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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 도다] 12
#1. 박규의 집 - 아침
대문이 활짝 열리며,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하게 순백의, 하얀, 순결하고 화이트한 도포에
화려한 용 문양이 수놓아진 도포를 걸친 중년의 남성 김훈장이 들어온다.
엄씨(E) : 오늘부터 자네의 수련을 맡으실 김훈장님일세. 인사 드리게.
#2. 안방 - 낮
버진, 대충 고개 숙여 인사하면
버진 : 혼저옵서예.
김훈장이 깐깐한 얼굴로 버진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엄씨부인을 향해 입을 연다.
범상치 않은 차림새처럼, 목소리도 여성처럼 가녀리다.
김훈장 : 옷차림은 털 빠진 꿩처럼 태가 안나고, 피부는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윤기가 없군요.
목소리는 돌쟁반에 자갈이 굴러가듯 품위가 없고, 언행은 개한테 물린 도둑처럼 방정맞으니...
어디서 이런 처자를 들이셨는지요. 여자가 되려면 한참 걸리겠습니다.
한껏 비웃는 얼굴로 버진을 바라보는 김훈장. 버진이 멀뚱 보다가 끽! 짧은 트림을 한다.
#3. 박규의 집 별당, 버진의 방 안 - 아침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상투, 정확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 손 모양, 살짝 들어올린 턱끝, 흐트러짐 없는 고고한 미소..
그린 듯 정갈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김훈장 앞에 어색한 자세로 앉아있는 버진의 모습이 보인다.
발이 저린지 연신 콧등에 침을 찍어 바르고 있는 버진의 모습을 요리조리 훑어보는 김훈장.
이윽고 버진이 참지 못하고 다리를 펴자
김훈장 : 어쩌다 이런 망아지같은 아이와 눈이 맞아... (그만 말을 거두고, 책을 펴며) 부인께서 당부하신 부분도 있고..
네 몸 상태를 충분히 고려하여 수련을 할테니 그 점은 걱정 말거라.
버진 : (책을 덮으며) 어차피 일리암만 찾으면 이 집에서 나갈껀디 이 딴게 무시게 필요하우꽈?
난 일리암 찾으면 바로 떠날거라. 그러니 나한테 신경 쓸 거 없서양.
김훈장 : 일리암이 어느 암자인지는 내 알 바 아니나, 자고로 여자는 그리 쉽게 떠난다는 말 하는 것 아니다.
내 혼례도 치르기 전 꽃을 꺾인 네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그렇다고 비구니가 될 필요까지는 없지.
비록 정실 자리는 아니나 이런 가문에 이런 지체의 집안을 만나기가 어디 쉽더냐. 내 손을 거친 모든 여인들은
한양 최고의 규수로 거듭났으니, 너 또한 머지 않아 최고의 아리따운 여인으로 탈바꿈 할 것이니라.
사랑만 받는다면 그 자리가 정실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하뇨.
버진 : ...(한참 생각하다) 정실이 뭐우까?
김훈장 : 정신 차리고 책 펴거라.
김훈장, 도도한 턱짓으로 책을 가리킨다.
#4. 박규의 집 박규의 방 - 아침
같은 시각 박규의 방. 의관을 갖춰 입고 나가려는 박규 앞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엄씨 부인.
엄씨부인 : 잠깐 앉아보거라.
엄씨부인, 박규를 지나쳐 자리로 가 앉는다. 박규,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엄씨부인 앞에 다가가 앉으면
다짜고짜 취조하는 눈빛으로 박규를 바라보는 엄씨부인.
박규 : 아침부터 어인 일이시옵니까? 저를 부르시지 않고요.
엄씨부인 : (대뜸) 버진이라는 아이에 대해 이 어미에게 할 말이 있을텐데..
박규 : (흠칫하고) 무슨 말씀이신지..
엄씨부인 : (노여운) 규.. 네가 끝까지 이 어미를 속이려 들다니.
박규 : 소,속이다니요. 어머니도 참 (둘러대려는데)
엄씨부인 : (버럭) 이미 버진이라는 아이에게 다 들었느니라!
박규 : !
순간 걸렸구나.. 하는 얼굴로 고개 숙이는 박규.
박규 : 용서하세요. 어머니.. 그 아이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면 어머니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실까봐..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엄씨부인 : (기가 막힐 뿐이고) 내 아무리 그 아이가 눈에 안찬다하여,
회임까지 한 아이를 설마 내치기라도 할까봐 그랬단 말이냐?
박규 : (엥? 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보면)
엄씨부인 :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더냐? 젊은 혈기에 실수로 한 사통이라도 책임질 짓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하는 법이거늘!
박규 : 사,사통이라니.. 어머니 무슨 말씀을
엄씨부인 : 그럼 둘이 통하였다고 해서 내 정통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느냐? 아무리 제주 대상군 집안이래도
우리 집안과는 완전히 격이 다른 집안!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정식 혼인을 승낙할 수 없다.
박규 : 어머니, 그런게 아니오라, 사실은
엄씨부인 : 됐다. 그나마 천것이 아니어서 만분다행이지...
박규 : (그 말에 얼른 다시 고개 숙이고)
엄씨부인 : (애써 진정하며) 이미 엎지러진 물에 긴 말해봐야 소용없고.. 이제 혼담이 오갈 시기니
당분간 그 아이 옆에는 가지 말거라. 괜히 소문이 돌면 다 된 밥에 모래 뿌리는 일이 생길테니.
박규 : 어머니.
엄씨부인 : 집안 일은 어미가 다 알아서 할테니 너는 그만 나가보너라. (박규 움직이지 않자) 그만 나가보라니까!
박규, 벙찐 얼굴로 일어난다.
#5. 박규의 집 마당 - 오전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당으로 나오는 박규.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당으로 나오는 버진.
두 사람, 갸우뚱거리며 걸어 나오다 중간에서 딱 마주친다.
버진 : 귀양다리. 잘 만났으멘.
박규 : 망아지 너, 도대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한 게냐.
버진 : 정실은 뭐고 후실은 또 뭐라?
박규 : 됐다. 어차피 잠녀란 사실도 숨겨지게 됐고, 함부로 내치진 않을테니 당분간 집에 있거라.
버진 : 그럼 일리암도 못 만나는 거 아니멘?
박규, 서운한 마음에 바라보다 그냥 돌아서려는데 버진이 잡는다.
그 때 동시에 목소리 들리는데,
엄씨부인(OS) : 지금 뭣하는 게냐!
김훈장(OS) : 지금 뭣하는 게요.
동시에 양쪽에서 나타나는 엄씨부인과 김훈장. 각자 버진과 박규를 끌고간다.
김훈장 : 여자는 일어서있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야 하느니.
엄씨부인 : 혼담이 마무리 되기 전까지는 저 아이 볼 생각 하지 말랬더니!
버진과 박규, 끌려가면서 서로를 바라본다.
#6. 박연의 집 윌리엄의 방 - 오전
심란한 표정으로 방 한구석에 앉아있는 윌리엄의 모습이 보인다.
못 참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윌리엄. 삿갓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7. 박연의 집 윌리엄의 방 앞 - 오전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는 박연.
박연 : 어디갈라꼬?
월리엄 : 내가 꼭 만나야 될 사람이 있어서 그래...
박연 : 허락없인 함부로 못 나댕긴다고 내가 말했제.
윌리엄 : (애원하듯) 잠깐이면 되. 얼굴만 보고 올게. 한번만..
박연 : 이러면 우리 둘다 곤란해진데이. 후딱 들어가래이.
결국 박연에게 떠밀려 안으로 들어가는 윌리엄. 윌리엄, 풀 죽은 얼굴로 방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런 월리엄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박연.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박연,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먹과 종이를 꺼내 바닥에 펼쳐놓는다.
윌리엄, 뭐냐는 듯 보면
박연 : 글씨 쓸 줄 알제?
윌리엄 : 조금..
박연 : 그럼 하고 싶은 말 있음 써봐라.
윌리엄 : ?
박연 : 내가 대신 전해주면 될꺼아이가.
윌리엄 : (순간 윌리엄 눈 커지고) 고마워! 행님!!
윌리엄, 박연을 와락 끌어안는다.
#8. 박규의 집 별당 - 낮
다시 김훈장과 마주 앉는 버진의 모습.
김훈장 : 여자는 자발맞게 돌아다니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느니라.
다소곳이 앉아 시선을 약간 내렸을 때, 그 때야 비로소 천리 밖에 있는 남자의 마음까지 내다볼 수 있는 법.
버진 : 풋!! (비웃는다) 무신 무당도 아니고 앉아서 천리를...
김훈장의 매서운 눈초리와 마주치고야 얼른 표정을 고치는 버진.
김훈장 : 내 반드시 니 망아지같은 태도를 고쳐놓을 것이니... 오늘은 가볍게 구용부터 시작하자꾸나.
