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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호프 공동체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신앙과 삶이 주는 메시지 / 기사승인 2018.10.16 03:37:20
강사: 정원범 교수(대전신학대학교/공동체신학)
강사: 김난예 교수(대전침신대학교/한국부르더호프 공동체)
Ⅰ. 들어가는 말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오늘날처럼 힘겨워본 때가 있을까? 자녀 한 명 키우기도 힘들고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을 안고 있는 냉혹한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다 잊어버리고 어른들 위주의 해결책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보는 눈을 상실하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며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을 읽고, 하나님이 주신 가족 질서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안정을 되돌려 준다면 아이들은 계속 태어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지속될 것이다. 18세기 동유럽에서 일어난 신앙운동 하디시즘(Hasidism)에서 한 말처럼 아이 한 명을 구하는 일이 곧 세상을 구한다는 일이고, 세상을 구하는 일이 교육이라면 진정 행복한 교육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행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 따르면,
원죄는 세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첫째는 무지 ; 우리가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함이고,
둘째는 탐욕 ;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탐욕이며,
셋째는 나약함 ;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함이다(정원범, 2006, 340).
인간은 하나님을 정점으로 하는 무한한 행복을 갖도록 창조되었으나 원죄의 결과들이 행복을 얻는 원천인 하나님 현존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이 사랑과 은총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본 소고는 아이들에게 교육천국으로 손꼽히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신앙과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탐구하며, 그들의 신앙과 삶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찾아보고자 한다.
▲ 강사: 정원범 교수(대전신학대학교)/공동체신학
▲ 강사: 김난예 교수(대전침신대학교)/부르더호프 공동체
Ⅱ.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역사와 신앙
인간은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는 공동체적인 질서 속에 존재하며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Arnold, 2002, 25). 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인간의 본성만으로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변덕, 소유욕,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편하고자 하는 욕망, 야망, 조급한 성미, 지배욕구 등 이 모두가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는데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진정한 공동체를 건설하고 공동체적 삶을 건설하는 것은 선하신 분의 궁극적 신비를 믿는 믿음 곧 하나님께 대한 믿음뿐이다. 즉 성령으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인간 활동과는 관계없는 하나님의 일이다(Arnold, 2002, 57).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역사와 신앙에 대해 살펴본다.
1.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역사
“형제들의 처소”라는 의미를 지닌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에버하르트 아놀드, 그의 아내 에미와 그녀의 자매 엘제 폰 홀란더에 의해 1920년 독일 자네츠에서 시작되었다(The Bruderhof, 2012, 21).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빈민가의 아이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갔고, 1920년에는 군대 내의 우파 세력들이 쿠데타 ‘카프폭동’을 일으켰으며, 이에 대해 노동자 집단은 파업을 일으켰고 사회적 불의는 점점 늘어났다. 이렇게 구세계는 붕괴되어 갔고 모두들 새로운 사회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때 “오늘날 우리에겐 격변이 필요하다. 모든 규범과 사회조건에 대한 완전한 반전과 재평가가 필요하다. 그 해답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발견될 것이다(Mommsen, 2008, 24).”고 생각했던 에버하르트는 자신들의 부르조아적 특권을 던져 버리고 예수의 산상수훈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에 따라 사는 전혀 새로운 삶을 추구하였다. 에버하르트와 그의 아내 에미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철저한 제자도의 실천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베를린의 타운하우스를 떠나 외딴 시골 마을 자네츠로 이사했다. 거기서 마음을 같이 하는 몇 사람이 합류하였고, 그들은 초대교회의 모범(행전 2장과 4장)을 따라 모든 소유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시작하였으며(Arnold, 2010, 12), 1923년에는 23명으로 늘어났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16명이 떠나가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그 때 남은 사람은 7명이었으나 1925년에는 약 50명으로 늘어났고, 그 후 전 유럽에서 찾아온 젊은이들로 150명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의 등장 이후 국가사회주의의 압제의 타겟이 되면서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1937년 비밀경찰에 의해 독일을 떠나게 되었고, 메노나이트, 퀘이커교도와 가톨릭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든 회원들은 마침내 영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40년 그 공동체는 영국 회원들의 유입으로 배가가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다시 파라과이로 집단 이주하게 되었고, 영국에서는 남아 있던 3명에 의해 새로운 공동체가 세워졌다. 그리고 1954년에 첫 번째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미국 뉴욕 리프톤에 세워졌다. 오늘날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있는 곳은 미국, 영국, 독일, 파라과이, 호주 등(The Bruderhof, 2012, 22-23) 4대륙에 걸쳐 23개 공동체에서 2,7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살고 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 형성 배경에는 세 개의 요소가 있다.
첫째, 초기의 후터라이트 공동체의 영향이다. 이 공동체는 1525년 이후 중부 유럽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무렵은 재세례파인 펠릭스 만츠, 콘라드 그레벨, 조지 블라우록이 신자의 세례를 받아들임으로써 급진적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때였으며,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따랐다. 쉴라이트하임 신앙고백을 따랐던 그들은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양심의 자유와 근원적인 기독교에로의 귀환을 옹호하였고, 무력 사용, 유아세례와 제도권 교회를 거부하였다.
