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림재 하공 묘갈명(覺林齋河公墓碣銘)
하천진(河千鎭) 군이 부친 거사공(居士公)의 행장을 직접 초고하여 가져와 내게 묘갈명을 써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일찍이 공의 집을 들렸다가 여러 차례 후대를 받았고, 또 하천진 군과 좋은 사이이고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 그 의리상 어찌 사양할 수 있으리오. 그래서 그 행장을 받아들고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참고하여 서문과 명을 쓴다. 서문은 다음과 같다.
공의 휘는 재우(載禹), 자는 문윤(文允), 호는 각림재(覺林齋)이다. 진양하씨는 고려 절신 휘 공진(拱辰)을 시조로 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휘 수일(受一)이 학행으로 뛰어났는데 이 분이 송정(松亭)선생이시고 공의 10세조이다. 고조는 휘 달중(이며, 증조는 휘 홍태, 조는 덕현이며, 부는 두운이다. 어머니는 의령남씨 문신의 따님이신데 아들을 셋 두었다. 공은 그 중 막내이다.
어려서는 매우 영특했으나 가난하여 스승에게 나아가 배울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깊이 깨달은 바가 있어 인근 서당에 가서 책을 받아왔다. 낮에는 읽을 틈이 없어서 밤에 새벽까지 읽었고, 일어나 소 먹이를 만들면서 읽었던 구절을 암송하였으며 익히지 못한 것은 책을 펼치고 송진으로 불을 밝혀 익혔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해 동안 두루 사략, 소학 등의 책을 읽었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모두 기특하게 여겼다. 16세 때에 연이어 내외(內外)의 상을 당해서는 능히 스스로 예를 지키며 지극한 슬픔을 다했다. 백형과 형수를 부모처럼 받들었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아뢴 후에 행했으며, 재물은 조금도 사사로이 축적하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를 맞아 분가하여 근검 절약하였다.
집안끼리 변통하여 서로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갖고 이루는 것이 있으면 먼저 백형에게 주었다. 또 어버이의 기일을 맞아서는 따로 비용을 도와 정성을 다했다. 친척들의 궁핍함에 대해서는 차례로 두루 보살펴 주었다. 또한 집에 서당을 두어 선생을 맞아들여 자식과 조카와 동네아이들을 가르쳤고 서적과 지필을 다수 구매하여 쓰도록 공급하였다. 선조의 재실을 창건하고 조상의 배석을 개수함에 이르러서는 더욱 열심히 마음과 힘을 다하였다.
공은 일찍이 마을을 다스렸는데, 사람들을 응대할 때 한결같이 간결하게 하여 바르지 못하고 굽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간이하게 되도록 힘써 일을 다스렸고, 본말을 밝히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의심스럽고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을 분별하여 해결함에 이르러서는 그 규모가 커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것은 대개 공이 집안을 다스리는 기술을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공은 고종 신미년(辛未年, 1871, 고종 8) 10월 25일에 출생하여 기축년(己丑年, 1949년) 4월 30일에 졸하였다. 수(壽) 칠십구세이다. 묘는 소현 방동에 있다. 부인은 성주이씨 도완(道完)의 따님이신데, 아들을 넷 두었는데 장자는 천진(千鎭)이고 동진(東鎭), 상진(相鎭), 림진( 琳鎭)이다. 두 따님은 창녕 조경조(曺敬助), 진양 정갑균(鄭甲均)에 시집을 갔다.
천진의 아들은 영택, 영열, 영증, 영석이고 두 딸은 초계 정봉영, 합천 이영원에게 시집갔다. 동진의 아들은 영천, 영배, 영걸, 영필, 영수, 영만, 영숙이고 딸은 안동 권가현에게 시집갔다. 상진는 영후를 아들로 두었다. 림진은 영필, 정억, 치균, 영훈, 영헌이다.
영택은 경근으로 대를 이었고, 영렬의 아들 경근은 출계했고, 전근, 광근이다. 영증의 아들은 창동, 명표이다. 영천의 아들은 성래, 명래, 우표, 덕표, 정표이다. 영후의 아들은 찬근, 경표이다. 정억의 아들은 동표이다. 현손 이하는 여기에 적지 않는다.
창산 성환혁(成煥赫) 찬
2019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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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覺林齋公墓碣銘.
河君千鎭. 手草其大人居士公狀. 請余爲碣墓之文. 余甞過公之廬屢. 被其眷遇. 而因又與千鎭君好至. 今無少渝則其義安可有辭於是. 接其狀而參以所見聞者. 叙而銘之. 叙曰. 諱載禹. 字文允. 號覺林齋. 晉陽河氏. 以高麗節臣. 諱拱辰爲始祖. 至李朝有諱受一著以學行. 是爲松亭先生於公間十世. 高祖曰達中曾祖曰洪泰祖曰悳賢考曰斗運妣曰宜寧南氏文信女生三男公爲其季. 幼甚穎慧而貧不能就學. 一朝忽有感悟. 往隣塾受書 晝不暇讀. 而讀以夜至晨. 起作牛飯暗誦所讀. 而有末習者展券竈上以. 松膏火照以習之如是. 屢年徧讀史略小學等書聞者. 咸奇之年十六. 連遭外內喪. 能自持禮極哀. 奉伯兄及嫂如父母. 事必稟而行之. 資無毫髮私儲者. 及後娶婦. 析居勤儉節葯. 又以心計通變家得麗有所成. 立則先爲供給伯兄而値先忌別有助備. 而誠盡族戚窮者. 次第有周恤.又置家塾. 延師以敎子侄及村童多. 購書籍紙筆.資其需用乃.若先齊之刱建先碑之改竪.尤其所斤斤盡心力者也.公嘗任治里一.以易直應接人物.無所回互骫骳.故務簡而事治至其綜核. 物理辨決疑難恢. 然有人所難窺者. 然大槪用其治家之術云. 公生以高宗辛未十月二十九日. 卒以己丑四月三十日. 享年七十九. 墓在所峴房洞亥坐之原. 配星州李氏. 道完女. 四男長卽. 千鎭. 次東鎭. 相鎭. 琳鎭. 二女. 適昌寧曺敬助. 晋陽鄭甲均. 千鎭生. 泳宅. 泳烈. 泳增. 泳碩. 二女. 適. 草溪鄭鳳永. 陜川李永元. 東鎭生. 泳千. 泳培. 泳杰. 泳必. 泳秀. 泳萬. 泳淑. 一女. 適. 安東權可鉉. 相鎭生. 泳厚. 琳鎭生. 泳弼. 涏億. 治均. 泳勳. 泳憲. 泳宅. 嗣. 慶根. 泳烈生. 慶根出. 全根. 廣根. 泳增生. 昌東. 明杓. 永千生. 成來. 明來. 禹杓. 德杓. 正杓. 泳厚生. 燦根. 炅杓. 涏億生. 東杓. 玄孫以下. 繁不錄. 銘曰.
昌山.成煥赫. <끝>
[출처] 吏曹佐郞李公墓碣銘 이조좌랑이공묘갈명 (이좌랑갈명병서) / 하항|작성자 더불어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