버진 : 구용이 뭐우꽈?
김훈장 : 구용이란 몸가짐을 단정히 함에 있어 취해야 할 아홉 가지 자세를 말하느니라. 일어서거라.
버진 : 예?
김훈장 : 일어서거라.
버진 : 예..
버진, 김훈장의 명령에 엉거주춤 일어서면, 김훈장도 일어서더니 트렁크처럼 생긴 괘에서 치마를 꺼낸다.
과감하게 치마를 두르는 김훈장. 갓 쓴 머리에 도포에 아래는 치마라 꼴이 우습다.
버진이 콧날을 벌릉벌릉하며 간신히 웃음을 참는데,
김훈장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나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하거라.
족용중(足容重).. 발은 경솔하지 않게 무겁게 놀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말하며 모델처럼 사뿐사뿐 걸어 보이는 김훈장. 버진이 참다참다 더 참지 못할 듯 웃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인데,
김훈장 : 발뒤꿈치를 살짝 드는 기분으로, 나비가 날듯 사뿐사뿐.
나비처럼 살풋살풋 걷는 김훈장. 버진이 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버진 : 에헤헤... 아이고메, 배꼽 빠지것다... 우헤헤, 남자가 치마입고...
바닥에 누워 발을 허우적거리며 김훈장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는 버진.
김훈장이 분기탱천한 얼굴로 버진을 내려다본다.
#9. 안방 - 낮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는 엄씨부인. 그 앞에 김훈장이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다.
김훈장 : 마님, 제가 이 생활 30년이 넘도록 저런 아이는 처음 봤어요.
엄씨부인 : 이거 정말 죄송해서... 이걸 어쩌나, 응?
김훈장 : 허락만 하신다면 때려서라도 가르치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엄씨부인 : 산모를 때릴 수도 없고...
김훈장 : 어차피 이 집 후실이 될 아이 아닙니까. 저 모양 저대로면 가문 들어먹기 딱 맞춤인데...
엄씨부인 : 가문!!
김훈장 : 임산부라도 종아리 정도는 괜찮을 터인데...
김훈장, 코만 훌쩍이며 엄씨부인 눈치를 본다.
#10. 박규의 집 별당 - 낮
버진 : 아야, 아! 아!
김훈장이 버진의 종아리를 때리고 있다. 그 뒤에는 엄씨 부인이 노기 어린 얼굴로 서있고.
엄씨분인 : 어허! 자고로 여자란 웃음도 울음도 속으로 삭이는 법. 어찌 방정맞게 소리를 내느냐?
버진이 양 손으로 자기 입을 막고, 김훈장은 신나서 회초리질을 한다.
#11. 박연의 집, 별당 교차 - 오후
떠듬떠듬한 글씨로 버진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윌리엄의 모습 겹쳐지며-
윌리엄 : 버진. 괜차나.. 나.. 괜차나..
괴발개발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편지를 쓰는 윌리엄.
#12. 박규의 집 별당 - 낮
버진의 입이 댓발 나와있다. 김훈장은 엄씨부인에게 체벌권까지 획득한지라 표정이며 말투가 아까보다 훨씬 엄하다.
김훈장, 다시 한번 버진 앞에 정말 나비처럼 사뿐사뿐 걸어 보이고.. 김훈장 뒤를 쫓아 나름 사뿐사뿐 걸어보는 버진.
버진, 마음은 사뿐사뿐이지만 몸은 뒤뚱뒤뚱이다.
그런 버진의 머리 위에 두툼한 서책을 턱하니 올려놓는 김훈장. 버진, 벙찐 눈으로 보면-
김훈장 : 한번 떨어질 때마다, 수련 시간을 한 시간씩 늘릴테니 그리 알거라.
뜨악! 하는 버진의 얼굴. 그 위로 김훈장의 목소리 뜨며-
김훈장(E) : 수용공(手容恭).. 손은 쓸데없이 움직이지 말고 단정히 놀려야 한다.
사뿐사뿐 걸으며 양손을 바람처럼 살랑살랑 움직이는 김훈장.
버진, 따라한다는 게 발과 손이 같이 움직이면서 이상한 걸음걸이가 돼버린다.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수꽝스러워지는 버진의 걸음걸이.
김훈장(E) : 목용단(目容端).. 눈은 옆으로 흘겨보거나 곁눈질하지 말고 단정하게 떠야 한다.
보일 듯 말듯 미소 지으며 품위 있게 눈에 힘을 주며 걷는 김훈장.
버진, 굳은 미소로 두 눈 부릅뜬 채 경직된 얼굴로 뒤 쫓아 걷느라 정신이 없고.
버진(E) : 꼭 이렇게 걸어야 하는 이유가 뭐우꽈?
김훈장(E) : (말 자른다) 구용지(口容止).. 입은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외에는 항상 꼭 다물고 있어야 한다.
할 수 없이 입을 다무는 버진. 다시 엉거주춤 김훈장 뒤 쫓아 걷기 시작한다.
머리 위에 책 신경 쓰느라 자꾸만 사팔이 되는 버진의 눈.
김훈장의 호통에 표정 관리 들어가면, 다시 흔들리는 책.
간신히 표정도 책도 됐다싶으면,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미소 짓고 있는 버진의 입가에 슬슬 경련이 일고..
마치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는 여자처럼 걸음걸이, 미소 등을 연습하는 버진의 다양한 모습들..
그렇게 방 안을 뱅글뱅글 도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이상해와 이주일의 콤비코미디를 보듯 코믹하게 펼쳐지는 모습 위로..
#13. 박연의 집 - 오후
윌리엄이 붓을 잘 못 놀려 찍- 빗나간다. 한숨을 쉬더니 다시 새 종이를 펼치고 글을 쓰는 윌리엄.
윌리엄 : 버진. 나.. 괜차나.. 보고싶어.
문가에 앉아있는 박연이 지루한지 길게 하품을 한다.
#14. 한강 - 오후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줄기. 그 위를 소리 없이 나아가는 배 한척..
#15. 한양에서 제법 떨어진 포구 - 오후
서서히 포구에 멈추는 배.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속에,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 나오는 등에 봇짐을 맨 세 명의 보부상이 보인다.
#16. 산길 - 오후
수시로 뒤를 살피며 걸어가는 보부상들, 깊숙한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17. 대나무 숲 - 오후
산길이 끝나는 곳에 커다란 대나무 숲이 나온다. 대나무 숲 안으로 들어가는 보부상들.
보부상들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남자가 휘파람 소리를 내자 반대 편 대나무 숲 쪽에서 한 무리의 청나라 상인이 나타난다.
울창한 대나무 숲 속에서 은밀히 거래를 하는 보부상과 청나라 상인들.
청나라 상인들에게 서린 상단의 상단 패를 보여주는 상인 1. 청나라 상인, 서린 상단의 상단패를 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가지고 온 물건을 청나라 상인들에게 넘기는 보부상들. 물건을 건네받은 청나라 상인들이 물건 값으로 은을 넘긴다.
서둘러 은을 챙겨 대나무 숲을 빠져나가는 보부상들.
(서린 상단의 말단 직원 셋이 상단 물건을 빼돌려 청나라 상인과 밀거래하는 장면)
#18. 홍염장 - 오후
널린 천들을 걷으며 박규와 안참봉이 나타난다.
잠시 후, 건물 앞에 도달한 박규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목을 맨 줄이 묶인 도리 위를 살펴본다.
박규 : 확실하군. 죽인 후에 여기 매단거야.
안참봉 : 예에?
박규 : 몸부림을 친 흔적이 전혀 없어. (사다리에서 내려온다) 가족은 알아봤는가?
안참봉 : 종살이 하다가 면천을 받은잔데, 가족은 커녕 기르던 개 한 마리 없었답니다.
박규 : 면천을 받았다?
안참봉 : 사람들이 그러는데 한 10년 됐다죠?
박규 : 노비가 면천첩을 받으려면 쌀이 10석이거늘.. 그 큰 돈을 어디서 구했다더냐.
안참봉 : 예?...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박규 : 자네 입으로 소상히, 낱낱이, 샅샅이 알아온다 하지 않았던가. 소문만 주워듣지 말고 수사를 하게, 수사를.
안참봉 : (못마땅하다) 예~ 예~ 가시죠. (앞서걸어가는데)
박규 : 어딜 가는가.
안참봉 : 수사하러 가시야죠. 탐문수사.
다시 돌아서는 안참봉.
#19. 주막의 방안 - 저녁
술잔을 내려놓는 안참봉. 맞은편에 박규가 못마땅한 얼굴로 앉아있다.
박규 : 초저녁부터 술잔 기울이는게 수산가?
안참봉 : 압따, 뭘 그리 서두르셔요. 이런데는 온갖 얘기가 도는데라.
박규 : 떠도는 소문 말인가?