야곱 후터를 따랐던 후터라이트 공동체는 재세례파의 하나로(김난예, 2017, 16)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아 돈과 소유물, 노동, 주택을 공유하였고, 형제애와 자매애에 기초한 일상의 삶을 나누었다. 그들의 생활의 중심은 ‘가진 재산과 생산을 함께 나누는, 즉 물질의 공동체’에 대한 실천(Hostetler, 2007, 15)이었고, 그들은 개인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본질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물질을 공유하는 나눔의 공동체였다.
1920년대의 브루더호프 공동체 사람들은 이러한 초기 후터라이트 공동체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현재 그들은 후터라이트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나 초기 후터라이트 공동체와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후터라이트 작품들, 예컨대 야곱 후터, 페터 리데만, 울리히 슈테들러 등의 작품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The Bruderhof, 2012, 26).
둘째,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와 그의 아들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의 영향이다. 부르더호프 공동체는 그들의 영향에 대해 “그들은 자신이 상담했던 사람들의 개인적 어려움이나 광범위한 사회정치적 병폐 등 삶의 모든 문제에 예수님이 승리자라는 확신으로 접근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곧 실현될 것이고, 그 나라는 선택된 몇 사람만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속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기대했다. 블룸하르트 부자의 담대한 믿음의 태도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대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우리를 안내해준다(The Bruderhof, 2012, 27)”고 설명한다.
블룸하르트 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여기에 실현하는 것이었고(Blumhardt, 2008; Blumhadt, J. & Blumhadt, C,. 2011, 11-12), 이런 확신은 브루더호프 공동체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런 영향으로 에버하르트 아놀드는 “예수는 이 세상의 상황과 질서를 완전히 바꾸게 될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를 예언하셨다(Arnold, 2002, 17).” “예수께서 선포하신 나라가 순전히 내세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Arnold, 2002, 115).” 기독교인들은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질서가 자신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국가의 정치, 경제적 구조에까지 도래하기를 고대(Arnold, 2002, 47)”해야 한다고 하였고, 하인리히 아놀드는 폭탄이 사람들 가운데 떨어지는 곳과 인종차별이 있는 곳과 부자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곳과 기계자동화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Arnold, 2011, 285).
셋째, 유럽의 청년 운동의 영향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위스를 휩쓸었던 유럽의 청년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선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들은 전쟁을 범죄라고 말했고, 위선을 경멸했으며 ‘죽음의 폭탄을 축복한 성직자가 어떻게 경건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청년운동 사람들은 계급 구분이 없는 사회, 모두가 조화를 이루고 사랑하며 사는 사회를 내다보았다. 그들은 도시생활의 삭막함, 숨 막히는 중산층 사회생활, 그중에서도 특히 교회의 답답함, 독일 대학들의 속물성을 혐오했다. 그들은 농촌 공동체와 민속학교들을 꿈꿨고, 지역 전통을 되살리고, 획일성을 저주했다(Mommsen, 2008, 27).” 또한 그들은 물질주의를 거부했고, 진정성, 자유, 평등, 단순성을 지지했으며, 공동체가 빈곤과 사회적 요구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1925년에 이르자 독일에서의 이 운동은 기울기 시작했고 마침내 1933년 히틀러 제국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본래의 진정성과 그들이 단순성과 피조물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는 모습은 오늘날도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본질적 요소로 남아 있다(The Bruderhof, 2012, 27).
2.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신앙과 소명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자유를 향한 열망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을 열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간다. 각 개인은 전체 공동체에 복종해야 하지만 동시에 개개인이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선을 추구하며 그 중심에는 성령님이 인도한다는 것이다(Arnold, 2000, 15-16).
1)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신앙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이며, 하나님 위에 그리고 하나님을 통해 공동체의 삶이 세워진다(Arnold & Pennington, 2000, 27).”는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신앙이 자신들의 삶의 기초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신앙은 이론이 아니다. 교리나 사상체계나 말의 체계도 아니며 종교의식이나 조직체도 아니다. 신앙은 하나님 그분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즉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은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이다(Arnold & Pennington, 2000, 27).”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한다(The Bruderhof, 2012, 1).
① 더불어 사는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그를 사랑하기를 원하며, 그를 따르기를 원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기를 원하며,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말과 행동으로 증언하기를 원한다.
② 우리 신앙의 토대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권위 있게 증언하는 성경이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신약과 구약의 인도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③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가르침과 모범을 지키며 사도신조와 니케아신조에 명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도적 신앙을 지지한다.
④ 우리는 재세례파전통에 서 있으며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서약한 모든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신조나 삶의 방식에 관계없이 그들 안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신앙은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적, 사도적인 신앙임을 알 수 있는데 이점에서 그들의 신앙은 개혁교회전통의 신앙과 다르지 않지만, 그들이 재세례파 신학전통의 특징인 제자도를 강조하며 그것을 그대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다른 교회 전통과 구별된다고 하겠다.
