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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상
허수경
내일은 탈상 오늘은 고추모를 옮긴다.
홀아비 꽃대 우거진 산기슭에서 바람이 내려와 어린 모를 흔들 때
막 옮기기 끝낸 고추밭에 편편이 몸을 누인 슬픔이 아랫도리 서로 묶으며 고추모 사이로 쓰러진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남녘땅 고추밭 햇빛에 몸을 말릴 적
떠난 사람 자리가 썩는다 붉은 고추가 익는다
-약력 1964년 경남 진주 출생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독일 뮌스터대학교 고대고고학 박사 1987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혼자 가는 먼 집』『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시인의 말 앞으로 고통이 있다면 나의 몫이요 그 고통으로 빛나는 날이 예비된다면 이 땅에 내가 노래해야 할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의 몫이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므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1988년 11월, 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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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 (28일) 허수경시인이 안동 이육사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인은 멀리 독일에(26년동안)있고..
이 시는 시인의 첫번째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 수록된 시다.
시인의 나이 20대 초반에 쓰여진 이 시집을 다시 꺼내 든 이유..
허수경시인이 아프다.. 많이..
유방암 투병중이다..
멀리 독일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어나라, 허수경..
슬픔만한 거름은 이제 영영 땅에 묻어버리고
혼자 가는 먼 집 같은 거, 이제 혼자 가지 말란 말이다..
아프지 마세요
아프면 세상천지가 모두 다 외로움이고 그리움이고 후회의 연속이고
허망한 기다림이고
인생이란",독고 다이 다" 라는 농담처럼 읊었던 그말이 몸서리치게 심장에 박히는 거다
병실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은 정말 눈부실것이고
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은 짜릿한 것으로 울음울게 할것이다
아프지 마요
모두들
날이 매우 덥습니다
천사가 되고 싶습니다
갑자기
착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좀 시원한 세상이 올까요?
시인의 근황이 한여름을 더욱 짓무르게 한다
한 줄기 바람불어와 그녀의 상처에 이제 딱정이가 앉길 바래본다
그리하여 다시금 우리들 곁에 좀더 오래오래 머물 수 있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