안참봉 : 흘러다니는 정보지요.
안참봉이 자기 잔을 채운다.
안참봉 : 뭔가가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디립다 파고들면 되려 이쪽에서 먼저 꼬리가 잡히는 법입니다.
이런 일일수록 은근~~~히, 은미일~~하게, 정보를 탁! 채서, 예? 진짜 자액이 아니라 누군가 죽였다면,
그 놈이 어딘가 숨어서 우리를 보고있을 수도 있다~ 그 말씀입니다.
박규, 은근히 주위를 둘러본다. 안참봉이 김치를 길게 찢어먹으며,
안참봉 : 근데, 머리꼭대기랑 목매달아 자액한거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요?
박규 : 목을 맨 사람은 기운이 위로 모이기 때문에 머리꼭대기 살이 굳고 단단해진다네.
안참봉 : 캬~ (그 해박함에 크게 감탄하고) 그럼 몸부림 친 흔적이 없는 건 또 어찌 아셨습니까요?
박규 : 목매달아 자살한 경우 대들보나 서까래의 올가미 흔적은 한 줄이 아닐세.
먼지가 많은 곳이라면 어지럽게 줄 자국이 흩어져 있어야 스스로 목을 맨 흔적이라 할 수 있지.
그런데 그자가 목을 매었던 도리 위엔 줄을 맨 한줄 빼곤 아무런 흔적이 없었네.
안참봉 : (치밀함에 감탄한다) 소문만 듣고서는 어린게 싸가지 없이 잘난 척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지식 만큼은 잘난 척 하실만한 분이십니다.
박규 : 뭐라? 싸가지?
안참봉 : 그럼은요! 영~ 재수없다고 다들 그러던데, 막상 보니 영 없지는 않습니다. 어찌 어린 나이에 그리 해박하신지.
박규 : 그것이 욕인가 칭찬인가?
안참봉 : 소문이지요, 뭐 그냥... 떠도는...
안참봉이 말실수를 깨닫고 괜히 말을 돌리는데,
그때, 주막으로 들어오는 한 무리의 상인들. 앞씬에서 청나라 상인들에게 물건을 빼돌리던 그 자들이다.
박규와 안참봉의 옆 자리에 자리를 잡는 상인들.
상인1, 주모에게 술상을 봐오라 시키고는 주변을 살피며 청나라 상인에게 받은 은을 3등분해 다른 상인들에게 나눠준다.
상인1 : (작은 목소리로) 수고들 했네.
상인2 : (얼른 받아 챙기며) 난 이번으로 손을 뗄테니 그리들 알게.
상인3 : (펄쩍 뛰는) 한 배를 탔으면 끝까지 가야지 무슨 소린가?
상인2 : 상단 물건 빼돌리다 걸려서 참수 당했단 소문 못 들었나? 오금이 저려서 이젠 못하겠네.
상인3 : (그 말에 할 말 잃는데)
때마침 술상을 가져오는 주모.
상인들, 주모가 가져온 막걸리 상을 받아 서둘러 목을 축인다.
막걸리는 마시며 상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박규.
#20. 사헌부 집의 집 - 밤
서린이 고급스런 나무 상자 하나를 집의 앞으로 내민다.
서린 : 제 성의 표시입니다.
집의, 잠시 눈빛 반짝이나 짐짓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집의 : (생색내는) 내가 안 갔으면 큰 일 날 뻔 했더군. 낯빛도 그렇고, 혈흔이 비치는 자리도 많아
어느 누구라도 독살을 의심했을 것이네.
서린 : 다 조선의 앞날을 위한 것임을 어르신도 아시지 않습니까?
집의 : 알다마다. 나 역시 대의를 위해 행한 것뿐이네.
서린 : 허나...입은 무거울수록 좋은 법이지요.
집의 : 걱정하지 말게. 대감들은 물론 어느 누구도 모르게 할 테니.
서린 : (끄덕, 미소 지으며) 그리고 전에 부탁드린 것도 잊지 않으셨겠지요.
집의 : 염려 붙들어 매게. 박규 뿐 아니라 사헌부 내 조사는 죄다 내 귀로 들어오게 돼있으니.
(서린이 내민 상자로 다시 눈길이 간다)
#21. 박규의 집 별당 - 밤
대문이 열리며 박규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박규, 안채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문득 별당 마당에 나와 머리에 책을 얹고 걷는 버진을 발견한다.
살그머니 다가가 몰래 보려 하는데, 호들갑스럽게 달려와 박규를 맞이하는 봉삼.
봉삼 : 도련님 오셨어라? (안채를 향해 소리치려는데) 마님~ 도
박규 : (막는다) 됐다. 불편하게 나오시게 할 것 없다.
봉삼 : 그럼 안으로 드시겠습니까요?
박규 : 먼저 가서 소셋물좀 준비 하거라.
봉삼 : 예, 도련님.
봉삼이 나는 듯 달려가고, 박규는 버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22. 별당마당 - 밤
박규가 숨어서 보고 있는 지는 꿈에도 모른 채,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걸음걸이를 연습하고 있는 버진.
#23. 박규의 회상 - 낮
제주도에서 걸핏하면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버진 모습.
#24. 별당 마당 - 밤
박규가 그 때 버진이 생각나 빙긋 웃는데, 버진은 신경질적으로 머리에 얹은 책을 내려놓는다.
버진 : 발걸음은 사뿐사뿐, 양손은 살랑살랑, 걷는 것도 뭐가 이렇게 복잡 한거멘..
목소리도 또 그게 뭐라, 참말로 가증스럽다마씸.
버진, 휴.. 한숨 뱉고.. 할 수 없다는 듯 이번엔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입가에 어색한 미소까지 띄워본다.
버진 : (나름 조신한 목소리로) 기체후일강만양하우꽈?
숨어서 보고 있다 결국 풋 웃음이 터지는 박규.
버진, 박규가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귀까지 빨개져서 대들듯 노려본다.
박규 : (버진 앞으로 걸어 나오며) 기체후일강만양은 어느 나라 인사더냐?
버진 : (챙피해서 어쩔 줄 몰라하면)
박규 : 기체후일양만강하시온지요. 자, 해보거라.
버진 : (할 수 없이, 머뭇거리다) 기체후일양만강하우꽈?
박규 : 오냐~
박규, 놀리듯 큰 소리로 대답을 한다.
버진 : (눈 흘기는) 쥐새끼모냥 몰래 훔쳐보기나허곡..
박규 : (장난기 어린) 그럼 나서서 볼테니 한번 내 앞에서 걸어 볼테냐?
박규, 버진 향해 아이처럼 씩 웃어 보이는데.
버진 : (조심히, 어색한 한양말로) 고마 워.요.
박규 : (웃다말고 멍하니 바라보면)
버진 : (쑥스러운) 처음으로 하는 한양 말이라. 그 만큼 고맙다는 뜻이멘.
박규 : (좋으면서 괜히) 어째.. 영 안어울리는구나.
버진 : 잘났수다게. (쏘아붙이는데)
그때, 안채 쪽에서 나오는 엄씨부인.
버진 : (눈짓하면) 저기.
버진의 신호에 흠,흠, 헛기침하며 서둘러 안채 쪽으로 걸음 옮기는 박규.
엄씨부인 : 거기서 뭐하시는겐가? 오셨으면 곧장 안채로 오지 않고.
행여 버진과 말을 섞을까 노심초사하는 얼굴로 박규 데리고 가는 엄씨부인.
박규, 엄씨 부인에게 끌려가듯 걸어가며 슬쩍 뒤돌아보면 박규 눈에 삐쭉거리며 돌아서는 버진의 모습이 보인다.
#25. 박규의 방 - 밤
책장을 넘기다 문득 손을 멈추는 박규.
(인서트)
버진 : 고마워.요.. 처음으로 하는 한양말이라..
박규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생기는 미소.. 박규, 서둘러 생각을 거두고 다시 책장을 넘긴다..
#26. 궁궐 전경 - 아침
#27. 사헌부 감찰방 - 오전
박규, 제사장을 죽인 총알을 살펴보고 있다. 그때 안으로 들어오는 안참봉.
안참봉 : 허, 벌써 오셨습니까?
박규 : (쳐다보지도 않고) 자네가 늦은거겠지.
안참봉 : (흠흠.. 헛기침) 제가 그냥 늦은 게 아닙니다요. 그게 좀 알아봤는뎁쇼. 그 늑액사 한 늙은이 말입니다요.
박규 : (쳐다보면)
안참봉 : (관심 보이자 은근 생색) 워낙 연고가 없는지라 애좀 먹었습죠.
박규 : 알았으니 어서 말해보거라.
안참봉 : 그러니까 뭣이냐하니, 면천 전에 어느 집 사천인지를 알아냈다.. 이 말씀입니다요. 제가.