2)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소명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자신들의 소명을 크게 다섯 가지, 즉
① 하나님의 나라
② 교회 공동체
③ 평화의 길
④ 정의와 자비의 사역
⑤ 복음의 선포로 이해한다(The Bruderhof, 2012, 3-20).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하나님나라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셔서 모든 사람을 부르시는 예수에게서 자신들의 소명을 찾는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예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하신 공생애의 처음 말씀에서 핵심 단어인 하나님 나라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정의가 확인되며,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평화의 영역이 현실로 구현되는 현장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예수께서 두 개의 계명, 즉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0-31)는 계명으로 요약해주셨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예수를 개인적인 구원자로만 받아들이거나, ‘주여, 주여’라며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예수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하며, 예수의 가르침, 특히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The Bruderhof, 2012, 3-4).
우리는 이 땅의 현실 너머에 있는 인류의 미래만을 추구하며, 이름뿐인 영성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키 려는 종교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예수는 경제와 사회,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해 우리의 세상 전체를 변화시키려고 하신다. 그분의 명령은 실제적이다: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기, 모든 폭력을 거부하기, 평생 결혼 생활에 신실하기, 돈(wealth)에서 자유롭게 살기, 가장 작은 자와 가장 낮은 자로서 섬기기, 다른 사람에 대한 권력의 행사를 포기하기 등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다. 진실로 기쁜 소식, 즉 완전한 사랑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이 시대를 지배하는 절망과 죽음이 극복될 수 있다는 소식이다.
둘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교회 공동체를 자신의 소명으로 이해한다. 하나님나라를 위한 삶이 교회공동체로 인도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불러 모으시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과 그 공동체에로의 소명에 대해 설명한다(The Bruderhof, 2012, 5-7).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세계에 속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길 원하신다. 그는 그들을 당신의 정의와 평화 가 구현되는 새로운 사회를 이루라고 그들을 부른다. 그들 가운데 사적인 재산은 사라지고, 그들은 연대와 평등의 띠로 결합된다. 그리고 거기서 각 사람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른 이들에게 속하고, 내가 언제라도 필요할 때는 그들이 나를 도울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때 예수의 말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이 현실이 된다. 처음 오순절에 그러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생겨났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함께 모였던 신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최초의 교회 공동체가 탄생했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성령이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부어질 때마다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사랑의 친교를 통해 그들의 소유, 재능, 삶을 나누며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우리의 소명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공동의 삶으로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신 주님의 소명을 따라 일평생 신실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우리는 기꺼이 모든 사적인 재산, 개인적인 권리 주장, 세속적인 집착과 명예를 포기한다. 우리의 소명은 우리의 모든 힘과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우리 자신까지 기꺼이 내어 줌으로써 하나님과 인류를 섬기는 것이다(The Bruderhof, 2012, 7).”라고 천명한다. 이러한 고백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
곧 겸손과 연약함과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의 길을 따라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셋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평화의 길을 자신들의 소명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평화를 하나님나라의 참된 본질로 이해하며, 평화의 복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그들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으로 이렇게 대답한다(The Bruderhof, 2012, 11-12).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너희가 용서받아야만 하듯이 너희도 용서하라고 가르쳤고,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에게 저항하지 말고, 반격을 가하기보다는 오히려 공격을 받으라고 가르치셨다. 그분은 정치권력을 제안 받으셨지만 그것을 거절하셨고, 무력으로 자신을 보호하기를 거부하셨으며, 오히려 죽임을 당하도록 자신을 내어 주셨다.
이렇게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평화의 길, 곧 비폭력적 사랑과 조건 없는 용서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자기들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평화의 길은 또한 모든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생명존중의 길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전쟁에서든 자기방어를 위해서든 또는 사형제도, 안락사, 낙태를 통해서든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것을 거부한다. 또한 그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서 어떤 나라의 군대에서나 비전투 요원으로도 복무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이나 살상무기의 사용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일에 동의하거나 도움을 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다. 아울러 그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 자유, 시민권에 대한 권력을 부여받은 공직을 맡는 것을 거부한다(The Bruderhof, 2012, 12).
이러한 생명존중의 정신은 그들이 하나님나라 시민권자로서 하나님나라에 충성해야 한다는 의식과 사랑의 길을 걸어가셨던 예수님의 모범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국적이나 혈통, 인종, 신앙, 문화, 또는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아울러 그들은 전쟁을 단순히 반대할 뿐만 아니라 전쟁의 뿌리인 불의, 증오, 탐욕을 극복함으로써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는 삶, 곧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희망은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사회와 모든 자연을 변화시키는 평화로운 하나님나라를 이 땅위에서 구현하는 것이다(The Bruderhof, 2012, 14).
넷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정의와 자비의 사역을 소명으로 이해한다. 그들이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의의 요구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실천이다. 그들에게 이웃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The Bruderhof, 2012, 14-18).
