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의 산책
임병식rbs1144@daum.net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패턴을 조금 바꾸면 느낌이 달라진다. 행사 때 가슴에 꽃 사지를 꽂는다든가 손가락에 반지만 하나 끼어도 느낌이 달라지듯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모든 약속은 전날이나 오전 중으로 이루어지는데 오후 늦은 시각에 김 선생 내외 분 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녁이나 함께 하자는 것이다. 평시에 한 번씩 만나 식사를 하는 사이지만 저녁식사 제의는 처음이다. 혼자 사는 처지에 불감청고소원이이라 마다할 이유가 없다.
혼자 살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식사를 대충 때우기 일쑤다. 그러니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이지 사양하고 자시고 할 게제가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안줘서 못 먹고 없어서 못 먹는 처지라고 할까.
“그리 하십시다.”
호기롭게 대답하고 마중 나온 승용차를 타고서 식당으로 향했다.
“부담 안 되는 곳으로 가시지요?”
하니, 웬걸, 외려 값비싼 집으로 안내한다. 그곳은 전복도 나오고 구은 굴비도 나오고 손님에 따라서는 서비스로 장어구이도 내놓는 집이다. 상차림을 하는데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 ‘이집은 내가 잘 안다고 했는데 개 닭 처다 보듯 하면 어떡하지.’한데 때맞추어 장어구이 서비스가 나온다.
“사장님이 가져다 드리라고 하네요.”
기분이 좋아진다. 대접받는다는 느낌, 알아준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식사 후에 사모님이 제안을 한다.
“소화도 시킬 겸 장도섬을 한바퀴 돌면 어떨까요?”
남편은 그러자하고 나도 좋다고 했다. 엎어치나 되치나 그게 다 같이 찬동의 뜻이다.
해는 기울고 있었다. 아니, 비가 금방 올 듯 하늘은 우중충하고 시간 가늠이 잘 안 되고 있었다. 팔목을 들어 시간을 보니 여섯시를 막 넘기고 있다.
좁다란 인도를 따라 섬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팽나무와 늙은 소나무, 그리고 아무리 보아도 실물 같은 인공 암벽이 우리를 맞아준다. 이 섬은 주변에 인공해수욕장이 개설되고 예울마루 공연장이 들어서면서 예술 촌으로 변모했다. 작지만 임팩트 있는 공간이다.
나는 거대한 암벽 앞에 서서 또 한번 놀란다. 누가 이것을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했나. 이미 그렇게 알려졌음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도 믿을 수가 없다.
처음 이것을 대하면서 내가 감탄을 하자 누군가가 말했다.
“언덕에 조그만 바위가 보여서 흙을 걷어내니 이런 멋진 암반이 나왔다고 합니다.”
“히야-”
멋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런데 자연석이 아니라니. 조성한 사연을 듣고 실망했는데, 다시 보아도 실물만 같다. 바위 결이 보이는 것이나 퇴적층의 모양이 아무리 보아도 인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자연스러움이라면, 이런 비경이라면. 눈 질금 감고 실물로 봐줘도 되지 않을까. 보면서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다.
여수는 참 멋스럽고 신비한 곳이 많다. 돌산 향일암은 바윗돌이 육각형으로 거북등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거문도 서도의 동백꽃은 청초하기로 유명하다. 사도에는 직립보행을 한 공룡발자국이 선명하고 그 한 모퉁이에는 벼랑의 바위가 빗어낸 인물상이 압권이다.
장도에는 연리지가 있어 눈길을 끈다. 날이 맑은 날은 햇살이 소나무 사이로 비춰들어 음영을 드러내고 불어오는 바람은 솔가지를 악기삼아 소쇄한 청음을 들려준다.
이날 나는 새삼스럽게 노년의 우정을 생각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는데, 석양녘에 이른 인생 고빗길에서 함께하는 지인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자랑이 무슨 소용이며 가진 것이 무슨 대수인가. 석양의 해넘이가 한번은 붉게 물 들며 스러지듯이 제 빛깔을 잃지 않고 마무리하는 것이 순리이리라.
나는 이날 ‘챙겨주는 마음의 고마움’을 되새겼다. 새 인연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있는 인연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 최상이 아닐까 되새겼다.
불러내어 밥 사주는 일은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정을 잊어버린다면 사람도 아닐 것이다.
나는 이날 헤어지면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오늘 좋은 시간 가졌습니다. 감사해요”
멀어져가는 승용차를 보면서 한동안 손을 흔들었다. 생각해주는 마음이 그렇게 손을 들어 흔들어 놓도록 만들었다. (2025)
첫댓글 임선생님이 너무 과분하게 치하를 하여 몸 둘 봐를 모르겠습니다.
이틀 후 아들 내외가 초대를 하여 사전에 외식이나 하자고 제가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럼 "임 선생님 모시고 하게 전화하라"고 하여 했더니, 흔쾌히 응답의 말씀주시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장도는 여수의 명물이 된 것 같습니다. 갈 수록 여운이 남고 자주 찾고 싶은 곳입니다.
향일암, 거문도 동백, 사도 공룡발자국, 장도 연리지가 볼만 하다고 하지만
장도 같이 늘 가고 싶은 곳은 못 된 것 같습니다.
어제 함께하는 시간은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제는 두 내외분과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마음따뜻한 정은 늘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서울 원행길은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좋은 일로 가시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장도의 바위경은 그것이 자연이듯 인공이든 참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다시 봐도 팽나무와 노송과 함께 어울려진 풍광이
명품이고 명물이었습니다.
함께라서 좋은 곳
그곳은 식사자리와 해질녘의 풍경이군요
두 분의 깊어가는 우정을 엿듣는 소생의 가슴에서 흐뭇한 미소가 피어납니다
혼자 마주한 산해진미는 맛을 잃기 마련이고 혼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광은 빛을 잃기 마련이지요 두 분의 정겨운 시간이 자주 또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여수는 또하나의 명소를 품게 된것 같습니다.
석양에 장도섬을 걷는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장도에서 바위경과 거목의 팽나무, 노송을 바라보고
온 것이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것 같습니다.
현대수필 2025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