박규 : 사설이 길구나. 요지만 말하거라. (다그치면)
안참봉 : (낼름 달라붙어) 그래도 사내라고 죽기 전에 잠깐 구메혼인(격식을 갖추지 않은 혼인)을 한 여자가 있더구만요.
행여 연루될까 싫다는 걸 간신히 붙잡고 얘길 나눠봤더니만, 그 자 말이
면천 전에 대역죄로 멸문 당한 이경문 대감의 사천이었다고 했더랍니다.
순간 눈빛이 예리해지는 박규.
안참봉 : 그런데 그 큰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답니다요. 새경도 없는 노비 놈이 그 큰돈이 어디서 났을깝쇼?
박규 : (잠시 생각하다) 그때 대역죄에 연좌된 식솔들은 어찌되었는지 전부 알아 보거라.
안참봉 : 에이.. 그것까진 너무 멀리 가시는 거 아닙니까? 제가 보기엔 단순 돈 문제 아니면 여자 문제 같은데..
박규 : (찌릿 쏘아보면)
안참봉 : (꼬랑지) 알겠습니다요. 뭐 그리 복잡하게 가시겠다면야..
박규 : 그리고 한 가지 더.
입술을 삐쭉거리며 돌아서다 뜨끔해서 돌아보는 안참봉.
박규, 그런 안참봉 앞에 총알을 내민다.
안참봉 : 헉, 총탄!! (달려들어 총알을 유심히 살펴보는) 이것은 무슨 총에 쓰는 총탄입니까?
조총에 쓰는 것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데...
박규 : (끄덕이고) 훈련도감에 가 비교를 해봐도 이와 같은 건 없더군.
안참봉 : (갸우뚱) 이런 건 개시나 후시로는 못 들어오는 물건이 아닙니까요? 그럼 이걸 어디서...?
박규 : 나 역시도 그걸 알고자 하네. 필시 조선 밖에서 들어온 물건인 듯 싶은데...
혹시 암시가 열리는 장소를 알아 낼 방도가 있느냐?
안참봉 : (잠시 짱구를 돌리다) 여리꾼들을 통해 알아 볼 수는 있으나...
슬그머니 손으로 돈 모양을 만들어 보이는 안참봉.
안참봉 : 워낙 샘에 밝은 장사치들이라..
박규, 알았다는 듯 안참봉 앞에 엽전 꾸러미를 던져준다.
안참봉 : (잽싸게 챙기며) 오해는 마십시오. 다 조사를 위한 것이니..
헛기침하며 잽싸게 자리를 뜨는 안참봉.
혼자 남아 손에 쥔 총탄을 만지작거리는 박규의 모습 위로-
#28. 서린 상단과 연결된 통로 숲길 - 낮
우거진 나무 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산 속. 전치용과 호위무사들이 서린을 앞뒤로 호위하고 지나간다.
통로처럼 보이는 숲 길이 끝나며 나오는 너른 분지로 들어서는 서린 일행.
#29. 상단 근처 은 제련소 - 낮
가운데 큰 용광로가 있는 은 제련소 문이 열리며 서린이 들어선다.
색 바랜 마의에 오랫동안 감지 않아 부스스한 머리를 한 상단 노비,
무웅이 용광로에 느긋하게 부채질을 하다말고 서둘러 일어선다.
무웅 : (머리를 조아리며) 오셨습니까요.
서린 : (다가서며) 진전은 좀 있느냐?
무웅 : 그게.. (눈치보다) 방법은 다 알아낸 듯 싶습니다요.
서린 : (얼굴이 확 피며) 그래? 어디 설명을 해보거라.
무웅 : 예. 먼저 용로(鎔爐) 밑에 작은 구덩이를 파서 열화를 쌓고, 용로에 은광에서 채취해 온 은광석을 깔고,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숯불을 피웁니다요. 그 위에 소나무를 덮어 불을 일으키면 납이 먼저 녹아 아래로 내려가고,
생은은 빙빙 돌면서 용솟음치며 녹는데, 그때 물을 뿌려 표면이 굳으면 은만 채취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요.
서린 : (일리가 있는 말인 듯 끄덕이는데)
무웅 : 그런데..
서린 : 그런데?
무웅 : 이론은 그러하온데... (쭈삣거리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번도 성공을 하지 못했습니다요.
서린,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시고.. 서린의 차가운 눈빛에 바짝 긴장하는 무웅.
서린 : 네가 상단에 들어온 얼마나 되었지?
무웅 : 근 일년이 다 되갑니다요. 투전 빚으로 무뢰배들에게 죽을 목숨을 대행수님이 살려주셨주.
서린 : 그때 내 너에게 약조를 하나 했었다. 연은분리법에 성공을 하면 네놈은 물론 네 가족들까지 풀어주겠다고.
무웅 : 예. 예. 이놈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요.
서린 : 그때 분명 네놈이 내 눈을 똑똑히 보면서 은 제련법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하여,
쓸모도 없는 네놈 식솔까지 내 밑에 두었거늘.
무웅 : (넙죽 조아리며) 그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요. 대행수님..!
서린 : 일년이 다 되도록 밥만 축내었으니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무웅 : (차마 입이 열리지 않고)
서린 : (싸늘한 눈으로) 네놈 딸년을 청루기방 유녀로라도 내보낼까?
순간 사색이 되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무웅. 서린의 잔인한 말에 낯빛이 변하는 전치용.
서린 : 잊지마라. 네 처와 네 딸이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을. 가자.
차갑게 돌아서는 서린. 전치용, 주저앉아있는 무웅을 잠시 바라보다 뒤돌아 사라진다.
#30. 제련 소 앞 숲 - 오후
대열 앞에 있던 전치용이 서린에게 다가온다. 호위무사에게 비키라 눈짓하는 전치용.
숲 속엔 산수유 꽃이 온통 노랗다.
서린 : 하실 말씀 있으세요 오라버니?
전치용 : 아니요. 별 말 아닙니다.
서린 : 제가 너무 조급해 보이나요?
전치용 : ...모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으니 곧 잘 될 것입니다.
서린 : 오라버니, 아시죠? 단지 제 욕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거..
전치용 : .......
서린 : 일본은 조선에서 발명한 은 제련 기술 덕에 청나라와의 은 거래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어요.
정작 조선에서는 잊혀진 기술이 되어버렸지만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해도
경직된 왕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다는 거.. 오라버니도 보셨잖아요.
전치용 : ...........
서린 : 그래서 우리가 바꿔야해요. 오라버니, 절 믿으세요.
전치용 : ...........
서린 : 그리고 김감불의 후손을 찾아야겠습니다. 저자는 김감불의 후손을 찾을 때까지만 둘 것 입니다. 서둘러 찾아주세요.
싸늘하게 미소 짓는 서린의 얼굴 위로-
버진(e) : (떠듬떠듬) 허. 헌. 현 녀 가. 입 을. 삼 가 는 것 은. 부 끄 러 움. 과. 허. 헐. 뜯 음 을
#31. 박규의 집 별당 버진의 방 - 오후
버진에게 언문으로 된 규훈서를 읽히는 김훈장. 버진, 한자 한자 간신히 읽어 내려가다 답답한지 가슴을 퍽퍽 친다.
버진 : 말만 할 줄 알면 되지 이딴게 무시게 필요하우꽈. 어따 쓸데도 없다 마씸. 이거말고 차라리 다른 거 하면 안되우꽈?
김훈장, 말 없이 회초리를 꺼내든다.
버진, 찌그러지고.. 할 수 없이 다시 떠듬떠듬 읽어 내려가는.
버진 : 현녀가 입을. 사, 삼, 삼가는 것은, 부끄러움과 헐뜯음을. 불러들일 까. 두 려 워 함 이 니.
#32. 박규의 집 앞 - 저녁
박규의 집 앞을 기웃거리는 박연의 모습이 보인다. 박연, 문패를 보는데 한자가 아리송하다.
박연 : (문패를 보며) 두 자 인거보니께 대충 맞는갑다.
그때 대문 열리며 엄씨 부인과 김훈장 이씨가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얼른 몸을 숨기는 박연.
엄씨부인, 김훈장을 배웅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대문을 닫으려는 봉삼.
박연, 잽싸게 달려가 봉삼을 붙잡는다. 깜짝 놀라 도포에 갓을 쓴 박연의 모습을 쳐다보는 봉삼.
박연 : 여기가 박철 대감 집이 맞제?
봉삼 : 맞긴 맞는데 그건 왜 물으신다요?
박연 : (반갑게) 그라몬 제주에서 온 장버진이라는 처자가 여 있겠네?
봉삼 :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건 또 왜 물으신다요?
박연, 다짜고짜 소매 자락에서 서찰을 꺼내 봉삼에게 건넨다.
박연 : 쪼매 요것좀 버진이라는 처자한테 전해주면 좋것는디.
