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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고향 풍기 원문보기 글쓴이: 배규택
시보네 에세이 27
푸른 바다를 건넌 사랑,
돌이 되어 머물다
— 의상대사와 선묘낭자,
천 년을 이어온 숭고한 서사—
浮石寺· 善妙· 義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를 향해 손을 뻗는 사랑.
그리고 또 하나는 상대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손을 거두는 사랑.
우리는 흔히
첫 번째 사랑만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부석사
천 년의 이야기는 말합니다.
가장 깊고 가장 오래가는 사랑은,
두 번째의 것이라고.
잡지 않는 손 안에
더 큰 마음이 담겨 있다고.
의상대사와 선묘낭자.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 한 켠에 품고 살아가는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의 뼈대는
중국 송나라 승려 찬녕(贊寧)이 지은
불교 역사서
『송고승전(宋高僧傳)』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놀랍게도 선묘 낭자의 이야기는
우리나라보다 중국과 일본에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사랑은 국경을 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바다를 건넙니다.
1장. 첫 만남
소유하지 않기로 한 순간
신라 진덕여왕4년(650년),
진리를 향한 열망 하나만을 품고
당나라로 향하던 젊은 수행자 의상.
그가 뱃길을 기다리며
잠시 몸을 의탁한 곳은
산둥성 등주(登州),
한 불심 깊은 신도의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선묘(善妙). 그 집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날 처음 의상을 보았습니다.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비단옷도,
패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빛 속에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탐하지 않으면서도,
이 세상 어느 것보다 깊이
무언가를 향하고 있는 눈빛.
선묘는 그 눈빛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녀는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의상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세속의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거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선묘는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였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그를
붙잡아 둘 수는 없다.
그를 붙잡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선묘는 그날,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잡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대신 이렇게 서원했습니다.
"스님이 법을 구하는 길에서
언제나 무사하기를,
그리고 이 나라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꽃피기를 빕니다.
저는 스님의 법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그 길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소유하지 않겠다는 맹세.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
이 두 가지가
하나로 겹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선묘의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완성되었는지도 모릅니다.
2장. 떠나는 배
닿지 못한 손, 닿아버린 마음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의상은 장안으로 유학을 떠났고,
선묘는 그 긴 세월 동안
그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언젠가 그가 돌아가는 길에
필요할 것들을,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법복과 불구(佛具)가 담긴 보따리.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10년의 그리움이 실로 꿰어진,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드디어 의상이 귀국길에
오른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선묘는 보따리를 들고
해안으로 달려갔습니다.
숨이 차도록 달렸습니다.
그러나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배는 이미 수평선 위의
점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선묘는 그 자리에 멈추었습니다.
저 멀리, 점점 작아지는 배.
그 배 위에 의상이 있었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보고 싶었던 얼굴.
전해주고 싶었던 보따리.
하고 싶었던 말.
모든 것이 닿지 못한 채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보따리를 높이 들어
바다를 향해 던졌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닿을 수 없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정성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보따리는 물에 빠지지 않고
파도 위를 미끄러지듯
배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의상의 손에 닿았습니다.
선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서원을 올렸습니다.
"내 몸을 용으로 변하게 하소서.
저 배가 신라 땅에
무사히 닿는 날까지,
제가 물결이 되어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물속으로 사라지던
그녀의 몸에 찰나의 순간,
황금빛 비늘이 돋아났습니다.
거대한 수룡(水龍)의 몸이
파도를 가르며 솟아올랐습니다.
폭풍도 그 배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암초도 피해갔습니다.
의상의 배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신라의 해안에 사뿐히 닿았습니다.
13세기 일본 가마쿠라 시대,
교토의 고산사(高山寺)를 창건한
명혜(묘에) 스님은 의상대사를
깊이 흠모하여 이 장면을
두루마리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화엄연기(華嚴緣起)』라 불리는
이 에마키(繪卷)는
선묘가 바다에 몸을 던져
거대한 용으로 변하는 장면을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묘사한 걸작으로,
현재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
여인의 사랑이 국경을 넘어 800년 후
이역만리 일본의 국보가 된 것입니다.
3장. 부석(浮石)
사랑이 바위를 들어 올린 날
신라로 돌아온 의상은
화엄의 가르침을 펼칠 터를 찾아
소백산 자락으로 들어왔습니다.
봉황산 깊은 골짜기,
그곳에 절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방해가 있었습니다.
그 땅을 차지하고 있던 무리들이
의상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위협과 조롱이 쏟아졌습니다.
법의 가르침을 펼치려는 자리에,
힘과 욕심이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늘이 흔들렸습니다.
