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김언
서울의 밤 외
서울의 밤은 25도. 온도가 아니라 알코올의 도수. 25도면 가볍지 않은 도수. 17도도 아니고 18도도 아니고 19도도 아니다. 25도는 적당히 더운 날씨. 적당히 더운 날에 서울의 밤을 본다. 적당히 더운 날에 서울의 밤이 왔다. 서울의 밤은 서울에서 보내는 밤. 서울 와서 보내는 밤. 누군가는 서울을 떠나서도 서울의 밤을 생각하겠지. 참으로 생각이 많았던 밤. 일도 많았던 밤. 친구도 많았고 술병도 많았고 술잔도 한두 잔으로는 부족했던 밤. 한두 병으로도 부족했던 밤. 어지간히 마시고 어지간히 취하고 어지간히 토하고 또 어지간히 외로웠던 밤. 쓸쓸했던 밤. 친구도 많았는데, 덕담도 많고 농담도 많고 진담도 분명 많았을 터인데, 왜 악담처럼 남는 말은 하나도 없었을까? 다 잊어먹으라고 마셨을 것이다. 서울의 밤. 다 게워내라고 마셨을 것이다. 서울의 밤과 서울의 밤. 한 밤도 아니고 두 밤도 아니고 몇 밤에 걸쳐서 그 밤을 생각하는 밤. 서울의 밤 25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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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 2022년 봄
눈앞에 서울의 밤이 있다. 서울의 밤은 소주다. 출시된 지 일 년이 채 안 된 소주. 희석식 소주가 아닌 엄연히 증류주로서의 소주. 그래서 좀 고급스럽다. 그래서 병도 조금 색다르다. 서울의 밤은 아주 고급 소주는 아니다. 서울의 밤은 아주 저급한 소주도 아니다. 그러면 중급 소주. 그래 중급이라 해두고 마신다. 눈앞에 서울의 밤이 있다. 서울의 밤을 따르고 있다. 서울의 밤을 받아 마시고 있다. 혼자서 따르고 혼자서 받아 마시고 있다. 서울의 밤은 아직 많이 남았다. 절반도 지나지 않은 밤에 절반도 넘게 남은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두 잔 마시고 그러면 이 밤도 동이 나겠지. 술병도 바닥이 나겠지. 눈앞에 서울의 밤이 있다. 한참이나 남아 있다. 이 밤 너는 어디 가서 술을 마시고 있을까? 집 나가면 다 돈인데. 돈과 술을 바꿔서 밤을 보내는 너는 언제쯤 들어올까? 돈 떨어지면 들어오겠지. 술 떨어지면 내가 나가듯이. 서울의 밤. 한 병으로 부족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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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
본명 김영식. 1998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숨 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백지에게가 있으며 시론집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가 있다. 미당문학상, 박인환문학상, 김현문학패,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