봉삼 : (깜짝 놀라) 외간 사내헌테 요런 남사시런걸 받으면 안되지라.
박연 : (우격다짐으로 건네주며) 그라지말고 좀 전해도고.
봉삼 : 이러시면 지가 곤란하당께요. 가뜩이나 그 아이땜시롱 집안 분위기가 거시기헌디.. (밀고 당기고 몸싸움)
박연 : 참말로 별것도 아닌디 거 좀 해주면 좋겠꾸마.
봉삼 : 정말로, 절대로 아니된다니께 그래요.
박연이 가만 생각하다 인상을 확 쓰며 엽전 몇 닢을 내준다. 봉삼이 씩 웃으며 돈과 편지를 받아든다.
#33. 별당 버진의 방 - 밤
버진이 방 안에서 윌리엄의 편지를 펼친다. 순간 버진 눈에 핑 도는 눈물.
버진 : !
보면, 종이 가득 쓰여진 삐뚤빼뚤한 윌리엄의 글씨들.. 버진. 나 괘차나. 나. 보고싶어. 우리. 꼭. 만나. 버진. 기다려.
그 위로 윌리엄의 목소리가 뜬다.
윌리엄(e) : 버진. 나 미시에 배고개 시장을 지나갈꺼야. 그때 버진 나와줘. 그러면 우리 볼 수 있어.
윌리엄의 편지를 가슴에 꼭 끌어안는 버진. 버진,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 밤하늘의 달을 보면 조금만 있으면 보름달이다.
버진 : 일리암..
#34. 박연의 집 마당 - 밤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는 윌리엄의 모습에서...
#35. 궁궐 전경 - 오전
#36. 편전 - 오전
편전 안에 모여 있는 신하들과 용상에 앉은 인조.
좌찬성 : 전하. 어서 서둘러 영의정을 임명하셔야 합니다.
박철 : (어이없는) 아직 영의정 대감의 장례가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우의정 : 허나 영의정 자리를 공석으로 두어 백성들을 불안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인조 : (우의정의 말에 흔들리고) 그런가? ...그래, 적당한 인물은 있는가?
좌찬성 : (밀어붙이며) 병판 홍구락 대감이 어떠신지요?
홍구락 :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만 놀란 듯) 아닙니다. 제가 어찌...
(손사래 치며) 저보다 더 훌륭하신 대감들이 많이 계시지 않습니까?
우의정 : 전하, 저 또한 홍구락 대감이 영의정에 적합하다고 사료됩니다.
반정공신에 전하를 향한 충심이 깊고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는 홍구락 대감 아닙니까?
박철 : 하오나 전하, 아직은 때가 아닌 줄로 아뢰옵니다.
우의정 : 미룰 일이 아닙니다, 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인조 : (우유부단한 얼굴로 박철과 우의정 쪽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37. 사헌부 서고 - 낮
서가를 돌아다니며 여러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박규.
안참봉이 다급하게 자료실 안으로 들어와 이리저리 고개 돌리며 박규를 찾는다.
안참봉 : 감찰 나으리... 여기 계십니까?
박규 : (책장 사이로 나오며) 무슨 일로 그리 호들갑인가?
안참봉 : 소식 들으셨습니까?
박규 : (보면)
안참봉 : 역시 아직 깜깜무소식. 제가 그럴 줄 알고 한 달음에 달려왔습니다.
글쎄 병판 홍구락 대감께서 새 영의정이 되셨다 합니다.
박규 : 벌써 새 영의정을?
안참봉 : 허...온 궁이 그 소식으로 떠들썩합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지 않습니까?
홍대감이 평소에 주상전하 입 안의 혀처럼 굴더니만 이런 파격인사가...역시 아첨만이 살 길인가 봅니다.
박규 : (안참봉 말 아랑곳없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는데)
안참봉 : 근데... 나으리는 여기서 뭐 하십니까? (박규 손에 들린 자료를 살피며) 영의정 대감의 검시기록?
박규 : (책 덮는다) 알 것 없네.
안참봉 : (쩝쩝 입맛만 다시고..)
박규 : 좀 알아보았나?
안참봉 : 뭘 말씀이십니까? 시키신 일이 한둘이 아니라... 염색쟁이 과거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그 총탄 말입니까.
박규 : 둘 다 말해보게.
안참봉 : ...성질도 급하시긴. 여기저기 미끼를 던져놓았으니 슬슬 입질이 오겠지요.
엽전 몇 냥이면 사돈에 팔촌에 고조할아버지까지 죄다 알아 내는 놈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도인처럼 말하는 안참봉. 그런 안참봉이 얄밉지만 별 도리가 없는 박규. 자기도 짐짓 여유로운 척...
#38. 박규의 집 별당 - 낮
어딘지 초조한 버진의 얼굴이 보인다. 그런 버진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김훈장.
버진 : 배고개 시장이라는데가 어디쯤이우꽈?
김훈장 : 수련 중에 왜 자꾸 딴소리를 하느냐?
버진 : 부탁이 있수다. 잠깐만 나갔다오면 안되우꽈?
김훈장 : (냉정한) 볼 일이 있으면 수련이 끝나고 하거라.
버진 : 잠깐이면 되우다.
김훈장 : 다시 찻잔을 들거라.
버진 : 내일 두배, 아니 세배로 하겠수다.
김훈장 : (무시하고 설명하는) 무릇 차 달이는 물은 반드시 좋은 물을 가려야 하니,
차 끓이는 소리가 솔바람, 바다물결 소리 같아야 하느니라..
버진 : 내일 세배 네배로 하겠수다. 아니 다섯배 여섯배 일곱배... (떼쓰는)
버진, 김훈장에게 매달려보지만 눈 하나 깜짝 않는 김훈장.
김훈장 : 안된다.
버진 : (애원하는) 허락해줍서.
김훈장 : 안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버진, 안되겠는지 결심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데, 김훈장도 방문을 막으며 일어선다.
김훈장, 회초리를 꺼내며 엄포를 놓는다.
김훈장 : 말로 해서는 안되는 아이구나.
버진 :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우리 어망보다 힘도 안쎄보이고, 달리기도 느릴 것이라마씸.
김훈장 : 어서 앉거라.
버진 : 나넌 대상군 손길도 피해 도망친 몸이라.
김훈장 : 진정 사랑의 매를 맞아야 정신을
하는데, 버진이 김훈장을 밀치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39. 별당 밖 - 낮
문이 확 열리며 마당으로 내려서는 버진. 대충 신발을 찾아 신지도 못한 채 양 손에 쥐고 담을 향해 달려나간다.
OS 게 섯거라~~ 김훈장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버진이는 담 너머로 신발을 던진 다음 담에 올라탄다.
김훈장이 뒤늦게 방에서 나오는데 버진의 몸은 이미 담에 반쯤 걸려 넘어가고 있다.
김훈장 : 야 이 망아지야~
버진이 담 너머로 사라진다.
#40. 거리 - 오후
거리를 달리는 버진의 모습. 달리다 넘어지는 버진. 버진, 그대로 일어나 다시 달린다.
#41. 배고개 시장 - 오후
박연과 함께 시장통을 걸어가고 있는 윌리엄의 모습. 버진을 찾는 듯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윌리엄.
어느새 시장통으로 접어든 버진도 윌리엄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누가 누군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황. 게다가 사당패 놀이까지 겹쳐 더욱 번잡스럽다.
서로를 찾지 못하고 점점 더 절박해지는 두 사람.
윌리엄은 버진을 기다리기 위해 걸음을 늦추는데, 박연은 윌리엄이 사람들과 접촉 할까봐 빨리 끌고가려 한다.
박연 : (윌리엄에게) 뭐하노? 퍼뜩 안가고 똥마린 강아지 맹키로...
박연, 윌리엄을 재촉하다가 사람이 구름처럼 운집한 곳을 바라본다.
박연 : 에고, 난장 텄나부네...
박연이 윌리엄을 끌고 가는데, 시선은 풍물이 들리는 쪽에 고정되어있고, 발걸음은 억지로 떼는지라 느리기 짝이 없다.
윌리엄이 눈치를 채고 박연을 유혹한다.
윌리엄 : 나 윌리엄 사람들 눈 안띄게 조용히 있을게. 잠깐만 보고 가..
박연 : 안되는데...
윌리엄 : 괜차나, (삿갓 누르며) 이렇게 있을게.
박연 : 그럼 잠깐 보고 갈까나?
박연, 윌리엄 팔을 단단히 붙잡고 놀이판으로 간다.
#42. 놀이판 - 낮
여자 분장을 한 삐리가 익살을 떨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고..
멍석 위에서 쳇바퀴와 대접, 대야 같은 것을 가져다 대접 돌리기를 하는 버나쇠들.
잠시 후 사람들 사이로 박연과 큰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윌리엄이 나타난다.