아니, 땅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바위가
허공으로 솟아올랐습니다.
땅에 단단히 박혀 있어야 할 바위가,
새처럼 공중으로 떠올라
무리들의 머리 위를 맴돌았습니다.
세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했습니다.
무리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습니다.
선묘였습니다.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
그녀는 아직 거기 있었습니다.
의상 곁에. 그가 필요한 순간,
언제나 그 자리에.
바위는 천천히 제자리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의상은 그 바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는 알았습니다.
저 바위를 들어 올린 것이 누구인지를.
그 자리에 세워진 절의 이름이
바로 부석사(浮石寺) —
돌이 떴던 절입니다.
지금도 무량수전 뒤편에는
그 바위가 있습니다.
순흥 일대의 오랜 구전에 따르면,
바위 아래로 실을 통과시키면
걸림 없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바위가 땅에 완전히 닿지 않고
살짝 떠 있다는 것입니다.
전설인지 자연현상인지
천 년이 지나도
누구도 단정 짓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바위 앞에 서면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누군가의 사랑이
이 무게를 들어 올렸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사랑은 때로 바위를 들어 올립니다.
그것이 진심일 때.
4장. 지하에 잠든 용
과학이 전설을 만나는 순간
절을 무사히 창건한 후,
선묘는 마지막 결단을 내렸습니다.
용의 몸 그대로
부석사를 영원히 지키는
수호신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전설은 말합니다.
선묘룡은 스스로
돌로 된 용으로 변하여
무량수전 앞마당 지하에 몸을 묻었다고.
그 크기가
무려 13미터(48척)에 이르렀다고.
오랜 세월 이 이야기는
구전으로만 맴돌았습니다.
아름다운 전설이겠거니,
하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1967년, 부석사 발굴 조사팀이
무량수전 앞마당을 탐사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량수전 본존불 아래에서 시작해
앞마당 석등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거대한 자연 암맥(돌줄기)이
실제로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길이가 정확히 약13미터. 전설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수치였습니다.
훗날 KBS 역사스페셜은
지표투과레이더(GPR)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해
이 암맥의 실체를
더욱 정밀하게 확인했습니다.
무량수전 불상 아래에서 시작해
앞마당 석등 쪽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이 자연 암맥의 형태가
바로 전설 속 석룡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지형이 전설이 되고,
전설이 다시 지형을 통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부석사는 그냥 아름다운 절이 아닙니다.
땅 아래 잠든 사랑이 있는 절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천 년 동안 믿어왔고,
과학은 그 믿음이 허황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5장. 선묘각과 선비화
살아있는 사랑의 흔적들
부석사에는
이례적인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선묘각(善妙閣)입니다.
보통의 사찰에는
부처나 산신을 모십니다.
그러나 부석사는
한 이국의 여인을 위한 전각을
따로 두었습니다.
선묘가 단순한 전설 속 낭자가 아니라,
이 절과 순흥 일대를 지켜주는
호법신(護法神)으로
지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입니다.
천 년이 흐른 지금도,
선묘각 앞에는
향연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사당(祖師堂) 처마 밑,
선비화(仙扉花)가 있습니다.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두고
길을 떠났는데,
그 지팡이에서 뿌리가 내리고
잎이 피어났다는 나무입니다.
비도 바람도 제대로 맞지 못하는
처마 밑 좁은 공간에서,
이 나무는 천 년이 넘도록
잎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이 나무에는
오랜 구전이 따라다닙니다.
'잎을 달여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순흥 일대에 퍼져, 한때는
몰래 잎을 따가는 사람들로 인해
나무가 큰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더 섬뜩한 이야기도 전합니다.
조선 광해군 시절,
탐심을 이기지 못한 관찰사 정조(鄭造)가
이 나무를 억지로 꺾어갔다가
훗날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의상에게 선묘는
단순한 여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가 가르친 자비(慈悲)를,
그보다 먼저 온몸으로
살아낸 스승이었을 것입니다.
그 선비화 한 그루가
천 년을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랑의 무게 때문이 아닐까요.
6장.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천 년 전 그녀의 온기
무량수전 앞에 서 보셨습니까?
베흘림 기둥에 등을 기대어보면,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안도감이 옵니다.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천 년 된 나무에서.
어쩌면 그것은 배흘림기둥의
과학 때문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선묘의 마음이 이 절의
나무 한 그루, 돌 한 장에
스며들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의상을 감싸던 그 따스한 마음이,
천 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故 최순우 선생은 그의 글에서
이 기둥에 기대어
사무치는 감동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무량수전 너머 소백산맥 능선이
금빛으로 물드는 저녁 풍경을 바라보며,
이 아름다움이 단순히 자연이나
건축의 것이 아님을 감지했을 것입니다.