① 이웃 사랑이란 전적으로 섬김에 헌신하는 삶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인 구원만을 추구하는 것을 포 함한 모든 이기적인 추구를 반대하는 일이다. 우리가 공동체로 사는 이유는 온 세상의 필요에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와 고통에 각자 져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랑에 헌신하는 삶으로 응답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② 이웃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자비사역, 곧 굶주린 이에게는 먹을 것을, 목마른 이에게는 물을 주며, 나그네를 영접하고, 헐벗은 사람을 입히고, 가난한 이에게 시혜를 베풀고, 병든 사람과 옥에 갇힌 이를 방문하는 일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③ 이웃 사랑은 문호를 개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형제자매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의 축복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기술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든 우리와 함께 제자도의 길을 가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④ 이웃사랑은 무수한 불의와 폭력의 근원인 모든 사유재산을 포기하도록 이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 에게 맘몬, 즉 소유욕과 소유권을 거부하라고 가르친다. 그는 “재물이 많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라고 경고한다. 그는 부자 청년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맘몬은 사랑의 적이다.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부를 쌓게 만드는 한편, 수백만 명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 경제 체제의 세력으로서 맘몬은 착취, 부정(fraud), 물질주의와 불의 그리고 전쟁을 낳는다. 맘몬을 섬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맞선다. 무엇이든 자기만을 위해 소유하는 사람은 자기 소유를 포기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신 예수의 명령을 무시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사용하도록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을 가져다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⑤ 이웃 사랑은 학대받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셨듯이, 복음의 권위로 공적이거나 사적인 잘못에 담대하게 대항할 의무가 있다. 예수는 가난하게 태어나셔서 범죄자로 죽으셨다. 그분의 나라는 특별히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을 위해 있다. 그는 자신이 다시 오실 때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예수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선언하신다. 우리는 정의로운 승리를 가져오시고 속죄사역을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돕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다섯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복음 선포를 소명으로 이해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에 나타나 있듯이,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가 모든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까? 그들은 그 답을 요 17: 21-23에서 발견한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결국 제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일치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Ⅲ.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삶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삶은 교회 공동체로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생생하게 펼쳐지는 새로운 사회를 이루라고 새로운 창조세계에 속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신다.
1. 공동체 안에서의 삶
인간의 모든 기술문명이 풍족한 삶을 가져다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 때문에 인간은 완전한 고독에 이르고 최소 단위로 분해되었으며 각자의 폐쇄된 공간에서 지낸다. 각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멀어졌으며 자신을 전체로부터 단절시키는데 익숙해져 결국 인간애를 믿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라면 자아에 갇힌 자신이 해방될 수 있으며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삶은 공동체 안에서의 삶이다. 그들은 왜 공동체 안에서의 삶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은 교회 공동체로 사는 것이 인류를 위한 가장 큰 섬김이며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https://www.bruderhof.com/ko/life-in-community)
에버하르트는 그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Arnold & Pennington, 2000, 25-55). 즉
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모든 생명체는 공동체적 질서로 존재하고 있으며 공동체를 향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 그런 적극적인 모험 안에서만 구원받지 못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이며 생명을 주시며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분명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③ 우리는 자유, 일치, 평화,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 편에 서서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④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시대의 막연한 소망에 대해 신앙의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응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⑤ 구약의 예언 시대와 초기 기독교 시대 이후로 계속해서 공동체로 부르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이다.
⑥ 기쁨과 사랑의 성령이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도록 강권해서 우리가 언제나 그들과 연합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⑦ 자연계를 일치로 부르시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노동과 문화가 공동체가 되도록 하시는 그 동일한 창조적인 일치의 성령께서 우리를 독려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가족들에게 공동체의 의미는 무엇일까?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공동체의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하기를, “그것은 예수께서 복음서, 특히 산상수훈에서 인류를 향해 외치시는 강력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우리는 초대교회가 보여준 공동체 삶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우리 삶의 방식이 현대 사회가 부와 자아를 강조함으로써 초래한 고립, 갈등,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결책(https://www.bruderhof.com/ko/life-in-community)”이라고 말한다. 에버하르트는 좀 더 구체적으로
① 공동체는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② 공동체는 신앙의 응답이다.
③ 공동체 안에서의 삶은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④ 공동체는 다가오는 하나님나라의 징표이다.
⑤ 공동체는 사랑과 일치로의 부르심이다.
⑥ 공동체는 희생을 의미한다.
⑦ 공동체는 신앙의 모험이다 라고 설명한다(Arnold, & Pennington, 2000, 31-69).