꼭두쇠 : 잘하면 살판, 못하면 죽을판~ 살판이오~
꼭두쇠의 말에 일제히 달려나와 덤블링하듯 재주넘기를 시작하는 살판쇠들.
잽이들이 흥을 돋구기 위해 풍물을 신명나게 두드린다.
신기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윌리엄.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고 군중들 안팎에서 버진을 찾아본다.
#43. 저자거리 - 낮
복잡한 저자거리를 헤치며 달려가는 버진.
#44. 놀이판 - 낮
아까보다 더욱 많아진 사람들. 이제 준비된 무대에 덜미 인형들이 나타나며 꼭두각시 놀음이 시작된다.
(왕의남자에서 공길이가 손가락에 끼우고 하던 인형극)
손가락을 까딱 까딱하며 익살을 떠는 덜미 인형들을 보며 눈빛을 반짝이는 윌리엄.
박첨지인형 : 평안감사가 꿩사냥 나온다구 여기 길을 닦으라구 하는디 말여!
홍동지인형 : 길을 닦으라구?
박첨지인형 : 응! 농민들은 배는 고프고 연장은 없고... 참 이제 길은 닦으야만 하구...
욕은 할 수 없구, 배꼽 밑에 연장으로 닦아야 할까!
홍동지인형 : 배꼽밑에 연장! 이거! 요걸루?
박첨지인형 : 응, 그렇지~ 연장 참 좋구먼!
홍동지인형 : 쉬~~ 쉬~~ 쉬 (오줌을 싸서 길을 닦는다) 워뗘?
산받이인형 : 아~ 잘 닦아졌네!
박연 : (신났다) 좋구나~ 잘한데이~
구경꾼들, 덜미 인형들의 익살에 뒤집어지고, 박연은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분다.
그러다보니 윌리엄을 잡고 있던 팔을 놓게되는 박연. 윌리엄이 슬쩍 뒤로 빠진다.
놀이판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뛰어가는 윌리엄...
#45. 저자거리 - 낮
장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윌리엄을 찾지 못할 것 같다. 버진이 울상이 되어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멀리 삿갓을 쓴 남자를 발견한다. 삿갓을 향해 뛰어가는 버진.
<인서트>
윌리엄이 삿갓을 살짝살짝 들어 주위를 살피며 걸어간다.
버진이 삿갓 쓴 남자를 잡는다.
버진 : 일리암...
돌아보는 삿갓, 윌리엄이 아니라 흰 수염이 길게 뻗은 어느 스님이다. 버진에게 합장하고 다시 돌아서는 스님.
버진, 허탈함에 힘이 쑥 빠진다.
#46. 놀이패 - 낮
신나게 웃고 놀고 있는 박연... 건너편에 버진이 놀이판에 찾아와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47. 배고개 시장 - 낮
윌리엄이 뛰다 걷다 주위를 살피고, 버진도 걷다 뛰다 주위를 살핀다.
서로 길은 엇갈리고, 번잡한 시장통에서 서로 찾기가 힘들어 보인다.
사람들 틈에 멈춰서는 버진... 크게 몇 번 심호흡을 하는데,
윌리엄이 결국 포기하고 어깨가 축 늘어진 채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숨비 소리.
윌리엄 표정이 밝아지며 숨비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버진은 계속 숨비 소리를 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미친년 바라보듯 버진을 바라본다.
하지만 버진은 숨비 소리를 그치지 않는다.
윌리엄이 사람들을 거칠게 헤집으며 가다 걸음을 멈춘다. 앞에 버진이 서있다.
삿갓을 살짝 올리는 윌리엄... 버진이 숨비 소리를 그친다.
윌리엄 : 버진!
버진 : 일리암!
그렇게 감격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서로 가깝게 다가섰으나 할 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윌리엄 : ...밥...먹었수꽈?
버진 : 일리암... 어디 아픈데 없나? 밥 잘 먹고 잘 지내멘?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는데,
#48. 놀이판 - 낮
신나게 춤을 추던 박연.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면 뭔가 허전한 것 같다. 그래도 춤을 추다가 퍼뜩! 깨닫는다. 윌리엄이 없다!!!
박연이 깜짝 놀라 정신없이 뛰어나간다.
박연 : 일, 일, 일마야, 윌리암아... 니 어딨노~
#49. 배고개 시장 - 낮
윌리엄과 버진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다.
윌리엄 : 조금만 기다려 버진.
버진 : 쫌만 기달리라. 일리암...
윌리엄 : 내가 뭔가 조금만 잘 하면 왕님이 뭐든 해준댔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삿갓 벗는데)
어떤 손이 들어와 윌리엄의 삿갓을 확 눌러 내린다. 박연이다.
박연 : 일마 이거 클날 놈이네 이거. 탈출을 하고... 헉헉...
박연은 숨이 턱에 닿아서 말도 욕도 제대로 못한다.
박연 : 퍼뜩 가제이... 헉헉... 이러다 들키면...헥헥... 너랑 나랑 쟈랑... 나란히 모가지 날아가뿐데이.
박연이 윌리엄 끌고 가는데,
버진 : 얼른 가보라. 얼굴 봤으멘 됐으멘.
윌리엄 : 버진...
박연에게 끌려가듯 걸어가는 윌리엄.
자꾸만 뒤돌아보는 윌리엄의 눈에 사람들에게 묻혀 사라지는 버진의 모습이 안타깝게 보이고...
그제서야 두볼에 주르륵 떨어지는 버진의 눈물.
#50. 내전 안 - 오후
보료 위에 앉아 있는 인조. 방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윌리엄과 박연.
윌리엄, 왕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은 결연한 표정이다.
하지만 지난번 연회에서 인조의 광기를 본 윌리엄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인조가 두렵다.
인조 : 그래, 박연네서 지내기는 불편하지 않은가?
윌리엄 : 아조 좋수다.
박연 : (놀라 쿡 찌르며) 야가 아직 이곳 말을 잘 못합니더. 지가 천천히 잘 가르치겠습니다예.
인조 : (비웃는)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 한다고, 자네가 딱 그 꼴이구만.
무조건 ya! ya! 만 외쳐대던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생생하거늘!
박연 : (움찔. 찌그러들고, 작게 중얼) 제가 언제 그랬어예...
인조 : (윌리엄에게) 그래, 너는 살던 곳에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
윌리엄 : ..여러 가지를 했습니다. 라틴어도 배우고, 펜싱도 하고... 여러 가지 noble...
아, 사대부수업 받았습니다. 뭐든 잘 할 수 있수다.
인조 : 여기 있는 박연처럼 무기를 만들 줄 아느냐?
윌리엄 : 무기? 그런 건 못 만들지만... (생각하는)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연극도 할 수 있고, 음악도 할 수 있고...
나 잘하는 거 많아요.
인조 : (코웃음) 이양인 연극에 음악이라? 그 딴 것을 어디다 써먹는단 말이냐.
윌리엄 : (다급해지고) 연극. 음악. 그런 건 무기처럼 사람을 죽일 순 없지만..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요.
인조 : 기쁨이라? 니가 기쁨이라 했느냐?
인조, 갑자기 광기 어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웃더니
인조 : 오냐. 그래. 어디 네 놈이 주는 기쁨 한번 보자꾸나. (눈빛 살벌해지는) 대신, 날 기쁘게 만들지 못할 시엔
네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것이다. (밖에 대고) 밖에 도승지 있느냐? 이양인을 예악회로 보내거라!
#51. 궁궐 내 예악회 - 오후
예악회 관청의 문이 열리고,
취타(궁중 연례악)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 그림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 등 다양한 예악회 관원들이 보인다.
윌리엄은 얼굴이 밝아지면서, 신기한 듯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선다.
윌리엄의 등장에 당황스러운 예악회 사람들이 음악연주를 멈추면.
윌리엄 : (해금 연주자 앞에 서서) 바이올린?
해금연주자 : 네? (해금을 켤 수 있나 건네주며) 이것은 해금이라 하오만...
윌리엄 : 해금? (바이올린처럼 연주해보지만 소리 나지 않는다)
해금연주자 :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시범을 보이면)
윌리엄 : (아름다운 소리에) 와우, 원더풀...
해금연주자 : (못 알아먹고/ 옆에 있는 박연에게) 이곳은 무슨 일이시오?
박연 : 오늘부터 이 자도 자네들과 같은 예악회 관원이 되었능교.
사람들 웅성거리고, 윌리엄은 각종 악기들을 신기하게 둘러보고 있다.
박연 : 니는 이곳에서 일하게 된 기다. (자랑) 나야 가진 기술이 있으니께 중요한 훈련도감에서 일하지만,
니야 마땅한 기술도 없고...
윌리엄 : (듣는 둥 마는 둥) 대단해... 동양의 신비가 모두 모여 있어... (가야금도 뜯어보고, 장구도 한번 보고 엄청 신기한)
해금연주자 : (박연에게) 이곳 관원이 되려면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하는데.
