.
어르신, 장애인 함께 어울려 한 바탕 놀았는데 모두가 무척 즐거웠다.
이런 경험들이 있은 후 동네 분들이 친구나 가족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우리가 동네로 나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구체적 실천을 위해 직원회의 후
토요일마다 당직 출근하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우리 담당 지역 전체 가정을 방문하는 계획을 세웠다. 나도 다녀왔다.
일단 지역사회로 나가야 한다.
복지관 직원은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행정가가 아니다. (오순희 선생님)“
서울시립대복지관의 한 평 공원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깨인창문이론(Broken windows ; 깨진 창문과 같이
사소한 허점을 방치하면 더 큰 범죄가 진행된다는 이론)’의 좋은 예입니다.
상황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런 조그만 변화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지요.
즉 인간은 상황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인데요,
복지관의 하는 일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소통을 이루는 것에 목적이 있기에
이러한 공간에 대한 재해석과 재설계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깨진창문이론’을 설명한 조지 켈링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깨진 창문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
결국 더 많은 창문이 깨지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아무도 상관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범죄에 대한 공포와 범죄를 증가시켜 도시의 쇠락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EBS 인간의 두 얼굴 중)“
어른들이 술 마시고 청소년들이 담배피던 놀이터와 쉼터 공간을 변화시킨 것은
강력한 규제와 단속이 아닌 환경의 변화였습니다.
상황이 변화를 만든 것이지요.
마을공동체를 살리는 일을 목적으로 삼았던 복지관이 그 일을 거든 것입니다.
오순희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이 동네 사람들은 이 마을을 늘 떠나고 싶어 하고
어쩔 수 없이 들어와 산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곳이니 버려진 공간에 애정을 가지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로 인해 동네 사람들이 마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살만한 곳으로 바꿔가는 작은 계단 하나 놓은 것이지요.
즉 상황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을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들이 서로 만나야겠지요.
때문에 마을 잔치도 하고 골목문화제도 열고 녹색가게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원, 놀이터가 있으면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자연스러운 만남,
일상적인 만남이 이뤄지니 마을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매우 중요한 바탕이 쌓이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또한 공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복지관이 (오순희 선생님은 부족했다고는 하지만)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되도록 전 과정에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스스로 만든 공원이 될 수 있도록 거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들 속에서 서울시립대사회복지관이 도시연대와 함께
두 곳에 만든 ‘한 평 공원 만들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본성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을 조금 더 선한 행동을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도록
상황을 디자인하는데 관심을 더 쏟을 필요가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 EBS 인간의 두 얼굴)”
늘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로 가득 쌓여있던 전봇대 밑을 치우고
작은 화단을 만들어 놓으니 이후로 쓰레기를 버리는 이가 없게 되었던 것처럼,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버려지고 방치된 공간에 작은 정성이 더하니
사람들이 모이고 저절로 만남이 이뤄지는 사소한 변화,
그런 사소한 변화가 마을을 변화시키는 기적의 시작일 수 있겠습니다.
*사진출처 : EBS 인간의 두 얼굴 - 사소한 것의 기적
“인간의 역사를 바꾸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 사소한 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엄청난 돈과 엄청난 시간을 쏟아야지만
엄청난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죠.(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 EBS 인간의 두 얼굴)”
글을 맺으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 돈이 없어 사회사업 못하는 것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없어야 제대로 사회사업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군요.
첫댓글 고맙습니다 김세진 선생님... 오순희 선생님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이렇게 사회사업하면 사람들이 와서 살고 싶은 마을.동네가 되겠습니다. 사람 사는 정이 그리운 사람들...
풀뿌리 NGO캠프에서 광주 YMCA 가서 본 영상과 이야기, 그리고 지난 번 선생님이 직접 들려주신 이야기가 겹칩니다.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하고 감사. 마땅한 도리요, 과정임을 절절히 깨닫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캬~ 읽는 내내 감탄 연발했습니다.^^ 놀이터가 지역사회를 만날 수 있는 큰 구실을 만들어 주었군요. 오순희 선생님 또한 그러한 구실을 통해 잘 공작하신 것 같습니다. 준비부터 진행과정, 결과 모든 순간이 즐거웠겠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말씀듣고 싶네요. / 김세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주민들이 모두 기피하던 놀이터가 새롭게 변화되는 모습.. 그 걸언하는 과정이 참 귀합니다. 복지관이나 공사 관계자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닌, 놀이터와 인접해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에 감탄합니다. 그러한 과정이 있으니 놀이터 개장식이 지역의 축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문제만 보고 해결하려 하기 보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모습. 글을 읽으니 참 신나게 일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세진선생님 들려주시는 이야기 다시 잘 읽었습니다. 복지관에서는 어쩌면 정해진 사업만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공간'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가는 것 혹은 '글'로 사람을 만나가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진선생님이 남겨주신 글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경험했던 것이 글로 머리에 남겨집니다. 다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느리지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