2. 공동 소유와 공동 노동의 삶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삶은 공동 소유와 공동 노동의 삶이다. 그들은 개인 물건을 소유하지 않으며, 그들의 공동재산도 공동체 전체의 소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의를 위해 쓰인다. 일단 멤버가 되기로 결정하면 모든 소득과 재산을 공동체에 자유롭게 헌납한다. 그 대신 공동체는 음식과 숙소와 의료 서비스 등 모든 생활 전반을 책임진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공동체 내에서 필요한 노동을 하게 되지만 급료나 용돈은 받지 않는다. 그들은 가정과 일상생활 속에서 검소하게 살고 아낌없이 도우려고 노력하며, 사치를 멀리하고 물질만능주의에 영향 받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들은 이처럼 실제적인 방식으로 교회의 청지기 역할을 실천함으로써 그들의 모든 소유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고자 한다.
(https://www.bruderhof.com/ko/life-in-community/community-of-goods)
기본적으로 그들은 신앙과 일상생활이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과 기도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로만 기도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노동은 예배의 한 형태이다. 그들은 노동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보기 때문에 땅에서 하는 노동을 존중한다. 그들은 손과 근육의 힘을 쓰는 육체노동을 존중하며 기능공의 창의성과 정확성을 존중한다. 또한 예술가의 영감 있는 작품, 자연과 역사에 대한 학자의 탐험, 발명가의 진취성, 전문인의 기술 등 정신과 영혼의 활동을 존중한다. 어떤 형태로 노동을 하든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부름받았다고 그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The Bruderhof, 2012, 67).
그들은 사업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희생시키고서라도 공동체 삶의 원칙과 노동의 가치들을 언제나 지키고자한다. 여기에는 연대성, 윤리적 실천, 장인정신, 청지기 정신 등이 있다.
① 연대성: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그리스도의 황금률은 모든 사람과 연대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동료 인간이 갖는 존엄함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을 단지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죄악이다.
② 윤리적 실천: 성경은 우리가 정직하게 행동하고, 세상의 법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요구를 배려하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사업하는 방식은 이것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
③ 장인정신: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려고 하며, 우리가 우리의 일에 담아내려고 하는 사랑의 표현으로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뛰어난 솜씨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④ 청지기 정신: 자연은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은 자연을 보살피라고 우리에게 맡기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에 경외심을 가지고 지구와 지구의 자원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The Bruderhof, 2012, 69).
결국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자신들의 노동과 사업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 곧 복음을 널리 전하고, 공동체의 삶을 세워나가고 유지하며, 교육 사업을 수행하고, 방문객들을 환대하며, 궁핍한 자들을 돕는 일을 수행하려고 한다.
3.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삶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삶은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삶이다. 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갓 태어난 아이를 반기는 일에서부터 노인들을 돌보는 것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시기마다 서로에게 사랑을 보여 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공동노동을 할 때 90대 초반의 노인이라도 공동노동에 참여하지만 이 경우 그들의 건강이 허락되는 시간 동안, 매우 단순한 일을 하게 하는데 이 때 젊은 사람이 옆에서 이동하거나 작업하는 일을 돕기도 하고, 노인들이 일을 할 때 젊은이가 옆에서 책을 읽어주거나 친구처럼 돌봐준다. 노인들은 친구가 있고 할 일이 있고 자신의 말을 할 수 있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 이웃이 있기에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로 느끼며 산다. 특히 과부, 홀아비, 고아, 장애인과 환자, 정신적, 감정적 질병이 있는 사람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을 늘 기억하려고 한다. 가족의 의미가 공동체적 관점에서 새롭게 되는 것은 예수를 위해 가족과 집을 떠난 모든 사람들이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자녀들 그리고 땅을 백배로 받게 된다는 예수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이 땅 위에 하나님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을 실천한다.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사랑의 행위 즉,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낯선 이를 환대하고, 벌거벗은 자를 입히고, 가난한 자에게 자선을 베풀고, 병자와 감옥에 갇힌 자를 방문하는 섬김에 삶을 헌신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학대 받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서려고 노력한다. 이웃 섬김의 활동은 다양하게 이뤄지며(https://www.bruderhof.com/ko/reaching-out) 그중에서 주목할 것은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일하고 있는 자선단체들과 협력하는 일이다.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기아와 자원 고갈 문제, 자연재해로 인한 위기,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위기, 교육과 문맹퇴치 등이다. 그들은 최대한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로 아낀 재원을 통해 세계적인 구호활동에 사용하며 가능한 멤버들이 몇 주에서 1년까지 구호활동지역에 자원봉사활동을 위해 파견된다. 그들이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자선단체들은 아프리카의 기아문제 해결을 위해 일하는 단체인 옥스팜,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축산과 지속 가능한 농업을 이용해서 큰 성과를 내고 있는 하이퍼, 어떤 편견도 없이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종교나 정치적 노선에 상관없이 누구나 치료하고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 세계의 재난지역, 빈곤 및 인권유린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월드비전,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있는 메리놀 선교회, 세계 재난지역의 어린이들과 가족들을 섬기는 세이브더칠드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와 노예 문제 예방, 피해자에 대한 돌봄과 지원, 그리고 법적인 변호 등을 위해 조사하고 자료화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성공회연맹, 장기 실업자와 출소자들을 돕는 고용자선기관인 영국의 투모로우 피플, 빈곤지역에서 마을을 개발해서 온전히 자립하는 마을을 세우는 방법으로 일을 하는 헝거 프로젝트 등이다.