윌리엄 : 악기? instrument?
박연 : 그래 니 쫌 할 줄 아는 거 있나?
윌리엄 : 나, 바이올린 켤 줄 알아. (해금을 보고 좋은 생각이 떠올라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잠깐만 기다려 봐.
#52. 궁 예악회 밖 한편 - 오후
윌리엄은 해금을 바이올린처럼 어깨에 올리고 켜보려 하지만, 잘 안 된다.
윌리엄 : (켜보지만 소리는 안 나고) 바이올린이 될 것 같기도 한데...
윌리엄, 그렇게 계속 낑낑거리고 있는데.
소현세자(E) : 무엇을 하는 것이냐?
윌리엄이 고개를 돌려보면 소현세자다.
연회에서 소현을 본 적이 있는 윌리엄이 서둘러 예의를 갖추고 왕에게 했던 것처럼 절을 하려고 하는데, 소현이 말린다.
소현세자 : 그건 실내 인사법이니, 실외에서는 가볍게 격식을 차리면 되네.
윌리엄 : (끄덕이며) 예.
소현세자 : (윌리엄의 해금을 켜는 시늉을 보며) 참으로 독특하게 연주를 하는 구만. 자네 나라 식인가?
윌리엄 : (계속 시도하며) 네. 잉글랜드에서는 이렇게 연주하는데...
소현세자 : 자네 나라 예악은 어떤지 듣고 싶으니 다음 연회 때 솜씨도 좀 보여주게. 활솜씨만큼 좋은지 궁금하구만..
윌리엄 : 그럼 내 부탁도 들어줄 수 있어요?
내관 : 무엄하도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저지하는데)
소현세자 : (미소) 되었다. (내관, 찌그러지고, 윌리엄에게) 그래, 말해보거라.
윌리엄 : 정말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만나게 해줘요. 잠깐 보는 거 말고 맨날 만나게... 옆에 있게 해줘요..
간절한 눈빛으로 소현세자를 바라보는 윌리엄.
소현세자 : 그건 주상전하의 마음에 달렸네.
윌리엄 : (실망한 얼굴로 보면)
소현세자 : 다음 연회 때 자네의 손에 달렸음이야.
그렇게 말하곤 내관들을 이끌고 복도를 빠져나가는 소현세자.
손에 들린 해금을 보는 윌리엄.. 고개를 돌려 예악회 관원들을 본다. 다양한 모습의 관원들.
윌리엄, 뭔가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윌리엄 : (손에 힘이 들어가는) 버진.. 조금만 기다려.
#53. 서린 상단 사롱 - 밤
한상 거나하게 차려져 있고... 홍구락, 좌찬성, 사헌부집의, 우의정 등이 화기애애한 얼굴로 모여 앉아있다.
홍구락에게 술을 따라주는 서린.
서린 : (술을 따르며) 감축 드립니다. (강조하며) 영의정 대감.
홍구락 : 허허...고맙네.
홍구락이 술잔을 치켜들자, 자리에 모인 사람들 다 같이 술잔을 들어 마신다.
홍구락, 술잔을 내려놓으며 슬쩍 서린을 보는데...
홍구락 : 그런데 전영의정 대감은 어떻게... (운은 뗐지만, 막상 말하기 그런)
서린 : (유감스럽다는 얼굴로) 참으로 안된 일입니다. 그리 정정해 보이셨는데 하루아침에 가시다니...
이래서 사람 일은 한치 앞을 모른다하나 봅니다.
서린과 사헌부 집의가 서로 의미심장하게 눈짓을 주고받는다.
홍구락 : ...그래, 자네 제주목사로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지?
서린 : 비변사의 이재헌 영감을 발령해 주십시오. 영민하고 충심이 깊은 사람이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홍구락 : (고개 끄덕) 알았네. 참, 그리고 내 세자 저하와의 자리도 조만간 마련해 줄 테니 잠시만 기다리게.
우의정 : (서린 향해) 자네, 쌀 1000석을 풀어 곤궁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지? 그런 칭송받아 마땅한 공덕은
세상에 널리 알려 다른 이들도 본을 받게 해야 하네. 내 주상 전하께도 필히 고하도록 하지.
서린 : 칭찬 받고자 한 일이 아니니, 그런 과분한 말씀은 거두어 주시지요. 소인 부끄럽습니다. (의미심장한 미소 슬쩍 날리고)
#54. 서린 상단 복도 - 밤
흡족한 얼굴로 걷는 서린 뒤로 하명이 따르고 있다.
서린 : 이번에 새로운 제주목사가 내려갈 때 충재와 아이들을 딸려 내려가게 하거라. 이제 제주 일도 슬슬 진행해야지.
하명 : 알겠습니다.
만면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며 복도를 빠져나가는 서린의 모습 위로-
#55. 사헌부 - 낮
심각한 박규와 느긋한 안참봉 모습이 대조적이다.
박규 : 영상대감 시신.... 혹 눈을 감고 있었다던가?
안참봉 : (기억을 더듬는 표정) 아마 입과 눈이 벌어져 있었다죠?
박규 : 손은 어떠하였다던가. 주먹을 쥐거나 하진 않았더냐?
안참봉 : 아마 두 주먹을 꼭 쥐고 있어서 펴는데 혼났다지요?
박규 : 검시를 할 때 반드시 사용해야하는 법물을 사용했다던가?
안참봉 : 말도 마십쇼. 시신 욕보인다고 손도 못 대게 했다던데요?
다시 심각한 박규... 안참봉이 가만 바라보다가,
안참봉 : (대뜸) 가시죠.
박규 : ?
안참봉 : (씩 웃는다) 지금 영상대감 돌아가신게 중요한게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맡은 사건이 있는데.
#56. 저자 좁은 골목 - 낮
좁은 저자 거리를 빠르게 걸어가는 안참봉과 박규.
박규 : 여기가 어딘가.
안참봉 : (잘난 척) 아무래도 이쪽은 나리보단 제가 경험자일테니 저만 믿으십시오.
박규 : 이보게 안참봉.
안참봉 : 스읍... 그렇게 부르시면 안 됩니다. (박규 훑어보며) 아무래도 관록 차가 나 보이니, 절 형님이라 부르시지요.
그게 저자거리를 수사하는데 기본입니다. 가시죠. (앞장선다)
성질을 누르며 안참봉을 따라가는 박규.
#57. 암시장 - 낮
외진 골목 안,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침침 으슥한 분위기가 물씬 나는 암시장.
박규와 안참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을 살피는 안참봉, 잠시후 누군가를 발견한 듯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띠우며 성큼성큼 다가간다.
서너 명의 사내들이 둘러서서 뭔가 작당하듯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내의 어깨를 툭 치는 안참봉.
안참봉 : 어이, 방개비!!
방개비라 불린 남자가 안참봉을 알아보고는 냅다 도망가려고 하는데, 박규가 그의 뒷덜미를 확 잡아챈다.
구겨진 얼굴로 박규와 안참봉을 번갈아 쳐다보는 방개비.
안참봉 : (느물느물하게 웃으며 박규 향해) 이 녀석 입이 요리 뚝 튀어나온 게, 방개비랑 똑같이 생기지 않았나, 동생?
#58. 암시장 구석 - 낮
박규와 안참봉 사이에 둘러싸여 곤란한 표정을 짓는 방개비.
방개비 : 어휴...제가 그런 걸 어떻게 압니까요? 저는 인삼이나 쪼오끔 갖다 파는 처진데...몰라요, 몰라.
안참봉 : 이거 왜 이래? 초짜같이... 자네가 일은 작게 해도 귓구멍이 크다는 거 내가 다 알고 있는데...
어디 한번 시원하게 불어봐. 요즘 청이나 왜에 특이한 물건 대준다는 소문 들리는 놈들 없어?
안참봉, 품에서 두둑한 주머니를 꺼내 손바닥에 놓고 툭툭 튕기는데...그 주머니를 따라 움직이는 방개비의 눈.
박규도 방개비를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방개비 : 후시에 참여하는 척 하면서, 밀무역으로 다른 물건들도 챙겨가는 상인들이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기는 한데...
박규 : 그런 자들은 어디에 가면 만나볼 수 있나?
방개비 : (돈주머니 보며) 살곶이 다리로 가 보십쇼. 청나라 놈들이 비단이나 자기 같은 조선의 특산품을 밀수할 때
곧잘 모여드는 곳입니다요.
안참봉 : 그래? 고마압다. (하며 돈주머니 다시 자기 품으로 쏘옥 집어넣고)
#59. 살곶이 다리 근처 - 오후
다리 근처를 샅샅이 뒤지는 박규와 안참봉.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허탕을 친 채 다리 밑에서 나오며 한숨을 내쉬는 박규와 안참봉.
