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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iful Sorrows’
드디어 나와 친구 5명의 합동 작품인 ‘Beautiful Sorrows’가 책으로 출간됐다. 1900년대 한국 현대 단편소설 6편을 영어로 번역한 단행본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1년간의 힘들었던 순간, 즐거웠던 순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솔직히 처음엔 책으로 출판되리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팀을 짜서 하는 프로젝트라서 친구들끼리 번역해서 잘되면 출판하고, 아니면 할 수 없고, 단편소설인 만큼 금방 끝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현진건의 ‘할머니의 죽음’, ‘빈처’, 이상의 ‘종생기’, 최서해의 ‘탈출기’, 안국선의 ‘인력거꾼’, ‘금수회의록’ 등 6개 작품 가운데 내가 맡은 작품은 ‘빈처’. 지난해 여름방학 내내 매일매일 책과 노트북, 사전을 펼쳐놓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문장이 길거나 복잡한 것이 많았고, 글 속의 의미까지 정확하게 전달하려다보니 한 장 한 장 번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번역이 끝나자 이번엔 다른 친구들의 번역본 검토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작과 번역본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작은 오역이나 부족한 표현을 찾아내는 작업은 새로 통째로 번역하는 일보다 더 짜증나고 힘든 일이었다. 하기 싫어서 미루다가 친구들의 재촉을 받기도 했다. 그 다음엔 각자가 맡은 작품의 줄거리, 소감, 작가 설명, 소설을 읽으면서 고려할 부분 등을 작성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프로젝트였지만 오기로 버티다보니 희망으로 바뀌었다.
나와 친구 한명은 간단한 삽화도 그렸다. 평소 나의 꿈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쓴 책에 내가 그린 그림을 넣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실현된 셈이다. 게다가 책 제목인 'Beautiful Sorrows'라는 아이디어도 제시하고, 정말 이것이 나의 ‘책’이 되겠구나, 싶어 떨리기도 했다. 모든 작업이 끝난 뒤에도 출판까지는 거쳐야할 과정이 많았다. 한남대 김일구 교수님과 지도교사이신 안종협 선생님의 검토를 거치고 주석을 몇 개 더 단 다음에야 비로소 출판사에게 보내졌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 책 표지를 정하게 되었다. 출판사에서 만들어 준 몇 개의 표지 시안들이 너무 예뻐서 한껏 설렜다. 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보낸 후 얼마 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드디어 우리 책이 판매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학교로 책이 배달됐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일 년간의 피땀이 보석이 되어 돌아온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교내 팀 프로젝트 대회에서 대상도 받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도 만든 소중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하고싶은 일 중 하나가 자신의 책 출간이라는데,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나의 책이 생긴 것이 가장 기쁘다. 비록 책이 많이 안 팔리더라도 우리 팀이 외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오랜 정서와 한이 녹아 들어간 주옥같은 작품들을 번역해 알리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이라는 것이 사실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과 오랜 경험이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 같은 고등학생들도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출판까지 했다는 사실이 번역가를 꿈
꾸는 친구들이나 나머지 친구들에게도 꿈과 자신감을 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장영지 학생기자
(경기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