(https://www.bruderhof.com/ko/reaching-out/common-causes).
Ⅳ.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교육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젊은이들과 나이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배우는 학교이다. 그들에게 참된 교육이란 전인적 인간이 그리스도와 그의 대의에 조율되도록 영혼을 깨우며, 내면의 삶을 활기 있게 하며, 어린이 안의 천부적인 신성한 불꽃을 북돋아 주고 하나님이 뜻하신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교육이란 어린이들이 그릇된 것 보다는 올바른 것을 선택하도록 일깨우는 것을 의미한다(Arnold, 1996, 79; 2003, 84).
1. 아이들 중심 교육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아이들의 천국으로 손꼽힌다.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이 시대의 혼란한 문화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서 아이들을 올곧게 기를 수 있다고 강조하며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라 한다. 이것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갈등의 상황을 가르침이 기회로 삼으며, 아이들이 어른에게 의지하듯이 어른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존하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Arnold, 2002, 10). 현대사회는 어린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고, 어린이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지만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어린이를 공동체의 중심으로 삼을 정도로 어린이를 중시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시는 만큼 그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어른들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린이를 모범으로 삼는다. 그들은 어린이를 통해 솔직함과 관대함과 무조건적인 신뢰가 부족함을 깨달으며 어른들이 살아가면서 너무 쉽게 잃어버리는 단순한 신리를 재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따라서 자신들을 복음으로 이끄는 것은 바로 어린이들이라고 한다(Arnold, 2012, 10). 예수께서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이들의 것이다(마 19:13-14)고 말씀하신 대로 어린이는 하나님이 이루신 창조의 본래 모습에 가장 가깝고(Arnold, 2012, 14), 어린이는 정직과 정의를 요구하며 단순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금방 용서하고, 쉽게 사랑하며, 순진함과 경이감이 가득한 천진난만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https://www.bruderhof.com/ko/life-in-community/family)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은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기를 바라시며 하나님 나라에서 아이들은 매우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예수님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품도록 자연에 눈을 돌려 자연스럽게 경외심을 배우게 하며, 감사하는 법을 가르친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할 기회를 갖고 아픈 현실에 접하도록 하며 어려움에 눈을 뜰 기회를 주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큼 여유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또한 브루더호프 공동체 부모들은 자신들이 자라온 종교전통을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혼동하거나 착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하나님께 이끄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종교적 가르침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고 부모의 신앙을 자녀가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부모의 신앙이 정말 살아있는 것이라면 자녀에게 신앙을 전하는데 굳이 경건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부모의 신앙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Arnold, 2000, 64-65).
2. 브루더호프 공동체 학교 교육
브루더호프 공동체 학교는 어린이 한 명 한 명이 행복하고 건설적인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게 돕고, 전인적 어린이로 교육하려고 노력하며 어린이들을 어른들의 희망이나 야망에 따라가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공동체 학교는 생태학교로서 유아원과 유치원이 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각 공동체마다 차이가 있으나 2학년씩 복식수업을 하고 오전에는 읽고 쓰고 셈하기 등 고전적인 수업을 하지만 오후에는 정원 가꾸기, 노래하기, 춤추기, 공예 등 활동중심 교육과정으로 운영된다. 공동체 학교에서는 엄격한 학습지도, 장인정신과 실용 기술, 노래와 예술, 자유 놀이와 스포츠 정신을 가르칠 뿐 아니라 자연 체험을 실시하고, 시대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연결점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역사와 문학을 가르친다.
또한 브루더호프 학교는 존경심과 자기절제와 건강한 노동윤리를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섬김으로써 사랑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The Bruderhof, 2012, 75). 참된 배려는 단지 태도와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 안에 사시는 하나님을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Arnold, 2012, 128)
브루더호프 공동체 교육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자질들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특별한 형태의 종교교육은 없으나 공동체 와 가정에서 자녀의 인성과 도덕성 및 신앙형성을 책임있게 다룬다. 그들은 젊은이 특유의 자유분방한 생동감을 존중하며 젊은이에게 성숙한 어른처럼 행동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열정을 건설적으로 발휘하도록 도우려고 하며, 그들 자신의 확신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신실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가운데 미숙하더라도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격려해주고 있다(The Bruderhof, 2012, 75).
브루더호프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교과목 학습 외에도 연극모임, 과학클럽, 지역봉사, 민속무용, 비즈니스 경연대회, 관악대 등 다양한 과외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학생들은 수시로 지역 공립학교와 함께 크로스컨츄리 경주나 환경대회 같은 지역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또한 현장학습을 통해 뉴욕과 런던 같은 도시에 있는 가능한 모든 교육적, 문화적, 자연적 자료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의사나 엔지니어, 변호사, 교사 등 많은 전문직의 수행을 위해 대학진학을 위한 시험을 준비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경쟁력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보다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영역을 준비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를 잘한다고 자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졸업한 이후에 직업훈련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다른 브루더호프 공동체로 옮기거나 구호단체에서 자원봉사의 길 등 다양한 진로를 택할 수 있다. 어떤 진로를 택하건 이는 철저히 자신의 선택이다. 또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젊은이들이 가족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자기 성찰과 성숙의 시간을 갖도록 장려한다
(https://www.bruderhof.com/ko/life-in-community/education).