선생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온기를. 천 년 전 한 여인이
남기고 간 사랑의 온기를.
맺음말. 뜬바위의 무게
그리고 천 년 후의 우리
사랑에도 무게가 있습니다.
손을 잡는 사랑의 무게가 있고,
손을 놓는 사랑의 무게가 있습니다.
선묘의 사랑은 두 번째
무게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그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
바위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 무게가 얼마나 단단했는지,
천 년이 지나도 닳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중국의 역사서에 처음 기록되었고,
일본 국보 그림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과학 장비가 땅속을 탐사해
전설의 실체를 확인하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사랑이 진심이면,
국경도 세월도 넘습니다.
그것이 선묘가 천 년 동안
우리에게 보내는 말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상대의 꿈을 자신의 삶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선묘는
그것을 말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바위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증명했습니다.
지하에 잠드는 것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선묘각의 향연기로,
선비화의 새 잎으로,
배흘림기둥의 온기로,
천 년을 이어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
오늘 부석사에 가거든,
뜬바위 앞에 잠시 서 보세요.
눈을 감고, 천 년 전
파도 소리를 들어보세요.
거대한 용이 되어 바다를
가르던 여인의 목소리가,
바람 속에 섞여 들릴지도 모릅니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가는 길 위에, 언제나."
선묘는 용이 되었고,
바위가 되었으며, 돌로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석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결국, 사랑하는 것이 되어갑니다.
천 년의 강, 오늘을 건너다
— 변하는 세월,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하여—
오늘날 우리는
사랑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좋아요
하나로 마음을 가늠하고,
읽씹 하나에 관계의 무게를 달아봅니다.
SNS 피드 속 상대의 일상을
몰래 들여다보고,
그 안에 내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내가 있으면 안도합니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상대방을 소유하려 합니다.
그 사람의 시간을, 시선을, 미래를.
조금이라도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으면 두려워지고,
두려움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어느새 사랑의 이름을 빌려
상대를 옥죄기 시작합니다.
선묘는 달랐습니다.
그녀가 산 시대에는
스마트폰도, SNS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붙잡고 싶어합니다.
사라질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도 선묘는 잡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임을 알았기 때문에.
세월은 변했습니다.
마음을 전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사랑은 여전히,
상대가 빛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내가 그늘이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높이 오르기 위해
내가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어렵고 가장 숭고한 것—
상대의 꿈이 나 없이도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묘의 이야기가
국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중국 역사서에 기록되고,
일본 두루마리 그림 속에 살아남고,
과학 탐사로 땅속에서 확인되고,
천 년이 지나도
선묘각 향불이 꺼지지 않는 것은—
이 사랑이 인간이
공통으로 품고 있는
가장 깊은 소망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오래가는 사랑은
가장 많이 받은 사랑이 아닙니다.
가장 깊이 준 사랑입니다.
손을 놓았지만
마음을 놓지 않은 사람,
멀어졌지만
그 자리를 지킨 사람.
선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천 년 전에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석사는 여전히
그 메아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뜬 돌
— 선묘, 그 사랑에 부쳐—
당신이 떠나던 날
나는 파도를 신발처럼 신었습니다
보따리를 던졌습니다
닿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닿기를 빌었기 때문에
당신의 배가 수평선을 지울 때
나는 수평선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늘 볼 수 있도록
용이 된 것은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두려울 것 같아서입니다.
파도가 높을 때
내가 더 높이 솟았습니다
폭풍이 당신 곁에 오기 전에
내가 먼저 폭풍이 되었습니다
당신을 흔드는 것들로부터
당신을 지키기 위해
사랑은
잡지 않는 손으로 하는 것이라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알았습니다
당신을 보는 순간
잡으면 당신이 작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놓았습니다
그 손이 얼마나 떨렸는지
바닷물이 알 것입니다
나는 바위가 되었습니다
떠 있는 바위가 되었습니다
천 년이 지났습니다
과학이 와서 땅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내가 거기 있었습니다
열석 미터의 돌로
꼬불꼬불 잠들어서
보셨습니까
전설은 허황된 것이 아닙니다
진심은 땅속에 새겨집니다
이것이 사랑이냐고 묻지 마십시오
이것은 그냥 나입니다
당신 곁에서의 나입니다
오늘도
봉황산 바람이 부석사를 지납니다
선묘각 향불이 아직 타고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나는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가는 길 위에
언제나
사랑은 결국, 사랑하는 것이 되어갑니다
2026.2.25
배규택
