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은 것입니다
(1코린8,12).
Ⅱ.인간 존엄성의 존중
타인의 영혼 존중:악한 표양
2284악한 표양(스캔들)은 악을 저지르도록 타인을 이끄는 행위이다.악한 표양을 보이는 사람은 이웃를 악으로 이끄는 유혹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덕과 정의에 해를 끼침으로써, 그의 형제를 영적 죽음으로 이끌어 들일 수 있다.만일 어떤 행위나 부작위로 일부러 타인이 심각한 과실을 저지르게 한다면, 그 악한 표양은 중죄가 된다.
2285악한 표양은, 그것을 보이는 사람의 권위나 그것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의 약함 때문에 특별한 중대성을 띠게 된다.이 악한 표양은 우리 주님께 다음과 같은 저주를 불러일으켰다.“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편이 낫다”(마태18,6).본성이나 직무에 따라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교육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악한 표양을 보인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악이 되는 것이다.예수님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신다.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비유하신다.
2286악한 표양은 법이나 제도,유행이나 여론 등으로 유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풍속의 퇴폐나 종교 생활의 타락, 또는 “고의적이건 아니건 계명에 합치되는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을 어렵게 하거나 실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들”로 이끄는 법이나 사회 구조를 촉구하는 사람들은 악한 표양을 보이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부정 행위를 조장하는 규칙을 정하는 기업주들이나,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성나게 하는” 교사들, 그리고 여론을 조작하여 도덕적 가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죄를 짓은 것이다.
2287다른 사람들이 악을 행하도록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하는 사람은 악한 표양을 보이는 죄를 짓는 것이며,직접으로든 자기가 조장한 악에 책임이 있다.“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루카 17,1).
건강 존중
2288생명과 신체의 건강은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값진 재산이다.우리는 타인의 필요와 공동선을 참작하면서 이 재산을 분별 있게 돌보아야 한다.
시민들의 건강을 돌보려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게 해 주는 생활 여건, 곧 의식 주,보건, 기초 교육,직업, 사회복지등이 갖추어지도록 사회가 도와야 한다.
2289윤리적으로 육신 생명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신 생명이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므로 윤리는 육신의 숭배를 촉진시키고,육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며,완벽한 육체와 스포츠의 성공을 우상화하는 경향의 새로운 이교도적 정신에 반대하는 것이다.이러한 사고방식은 강한 자와 약한 자 중에서 선별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타락시킬 수 있다.
인간 존중과 과학 연구
2292 개인이나 인간 집단에 대한 과학적,의학적, 또는 심리학적 실험은 병의 치료나 공중 보건의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2293 기초 과학 연구는 응용 과학 연구와 함께 만물에 대한 인간 지배권의 중요한 표현이 된다.과학과 기술이 인간에게 봉사하는 데 사용되고, 모든 사람을 위한 전인적 발전을 촉진할 때, 이는 귀중한 자원이 된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인생의 의미와 인간 발전의 의미를 보여 줄 수 없다.과학과 기술은 그것을 개발하고 발전시킨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인간의 도덕적 가치에 비추어,과학과 기술은 그 궁극의 목적과 한계 범위가 정해지는 것이다.
2294과학 연구와 그 응용에서 도덕적인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은 환상이다.반면, 그 방향 결정의 기준들은,기술의 단순한 효율성이나,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어떤 사람들을 위하는 용용이나, 최악의 경우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등 그 어느 것에서도 추론될 수 없다.과학과 기술은 그 본질적 의미로 보아서,도덕의 근본 기준들을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과학과 기술은 하느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인간과 그 양도할 수 없는 권리, 그리고 그의 참되고 전적인 선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2295인간의 존엄성과 도덕률에 어긋나는,인간을 대상으로하는 연구와 실험은 그 자체로 정당한 행위일 수 없다.비록 피실험자들의 동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들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만일 실험 대상자의 생명이나 그 육체적,정신적 완전성에 피할 수 없는 지나친 위험을 그 육체적,정신적 완전성을 피할 수 없는 지나친 위험을 겪게 하는 것이라면,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도덕적으로 부당한 것이다. 또 피실험자나 그 보호자의 명백한 동의 없이 행해지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육체의 완전성에 대한 존중
2297사람을 납치하고 인질로 삼는 것은 사회 안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피랍자를 위협하여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이러한 행위들은 도덕적으로 부당하다.폭력 행위(테러리즘)는 사람을 무차별로 위협하고 상처를 입히고 죽인다. 폭력 행위는 정의와 사랑에 크게 어긋난다.자백을 얻어내기 위해서,죄인들을 처벌하기 위해서,증오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육체적 또는 정신적 폭력을 사용하는 고문은 인간 존중과 인간 존엄성에 어긋난다.엄밀한 의미에서 치료를 위한 처방의 경우가 아니라면 고의적이고 직접적인 수족 절단,신체 상해,불임 수술은 도덕률에 어긋난다.
죽은 이들에 대한 존경
2299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에게는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그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그들과 가까운 친지들은 기도로써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친지들은 적당한 때에,병자들이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성사들을 받도록 주선해야 한다.
2300죽은 이들의 시신은 부활에 대한 신앙과 희망 안에서 존경과 사랑으로 다루어야 한다. 죽은 이들을 장사 지내는 것은 신체에 자비를 베푸는 일이며,이것은 성령의 궁전인 하느님의 자녀들을 명예롭게 하는 일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바야흐로 ’먹방‘으로 대표되는 포식 飽食 과 미식 美食의 시대이다.정보만 넘쳐나는 것이 아니다.미디어에서 소비되고 있는 다양한 음식들을 경험하는 것도 물론 살면서 느끼는 행복의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하지만 건강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섭식이 아닌 혀끝의 쾌락만을 좇는 섭식에는 문제가 있다.이는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이렇게 다양한 음식의 ’폭격‘을 맞고 있는 지금,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일정 기간 동안 음식 섭취를 중단하는 ’간헐적 단식‘이다.앞서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단식은 인지 기능과 집중력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종교인들이 절식과 단식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몸을 가볍게 비우면 신체의 기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정신도 맑아져 사고력도 향상된다.”
(간헐적 몰입/조우석 著167쪽)
저절로 웃음이 났다
웃는 남자를 보고 여자도 웃었다
마음에 꽃이 피는 것 같다
정말로 봄이었다
(다시사랑/정현주)
이 좋은 봄날에
행복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