Ⅴ.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현대에 주는 메시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상황은 비참했고 매우 혼란스러웠다. 브루더호프의 창시자 에버하르트 아놀드는 죽은 아이들의 시체를 실은 수레들이 거리를 지나가는 모습, 말이 쓰러져 죽는 모습, 전쟁에서 다리가 절단된 채 돌아온 사람의 모습, 굶주림에 허덕이며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사회문제에 대해 아무런 답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기관들이나 교회들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그는 독일청년운동과 블룸하르트 부자에게 영향을 받았고, 보다 깊은 관점에서 육체와 영혼의 필요, 물질적, 사회적 필요, 그리고 그들이 당하는 굴욕과 착취와 노예상태를 보게 되었으며, 맘몬과 불화와 증오와 폭력의 엄청난 세력을 보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과 자주 만나 토론하는 가운데 개인이나 인간의 영혼에만 관심을 갖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과 예수의 길은 실제적이라는 것, 즉 예수는 불의한 세상의 상황과 질서를 완전히 바꾸게 될 하나님의 통치인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해 가는 삶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명, 사랑, 정의, 평화, 기쁨의 나라인 하나님나라를 이 땅 위에 구현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하여 산상수훈의 요구를 실천하려는 불타는 열망을 가지고 1920년 자네츠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Arnold, 2002, 13-19). 이렇게 출발한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현재 독일, 미국, 영국, 호주, 파라과이에 약 38곳의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면 이 땅에서의 하나님나라를 추구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첫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존재이유와 목적이 하나님나라임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버하르트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나라의 완전한 세상인 이 미래를 감히 ‘지금’ 시작하는 것(Arnold, 2002, 152)”이며,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사람과 모든 인간의 업적과 제도를 대하는 태도는 하나님나라라는 목표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Arnold, 2002, 71). 즉 하나님나라는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탄생, 새로운 시작, 새로운 창조, 새로운 나라, 새로운 질서의 하나님나라이다. 그것은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진실, 생명, 자유, 정의, 사랑, 용서, 일치, 평화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 동시에 하나님나라가 실제로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을 예수께서 원하신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얼토당토않은 거짓일 것이다(Arnold, 2002, 159).”
이렇게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교회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나라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줌으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로 전락한 한국교회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분명한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산상수훈의 실천을 통해 제자도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산상수훈이 그리스도인에게 근본적이고 철저한 변화, 즉 내면의 변화는 물론 정의, 사랑, 평화로 이루어지는 정치, 경제적인 영역의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에버하르트는 “변화는 삶의 모든 영역으로 펴진다. 삶의 한 영역에서만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은 헛된 일일 것이다(Arnold, 2002, 48).” “경제적인 면과 정치적인 책임을 포함해 일반 사회생활에서 산 위의 동네가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은 없다....산 위에 있는 하나님의 동네는 삶의 모든 영역, 그리고 가장 먼 곳의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Arnold, 2002, 46).”고 말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이든 개신교회이든 주류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틴 루터에게서 볼 수 있듯이 산상수훈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킬 수 없거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지킬 수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아퀴나스는 성직자나 수도사들만이 지킬 수 있는 말씀으로 주장했고, 루터는 공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만 지킬 수 있는 말씀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기독교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 외에는 별로 보여줄 게 없는 종교로 전락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산상수훈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개인의 내면적인 영역은 물론 사회, 정치, 경제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켜야 하는 말씀이라고 주장함으로 교회의 교회다움,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셋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모든 악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다. 진리는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사랑은 악과 타협하지 않으며, 정의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생명은 죽음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Arnold, 2002, 68). 에버하르트는 “우리는 모든 악에 대해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라고 하였고(Arnold, 2002, 72, 135), 진리, 자유, 정의, 사랑, 평화의 새로운 나라의 영역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성, 탐욕, 이기심, 물질만능주의, 거짓말, 속임, 불의, 음란, 살인의 세상의 영인 맘몬주의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의 온갖 불의와 악에 대해 저항하는 삶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언제나 현존질서를 지지하고, 기득권세력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한국교회(정원범, 2016, 30-33)에 크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넷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비폭력 평화주의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성서의 중심이며, 하나님나라의 중심주제는 평화이다. 