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남
법정스님을 처음 뵌 건 대학 다닐 때였습니다.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던 전 해였지요. 불교학생회에서 스님을 모셔 특별강연이라는 형식으로 자리를 마련했었지요. 스님의 젊은 시절 이력에 꼭 따라다니는 민주화를 위해 애를 쓰신 그 활동 중의 하나였을까요?
"버스 운전사가 이상하다고 합시다. 술을 마셨던, 정신이 이상하던, 마약을 했던 운전사가 정상이 아니라면 승객은 그 운전사를 어떻게 해야합니까? 정상이 아닌 운전사가 모는 차라면 버스를 타기위해 토큰 하나 내는 것으로 안전이 보장될 수는 없겠지요"
그 무렵 서울에서 시내버스가 한강다리에서 추락한 사고가 있었지요. 그 사고를 빗대어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을 대학생을 상대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대학내에 사복경찰이 깔려 있었지요. 그런 서슬이 퍼런 앞에서 두려움 없는 말씀을 서슴없이 하셨습니다.
그 강연을 듣고 저는 법정스님의 팬이 되어 무소유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읽고 또 읽고 책을 사서 주변에 선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무소유'를 벌써 30년이 넘도록 아직 읽고 있답니다. 30년이 넘도록 읽는 사람이 저 밖에 없을까요? 세 번이나 판형을 바꿔서 책을 내는 건 저같이 오랜 시간을 두고 아직 다 읽어내지 못한 사람이나 그를 보고 읽어야 할 사람이 더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소유
스님은 수필집의 제목으로 글 중에서 '무소유'를 선택하셨습니다. 무소유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빈 몸뚱이에 최소한의 옷과 소유물을 지닌 노숙자와 스님과 같은 출가자는 같은 의미의 무소유를 실천하는 이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야한다는 전제 하에 만들어지는 결과를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으로 쓰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스님은 글을 쓰는데 있어서는 타고난 일꾼이셨지요. 평생을 수필을 쓰셨고 그 쓰는 일 하나로 누구도 만들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첫 산문집인 '무소유'로 그 출판사는 30년이 넘도록 책을 간행할 수 있었지요. 모 잡지에 '산방한담'이라는 코너를 연재할 때는 그 글을 읽기위해 잡지를 구입했으니 그 잡지사도 재정적인 큰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항간에 스님께서 그동안 쓴 원고로 발간한 책의 인세만 수십 억에 이른다고 하니 아주 생산적인 글을 쓰신 분이지요. 그 엄청난 수입과 스님의 삶은 별개의 문제니 '무소유'를 그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스님은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다하셨을 뿐 그 말씀을 담은 책으로 생긴 돈은 세상에 널리 회향되었습니다.
출가 수행자의 본분은 깨달음을 재가의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출가자에게 재물이란 수행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근거는 행자 시절에 효봉스님으로 부터 받은 가르침에 의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행자 시절 호롱불을 켜고 주홍글씨라는 소설을 숨어 읽었답니다. 스승이신 효봉 스님이 그것을 아시고는 아주 엄하게 호통을 치셨답니다. 출가자가 쓰는 모든 물건은 신도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 올린 공양물인데 그것을 출가자가 본분을 지키는데 쓰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출가자는 음식을 입에 넣을 때 뜨거운 쇳물을 먹듯 해야 한다며 효봉스님은 스님을 경책 하셨다고 합니다.
'시주의 은혜를 많이 지면 내생에 그 집 소가 되어 힘든 일로 갚아야 한다는 말을 노스님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겁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 그 안에는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는 무서운 인과의 도리가 들어 있다'
스님께서 남긴 '무소유'의 의미는 당신의 삶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면서 얻어진 결과를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을 가능한 적은 양으로 만족하라는 것이지요. 몸뚱이 하나도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내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떠나고 나면 남는 것
재가의 속인과 출가 수행자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 하셨습니다. 어쩌면 그 출가라는 의미는 승복을 입고 안 입고의 차이가 아닐 것입니다.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의 의미를 실천하는 자는 곧 출가자라 해도 될 것입니다.
최근에 오면서 고승이라고 할만한 스님들이 입적하신 뒤에 스님의 부도를 호화롭게 만들고 있음을 봅니다. 평생을 누더기로 살았던 분을 호화롭게 유택을 꾸민다면 그 분을 그보다 더 욕되게 하는 일이 있을까요? 그래서 스님은 만장도, 수의도, 관도 없이 화장을 하고 사리도 수습하지 말고 산골을 해줄 것을 지엄하게 당부 하셨다고 합니다
떠나면 그만이지요. 떠나신 뒤에는 더 이상 책도 찍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살아서 하신 일이니 떠나고 나면 스님의 말씀도 더 이상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것인가 봅니다. 살아서 하는일은 산 자의 몫이지만 살아있는 자가 없는 이를 욕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떠나고 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요? 스님이 떠나시면서 하신 마지막 걸식인 병원비의 정리를 보면서 '비구'의 뜻이 걸사乞士임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출가자의 길을 선택한 이상 빌어서 살아야 할 최소한의 양과 그 보답으로 세상에 내놓아야 할 양을 잘 알아야 함을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떠나야 할 때가 옵니다. 누구든 세상에 빚을 지고 살아야 하지요. 그 빚을 다 갚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울까요? 출가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회색 옷을 입지 않아도 출가자의 길을 걷는 수많은 이를 봅니다. 회색옷을 입고도 재가자보다 더 가지려고 하는 이도 봅니다.
떠나면 그만이지만 떠날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마음을 스님의 입적을 보면서 다지게 됩니다. 가지지 못해서 '무소유'라고 위안을 삼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무소유'를 실천해야 함을 생각합니다. 육신이 있는 한 정재淨財로서 부끄럽지 않은'소유'를 추구하고 그 '소유'는 '무소유'의 실천을 통해서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스님의 영전에 맑은 차 한 잔 올리옵니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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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차한잔 올리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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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핀 찔레꽃에도 계신 어른스님,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