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通爲一(도통위일)
道(도)는 통해서 하나가 되게 함. 도는 통하고 보면 모두가 한 뿌리라는 뜻.
莊子(장자) 齊物論篇(제물론편)에 나오는 말로, 子游(자유)가 天籟(천뢰)를 듣지 못하였다고 道(도)에 대하여 물었다.
子綦(자기)가 대답하여 말했다. 길(道 : 도)은 사람이 걸어 다녀서 만들어 지고 物(물)은 사람들이 불러서 그렇게 이름을 붙여지게 된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다고 하는가?
습관적 편견이 그렇다고 하는 데서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가?
習慣(습관)의 偏見(편견)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데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萬物齊同(만물제동)의 커다란 肯定(긍정)의 세계에서는 모든 物(물)은 진실로 그러한 바가 있으며 모든 물은 可(가)한 바가 있으니 어떤 물이든 그렇지 않은 바가 없으며 어떤 물이든 가하지 않은 바가 없다.
따라서 분명히 하기 위해 예를 들면, 커다란 대들보와 자그마한 집 기둥(擧莛與楹 : 거정여영), 문둥이와 西施(서시)라는 미인(厲與西施 : 려여서시), 그리고 허풍쟁이나 사기꾼이나 궤변가, 혹은 괴이한 것을 말하는 사람(恑恑潏愧 : 회궤휼괴), 모두 道(도) 가운데에서는 통하여 하나가 되게 한다(道通爲一 : 도통위일).
하나인 道(도)가 분열하면 상대에게 事物(사물)이 成立(성립)되고, 상대세계의 사물이 성립되면 그것은 또 파괴된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성립과 파괴를 막론하고 도에 의해 다시 통해서 하나가 된다(復通爲一 : 부통위일).
오직 통달한 사람이라야만 하나가 됨을 안다.
常住(상주) 不變(불변)의 自然(자연)에 맡긴다. 庸(용)이란 作用(작용)이고, 작용이란 通(통)함이고 통함은 자득함이니 자득의 경지에 나아가게 되면 道(도)에 가깝다. 絶對(절대)의 是(시)에 말미암을 따름이나 그렇게 할 뿐이고 그러한 까닭을 알지 못하는 것을 道(도)라고 한다.
성완용/ 법고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