에버하르트는 평화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게 되는 영혼의 내적 평화, 사람들과의 평화로운 관계,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질서의 확립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Arnold, 2006, 33). 그리고 그는 가난, 생명경시, 무자비함, 무관심, 경멸, 온갖 불의의 고통을 보고 눈을 감는 것도 살인이고(Arnold, 2002, 78),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는 것, 수백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것,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낙태로 희생되는 것, 부자들이 불로소득을 얻는 동안 가난한 사람은 힘겹게 살아가는 것도 전쟁(Arnold, 2011, 182-183)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모든 종류의 살인과 폭력의 세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Arnold, 2002, 75). 그러나 이러한 저항은 폭력적인 저항이 아니라 비폭력적인 저항이어야 한다. 폭력은 거짓의 아비와 동맹을 맺고 있고 피를 불러오기 때문이고, 맘몬과 동일한 악한 영이기 때문이다(Arnold, 2002, 100). 그러므로 그들은 평화를 추구하되 정의로운 평화를 비폭력적으로 추구한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이러한 비폭력 평화주의는 개인적인 내면의 평화에 치중하고, 정치, 경제적인 평화를 소홀히 하며, 너무도 쉽게 전쟁을 허용하고 빈곤문제, 낙태문제, 불의한 사회제도 문제 등을 소홀히 여기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대한 도전이 된다고 여겨진다. 그 공동체는 정의의 실천이 없이는 평화가 없다는 사실과 모든 폭력에 대한 저항은 언제나 비폭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통전적인 삶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통전적인 삶을 가르치는 그들의 교육은 공동체 전체가 젊은이들이나 노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배우는 학교라고 생각하며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는 공동체 제자도 교육, 어린이 같은 마음을 중시하는 어린이 중심의 신앙교육, 총체적인 학습방법들을 통해 전인적 인간을 키워내는 전인교육, 사랑과 삶의 모범을 중시하는 본보기 사랑의 교육,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공감과 배려의 교육이다(Arnold, 2012).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이러한 통전적 하나님나라 교육은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들이 절반이 넘어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다음세대교육을 위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
여섯째,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인간존재의 외로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부르더호프 공동체 안에는 나이가 들면 든 대로 젊으면 젊은 대로 어리면 어린대로 함께 어우러져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적 대화자들이다. 아침에는 가족과 함께, 점심과 저녁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이야기는 물론 공동체의 이야기를 나누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심사를 나누며, 자연과 음악과 인간이, 빛과 색과 인간이, 안과 밖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기에 어려운 박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공동체를 지탱해 올 수 있었으며 오늘날 인간존엄의 문제와 소외문제를 공동체에서 찾으려 했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보호책임을 한 가정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 구성원이 나누어 가지며 이들이 공동체 생활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며 발달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면 이는 분명 우리 신앙공동체가 배워서 실천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여겨진다. 특히 서로를 향한 관심과 돌봄, 배려, 검소한 생활과 자연친화적 삶, 근면, 전적인 형제애, 평화와 비폭력을 외치는 브루더호프의 삶의 가치와 태도를 높이 평가하고 물량주의에 깊이 빠져 이미 감각을 잃어버린 오늘의 신앙공동체들은 이를 본받고 일상의 작은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Ⅵ. 나가는 말
부르더호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가족 사랑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등 가족을 비롯한 가정을 상실한 현대사회 속에서는 부모와 자녀들의 정겨운 대화, 가족들의 돌봄과 배려, 형제자매의 정 깊은 친밀감을 나눌 수 없고 서로의 일상적인 분주함으로 가족의 귀중함을 잃어버리고 있기에 이를 회복하려는 그리움이 있다. 또 하나님을 확장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교회 공동체 가족들은 확장된 형제자매로서의 자신들의 삶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고 느끼고 살기를 원하기에 이를 회복하려는 그리움이 있다.
부르더호프의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형태와 정해진 예배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우나 계속적인 일상의 삶을 통한 예배와 형제자매의 평범한 삶을 통해, 서로의 나눔과 돌봄 및 노동을 통해, 자신이 맡은 일을 근면 성실하게 수행하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공동체 생활이 현 교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 정신으로 급진적인 제자도를 실행하며 수많은 가정들과 미혼 남녀 및 독신자들이 함께 모여 초대교회의 방식대로 기꺼이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공동으로 모든 것을 나누며 함께 일하고 먹고 생활하며 절반 이상이 아이들과 청년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자유를 향한 열망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을 열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며, 교회는 가난한 자들 편에 서야하며 그리스도는 가난하고 약하며 어리석은 죄인들은 불러 사랑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심으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그들은 “우리의 소명은 하나님과 상대방, 그리고 당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https://www.bruderhof.com/ko/where-we-are/united-states/fox-hill).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브루더호프 공동체 안에서는 가장 값진 것으로 지켜지고 그들의 삶으로 실행되고 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 누리집에 올라 있는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 “인생의 가장 지속적이고 긴급한 질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말이 여운을 남기며 현대사회 속에서 지친 마음에 깊숙이 내려 퍼진다.
http://m.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048
브라더 호프 공동체의 삶
거룩한 삶
통전적 그리스도인의 삶
인생의 가장 지속적이고
긴급한 질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 M. 루터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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