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文鎭)
임병식 rbs1144@daum.net
돌밭에서 조그만 돌 하나를 만났다.
둥근 형태였으나 정확히 절반이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결마저 자연스러워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문득 그것을 문진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해서 떠오른 생각은 아니었다. 모양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검은빛은 깊었고, 물에 닳아 매끈해진 표면은 오래 손을 타온 물건처럼 단정했다.
사물은 용도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같은 흙으로 빚어졌어도 어떤 것은 항아리가 되고, 어떤 것은 요강이 된다. 그러나 사물의 가치는 쓰임에만 있지 않다. 자리를 얻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의미를 입는다. 문진 또한 그런 사물이다.
수많은 돌 가운데 왜 하필 이 돌이었을까.
선택이라기보다 호출에 가까웠다. 돌이 나를 부른 것인지, 내가 돌을 알아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눈길이 머물렀고 손이 따라갔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시간으로 옮아갔다.
이 돌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 아마 지구의 오랜 생성 과정 어딘가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견디며 비와 바람, 햇빛과 물길을 통과해 왔을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돌밭을 굴러다니면서도 이상하게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야 문진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다듬어져 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돌을 조용히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문진이라 부르기 전의 그것은 그저 작은 돌이었다. 그러나 이름은 사물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이름을 얻는 순간, 사물은 하나의 물건을 넘어 의미가 된다.
문득 옛 문인들이 작은 돌을 곁에 두고 아끼던 이유가 떠올랐다. 그것은 지압을 위한 도구라기보다 변하지 않는 것을 가까이 두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묵묵함 하나를 벗 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돌의 표면을 천천히 매만졌다. 처음 무심코 주워 들었을 때와는 달리 손끝에 닿는 시간의 감촉이 달라져 있었다.
돌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침묵이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말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묵묵히 존재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전하는 것들이 있다.
돌은 수없이 많은 시간을 지나왔지만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존재만으로 긴 세월을 증언하고 있었다.
나는 그 돌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종이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붙드는 것이 문진의 일이라면, 어쩌면 사람에게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무게 하나쯤은 필요한지 모른다.
돌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 침묵은 어느 말보다 또렷하게 들려왔다.
(2026)
첫댓글 청석님이 지니신 烏石은 소중한 문진이며 염주가 맞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귀한 수석을 맞나 노후와 동행하니 천하의 石友이지 싶습니다.
눈떠 책상 앞에 앉으면 책이 있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烏石이 지켜주고
지압을 통해 혈액 순환까지 시켜주니 둘도 없는 聽石의 半侶雌 같습니다 ^^
나와 수석과는 때려야뗄수없는 관계이지 싶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촌석을 만지다다 짧은글을 한편 올렸습니다.
선생님과 체온을 나누며 책의 향기를 함께해오는 작은 오석을 언젠가 본 듯하군요 저는 생명이 없는 물상도 지닌 사람 함께하는 사람의 체온과 숨결이 더해져 마침내 생명을 지니게 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맞아요. 생명이 없는 것도 마음을 함께하면 온기가 느껴집니다.
촌석을 평소에는 지압용으로 사용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쓸때는 문진으로 사용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