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의 오후
11월23일 열두시, 양재동 오선채에서 대학친구들 만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겨울날씨다
황대장이 어디가 불편하여 산행모임 몇 달 못 만났더니 친구들을 마치 몇 년간 못 본 것 같아 많은 것이 궁금하던 차에 열린 반가운 모임이다. 며칠 전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는데 송해씨가 지인들과 어울려 식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구십 둘의 노구에 폭삭 삭았을 줄 알았는데 펄펄 뛰고 있었다.
참으로 훌륭한 삶을 살고 계시는구나 싶어 존경심까지 갔다. 이제 노령의 길에 접어든 우리에게도 험한 내리막길이 수시로 펼쳐질 것인데 모두들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으면 좋으련만
오선채는 상당히 큰 음식점으로 대부분 테이블식 룸으로 되어있어 편리하고 쾌적했다.
이용화의 달변이 좌중을 압도했다. 이용화는 일상이 무지하게 바쁘단다. 그런 바쁜 분에게 부인이 심심하면 청소하라 설거지하라 시킨다면서 가당찮은 일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친구들이 그런 것은 시키기 전에 스스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기본적인 것에 반발하다니 간띠(간덩이의 사투리)가 부은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비난이 쏟아졌다. 죽림은 택도없는 소리란다. 설거지하고 청소할 시간 있으면 밖에 나가지 바빠서 나가지도 못하는 사람보고 그런 것을 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 한다. 음악감상 해야지 인문학 강의 들어야지 명상해야지 독서해야지 붓글씨 써야지 죽림에게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란단다. 죽림이야기만 들어보면 부인이 남편을 상당히 갈구고 들볶는 그런 경우로 보인다. 옛날에는 친구들에게 칭찬받던 참으로 현숙한 부인이었는데 나이 들면서 그녀도 어쩔수 없는 것인가? 하기야 독서망양(讀書亡羊)인 줄도 모르고 꿈쩍도 않고 큰소리만 치는 도척같은 남편을 무슨 재주로 움직여 설거지를 시키겠나? 그 나이에 큰소리 팡팡 칠수 있도록 남편 기를 살려주는 것만 해도 하해 같다.
오선채의 음식은 다양하고 맛도 좋았다. 임금님 수랏상이 어찌 이보다 낳을까 하면서 친구들이 모두 만족해했다. 총무 동대선생 얼굴이 반질반질, 생기가 넘쳤다. 5.6년전 보았을 때 기색이 많이 안 좋았는데 지금은 참으로 건강한 얼굴이다. 헬스를 다니다 그만두고 집에서 매일 스쿼트, 팔굽혀펴기, 풋샵을 한단다. 직장 나가며 움직이고 즐거워하는 삶이 건강을 더없이 좋게해주는 모양이다.
오삼환, 김신기, 정진우, 이용화, 김정태, 민형욱, 최예만, 최기영, 석희태, 김재훈. 정도차이는 있지만 모두들 건강하다. 황의중, 지철호, 최종순, 홍인기가 바쁜 일로 빠져 아쉽다. 남미 여행에 흠뻑 빠져있을 임영빈 회장이 이야기보따리 듬뿍 싸들고 올 것이 기대 된다. 용화 이야기에 빠져 정신없이 웃다보니 모두들 젊어지는 것 같았다.
조선시대에는 말죽거리였다는 이곳 양재동. 그 시대의 기능을 이어받은 양, 지금은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가 되어 붐비고 있다. 빌딩들이 번쩍거리고 가는곳 마다 북적거리는 말죽거리의 오후는 참으로 유쾌했다.
2018. 11.24. 石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