박규, 아쉽다는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는데
안참봉 : 첫 술에 배 부르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한술 두술 먹다 보면 어느새 배도 부르고, 트림도 나오고...
박규 : (시끄럽다, 낮게) 됐네. 어쨌든 이 곳이 밀거래가 이뤄지는 곳이 맞다면 조만간 다시 나타나겠지.
안참봉 : 저도 방개비 놈을 족쳐 다음 거래 날짜를 알아보겠습니다요. (박규 얼굴 살피며) 근데 나리,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낯빛이 그새 핼쑥 해지셨습니다.
박규 : (얼굴 만져보다 흠흠) 거렁청한... (이런!)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이만 가세. (발걸음 옮기면)
안참봉 : (따라가며 중얼) 거렁청?? (갸웃하고)
#60. 박규의 집 별당 - 오후
경대, 연지, 분, 향, 면분, 참빗, 얼레빗, 밀기름, 모시실, 족집게.. 같은 화장 용품이 바닥에 죽 늘어져있고...
버진에게 화장하는 법을 가르치는 김훈장.
김훈장, 마치 메이크업 아티스트처럼 버진의 얼굴에 하나씩 화장을 하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준다.
김훈장의 손길이 닿으며 차츰차츰 변해가는 버진의 얼굴. 하지만 전혀 즐겁지 않은 버진의 표정.
김훈장 : 먼저 얼굴에 미안수를 발라 결을 정돈 하거라. 음력 8월 보름쯤, 수세미 덩굴을 2치쯤 절단하여 뿌리 쪽 넝쿨을
빈 독에 꼽아두면, 수일동안 뿌리에서 뽑아 올린 물이 독에 차는데 그것을 미안수라고 한다.
미안수를 발라 촉촉해지는 버진의 얼굴.
김훈장 : 백분은 누에 꼬치 집에 묻혀 양 볼에 토닥거리는 느낌으로 바르고.. 한 번만 더 도망치면 너 죽고 나 살고...
곱게 분칠이 되어지는 버진의 얼굴.
김훈장 : 미묵(눈썹 그리는 묵)은 관솔을 태워 그을음을 모아 기름에 갠 것인 으로, 눈썹은 가늘고 동그랗게 휘어진 모습이 좋다.
부드럽게 눈썹이 그려지는 버진.
김훈장 : 연지는 홍화 꽃물 가라앉힌 것을 말려 기름에 개어 쓰면 된다. 입술이 파리하면 음난해 보이니 반드시 입술에 연지는
꼭 바르도록 하거라. 내일 화장법을 시험칠테니 만약 오늘처럼 하지 못한다면 회초리 서너개는 부러질 줄 알어.
붉게 그려지는 버진의 입술. 하지만 아름답게 화장이 되어질수록 더욱 슬퍼 보이는 버진의 얼굴..
#61. 박규의 집 안방 - 낮
엄씨 부인이 우아하게 보료 위에 앉아 앞에 있는 홍시연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있다.
그 앞에서 마치 자신이 주인인양 조신하게 차를 우리고 있는 홍시연.
엄씨부인 : 춘부장께서 이번에 영의정이 되셨다지?
홍시연 : 네.
엄씨부인 : 감축드린다 말씀 올리게.
홍시연 : 네.
엄씨부인 : (홍시연 살피며) 근데 자네는 어인 일로...
홍시연 : (옆에 둔 함을 내밀며) 어머니께서 이걸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엄씨부인 : (열어보면, 온갖 보석이 가득. 입이 떡 벌어지는데) 이게 다 뭔가?
홍시연 : 외숙부님께서 직접 청에 가셔서 힘들게 구해온 것들입니다.
엄씨부인 : (고개를 들며) 이런 귀한 물건들을 어찌하여 나에게 가져왔는가?
홍시연 : 원래 귀한 물건일수록 그 값어치를 아는 사람이 지녀야 그 가치가 빛이 나는 법이지요.
이 물건의 귀함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은 도성 안에서 어머님뿐이라 이렇게 가지고 왔습니다.
엄씨부인 : (칭찬에 기분 좋은) 자네 말 어디 하나 그른데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과한 물건은 받을 수 없지.
내 자네 마음만 받겠네.
홍시연 : 아닙니다. 받아주시지요. (은근하게) 물건에 대한 안목이 대단하시니,
사람을 알아보는 혜안도 무척 높으시겠습니다. 어머님...
엄씨부인 : (무슨 말이지 어리둥절한) 어머님?
홍시연 : (내숭떠는) 송구합니다... 제가 마음이 너무 앞섰습니다.
엄씨부인 : (홍시연의 속셈을 눈치 채고) 아닐세. 편안하게 부르게. 내 전부터 자네같이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으면 했네...
(시연 요리조리 보고)
홍시연 : (입가에 조신한 미소)
홍시연, 버진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능숙하게 다시 차를 우려낸다.
#62. 박규의 집 별당 마당 - 저녁
곱게 화장을 한 버진이 마당 한 쪽에 앉아있다. 집으로 들어서다 별당 마당에 앉아있는 버진을 보는 박규.
박규, 아름다운 버진의 모습에 발길을 멈추지만 박규 눈에 버진의 모습 어딘지 쓸쓸해보이고..
버진 : (먼 하늘 향해) 어망, 아방...잘 지내수꽈? 버설이도 잘 지내수꽈... 참말로 얼굴 보고 싶어라.
여기 한양은 참말로 답답하지라. 고운 옷을 입고 꽃단장하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 하나도 안좋아라.
그땐 바다가 그렇게 싫더니만 지금은 바다가 너무 그리워라...
버진의 눈에 맺히는 물기.. 버진, 행여 누가 볼까 얼른 얼굴 부비는데
박규 : (다가온) 잠시 나랑 갈 때가 있다.
영문 모르는 얼굴로 박규를 바라보는 버진의 얼굴에서-
#63. 한강 - 저녁
화면 바뀌면, 한강이다. 자연그대로 펼쳐진 모래사장과 운치 있게 드리운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에는 거짓말처럼 큰 보름달이 떠 있다. 그 모습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는 버진.
버진 : 이게 바다라?
박규 : 바다는 아니지만 바다라 생각하거라.
버진 : (바닥의 모래 손으로 만져본다) 한양 바다는 돌맹이도 없고 참말로 곱다마씸.
나무도 많고.. 파도도 없고.. 물질하기도 참말로 편하게 생겼으멘..
그러면서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버진.
박규 : 기운이 좀 나느냐?
버진 : (활짝 웃으면 끄덕이면)
박규 : 그래. 웃으니까 너 답구나. 망아지.
버진 : 뭐라? 저 귀양다리가
박규 : 어허! 저 말버릇하고는! 내 다시는 데려오나 보거라.
버진 : 치사하게 생색내지맙서. 바다에 확 빠트리는 수가 있수다.
박규 : (얄밉게) 어디 한번 빠트릴 수 있으면 빠트려 보거라.
버진 : 그러라멘 나가 못할 줄 아우꽈?
약이 올라 악착같이 박규에게 달려드는 버진. 박규, 놀리듯 도망치다 발을 헛딛으며 버진에게 잡혀버린다.
박규 : 망아지! 너 정말로 빠트릴 생각은 아니겠지?
순간 그대로 박규를 물속에 밀어버리는 버진. 박규, 풍덩 물에 빠져 허부적거리고..
배꼽을 잡고 웃다 박규에게 잡혀 물에 빠지는 버진. 두 사람, 물 속에서도 티격태격하느라 정신이 없다.
여름을 향해가는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어디선가 날아든 반딧불이들..
#64. 박규의 집 마당 - 밤
안방 문이 열리며 홍시연과 엄씨부인이 나란히 나온다. 엄씨부인, 직접 홍시연을 배웅까지 하며
엄씨부인 : 기다리다 그냥 가게해서 이걸 어쩌나.. 우리 규가 좀 늦나보네.
홍시연 : 괜찮습니다. 저는 어머님 뵈러온거지 아드님 보러 온 게 아닙니다. 오히려 늦은 시간까지 폐가 된건 아닌지..
엄씨부인 : 폐는 무슨,
그때 대문이 열리며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버진과 나란히 집으로 들어오는 박규.
박규 : (작게) 그렇다고 진짜로 빠트리면 어쩌란말이냐?
버진 : (작게) 빠트려보랄땐 언제고.
두 사람, 그 와중에도 티격태격하며 집안으로 들어서다, 앞에 있는 홍시연과 엄씨부인 발견하고 걸음을 딱 멈춘다.
일동 : !!!
긴장하는 박규. 두 사람의 모습에 눈 돌아가는 엄씨 부인. 날카로운 눈초리로 버진을 바라보는 홍시연.
홍시연과 박규를 번갈아 보는 버진. 서로 서로 시선 엇갈리는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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